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등산을 마주보고 서있으면 정면에 보이는 벽과 우측의 하늘벽이 보인다.
정면 벽의 가장 긴 등반라인에는 '어느 등반가의 꿈'(5.11c)라는 루트가 멋지게 뻗어나가 있다.
대전의 한상훈선배가 만든 루트인데, 최승철 김형진과 함께 탈레이사가르에서 산화한 고 신상만씨를 기리기 위해 만든 길이라는 것.
루트 이름의 '어느 등반가' 는 바로 신상만을 말하는 것이다.
...
세계 인구의 80% 정도가 하루에 10달러도 되지 않는 액수로 살아가는데도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휴대전화를 소유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웰빙'을 외치며 도시 탈출을 부르짖고 있지만 정작 현실은 인구의 도시 집중은 더 심화되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50%, 2030년에는 70%가 대도시에 거주할 것이라고 한다.
2012년 기아 모닝이 내수 판매 1위를 차지했다.
그에 대한 경제성과 편리성 등에 대해 논하며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하느냐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그 이야기에 대해 공감을 표한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논의에만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고가 고성능 스포츠카 포르쉐는 물론이고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판매대수는 계속해서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모닝 등급에서 보자면 양산 브랜드들의 모델들도 사치품이고 고가품이다.
옳고 그름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다.
우리는 '다름'을 '틀림'으로 오해하며 사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적으로 돌리는 문화에서는 흔히 말하는 발전적인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물론이고 그보다 훨씬 더 비싼 이그조틱카(Exotic Car)인 AMG 모델들에 대한 다양한 시각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시각을 반추해 보는 것도 마케팅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모닝을 구입해 정말로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은 스파크를 타지만 메르세데스나 AMG같은 모델을 드림카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세상이다.
타겟 마켓을 설정할 때 그런 세부적인 면까지 관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새 시대의 마케팅 전문가들은 설파한다.
친구 한 명이 골프에 빠져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아마 골프라는 스포츠가 가진 매력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골프라는 스포츠가 가진 속성, 성향 이런 것들이 주는 이미지가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 그 속성, 이미지는 과히 좋은 것들이 아니다.
또한 서민적인 것과도 동떨어져 있다.
아마 그 친구가 평범한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모아서 등반장비를 사고 등반에 매진했다면 나를 포함한 아무도 그를 비난하거나 나쁘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친구의 삶은 여유있지도 않고, 일정 수입을 보장해주는 안정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후를 준비해놓은 것도 아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데 뭔 상관이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측은지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
위에 열거한 것처럼 등반장비도 비싼 것들 투성이다.
다소 싼 국산 장비도 있지만 브랜드 장비를 제대로 갖추려면 만만치가 않다.
암벽, 빙벽까지 두루 브랜드 장비로 갖추려면 아마 골프장비보다 더 비싸게 주고 구입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와 '등반'이라는 두 스포츠가 가진 속성, 이미지를 부정할 수 없다.
장비를 구입하는 비용, 투자 시간, 노력 ...이런 것들로 설명할 수 없는 요소들이 있다.
몇 달 전 등반이 끝나고 서둘러 집으로 와야하는 상황이 있어서 후배에게 등반장비를 맡기고 온 적이 있다.
그래봐야 퀵드로 세트이지만 등반을 하려면 필요한 장비이다.
택배로 보내준다는 걸 마다하고 한 세트를 구입했다.
유명 브랜드에서 워낙 싸게 파는 제품이 나와서 그만 구입을 하고 만 것이다.
모닝에서 벤츠로 갈아 탄 것은 아니지만 필요없는 지출을 또 하고 말았다.
충분한 수량의 퀵드로가 있으면서 새 제품을 사고 싶은 욕망에 허세를 부린 것이다.
얼마 전에 허욱형에게 툴링용 아이스바일을 샀으니 나를 보고 남들은 또 뭐라 할것인가.
어쨌든 새로 산 그 퀵드로를 차고 등반에 나섰다.
대도시를 떠나 전주 옆 시골마을 고산에서 이틀을 보내고 3일째 천등산으로 왔다.
여전히 더위는 폭염이고 햇살은 뜨거웠다.
2년 전인가 늦가을 천등산 아래 계곡 괴목동천에서 여럿이 모여 비박을 한 적이 있다.
대전 두리등산학교 빅월페스티발에 참석했던 산악인들과 함께였는데 그 때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양희도 있었다.
당시 그 녀가 코펠과 후라이팬에 음식을 맛있게 해줘서 먹던 기억이 있고 나이도 비슷해서 친구로 지내자고도 했었다.
새벽에 일어나 바라본 천등산 하늘벽은 멋졌고 단풍이 가득한 괴목동천의 물안개는 몽환적이었다
괴목동천 앞 주차장에서 바라본 '어느 등반가의 꿈' 루트가 내 눈길을 사로 잡았다.
바위도 멋졌고 등반라인도 멋진 곳이었는데, 이름에 붙은 사연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만추여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의 이름이 처연하게 느껴졌고 더불어 함께 산화한 최승철. 김형진의 이름도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 루트를 더 오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피치 2피치는 5.9 정도
3피치는 5.11a
등반기에는 슬링이 있다고 적혀있는데 내 눈앞에는 없었다.
그리고 등반이 어렵다고 볼트따기 식의 등반을 하기엔(하지도 않겠지만) 볼트간격이 멀었다.
물론 인공등반 기술을 쓴다면 A0 겠지만...
내 등반실력으로 5.11a 온사이트 등반은 힘들다는걸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나에게 있어 등반의 가장 큰 장애는 두려움이다.
하드프리 등반이라면 모를까 볼트간격이 먼 멀티피치에서의 선등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때문에 루트파인딩 및 홀드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퀵드로를 지나 등반을 나섰다가 무브와 홀드를 찾지못해서 후퇴하기도 하고 추락을 하기도 했다.
잘 살펴보니 작은 홀드들이 보였고 손끝에 걸고 일어서니 해결이 된다.
그렇게 3피치를 넘었다.
4피치는 쉬운 루트.
다시 5피치는 5.11c 오늘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손홀드는 보이는데 발홀드가 없다.
몇 번 헤매이면서 스스로에게 하는 말
"그래, 괜히 크럭스구간이 아니지"
윗벽 두번째 볼트에서 발홀드를 찾지 못해 결국 치욕적인 볼트밟기를 한차례 하고 이리저리 홀드를 찾으며 지저분하게 등반을 끝냈다.
5피치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허비하곤 어렵사리 오르고 걸어가는 6피치를 끝내니 넓직한 바위다.
바위에 앉아 배낭속의 음료수를 꺼내니 미지근한 상태를 넘어 따뜻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갈증을 풀기에는 충분하다.
5피치 크럭스 구간을 넘다 추락하며 자일에 쓸려 허벅지에 길게 화상을 입었다.
날이 덥다고 반바지 입고 등반한 댓가를 치른 셈.
대둔산입구 한밭식당에 들러 산채비빔밥과 녹두 빈대떡을 주문하고 나오기전에 시원한 맥주 세 잔을 마셨는데도 갈증이 풀리지를 않는다.
깔끔하게 해결못한 5피치가 계속 머리 속에 남아서 더 그랬을까.
대훈에게 9월 첫 주 월간 아웃도어 취재등반을 이리로 오자고 해야겠다.
상조형님을 모셔서 메인모델로 삼고 '어느 등반가' 인 신상만과 최승철. 김형진과의 이야기도 버무리고 ...
그 때 다시 등반하면 깔끔하게 오를 수 있을 것같다.
등반이 끝나면 안주가 무진장 나오는 전주 막걸리집에 가서 밤늦도록 뒤풀이를 해야겠다.
- 2016년 여름 어느 날



첫댓글 상섭씨ᆢ
덜 깔끔해도 됨ᆢ5핏치 ~~~
함께 가 보자구요ㆍ
술한병 챙겨들고 가득 따라도 주고ㆍ
열정인건지 자존심인건지 아직 젊어서그런지 참... 다음달에 형님들과 함께 등반할 루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