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불망, 후사지사 前事不忘, 後事之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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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경험과 교훈을 귀감으로 삼음
얼마 전. 나는 친한 벗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다. 그 친구는 눈에 도수 높은 안경을 썼고, 깊은 생각에 빠지면 늘 코끝을 손으로 매만지며 먼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대학시절,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청주로 내려와 전화를 걸어왔다. "득렬아! 소주나 한 잔 하자. 오래 못 봤으니!" 부모님을 허락을 받고 친구가 있는 장소로 나갔다. 친구는 이미 술이 올라 얼굴이 불게 달아올랐고, 한 손에 평소에 피지도 않는 담배 한 대를 꿰고 있었다.
먼발치에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야 할 친구가 조금은 낫이 설었다. 친구 앞에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물었다. "무슨 일 있냐?" 친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야 세상에 새로운 일이 있냐? 그냥 세상살이가 힘들 뿐이지!" 선문답 같은 친구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말없이 소주 몇 잔을 연거푸 마셨다. 조금 취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득렬아! 정말 세상이 이래도 되는 거니?"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직감이 들었다. "무슨 일이야? 돌려 말하지 말고,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봐!"라고 최촉했다. 친구는 우울했던 80년대 초반, 우리 대한민국의 가장 아픈 역사인 광주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어려운 집안을 책임져야하기에 무자비하게 국민을 도살한 저들에게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 역겹다는 말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얼른 계산을 마치고 달려가 친구를 찾았으나 행방을 알 수 없어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몇 년이 지나 친구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는 다시 만났고, 예전처럼 별 말 없이 선술집에 마주 앉아 소주를 마셨다. 친구는 계속 코끝을 손으로 매만졌고, 나는 소주잔만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친구가 "득렬아! 결혼한다. 네가 사회를 맡아주면 어떠니?"라고 말했다. 나는 응낙하고, 신부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친구는 그저 미소만 지으며 "와서 보면 알아!"라고만 말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몇몇 친구들과 식당 한 구석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비로소 친구는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장에 취업해서 노동운동에 참여했고, 그의 아내는 함께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광주 출신의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울러 친구의 아내는 광주에서 벌어진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고, 그 일로 삶이 송두리째 뒤바뀐 아픔을 지녔다는 사실도 알았다.
요즘 극장가에 '택시운전사'가 상영되고 있다. 이미 5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고 한다. 아들이 이 영화를 보고 돌아와 "아버지! 이 영화가 사실이에요?"라고 물었다. 나는 아들에게 80년대 우리나라의 상황을 네가 스스로 찾아보고 판단하라고 권했다. 괜스레 떠난 친구가 떠올라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었나 보다. 아픈 역사! 그러나 이것에만 매달려 있어서는 안 될 것이나, 그렇다고 그 역사를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에 『戰國策(전국책)』 「趙策(조책)」에 있는 고사를 하나 소개하기로 한다.
春秋(춘추) 末年(말년), 晋國(진국)의 大權(대권)을 손에 쥐고 있었던 智伯(지백)이 趙襄子(조양자), 魏桓子(위환자), 韓康子(한강자) 세 사람에게 토지를 요구하였으나 趙襄子가 이를 거절하였다. 智伯이 대노하여 魏桓子와 韓康子의 군대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趙襄子를 晋陽城(진양성)에 몰아넣고 겹겹이 포위하였다. 智伯이 다시 汾河(분하)의 물을 끌어다 晋陽城에 부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趙襄子의 수하에 있던 張孟談(장맹담)이 어둠을 틈타 성을 벗어나 魏桓子와 韓康子에게 가서 함께 智伯을 멸망시킬 것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였다. 事後(사후)에 趙襄子가 張孟談에게 봉상을 내리려 하자 張孟談이 거절하면서 "내 공로가 너무 커서 오히려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예는 역사상 대단히 많지요. '이전에 있었던 일을 잊지 않고 이후의 일에 귀감으로 삼아야 하지요(前事不忘, 後事之師).' 저는 은거할 생각입니다."라고 말하였다.
日本軍(일본군)이 南京(남경)에서 벌인 야만행위에 대해 蔣介石(장개석)이 한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라는 일갈이 떠오른다. 역사! 역사를 바로 보고, 깊이 새기고, 귀감으로 삼는 대한민국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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