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그런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흔히 우리가 ‘영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공식명칭이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으로서, 잉글랜드가 그 구성단위 중에 제일 크고 힘이 세지만, 그레이트 브리튼(소위 ‘대영국’) 안에만도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의 세 나라가 있다는 것이었다. ‘연합왕국’을 구성하는 집단들 중 잉글랜드와 켈트족인 나머지 세 나라는 혈통도 다르고, (지금은 대부분 영어를 쓰지만) 원래 언어도 다르며, 문화적으로도 많이 다르다.
이러한 배경이 있기에 지난 9월 18일 실시돼 결국 부결되었던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가 ‘민족 감정’의 문제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번 스코틀랜드 독립 논쟁의 핵심 쟁점은 사실 경제정책이었다.
우리가 흔히 ‘영국 위인들’로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애덤 스미스, 그의 뒤를 이은 고전파 경제학의 대가들인 제임스 밀과 존 스튜어트 밀 부자, 철학자 데이비드 흄, 증기기관의 아버지 제임스 와트, 절대 온도의 창시자인 과학자 켈빈 경, ‘연합 왕국’의 중앙은행이 된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의 창립자 윌리엄 패터슨(William Paterson) 등 많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18세기 이후 ‘대영국’의 사상·제도·기술의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스코틀랜드가 없이는 ‘대영국’의 역사, 나아가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역사 때문에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민족적 정체성이 강하기는 하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이나 웨일스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들이 핍박받는 민족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따라서 독립을 원하는 사람도 원래 많지 않았다. 이번 국민투표는 결국 독립 찬성 45%, 독립 반대 55%로 끝났지만, 올해 초만 해도 많은 사람이 독립 찬성표가 30% 정도 나오면 잘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던 흐름이 뒤집힌 것은 이번 국민투표에서 친독립 진영을 이끈 스코틀랜드 국민당(Scottish Nationalist Party)이 예전의 독립 논쟁에서와는 달리 단순히 민족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확연한 정책정당의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2010년 보수당-자유당 연립 정부가 복지국가의 급격한 축소를 추구해 왔고 최근에는 노동당마저 복지지출을 상당 부분 줄여야 한다고 인정하고 있는 데 비해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복지국가의 강화를 내걸었던 점이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이미 2000년대 들어 그 권한이 강화된 스코틀랜드 지방의회에서 2007년 이후 최대당, 2011년 이후 다수당의 위치를 유지해 오면서 ‘연합 왕국’의 다른 나라들에서 실시되고 있는 외주의 증가를 통한 의료 민영화의 확대, 그리고 대학 등록금 도입 등의 정책들을 거부해 온 바 있다.
그런데 이번 국민투표를 둘러싼 논쟁에서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연합 왕국’과 비슷한 시기에 북해유전을 발견한 노르웨이가 그 돈으로 국부 펀드를 만들어 전 국민의 연금을 착실히 적립해 온 데 반해 ‘연합 왕국’은 그것을 부자감세로 날려 버렸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석유로 버는 돈을 복지에 더 착실히 쓰겠다고 약속해 많은 호응을 얻었다.
국민투표 이후 캐머런 총리가 황급히 내놓은 스코틀랜드 자치권 강화 방안의 핵심이 복지 지출과 조세권에 대한 스코틀랜드 의회의 권한 강화라는 것도 이번 스코틀랜드 독립 논쟁에서 복지 정책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보여준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자칫 감정 문제로 흐르기 쉬운 독립에 대한 논쟁을 정책 논쟁으로 바꿈으로써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지지를 끌어내었다. 정세 반전을 꾀하는 우리나라 정당들도 눈여겨보아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