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돌산 향일암 스님과 여인의 러브 스토리 (실화)
전남 여수시에서 1 시간쯤 가면 돌산도란 섬이 나온다.
이 섬에 있는 금오산 중턱 바위 절벽에 신라시대 때 원효 대사가 창건 하고 수도한 향일 암이 있다.
울창한 낙락 장송의 솔 바람 소리,
온갖 기묘한 모양의 바위, 남해 바다의 장쾌한 파도가 말 그대로 기막힌 절경이다.
어느 날, 키가 훤칠한 미남 스님 한 분이 순천 송광사로부터 향일 암으로 왔다.
27살, 법명은 지현,
스님은 절 주변을 알뜰하게 손질한 뒤 백 팔 염주에 사바 세계 번뇌를 실어 깊은 사념의 경지를 거닐고 있었다.
그동안 폐사처럼 버려져 있던 향일 암에는 이로부터 여 신도들이 몰려 들었다.
낭랑한 목소리에 인물 좋고 경치마저 절경이어서 그는 곧바로 향일 암의 인기 스님이 된 것이다.
향일 암에서 1km 떨어진 해변의 율촌 마을에 양장 차림의 예쁜 처녀가 찾아 들었다.
폐 결핵으로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요양을 하려고 광주에서 이모가 사는 율촌에 왔다는 그녀는
발그레 한 볼이 요정처럼 예쁜 미인이었다.
동백과 산 죽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꽃잎이 온 섬을 뒤덮고, 바위 틈에 도사린 석란의 향기는
십 리 안팎을 유혹하던 때였다.
그녀의 병은 이런 절묘한 풍경 때문이었는지 눈에 띄게 회복되었고, 차츰 힘이 생겨 금오 산으로 산책
코스를 넓혀갔다.
그때 그녀의 눈에 뛴 남성이 바로 지현 스님!
그녀는 부처님 앞에 정좌 하여 청아한 목소리로 독경 하는 근엄한 모습에 취한 듯 정신없이 응시했다.
이로부터 그녀는 2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금오 산 중턱의 향일 암을 찾았다.
그녀의 시선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졌고, 지현 스님의 얼굴을 못 보면 잠이 들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장승일 뿐 눈길 한번 주는 법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서 가을이 되었다.
사무친 가슴속의 사연이 맺히고 맺혀서 이번엔 폐 결핵이 아닌 상사병에 몸부림 하다가 처녀는 농약을
마셔 버렸다.
위급한 그녀를 두고 이모는 조카의 애절한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지현 스님에게 달려가
“그 애를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스님은 그 요청을 거부하고
“나의 손길보다는 당장 해독할 수 있도록 녹두 물이나 갈아 먹이시오.” 했다.
이모는 되돌아와 바로 녹두를 갈아 먹였다.
의사 없는 갯마을에서 꼼짝 없이 죽어야 했던 그녀는 신통하게도 살아났다.
어느 날 새벽 4시, 지현 스님은 화엄 경을 독경 하며 새벽의 경내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뒷산에서 비통한 여인의 통곡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스님은 뒷산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흔들 바위에 맨발로 서서 남해 바다를 향해 투신하려는 바로 그 찰나였다.
혼비 백산한 지현 스님,
자기로 인해 원한을 품고 죽을 여자를 생각하니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아가씨 소원은 뭐요? 다 들어 주겠으니 제발 뛰어 내리지만 말라.”고 애원했다.
그녀의 소원이란 불을 보듯이 뻔한 것.
"스님과 함께 항상 있도록 해 달라." 는 것. 망설이고 더듬 거릴 겨를이 없었다.
“알겠으니 제발 그곳에서 내려와 달라”고 간청했다.
그 소리를 듣자 그녀는 바위 위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스님은 곧 바로 그녀를 구출해 냈다.
암자에 누이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그녀는 스님의 품 안에 안겨 몸부림치며 울었다.
난생 처음으로 싱싱한 여인의 체취와 풍만한 마찰 감에 지현 스님도 얼이 빠져 버렸다.
순간 막혀 있던 정열이 용솟음 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10년 수도를 1년도 못 남기고 거센 폭포수
속의 물거품이 되었다.
이날 새벽부터 지현 스님의 낭랑한 독경 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여름 날!
대구의 절에서 참회의 수도에 전념하던 스님은 어떤 모녀의 방문을 받았다.
“이 애가 스님의 딸입니다.” 면서 모녀는 6살 귀여운 아기를 내보였다.
스님은 껄껄 크게 웃으며,
“그렇습니다. 내 아이입니다.” 면서 즉시 승복을 벗고 딸을 가슴 가득 안았다.
그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뒤로 스님 부부는 딸 하나에 아들 하나를 더 얻어 1남 2녀를 두었다.
그들은 현재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서 미곡 상을 경영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고 있으나
기자에게 사진 찍기를 끝까지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여인의 억센 사랑의 집념으로 10년 수도승의 마음을 움직인 ‘흔들 바위’는
오늘도 금오산 향일 암 주변에서 의연하다.
“사랑했음으로 행복 했노라."
- 지인이 보낸 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