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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州發展史. 李 英 著》
p33 ~ p42에서
저작 겸 발행자가 이봉근(李奉根)으로 되어 있다.
맨 아래에 보면 스스로 記者라고 했다. 그러면 李 英은 필명(筆名)으로 판단된다. 주소지(본정 142번지)도 나와있고 책을 내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니 假名을 쓸 수 없고 이봉근이 本名일 것이다.
소화 8년(1933년) 10월 1일 발행으로 되어 있다.
《專賣官署位置及管轄區域並煙草塩人蔘阿片産地一覽圖》
昭和十一年(1936년) 十二月末 現在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국경지대(압록강과 두만강지대)에 전매파출소(출장소)가 조밀하게 표시되어 있는데, 아편, 담배, 인삼 등의 국경 밀수 및 불법 재배를 엄격히 단속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충주를 중심으로 확대한 모습>
출장소: 청주, 충주, 영월.
(專賣)파출소: 음성.
《仝(同)上販賣所一覽圖》
昭和十一年(1936년) 十二月末 現在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노란색으로 표시된 곳이 <경성지방전매국관할구역>이다.
<충주를 중심으로 확대한 모습>
판매소 위치: 제천, 단양, 충주, 음성 등 주요 군소재지가 표시되어 있다.
<원문>
p33
第四章 黄色煙草
毎年一年毎に八十萬貫以上の生産率を以て我が朝鮮内の經濟界を潤澤ならしむる、忠州黄色煙草は今や經濟を以て論ぜずして、品質を以て論ずるも朝鮮唯一の特産物であり、日本唯一の特産物であり、延いては世界唯一の特産物である。其の證左には日韓併合後、朝鮮に於ける産業獎勵の先鞭として黄色煙草の一名を斯土に靡かせる爲め度支部煙草試驗場で官有地の最多なる土地、而して氣候風土の最適なる土地と認められたる江原鐵原、金化、金城、平康並に京畿楊州、廣州延いては黃南海州、載寧等を耕作豫定試驗地として、總督府技師青山豐治氏並に岡田虎輔氏等を南北に派して其の試驗の結果を論ぜしめたる結果、忠州は全鮮を通じて其の栽培に最適なる土地の一箇所であると認められたるを見るも、將又大正二年に、東京で開催されたる大正博覽會に於て二等賞の推選に入り而して忠州黄色煙草が景くも宮内用として、御買上げになられた光榮を以つて見るも、延いては在來我國に於て高級煙草材料を亞米利加より輸入してゐたものを、此の忠州黄色煙草が其の産聲を上げてからは、國内の需要を満たし得るは勿論、返つて數年前よりは原産地アメリカに向つて逆輸される様になつた現實の例に徴するも、如何に忠州の黄色煙草が破天荒の勢を以つて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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界市場に受諾されつつある事が分つて來るであらふ。 此の黄色煙草が始めて忠州に耕作されたのは明治三十九年頃からであるが、當時の韓國政府は奇特にも早くから、朝鮮の氣候風土が亞米利加のウアヂニア或は北カロライナ洲に酷似したるため此の種の栽培に最適せるを曉知したので、財政顧問部をして種々調査を爲さしめる傍ら京城の樂善坊則ち今の大和町に苗床を設けしめて苗を育成せしめて耕作者に給與したり或は移植を試みたりして其の萬全を期せんとした努力が抑々の嚆矢である様に見受けられてゐる。 それから成績頗る良好なるや、政府ば一日たりとも天地自然の寶庫を以つて一日たりとも猶豫し難く、急ぎ〜で平安南道成川郡岐倉なる處に出張所を設けて、エルローオロノコ種を試作せしめて接近の耕作者に種子を配付したり、或は耕作方を宣傳したりしたけれど千萬の懸案皆意の如からずして一時は憂沖不僻の感なきにしもあらざりしが、幸にして政府直營の試作成績は誠に絶大なるものがあつたので政府も人民も漸く一安以て具堵し而して更に試作の歩を進めんとしてあらゆる夢想を凝らせる秋、或る夜半の事義軍を名とせる暴徒が同出張所を襲撃し來たりて、事務所を灰燼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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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せしめたるのみならず、斯界の權威者を銃殺したりしたので、己むを得ず一時は事業中止の状態ともなつてゐたが屈して而して伸びて止む政府の意氣なればこそ翌々年則ち明治四十二年には慶尙北道大邱府に又煙草試驗場を設けて各種煙草と共に黄色煙草の栽培を試みたる結果、相當見るべきものがあつたので今度は一寸以北の土地忠清南道大田にも試作地を増設して栽培してみたる結果始めて其の成績確實に上等なるを認め得る様になつたのである。 斯くして苦心の夜一鷄其の曙を報ずるや、四面皆其の美を褒賞し首肯したる爲め愈々明治四十四年六月には遂に黄色煙草産地形成に關する論議をまとめて最適地を嚴選したる結果 耕作面積、農家戸數、地質土性、位置、氣象、對抗作物、勞銀、肥料、將又燃料等總にて於ても忠州が其の最々適地であるものと認奬せられたのである。 それには上記の如き一班の具足的條件もあったらしいがこれよりも又一つは技術者の識眼に於いても忠州でなければならん一條的主因があつたのである。 何かと云へば忠州は北米のウアヂニア州の煙草産地と緯度を同じふしたる爲め氣象は從來農作物
p36
に大なる害を及ぼすべき變動を現はしたる事なく交通の便は開け且又二千餘町步に亘る一大平野を有してゐるので排水に對しても別段の不便なきのみならず本種煙草の耕作について最も忌むべき鐵分の含有を認めざるを斯界の權威者岡田虎助氏が識別し得たからである。漸く選定を受けたる忠州には、明治四十五年に至り當時の司稅局出張所を設けられたので官民一致以て共に其の奇禍を相語りつゝ專ら之が耕作準備に熱中し爾來孜々として土壌分析を行ふとか或ひは施肥の步合を立てるとかして色々試験に沒頭せる結果忠州には米國原産のエルローオロノコ並にアライトエルロー、ヘスター、コンクエルロー、ケンタツキエルローの外六種を選みて先づ民間に耕作上の模範を當局者が示して、逐年鴕鳥の步みに負けざる機運を促して来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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斯くして黄色煙草の事業漸く其の緒に就きたる爲め民間耕作者には謝金を給與して囑託耕作をはじめにして漸次生葉の買上げを行ふに至り他作物收益に比して頗る有利なる事を一般地方民が自覺して来たので囑託耕作が自然に民間耕作に推移されて行つ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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依つて爰に黄色煙草の基礎を猶鞏固たらしめる爲大正二年三月には忠州煙草耕作組合なるもの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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設立せしめて耕作者に對しては耕作資金の融通を計らしめるとか或は肥料を無償にして配付せしめるとか或は耕作資金を補助するとかして其の便宜を與へて其の擴充を期してゐたが其の販路に就いては勿論內外の需要狀態に照して何等憂ふべき必要なしと雖、生産者をして杞憂の念を抱かしめざる爲め特に東亞煙草株式會社へ全部購買の契約を結んで斯業の安全を期して以つて極力産地の發展を計つてゐたが偶々作柄良好なるに相俟つて一般農家の煙草耕作に對する意向愈々親近となり現在に於いては耕作反別益々増加して當局者も其整理に困る位だから先づ以て其歸らざる驥足の發展を窺ふに足るものと云はねばなら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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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州に於ける此の煙草の樞府として謳はれる專賣局出張所の事務所が建つたのは今から一寸二十年前であるがそれ迄は新設當地であつたので當分は元忠州財務署の廳舍を借受けてやふやく其困難を忍んで黄色煙草の發芽事務を遂行してゐたが大正元年九月十六日には忠州郡邑內面南部洞と稱する高地に今の事務所と生葉乾燥室、是に再乾燥室、作業室、農具肥料舍、農夫舍、の建物が新築されたが 當時の眼目より見れば宏壯であり且又物足つたものであつたかは知らないが今の眼目を以つて見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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ば何時も狹隘にして通風探光其跡を留めざる如き一感を抱かしむるを以つて見るも如何に其の發展振りが隔世的であり且又超然的であつたかが窺はれるであらう。斯くしてやふやく成つた司稅局忠州出張所は大正五年四月度支部內に專賣課が新設せられるや司稅局忠州出張所は直ちに專賣課忠州出張所となり更に大正十年四月朝鮮煙草專賣令の公布と共に同年七月同令實施に當り專賣局忠州出張所は京城專賣支局忠州出張所と改稱して煙草の收納取締事務を管掌する事になつたのである。而して大正十一年四月管轄區域の變革に伴ひて忠州出張所に於いては收納取締事務の外に販賣事務をも兼攝することゝなつたので、當時淸州出張所の販賣管轄區域であつた忠州、堤川、丹陽の三郡を移管せられ爾來忠州出張所で販賣收納取締事務を取扱ひ其管轄區域として忠州郡、堤川郡、槐山郡(靑川面、文光面清安面、曾坪面を除く)陰城郡及堤川郡內の白雲面、水下面、水山面、寒水面、德山面を包括して其の事務を遂行してゐ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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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正十四年四月專賣官署の管轄區域統一に依り從來忠州出張所の管轄區域であつた堤川郡の販賣事務は寧越出張所に移管される様になつた。然るに其の後昭和二年十二月に各地に散在せる煙草元賣捌組合を全部併合して朝鮮煙草賣捌株式會社を創設せられる秋に際して忠州出張所の販賣事務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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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部廢止せられて從前通り收納取締事務のみ取扱ふ事となつたのである、其の際再度の管轄區域の變更があつたので槐山郡道安、沙梨の二個面及び陰城郡の三成、大所、孟洞、の三個面は淸州出張所の管內に移管されたる結果忠州出張所の管轄區域は忠州郡一圓一邑十三個面及び槐山郡內の槐山、七星、佛頂、沼壽、甘勿、延豐、上芼、長延の八個面、陰城郡內の陰城面、遠南、金旺、甘谷、蘇伊、笙極の六個面及堤川郡內の白雲、淸風、水下、水山、寒水、德山の六個面の四郡三十三個面を新屬の管內とするに至つたのである。 * * * * * 尙昭和四年十月忠淸北道令に依る面區域の變更に伴ひ自然面の分合に隨つて多少の異動を來したゐ爲め現在では水下面、一個面を減じて四郡三十二個面を抱擁して管轄區域となして其の枝葉を伸ばさんとしつつある狀態である。 出張所の事務は庶務、事業の二係をおいて現在七十二名の職員にそれ/\の事務を遂行せしめてゐるが、流石激務の畑であるにも拘らず一年平均一萬三千餘の文書收發件數をよく片附けてゐたため、每年京城、大邱、全州、平壤等に四十二萬貫餘りの煙草を回送するに當つても何の疑獄事件にしては起つた例がなく從つて煙草植付檢査とか數量檢査とかに付いても相當詳細に渡つて之を遂げた
p40
る爲め一般耕作者はよく指導者に薰化せられて從來の如き罰則者を出さないのは何と云つても其筋の事務遂行が徹底化してゐるものゝ一例であると云はねばなら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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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亦煙草耕作指導の概況を一瞥すれば當所管內四郡三十二個面に對しては各產地の狀況並に耕作人員の多寡等に鑑みた之を五方面に分ちて各擔任技手を定め耕作の期間中作業の季節に隨ひ豫め計畫せる方法に基きて所謂苗床準備期より調理包装に臻る間は之が實地指導從事せしめる等或は耕作改善事項の普及及實施機關として、一面當り約三名計九十六名の煙草耕作改良實行委員を設置して指導改善事項の普及化に努むる等或は立毛乾燥、葉煙草の各種品評會を開催してそれが指導獎勵の一端としてゐる如きは何れも黄色煙草を以て誇る忠州人の共に感謝して止まざる所と云はねばなら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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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一筆を以つて同黄色煙草の種子採種法並其の配付方に就て同所石川所長の語る所を記すれば當產地に於ける種子は原產地米國より原種を購入して一應訓育耕作を行つた上之を同所所屬の一機關である煙草耕作組合に交付して爾後三個年一巡計畫の下に耕作組合をして囑託採取せしめ採取費の
p41
半額は政府の補助を得て既定區域內の耕作者に配付更新をなすと云ふがこれも亦容易なる事業にはあらざる可く又耕作者が煙草の乾燥を爲すために要する薪炭も亦莫大なものなので森林愛護思想に燃ゆる現道當局より矢鱈に色眼鏡で癌視せられる爲めその誠を致すべき數年前より組合繼續事業として忠州鷄足山中の四百五十町七反五畝步に餘る山腹に落葉松三萬四千百五十本を植栽して殖林事業を興しつつあるは禮儀東邦の芳谷たらずんば到底觸目し難き一例たるのみならず延び行く我黃色煙草の煙に生きる忠州人であれは本當にその美しい眞髓を把握する事の出来ない一大事實である、然らば記者はこの黃色煙草の一篇を稿して擱筆するに當り何よりも先づ此の大事業を殘して行く人等の影を左記して止まねばならん一つの必然を感じする、よつて爰に誌すれば
出張所長
第一代 西田泰三 (東亞煙草株式會社京城支店長) 第二代 靑山豐次 (現忠州煙草耕作組合理事)
第三代 竹下克明 (現朝鮮煙草元賣捌株式會社新義州支店長)
第四代 石川芳三郎 (現陰城煙草耕作組合理事) 第五代 木佐貫浩吉 (全州支局收納課長)
第六代 茂木四郎 (現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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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柯の寒梅 陋なる私の庭園てはあるが一柯の寒梅は白雪の中に咲いてゐる。雅々而して礎々たる情に堪へぬ。南洲翁は詠んだ梅花雪に堪へて潔く楓葉霜經て始めて丹よしと (舊稿の中より)
<번역문>
p33
제4장 황색담배(黃色煙草)
매년 1년에 80만 관(貫, 1貫은 3.75kg으로 3,000ton이다. 건조중량이다.) 이상의 생산율로 우리 조선 내의 경제계를 윤택하게 만드는 충주 황색담배는, 이제 경제를 떠나 품질만으로 논하더라도 조선 유일의 특산물이자 일본 유일의 특산물이며, 나아가 세계 유일의 특산물이다.
그 증거로 일한병합 후 조선에서의 산업 장려의 선봉으로서 황색담배의 이름을 이 땅에 떨치기 위해 탁지부 담배시험장에서 관유지(官有地)가 가장 많은 땅이자 기후와 풍토가 가장 적합한 땅으로 인정받았던 강원도 철원, 금화, 금성, 평강 및 경기도 양주, 광주, 나아가 황해도 해주, 재령 등을 경작 예정 시험지로 삼고, 총독부 기사 아오야마 도요지(青山豐治) 씨 및 오카다 토라스케(岡田虎輔) 씨 등을 남북으로 파견하여 시험 결과를 논하게 한 결과, 충주는 전 조선을 통틀어 재배에 가장 적합한 지역 중 한 곳으로 인정받았다.
또한 대정 2년(1913년) 도쿄에서 개최된 대정박람회에서 2등상의 추천에 들었고, 충주 황색담배가 황송하게도 궁내용(宮內用)으로 매입되는 영광을 안은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나아가 종래 우리나라에서 고급 담배 재료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던 것을 이 충주 황색담배가 세상에 첫울음을 울린 후부터는 국내 수요를 충족함은 물론, 도리어 수년 전부터는 원산지인 미국을 향해 역수출하게 된 현실의 예에 비추어 보더라도, 충주의 황색담배가 얼마나 파죽지세(破天荒の勢)의 기세로 세계 시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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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황색담배가 처음 충주에서 경작된 것은 명치 39년(1906년) 무렵부터인데, 당시 한국 정부는 기특하게도 일찍부터 조선의 기후와 풍토가 미국의 버지니아나 북카롤라이나주와 매우 유사하여 이 품종의 재배에 최적임을 깨달았다.
이에 재정고문부를 시켜 여러 조사를 하게 하는 한편, 경성의 낙선방(樂善坊, 지금의 大和町)에 묘목장을 설치하여 모종을 육성하고 경작자들에게 나눠주거나 이식을 시도하는 등 만전(萬全)을 기하고자 노력한 것이 그 시초로 보인다.
이후 성적이 매우 양호하자, 정부는 단 하루라도 천지자연의 보물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 서둘러 평안남도 성천군 기창(崎倉)이라는 곳에 출장소를 설치하고, <옐로 오로노코>종을 시작(試作)하게 하여 인근 경작자들에게 종자를 배포하거나 경작법을 선전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현안이 모두 뜻대로 되지 않아 한때는 근심과 답답함이 없지 않았다. 다행히 정부 직영의 시작(試作) 성적이 참으로 절대적인 것이었기에 정부도 인민도 비로소 안도하며 더욱 시험 재배를 추진하고자 온갖 구상을 모으던 해 가을, 어느 한밤중에 의병(義軍)을 사칭한 폭도들이 해당 출장소를 습격하여 사무소를 잿더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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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 분야의 권위자를 총살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때 사업이 중단되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일어서는 정부의 의기였기에 그 다음 다음 해인 명치 42년(1909년)에는 경상북도 대구부에 다시 담배시험장(煙草試驗場)을 설치하여 각종 담배와 함께 황색 담배의 재배를 시도한 결과 상당히 볼만한 성과가 있었다.
이에 이번에는 조금 더 북쪽인 충청남도 대전에도 시작지(試作地)를 증설하여 재배해 본 결과, 비로소 그 성적이 확실히 상등(上等)임을 인정받게 되었다. 이처럼 고심어린 밤에 닭이 비로소 서광을 알리자, 사방에서 모두 그 우수성을 칭찬하고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명치 44년(1911년) 6월에는 황색담배 산지 형성에 관한 논의를 정리하고 최적지를 엄선한 결과, 경작면적, 농가가구수, 지질과 토성, 위치, 기상, 대항 작물, 노임, 비료, 연료(耕作面積、農家戸數、地質土性、位置、氣象、對抗作物、勞銀、肥料、將又燃料)등 모든 면에서 충주가 가장 최적의 장소로 인정받아 장려되었다.
※여기서 대항작물(對抗作物)은 담배나 고추 같은 가지과 작물은 선충이나 담배나방, 담배가루이 등의 피해를 받기 쉬운데, 이를 방제하기 위한 작물을 말한다. 메리골드나 마늘ㆍ양파 ㆍ대파, 결명자, 땅콩, 사탕수수 등이라 한다.
여기에는 위와 같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조건도 있었겠지만, 이보다도 기술자들의 식견에서 "충주가 아니면 안 된다"는 주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충주는 북미 버지니아주의 담배 산지와 위도가 같아, 기상은 종래 농작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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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해를 끼칠만한 변동을 나타낸 적이 없고 교통의 편의가 트여있으며, 2천 여 정보(町步)에 달하는 대평원을 안고 있어 배수(排水)에 대해서도 별다른 불편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본 품종 담배 경작에 있어 피해야 할 철분(Fe, 鐵分)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이 분야의 권위자인 오카다 토라스케(岡田虎助) 씨가 알아냈기 때문이다.
※충주는 중심부 기준으로 북위 36.99도라 한다.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지등산에 북위 37도가 지나간다. 북위 38도까지 111.19km 거리라 한다. 버지니아주가 북위 37도가 지나가는 것은 맞지만 전체적으로 더 북쪽에 치우쳐 있다.
잎담배는 수확후 건조나 발효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토양이나 용수(用水)에 철분(Fe) 성분이 과다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철분이 담배잎 속의 탄닌(Tannin)이나 폴리페놀 성분과 결합하여 산화되면, 밝은 황금색 대신 어둡고 칙칙한 검은빛이나 짙은 갈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흑변(黑變)이나 갈변(褐變)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발효 과정에서 미생물 및 효소작용을 방해하거나 산화를 촉진해 특유의 온화한 향과 맛을 떨어 뜨린다고 한다.
점차 선정을 받게 된 충주에는 명치 45년(1912년)에 이르러 당시의 사세국 출장소가 설치되었으므로, 관과 민이 일치단결하여 함께 그 뜻밖의 재난(奇禍)을 서로 나누며 오로지 경작 준비에 열중하였다.
이래로 부지런히 토양 분석을 실시하거나 시비(비료 주기) 비율(步合)을 세우는 등 여러 시험에 몰두한 결과, 충주에는 미국 원산의 <옐로 오로노코> 및 <아라이트 옐로>, <헤스터>, <공크 옐로>, <켄터키 옐로> 외 6종을 선정하여 먼저 당국자가 민간에 경작상의 모범을 제시함으로써, 해마다 타조의 걸음에 뒤지지 않을만큼 빠르게 기운을 촉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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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황색담배 사업이 점차 그 실마리를 잡게 됨에 따라, 민간 경작자에게는 수당을 지급하여 위탁 경작을 시작으로 점차 생잎(生葉) 매입을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작물의 수익에 비해 대단히 유리하다는 사실을 일반 지방민들이 자각하게 되면서 위탁경작은 자연스럽게 민간경작으로 이행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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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황색담배의 기초를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대정 2년(1913년) 3월에는 《충주 담배 경작 조합》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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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하게 하여, 경작자에 대해서는 경작 자금의 융통을 도모하거나 비료를 무상으로 배포하거나 경작 자금을 보조하는 등 편의를 제공하여 확충을 도모하였다.
그 판로에 대해서는 물론 내외의 수요 상태에 비추어 볼 때 하등 염려할 필요가 없음에도, 생산자로 하여금 쓸데없는 근심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해 특히 《동아담배주식회사》와 전부 구매 계약을 맺어 본 사업의 안전을 도모하고 극력 산지의 발전하려 했다.
때마침 수확 상태가 양호함과 맞물려 일반 농가의 담배 경작에 대한 의향이 더욱 친근해졌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경작 면적이 더욱 증가하여 당국자도 그 정리 처리에 애를 먹을 정도이니, 우선 그 비약적인 발전을 엿보기에 충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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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에서 이 담배의 중추로 칭송받는 《전매국 출장소 사무소》가 들어선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이지만, 그때까지는 신설 당시였으므로 당분간은 옛 충주재무서 청사를 빌려 겨우 그 어려움을 참아가며 황색담배의 발아 사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정 원년(1912년) 9월 16일에는 충주군 읍내면 남부동(용산동)이라 불리는 지대 높은 곳에 지금의 사무소와 생잎건조실(生葉乾燥室), 여기에 재건조실, 작업실, 농구비료창고, 농부사 건물들이 신축되었다.
당시의 눈으로 보았다면 웅장하고 또한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의 눈으로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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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좁고 통풍과 채광이 흔적도 없을 만큼 열악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 점만 보더라도 그 발전 양상이 얼마나 격세지감(隔世的)이고 초월적(超然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겨우 번듯해진 사세국 충주출장소는 대정 5년(1916년) 4월 탁지부 내에 전매과가 신설되자 즉시 전매과 충주출장소가 되었고, 나아가 대정 10년(1921년) 4월 《조선담배전매령 공포》와 함께 같은 해 7월 동령 실시 시기에 맞춰 전매국 충주출장소는 《경성전매지국 충주출장소》로 개칭하여 담배 수납 및 단속사무를 관장하게 되었다(京城專賣支局忠州出張所と改稱して煙草の收納取締事務を管掌する事になつたのである。).
그리고 대정 11년(1922년) 4월 관할 구역 변혁에 따라 충주출장소에서는 수납 단속사무 외에 판매사무도 겸하여 맡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 청주출장소의 판매 관할 구역이었던 충주, 제천, 단양 3개 군을 이관받아, 이후 충주출장소에서 판매 및 수납 단속사무를 취급하게 되었다.
그 관할 구역으로 충주군, 제천군, 괴산군(청천면, 문광면, 청안면, 증평면 제외), 음성군 및 제천군 내 백운면, 수하면, 수산면, 한수면, 덕산면을 포괄하여 해당 사무를 수행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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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 14년(1925년) 4월 전매 관서의 관할 구역 통일에 따라 종래 충주출장소 관할 구역이었던 제천군의 판매 사무는 《영월출장소》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그 후 소화 2년(1927년) 12월에 각지에 산재해 있던 담배원매팔조합(煙草元賣捌組合)을 전부 병합하여 《조선담배매팔주식회사(朝鮮煙草賣捌株式會社)》를 창설할 무렵 충주출장소의 판매 사무는
※조선연초원매팔주식회사(朝鮮煙草元賣捌株式會社)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담배 전매 제도와 연계되어 담배 독점 도매(원매팔)를 담당했던 회사이다. 1927년에 설립되어 1930년대 초까지 운영되다가 해산되었다.정확한 명칭은 '원매팔(元賣捌, 모토우리사바키·최고 도매)'이 포함된 《조선연초원매팔주식회사》이며,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설립 시기: 1927년
*설립 목적: 조선총독부 전매국의 담배 재정 수입 확대 및 도매 유통 직접 통제
*주요 업무: 전매된 연초(담배)의 도매 및 판매 집행
*해산: 1931년경 청산 및 해산 절차를 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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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폐지되고 종전대로 수납 단속 사무만을 취급하게 되었다.
그때 다시 한번 관할 구역 변경이 있었기에 괴산군 도안면, 사리면 2개 면 및 음성군 삼성면, 대소면, 맹동면 3개 면은 《청주출장소》 관내로 이관되었다.
그 결과 충주출장소의 관할 구역은 충주군 일원 1읍 13개 면 및 괴산군 내 괴산, 칠성, 불정, 소수, 감물, 연풍, 상모, 장연의 8개 면, 음성군 내 음성면, 원남, 금왕, 감곡, 소이, 생극의 6개 면, 제천군 내 백운, 청풍, 수하, 수산, 한수, 덕산의 6개 면 등 4개 군 33개 면을 새 관할로 삼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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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소화 4년(1929년) 10월 《충청북도령에 의한 면 구역 변경》에 따라 자연스러운 면의 분할과 합병에 맞추어 약간의 변동이 생겼기 때문에, 현재는 수하면 1개 면을 줄여 4개 군 32개 면을 안고 관할 구역으로 삼아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상태이다.(其の枝葉を伸ばさんとしつつある狀態である。)
출장소 사무는 서무(庶務), 사업(事業) 2개 계(係)를 두고 현재 72명의 직원에게 각각의 사무를 수행하게 하고 있다. 과연 격무의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1년 평균 1만 3천 여 건의 문서수발 건수(文書收發件數)를 잘 처리해 냈기 때문에, 매년 경성, 대구, 전주, 평양 등지에 42만 관 여의 담배를 송출함에 있어서도 단 한 건의 의혹이나 범죄 사건도 일어난 예가 없었다.
따라서 담배 식재 검사(煙草植付檢査)나 수량 검사 등에 대해서도 상당한 상세함을 기하여 이를 수행하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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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일반 경작자들은 지도자들에게 잘 감화되어 종래와 같은 벌칙 대상자를 내지 않고 있다. 이는 어찌 되었든 해당 관청의 사무 수행이 철저화(徹底化)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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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담배 경작 지도의 개황(槪況)을 살피자면, 본 출장소 관내 4개 군 32개 면에 대해서는 각 산지의 상황 및 경작 인원의 많고 적음 등을 고려하여 이를 5개 방면으로 나누고 각 담당 기수(各擔任技手)를 정하였다.
경작 기간 중 작업 계절(재배시기)에 따라 미리 계획한 방법에 기초하여 소위 묘상(苗床,모종밭) 준비기로부터 조리·포장(所謂苗床準備期より調理包装)에 이르는 동안 실지 지도에 종사하게 하였다.
또한 경작 개선 사항의 보급 및 실시 기관으로서 1개 면당 약 3명, 총 96명의 담배경작개량실행위원(煙草耕作改良實行委員)을 설치하여 지도·개선 사항의 보급화에 힘쓰도록 하였다.
아울러 입모건조(立毛乾燥, 담배잎을 따지 않고 밭에 세워 둔 채로 1차 건조하는 방식을 말한다.) 및 잎담배 품평회를 개최하여 이를 지도 및 장려의 한 방편으로 삼고 있는 것 등은 모두 황색담배를 자랑으로 여기는 충주 사람들이 함께 감사해 마지않는 바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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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이 황색담배의 종자 채종법 및 그 배포 방법에 대해 본 출장소 이시카와(石川) 소장이 말한 바를 기록해 본다. 당 산지에서의 종자는 원산지 미국으로부터 원종을 구입하여 일차적으로 훈육 경작(一應訓育耕作)을 실시한 후, 이를 출장소 소속 기관 중 하나인 담배경작조합에 교부한다.
이후 3개년 1순 계획하에 경작조합으로 하여금 위탁 채취하게 하고, 채취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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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액(半額)은 정부 보조를 받아 예정 구역 내 경작자에게 배포 및 갱신을 실시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쉬운 사업은 아닐 것이며, 경작자가 담배 건조를 위해 필요로 하는 땔나무와 숯(薪炭) 또한 막대한 양이므로, 산림 애호 사상에 불타는 도(道) 당국으로부터 괜히 색안경을 끼고 암적인 존재로 시선을 받기도 하였다.
이에 그 진심을 다하고자 수년 전부터 조합 지속 사업으로서 충주 계족산(鷄足山) 안의 450정 7반 5무보(約 135만 평, 1町步는 3,000평, 1反은 1段步와 같다. 300평이다. 1畝步는 30평, 1步는 1평. 450정 7반 5무보는135만 2,250평이다.)에 달하는 산비탈에 낙엽송 3만 4천 150본(本)을 심어 식목 사업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예의동방의 동네(禮儀東邦の芳谷)가 아니고서야 도저히 눈여겨보기 힘든 모범 사례일 뿐만 아니라, 뻗어나가는 우리 황색담배의 연기 속에 살아가는 충주 사람이라면 참으로 그 아름다운 진수를 파악하지 않을 수 없는 큰 사실(一大事實)이다.
그렇다면 기자(記者)는 이 황색담배에 관한 한 편의 글을 마치며 펜을 놓음(擱筆)에 있어, 무엇보다 먼저 이 대사업을 남기고 간 이들의 자취를 아래와 같이 기록하여 남기지 않을 수 없는 일종의 필연성을 느낀다. 이에 여기에 기록한다.
□출장소장□
*제1대 니시다 다이조 (西田泰三) - 동아담배주식회사 경성지점장
*제2대 아오야마 도요지 (靑山豐次) - 현 충주담배경작조합 이사
*제3대 다케시타 가쓰아키 (竹下克明) - 현 조선담배원매팔주식회사 신의주지점장
*제4대 이시카와 요시사부로 (石川芳三郎) - 현 음성담배경작조합 이사
*제5대 기사누키 고키치 (木佐貫浩吉) - 전주지국 수납과장
*제6대 모기 시로 (茂木四郎) -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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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柯の寒梅》
한 그루의 한매(寒梅)
보잘것없는 나의 정원이지만
한 그루의 한매(寒梅)는 백설 속에 피어 있구나.
아담하면서도 단단한 정을 참을 수 없네.
남주 옹(南洲翁, 사이토 타카모리)은 읊었다.
"매화는 눈을 견디어 결백하고,
단풍잎은 서리를 거쳐야 비로소 붉어진다네."
--- 구고(舊稿) 중에서 ---
『 《一柯の寒梅》
陋なる私の庭園てはあるが、
一柯の寒梅は白雪の中に咲いてゐる。
雅々而して礎々たる情に堪へぬ。
南洲翁は詠んだ、
「梅花雪に堪へて潔く、
楓葉霜經て始めて丹よし」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