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흐르지 않는다
조희
그날은 흐르지 않는다. 나는 자꾸 흘러가는데
아침마다 오븐에 결심을 구웠다. 따끈한 식빵처럼 부풀었다가 저녁이면 버려지는 껍데기를 먹었다.
오늘은 단단한 돌멩이가 되겠다고 쉽게 뽑히는 풀꽃들을 보며 다짐해보지만 입속에는 이미 짠물이 차올랐다. 빨판도 없이 사과를 베어 물 듯 마음의 골짜기를 깨물어보았다. 압정이 굽이치는 차가운 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얼굴 귀를 잘라 산짐승 소리를 퍼 올리지만 나의 목구멍은 새의 부리로 만든 스프에 뜨겁게 데인 채 아무것도 삼키지 못한다.
그날은 흐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흘러야 한다.
어느 날 저녁 내 등 뒤에 서 있는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
그 소리를 못 들은 척 종로 맛집에서 감빠스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인사동 골목에서 구멍 하나를 샀다. 단추가 없는, 잠글 수도 없는 구멍을
그곳으로 땀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하루에도 수천 가지 생각이 뻗어 나오고 후회의 빗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둥근 순례길 속에서 계속 미끄러진다.
나는 동전 같은 순례길을 떠나지 못한 채 떠나버린 마음을 따라가며 배낭에 도넛을 욱여넣었다 빼고 단추를 닮은 연근조림을 씹어 먹으며 매일 아침 새로 태어났다가 그날 밤 폐기되는 결심처럼
그날은 흐르지 않는데
끝내 나를 모른 채 흐르고 있다.
_조희. 시인 2022년 『내일을여는작가』 신인문학상. 2024년 아르코 문학창작산실 지원금을 수혜. 시집 『양파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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