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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회 강령 바탕이 화엄경이니
독립운동은 중생구제 보현행원
6월 마음의 정원에서 원융법회
2009년 5월의 어느 날 아침, 제 앞엔 낯선 보따리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진관사 칠성각 해체보수공사를 하던 인부가 벽 속에서 한지로 둘둘 말린 보따리 뭉치가 나왔다며 가져다 놓은 것이었습니다. 언뜻 보아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 마음을 가다듬고 보따리를 천천히 펼쳐보았습니다. 세월의 숨결이 오롯이 담긴 빛바랜 천을 펴자 그 한가운데 자리 잡은 태극문양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보자기가 아닌 태극기였고, 태극기가 뿜어내는 강렬한 기운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그것은 상해임시정부에서 제작해 3·1 만세운동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태극기로, 그 속에서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 등 독립사료 16점은 한국의 독립 운동사를 다시 써야할 만큼 희귀하고 중요한 자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발견 당시 세간을 놀라게 했던 ‘진관사 태극기’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태극기 발견 이후 관심은 진관사 태극기를 누가 숨겨놓았는가에 모아졌습니다. 각고의 노력과 정성 속에서 드디어 역사의 더께 속에 묻혀있었던 백초월(白初月, 1878~1944)스님의 행적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초월스님은 해인사·범어사·동학사·월정사 등에서 강백으로 학인들을 지도했고, 중앙학림의 초대강사,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화엄산림에 초청될 만큼 교학에 두루 밝은 고승이자 선승이었습니다. 스님은 일제의 강제병합으로 신음하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민하던 중 <화엄품목>의 ‘통만법 명일심(統萬法 明一心, 만법을 거두어 일심을 밝힌다)’이란 구절에 환하게 밝아져 일심회(一心會)라는 항일단체를 조직했고, 진관사에 주석하면서 ‘일심만능(一心萬能)’ ‘군교통일(群敎統一)’ ‘세계평화(世界平和)’라는 3대 강령 아래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고 인재를 교육시켜 만주로 보냈습니다. 초월스님은 이 일로 일제에 수차례 피체되었고,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해방을 한 해 앞둔 1944년 청주교도소에서 열반에 들면서 세상에서 잊혀 버렸습니다.
진관사는 초월스님의 애국심과 독립정신을 이 시대에 되살리고자 초월스님의 책을 발간하고 학술세미나를 여러 차례 개최하는 등 일련의 정성을 쌓아왔습니다. 고맙게도 언론의 뜨거운 관심이 보태지면서 수차례 초월스님과 진관사 태극기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제작, 방영됐고 이제는 초월스님이 만해 한용운스님, 백용성스님과 더불어 독립운동을 앞장서서 이끈 불교계의 지도자로 인정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초월스님을 독립운동가로서만 한정해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초월스님이 일심회의 3대강령으로 내세운 것은 다름 아닌 <화엄경> 사상에서 나온 것으로 초월스님에게 독립운동은 중생구제를 위한 보현보살의 행원과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초월스님의 절절한 애국정신과 독립운동은 곧 불국토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한 화엄행자의 치열한 실천행이었음을 이해해야지만 우리는 초월스님의 진면목과 불교의 정신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음의 정원’ 진관사에선 매년 초월스님의 기일에 ‘초월스님 추모법회’를 열어왔습니다. 올 6월도 초월스님의 이름 아래 보살의 중생구제와 뜨거운 애국심이 하나로 어우러진 원융한 법회가 펼쳐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