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위력.
먹는 음식이든 아니면 다른 생필품이든,
내가 어떤 물건을 살 때 흔들림 없이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장 싼 거! 낮은 가격 순!
그런데, 이 집에 이사 와서 철통 같은 이 원칙이 여러 번 깨졌다.
〈전동공구〉
예전에 전세, 혹은 월세를 살 땐 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집 어디가 부실해도 고칠 수가 없었다.
남의 집을 내 돈 들여 고칠 수는 없지 않은가. 얼마 후면 이사를 가야 하는데.
그러다가, 비록 남의 땅에 60년 된 싸구려 낡은 집이지만
내 집이 생긴 것.
집을 고치기 위해 충전 드릴을 하나 사려고 검색해봤더니,
보통 수십만 원!
여기서도 그 원칙, 「가장 싼 거. 낮은 가격순」을 지켜서 5만 원짜리 중국산을 샀더니
긴 나사못 7~ 8개 박고 나니 배터리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배터리의 짧은 시간도 문제지만, 힘이 약해서 단단한 곳에는 잘 박히지도 않는다.
5만 원이 아깝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작업이 안 되는 걸.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다른 제품을 사기 위해 한참 검색을 하다가
△△△△△라는 제품이 눈에 띈다.
『강력한 힘! 오래가는 리튬이온 배터리! 콘크리트도 문제없다!』
광고 문구가 눈에 확 들어 온다.
더구나 이 제품은 미국산으로써, 닐 암스트롱이 달나라에 갔던 그 로켓에
자기네 기술이 사용되었다면서 우주복을 입고 달에서 찍은
암스트롱의 사진도 실려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제품이 단돈 9만 원!
「품절되기 전에 빨리 사야지!」
그렇게 산 제품이 한 3개월 후 어느 날 나사못을 박는데
치이익~ 하면서 연기를 토해내더니 코일이 타버렸다. 못쓰게 된 거다.
선택은 이제 하나.
결국, 30만 원짜리 계양 전동드릴을 샀고
돈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힘과 배터리의 능력에서 30만 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고
무엇보다 일이 참 재미있었다.
써도 써도 배터리 양이 줄지 않았고,
아무리 단단한 곳도 방아쇠만 당기면 팍팍 들어가니,
일이 쉽게 되면서도 능률이 쑥쑥 오르는 것.
5+ 9= 14.
14만 원은 엿 사먹은 거다.
그런데, 이런 사례가 계속 되풀이되었다.
9만 원짜리 중국산 함마드릴 샀다가 금방 못쓰게 되어서
다시 국산 함마를 제값 주고 사야 했고,
10만 원대 중국산 엔진톱 샀다가 2년도 못쓰고
결국 4... 4... 4... (값을 쓰려니까 손이 떨려서 잘 안되는구나.)
거금 428.000원을 주고 제대로 된 엔진톱을 살 수밖에 없었다.
〈프라이팬〉
계란 프라이, 혹은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자꾸 눌어붙고 타는 것이
나는 꼭 프라이팬 값이 싸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였거나, 관리를 잘 못해서 그런 거지,
아무려면 값이 싸다고 음식이 타고 눌어붙겠는가.
값이 싸도 좋은 제품이 있고, 값이 비싸도 나쁜 제품이 있는 거지,
눌어붙고 타는 정도가 제품 가격과 정비례한다면
이 세상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다.
그전까지 나는 프라이팬을 다이소에서 5천 원짜리(20cm)를 사서 썼는데
한 1년이면 새것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너무 눌어붙고 타서.
그 1년도 잘 되는 게 아니고, 계란이나 삼겹살 밑으로 계속 숟가락을 찔러 넣어
음식이 눌어붙지 않게 하느라고 손이 바쁘고 몸이 달았다.
그러다가 비싼 제품은 어떤지 궁금해서 좋은 프라이팬을 하나 사려고
큰맘 먹고 롯데마트엘 갔는데, 주방용품 코너의 어떤 프라이팬 하나가
15.000→ 3.000 이런 가격표를 달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15.000원짜리를 12.000원 할인하여 3.000원에 판다는 것.
얼씨구나 하고 그 프라이팬을 사다가 계란 프라이 한 번, 삼겹살 한 번,
그렇게 두 번 해 먹고 지금은 창고에서 못 그릇으로 쓰고 있다.
그다음엔 진짜로 이를 악물고 33.000원짜리 프라이팬을 샀는데,
기름을 안쳐도, 조금만 기울여도 계란 프라이와 삼겹살이 미끄러져 내리는 것.
우선 철판의 질과 두께와 무게가 달랐다. 프라이팬에 대한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
과연 돈이 좋긴 좋구나.
그 프라이팬 쓰는 재미에, 계란 프라이와 삼겹살 구이를 한동안 매일 해 먹었다.
〈찹쌀〉
재작년 여름.
후배 두 명이 닭백숙을 해 먹자며 자기들이 재료를 다 준비해왔는데
그중에는 찹쌀도 들어 있었다.
백숙을 해 먹고 후배들이 간 후, 남은 찹쌀을 쌀에 섞어 밥을 지었더니,
어! 밥맛이 확 달랐다.
아니, 찹쌀을 좀 넣었다고 밥이 이렇게 고소해?
그래서 앞으로는 밥에 계속 찹쌀을 쓰기로 하고 쿠팡에 검색을 해봤더니
예상대로 찹쌀 값이 비쌌는데 그중 하나, 어느 찹쌀 값이 다른 것의 절반값이었다.
보나 마나 중국이나 베트남 산이겠거니 하고 봤더니, 의외로 국산.
같은 국산인데 값은 절반이라고?
하여튼 그 찹쌀을 샀고, 밥을 했더니, 맛도 절반이었다.
아니, 절반도 안 되고, 찹쌀을 넣은 의미가 아예 없었다.
그래서, 또 제값을 주고 진짜 찹쌀을 샀고,
그제야 제맛이 났다.
〈여자〉
예전에, 내가 나에게 가장 실망하는 부문이 여자 부문이었다.
내가 노가다를 처음 시작하던 20년 전에는
얼굴이 좀 반반하고 몸매가 좀 되는 여자들은 죄다 노래방이나 호프집으로 빠지고
지지리 못생긴 여자들이 노가다판에 일을 나왔는데,
한 10여 년 전부터는 확 바뀌어서 요즘엔 예쁘고 날씬한 여자들이
노가다판에 쌔고 쌨다.
그중에는 나에게 호감을 보이면서 그쪽에서 먼저 전번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 전번을 받으면서도 나의 속 마음은 『전화 안 해!』 이거였다.
그런데, 일이 내 맘대로 되지만은 않는다.
비가 와서 노는 날. 그녀가 준 종이를 만지작 거리다가
「전화하면 안 돼!」 속으로는 이렇게 외치면서도 번호를 누른다.
그렇게 해서 시내엘 나가고,
집에 들어와서는 「에라이 빙신 새끼야! 나가 디져라!」 하면서 자책하고 후회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예쁜 여자가 내 눈앞에서 화장 내를 풍기며 미소를 지어도
손톱만큼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를 악물거나 주먹을 움켜쥐며 결심하지 않아도
아주 편하고 여유 있게 이겨 나온 세월이 벌써 여러 해 째다.
그런데, 나는 그게 내가 철이 들어서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정신적으로 원숙해지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
전화하면 만나게 되고, 만나면 뭐가 들어?
돈! 돈이 들지 않는가!
솔직히 말해서 돈 때문이지, 내가 철이 들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예쁜 여자 앞에서도 이런 반응을 가능케 하는 돈의 위력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2021년. 12월. 6일.
제1차 세계 민중혁명. 강봄.
http://cafe.daum.net/rkdqha1770
첫댓글 특히 전동공구는 싸구려 사면 안돼요..또 요즘 철물점 농기구들도 죄다 중국산 뿐인데 일하다보면 열불나서 삽자루 집어 던져요..여자는 잘 모르겠는데 늦깍이 사랑 한번 하세요..밥풀떼기도 데이트 비용은 십시로 보탤게요...ㅎ
중국산 싸구려를 몇 번 경험한 뒤로는 지금은 돈이 좀 들어도 제 값 주고 좋은 거 사요, 원형 톱, 고속절단기, 예초기 등 일류메이커 샀더니 쓸 때 마다 돈의 값어치가 느껴지고, 일하는 게 재미있어서 자꾸 하게 되요. 중국산은 한 번도 닦은 적이 없는데, 비싼 공구는 나도 모르게 깨끗이 닦게 되더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