충청-호남지역 관련자료를 찾던 중이었습니다.
위계룡의 ‘오헌유고(梧軒遺稿)’라는 문집이 눈에 띄어 그 안에서 발견된 내용, 그리고 그 부분과 관련된 내용들을 올려봅니다.
제가 감히 글귀를 읽을 줄 아는 건 아닙니다만, 공개되어 있지 않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문헌이라 샘플 번역을 보고 왠지 호기심이 당겼습니다. 직접 도서관에 찾아가서 ‘화양행일기(華陽行日記)’라는 부분을 열람해 봤습니다.
좀 더 검색해 보니 우암(尤庵) 송시열에 관한 의심스러운 흔적들이 보입니다.
1.
먼저, 위 사진을 면밀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서울과학고등학교 옆에 송시열이 살던 주택가 골목에 있다고 합니다. 400년 전에 새긴 각자(刻字)라고 하기엔 너무 깨끗하고 선명하게 보존돼 있습니다. 아래 보길도의 사진과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2.
송시열의 묘소와 유적지 간의 거리가 도보로 무려 2시간 30분 거리라는 것 또한 상식 밖이라 생각되고,
서울의 ‘응봉(鷹峰)’이라는 위치도 기록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현재 응봉산은 서울 성동구에 있습니다.
3.
송시열(宋時烈)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그냥 모른다고 하겠습니다.. ㅜㅜ 모릅니다.
인조, 효종 때 노론계의 거물이었다는 정도가 고작입니다. 그런데, 나무위키 등에서 기록을 찾아보면,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서,
관직에 있을 때는 서울 명륜동에서 살았고,
전북 정읍에서 사망을 했다고 나옵니다.
이런 사람을 수원 무봉산에 묘를 썼다가 충북 괴산으로 옮겼다는 얘기는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길래..) 그냥 웃지 못할 기록입니다.
묘소를 옮겼다는 시기도 아주 그냥 제각각입니다.
(토지조사사업 때에 옮겨다 놨겠지 이 역적놈들아...!!)
4.
이 네 번째가 바로 이 글을 올리는 진짜 이유입니다.
“..登鷹峰瞻拜尤庵墓..”
--> “응봉에 올라 송시열의 묘를 바라보고 절하다.”
‘화양행일기’가 구한말 기록이고 화양리가 괴산군에 있으니 송시열의 묘가 있는 자리는 당연히 괴산군 응봉(鷹峰)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괴산군 청천면에 응봉산이라는 곳은 없습니다.
지도 앱에서 ‘매봉산’이라고 검색해 보시고 전국에 몇 군데의 매봉산이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괴산군 청천면에 매봉산이나 응봉산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구글어스나 네이버 지도에서는 나오지 않는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전문 산악인인 듯한 사람이 청천면 설운산 밑에 이 종이팻말을 걸어둔 모양입니다. 친일똥강아지놈들이 아무리 돌대가리 꼴통 무뇌충들이라고 해도, 프린터로 출력을 해서 걸어둔 저 종이팻말을 구한말 때에 걸어뒀다고 지껄이지는 못할 겁니다.
1910년경에 화양리에 응봉(鷹峰)이 있었는데, 지도에서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는다?
누가 뭣땜에 멀쩡한 山 이름을 없애버렸을까요??
결론은 여러분들 생각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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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면 터는 대로 계속 나올것 같습니다! 왠지 이것 말고도 재미있는 기록들이 더 있을듯 합니다.
memoryhonam.jnu.ac.kr
보이는 대로 또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혜님..^^
동연님 고생이 많습니다.전남 담양 출신의 '오헌 위계룡' 으로 항일 독립운동가를 거론하신 거면,많은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그는 1921년에 출생해 2002년에 사망한 인물입니다.그렇다면 태어나지도 않은 1910년 8월에 어떻게 괴산을 다녀올수 있었을 까요?게시하는 원문들을 보더라도 필사가 아닌 활자 내지는 인쇄본의 위작이기 쉽습니다.대부분의 가문들이 소장하고 있는 문집이나 일기등은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가득하고,반도의 얘기가 아닌 대륙의 행장과 얘기로 가득합니다.본문에 '華山과 무릉도원,皇朝' 등이 등장하는 것만 봐도 확실하게 반도의 얘기는 아니지요.萬東廟의 정체도 만굽이의 강줄기가 아닌 '萬曆帝(신종)의 고마움을 기려 제사 지내는 東방(조선)의 사당(廟)' 을 의미 합니다.'개인 비서,문집,일기' 보다 정사서와 이에 준하는 역사서 원전에 충실하시면 다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필사본이 아닌 인쇄본이라 90% 이상 확신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몰연도까지 조작됐다면.. 이유가 뭘까요..? 알면 알수록 놀라움의 연속이군요..
만동묘에 관해서도 거사님의 글을 먼저 읽어보았습니다. 구체적인 접근방향에 대해서도 앞으로 종종 여쭙겠습니다~!
@동연 돈과 붓으로 가문의 행적을 키운다는 말이 있지요.대로변의 요란한 선영들과 선산들의 대부분은 가문을 역사와 연계시켜 키운 것들이 많지요.족보역시 그렇습니다.대륙 조선의 반도 이전(이식)과 함께 적당히 땡겨 썼지요.지명 이전의 경우와 같아요.대륙 조선의 縣이나 郡 규모의 지명들을 반도로 와 里와 面으로 안착시킨 것들이 많은 것 처럼 말이지요.별것 아닙니다.단순한 것부터 정교한 것까지 있는자들의 역사 장난질은 아주 많습니다.
@동연 '曾朱璧立' 의 음각문구는,우암 송시열의 학문과 강직함이 공자의 수제자인 증자와 남송 유학의 대가인 주희(朱喜=주자)의 반열에 있었다는 거짓의 유품을 만들어 놓은 거지요.이것도 괴산 골짜기에 강제한 만동묘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상선거사 2002년에 사망한 위계룡은 다른 인물일 가능성은 없는 걸까요..? 어쩌면 오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ㅜ
@동연 할일이 많으 실텐데,그런 것에 신경스지 마세요.공부에 영양가 있는 건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