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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사야 43:1-13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hhz5m8p7tkM
능력이 대단하고 인격이 아주 훌륭한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의 아버지가 아니면 그분의 인격이나 능력은 나하고 상관없습니다. 그분이 나의 아버지일 때 내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아무리 맛있는 산해진미가 가득해도 내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면 그 음식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능력으로 세계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한량없는 은혜와 복을 내려주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나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은 구약과 신약이 다릅니다. 구약에서는 먼저 선택받은 이스라엘 사람이라야 했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못났어도 그가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또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하고 율법을 따라 산다면 하나님은 그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그가 어느 민족이냐 그리고 율법을 지키느냐로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시느냐 아니냐가 결정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됩니다.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야곱은 이삭의 아들 야곱을 말하는 것이고 더 발전해서 적용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이고, 신약적인 적용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신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이고 본문에서 말하는 야곱이고 이스라엘입니다.
오늘 설교는 이 시대의 야곱과 이스라엘인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 되시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나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1. 하나님은 나의 창조자이십니다(1절).
1절을 읽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의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도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불신자도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 없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창조자에 대해서 묵상할 때 가장 핵심적인 것은 두 가지입니다. ①그분의 능력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창조한다고 할 때는 유에서 유의 창조인데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 유의 창조입니다.
사 40:12-26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자로서의 능력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피조물에 비교하여 그분이 얼마나 광대하신 분인지 그리고 그분이 가지신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 40:15절입니다.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온 세계에 국가가 몇 개인지 아십니까? UN에 등록된 국가는 193개국입니다. 그리고 일부 국가에서만 인정받고 있는 나라와 비독립국까지 합하면 245개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는 그 많은 나라들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습니다. 저울의 작은 티끌 같습니다.
무거운 물건을 실은 화물자동차가 고속도로를 통과하려면 무게 재한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30톤 이상의 무게를 넘으면 고속도로를 톨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한다고 가정을 합시다. 어떤 화물트럭이 많은 짐을 실었는데 저울로 재니 정확하게 30톤이었습니다. 그 자동차는 톨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가 무게를 재는데 티끌 하나가 날아와서 저울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면 갑자기 무게가 31톤이 되어서 톨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하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티끌 하나는 저울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에게는 245개 국가가 그렇게 하찮은 티끌과 같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사 40:26입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신다고 하셨는데 만상은 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주에 별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 이가 없습니다. 밝혀진 바로는 우리가 사는 은하계에 별이 약 4천억 개라고 합니다. 전에는 2천억개라고 했는데 과학의 발달로 약 4천억 개로 밝혀졌습니다. 우리가 사는 은하계의 별을 1초에 하나씩 세면 약 12,600년 걸린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은하계 외에 다른 은하계가 약 1천7백억 개나 더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주의 별이 얼마나 많은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만상의 모든 이름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별의 이름을 아시고 모든 별의 이름을 부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우리가 창조자에 대해서 묵상할 때 가장 핵심적인 것 두 번째는 ②그분과 나의 관계입니다. 감사한 것은 위대하신 하나님 창조자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돕는 분입니다. 사 40:28-29을 보겠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창조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시고도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가 피곤할 때 능력을 주시며 우리가 무능할 때 힘을 더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때문에 감히 사도 바울이 빌 4:13에서 했던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가 무능하게 사는 것은 우리의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능한 것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1, 3, 11절).
1절,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구원자이십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번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이 애굽의 압제에서 고통당할 때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영혼의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죄를 범하고 사탄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탄의 종이 된 인간은 사탄과 그의 추종자를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지옥 불에 들어가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 외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 대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과 예수님의 공로를 믿기만 하면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 우리들이 구원의 범위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죄에서 구원 즉 영혼구원으로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영혼구원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만 구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문제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유다 3대 왕 아사 시대에 구스 사람 세라가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아사왕은 자신의 능력으로 세라를 이길 수 없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사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대하 14:12입니다.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하나님은 아사와 유다를 구스의 백만 대군에게서 구원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어려움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삶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 50:15을 보겠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은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면 환난으로부터 구원해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환난으로부터 구원을 얻는 방법을 알려주셨지만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대전에 사는 김홍선 권사의 간증을 읽었습니다. 작은 가게를 하나 인수했는데, 하루에 음료수 두 세 병정도 파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머리는 계속 아프고, 온 육체는 병들어서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농촌의 재산을 정리해서 사 둔 집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갈 위기였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떼쓰며 기도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권사님은 저녁식사 후엔 무조건 교회로 달려가 밤새도록 기도하고 울며 매달렸습니다. 기도를 시작한지 3년이 다되어 갈 무렵, 큰 회개를 하게 되었고 성령의 충만함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몸의 병도 고침을 받았고, 그 이후 가게도 잘 되기 시작하여 음료수 두 세병이 고작이던 가게의 하루 매상이 10만원, 30만원, 50만원으로 계속 올라갔습니다. 큰아들은 바라던 대로 농촌지도소에 취직을 하였고, 막내아들도 한양대학교의 연구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뻔했던 집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글도 몰랐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도 잘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홍선 권사님은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복을 받고 싶으면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영혼의 구원자이시며 또 나의 모든 문제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영혼의 구원만이 아니라 생활의 구원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은 나의 보호자이십니다(2절).
2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함께 하셔서 물이 침몰하지 못할 것입니다.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고, 불꽃이 사르지도 못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제로 이 말씀을 경험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에는 하나님께서 바람이 불게 하셔서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바닷물이 벽처럼 쌓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가운데로 통과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의 뒤를 좇다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물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셨습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아서 풀무불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왕 앞에서도 신앙을 지켰습니다. 왕이 진노하여 풀무 불을 평소보다 7배나 뜨겁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불 속에 들어간 친구들이 타지도 않고 불 속에서 거닐고 있었으며, 분명히 불 속에 들어간 사람은 셋인데 네 사람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오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보호자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보호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물 가운데서 보호하시고 불 가운데서 보호해주십니다.
신 32:10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동자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감히 누가 주님의 눈동자를 범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눈동자처럼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보호자이십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우리 비전교회를 불 가운데서 지켜주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두 번의 화재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한 번은 교회가 오금고등학교 앞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루 세 차례의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저녁 기도회는 7시 30분으로 기억합니다. 어느 날 제가 옥탑방에 있는데 성령님께서 급하게 교회로 내려가라는 싸인을 주셨습니다. 저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예배당으로 내려갔습니다. 저는 예배당 문을 여는 순간 연기가 있는 것을 봤습니다. 순간적으로 제 속에서 “헌금봉투꽂이함 뒤를 봐라”라는 음성이 들렸고 저는 급하게 헌금봉투꽂이함을 재껴봤습니다. 전기줄을 타고 불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신발을 벗어서 불을 잡았습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우리 교회는 불탔을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저를 급하게 예배당으로 내려가게 하셔서 불을 잡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저와 아내가 새벽 3시부터 예배당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루는 새벽 3시에 예배당으로 가서 기도를 한 후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피곤해서 새벽예배 후에 곧 바로 목양실로 갔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7시까지 기도를 하는데, 그 날은 피곤해서 5시 30분쯤에 목양실로 올라간 것입니다. 목양실에 들어갔는데 제 아내가 타는 냄새가 난다고 해서 목양실 밑에 있는 소망홀에 내려가 봤더니 창고에서 불이 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소하기를 찾아서 불을 잡았습니다. 그날 저와 아내가 다른 날보다 일찍 새벽기도를 마친 것이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은 불 가운데서 우리를 보호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의 보호자이십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의 보호자이십니다.
4. 하나님은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4절).
4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이스라엘은 보배롭고 존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존귀하게 여기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인격이나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공로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사랑 받는 존재입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으뜸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며 심히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도 나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면 자신의 목숨까지 주셨겠습니까?
주님이 교회의 머리이시고 성도인 나는 교회의 지체입니다. 머리가 주님이시니 지체인 나는 주님의 지체입니다. 이 말은 내가 곧 주님이라는 말입니다(오해 없기 바랍니다). 나와 주님은 하나라는 말입니다. 내 몸은 나입니다. 내 몸의 지체 역시 나의 일부분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의 지체이기에 주님과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김새나 능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데, 그것은 성경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판단으로 아무리 못났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자와 공주입니다. 왕자와 공주는 노예보다 존귀합니다. 노예가 왕자보다 힘이 세고, 얼굴이 잘 생겼고, 머리가 훨씬 좋고, 능력이 탁월해도 왕자의 존귀함에 미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존귀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신자들이 자신의 존귀함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하찮은 일에 내던졌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지금 이 설교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속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입니다. 진리인 성경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정확하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만약 여러분이 이 말씀대로 자신을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알지 못한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그렇게 느낀다면 그 느낌이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말이 모두 틀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만이 완전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사랑스러운 존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5. 하나님은 나를 자신의 증인으로 세우시는 분입니다(10, 12절).
10, 12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증인으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을 통하여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의식에 빠져서 자신들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자신들을 구별시켰고,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요나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니느웨성 백성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이 심하여 멸망이 가까웠다는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니느웨에 선교사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니느웨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배를 타고 도망가다가 풍랑을 만나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의 반응이 놀라웠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용서하시고 멸망시키시려던 뜻을 철해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선택하시고,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하여 성령을 보내주셨고 성령 받은 이방인도 하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행 1:8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주로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서 복음을 증거하고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증인의 자격은 목격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잘났어도 목격하지 못한 사람은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못났어도 목격자는 증인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증인의 삶을 살려면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복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증인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납시다. 그리고 복음을 경험하고 누립시다. 그래야 증인의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은 전도입니다. 전도는 모든 믿는 자의 사명입니다. 전도는 인물이 잘났느냐 못났느냐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로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약 진실로 주님을 믿고 주님을 경험했다면 우리는 목격자입니다. 증인의 자격이 충분합니다.
우리가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면 성령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를 원하는데 증인의 삶은 원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증인 되라고 능력을 주시는 것이니까 우리가 증인의 삶을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사람들이 이걸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십니다. 그 능력이 성령의 은사일 수도 있고, 특별한 기술일 수도 있고, 재물 얻을 능력일수도 있습니다.
전도를 잘 못하겠으면 전도할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그 영혼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저는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다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어머니는 권사님, 아버지는 장로님, 누님은 목사님, 여동생은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저처럼 여러분도 기도할 때마다 구원 얻을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오래전에 황해도 신천에 있는 장개교회에 오명신 집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예수 믿고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매를 수 없이 맞았으며, 여러 번 집에서 쫓겨났고, 성경찬송도 불태워졌습니다. 그러나 오집사님은 그 남편의 영혼구원을 위해 계속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어떻게 응답됐는지 아십니까? 어느 날 오집사님이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술에 취한 남편이 아내를 찾으러 교회로 갔습니다. 남편은 어두컴컴한 예배당 안에서 자기 아내라고 생각된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밖으로 나와 두들겨 팼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뒤에 보니, 그 여자는 자기 아내가 아니고 면장부인이었습니다. 겁에 질린 오집사의 남편은 살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면장부인 집사님이 두 가지 일을 하면 감옥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앞으로 오집사를 때리지 말 것과 또 하나는 교회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집사님의 남편은 할 수 없이 그 다음날부터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오집사님의 기도응답으로 남편이 구원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증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오늘은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하나님은 나의 창조자이십니다.
2.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3. 하나님은 나의 보호자이십니다.
4. 하나님은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5. 하나님은 나를 자신의 증인으로 세우시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