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 반가워, 부산!_F1963과 해운대블루라인파크
221205. 송혜영
김장과 아버님 생신으로 주말에 진주에 내려가기로 했는데 일정이 하나 더해졌다. 그 전 날, 남편이 부산에 있는 모교에서 강의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소식을 들은 우리는 얼씨구나! 바로 하루 더 일찍 내려가서 부산에 머물기로 했다. 부산. 늘 설레이는 곳 아닌가. 대학 시절부터 20여년을 살았던 곳, 결혼하여 보금자리를 틀고 두 아이를 낳기까지 곳곳에 추억이 심겨진 도시이다.
간다 맘 먹고 보니 경유지로 정했는데 목적지마냥 시도 때도 없이 부산 생각이 난다. 이번에 아이들과 어디를 들러보면 좋을까? 새로운 곳보다는 추억의 장소를 더듬어 가 볼까? 서은이를 임신한 초기, 속 울렁증을 다스리며 바람 쐬고자 혼자 찾았던 영도 흰여울 문화마을과 해안산책로도 갈까 싶고 떡볶이에 눈을 뜬 아이들과 남포동에서 빠알간 쌀떡볶이와 호떡 군것질을 해도 좋겠다. 남편과 데이트하며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해운대해변과 동백섬은 언제 가도 좋은 산책로이고 해변의 반대쪽 끝부터 시작되는 달맞이 고개의 브런치집도 우리가 애정하는 장소 아닌가. 어디를 갈까? 즐거운 고민.
퇴근 시각에 회사 앞에서 남편을 만나 밤운전으로 부산행이다. 숙소에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드디어 제대로 맞이하는 부산. 안녕, 잘 있었니? 남편을 학교에 내려주고 지척에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에 들렀다. 음, 3~4층이 전시 준비 중이라 볼 게 많이 없다. 대형수족관 속을 헤집고 다니는 커다란 가오리와 철갑상어를 한참 쳐다보다 작은 수족관 속 '가든일'앞에 달라붙었다. 꼭 두더지잡기의 두더지처럼 모래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다가 쏙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게 신기하다. 박물관 까페 전망이 너무나 좋아 잠시 망설였지만 오늘은 패쓰다. 건물 앞 넓은 데크는 아이들이 뛰어 놀기 얼마나 좋은 장소인지! 바다를 바라보며 씽씽이도 타고 깡통열차도 다니던 활기 넘치는 곳인데 초겨울 찬 바람 부는 평일 오전은 차분하기만 하다.
약간의 아쉬움을 안고 수영구에 있는 F1963으로 향했다. 부산항대교(절영초에서 근무할 때 부산항대교가 완공되었고 이 다리가 생기며 오륙도 SK에 살던 박선생님이 훨씬 다니기 편해졌다고 노래를 부르시곤 했다.)를 올라 대남지하차도를 타고 육상으로 나오면 바로 광안대교로 이어진다. 이보다 멋진 바닷길 드라이브가 있을까. 이 코스로 다니는 버스를 이용하는 관광객들도 많다 들었다. 관광해설사가 된 양 저쪽이 광안리고 광안대교는 2층으로 되어 있어,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도착이다.
F1963은 고려제강의 모태가 되는 수영공장이 이전하면서 공장 분위기를 살려 꾸민 복합 문화공간이다. 가은이가 뱃 속에 있던 2016년에 이 곳에서 부산 비엔날레가 열렸다. 천정의 골조도 그대로, 시멘트 색감의 전시실에 이 곳 저 곳 약간은 미로처럼 공간을 찾아가며 작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었다. 그 중 붉은 색의 엄청 큰 양귀비 꽃이 바람에 따라 펄럭이는 작품이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중앙의 마당은 서은이와, 여러분 보세요 우리딸 귀엽죠? 하는 맘으로 따스한 가을볕을 쬐었던 곳이다.
오늘은 YES24 중고서점에서 책도 좀 읽고 현대모터스튜디오 전시회도 보고, 시간이 허락하면 테라로사에서 차 한 잔하며 아이들에겐 일기쓰는 시간을 줄 생각이다. YES24 입구를 들어서자 커다란 인쇄기가 시선을 잡아끈다. 그리고 저 멀리까지 길게 뻗은 서가. 와우! 책 천지다. 책을 한 권씩 사주겠다 했더니 어린이코너에는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초입에 전시해 놓은 몇 권의 어린이도서를 들고 사달라 조르는 아이들을 끌다시피 하여 더 깊이 들어갔다. 역시나, 반대편 쪽은 창문 안으로 햇볕과 바깥풍경이 덤으로 들어오고, 바로 앞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들이 널찍하게 많다. 중고책만을 모아놓았다 하기엔 책도 많고 다양하고, 게다가 가격은 혜자스럽다.
서점에서 꽤 오래 있어 영혼은 살쪘지만 배가 고픈데 그럼에도 현대모터스튜디오는 포기할 수 없었다. 입구의 대형 아트월부터가 잠시 들어와 보라고 부르지 않는가. Habitat One 전시가 진행중인데 작품마다 구루라 불리는 안내자가 설명을 너무 잘 해 준다. 3D 프린터기로 만든 10m 높이의 나무에는 광합성을 하는 녹조류인 '알레'가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하면 실내에서도 진짜 나무가 광합성을 하듯 숨을 쉬고 산소를 생산한다고 한다. 작은 의자에 쿠션이 하나 붙은 모양의 이동형 쉘터는 낮 동안에 태양에너지를 축적하고 사람의 이동이나 필요에 따라 붙였다 떼어졌다 하며 쉴 공간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게다가 미래에는 캠핑 장비를 안 챙겨가도 여행을 출발하며 신청만 하면 모듈형 로봇인 '에어리'들이 날아가 집을 짓는다고 한다. 마지막이 제일 맘에 드는지 아이들이 어서 여기서 캠핑하면 좋겠다는데 2045년을 상상하며 만들었다니 정말 23년 뒤에 이런 획기적인 변화가 가능할까? 우주도시, 날으는 집 같은 공상과학동화에서만 볼 것 같은 내용이 당장 실현 가능한 현실처럼 전시가 되어 있어 놀랍다.
테라로사와 대나무숲길, 화수목이란 꽃집은 눈으로만 훑고 지난다. 다음에 또 오지 뭐. 수영시장의 분식점에서 점심을 해결하며 아빠를 만나고 이젠 해운대로 갈 거다. 미포에서 출발하는 해변열차와 스카이 캡슐을 타기로 하였다. 이름하여 해운대 블루라인 파크. 5년 전만 해도 그 곳은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였을 뿐이었다. 그 때가 초여름이었나, 나는 서은이 손을 잡고 아빠는 아기띠를 뒤로 하여 등에 가은이를 업고 철길 산책로를 걸었다. 이제 충분히 걸은듯하니 이 길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친하게 지내던 같은 학교 선생님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 다음날, 선생님 말씀이 우리가- 특히 남편이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아주 힘들어 보였다고^^
그 길을 오늘은 편하게 탈 것을 이용해서 다닐 거다. 평일인데도 정거장은 관광객으로 꽤 붐볐지만 다행히 현장예매 자리가 남아있어 오래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었다. 여기 인기 참 많구나. 미리 온라인으로 예매를 하고 오는 것이 안전하고 현명한 것 같다. 매표소 직원의 조언에 따라 미포에서 다릿돌전망대까지는 열차를 타고, 내려서 청사포 정류장까지 500m를 걸은 뒤 스카이 캡슐을 타고 돌아오기로 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열차는 사람들이 많이 타지만 기차 느낌이 나고 좌석이 바다를 향하고 있어 앞만 바라보고 가기 좋다. 스카이캡슐은 우리 가족만 탈 수 있어 속닥하고 전망이 가리는 것 없이 잘 보인다. 30분 동안의 여유를 누리기에 더 좋다. 둘 다 맛이 달라 풍성한데다 정류장 사이 걷는 길이 또 좋았다. 저 멀리 대마도 방향으로 뻗은 다릿돌도 보고 무섭다 무섭다 하면서도 투명한 유리에 주저앉아 파도가 철썩이는 것을 내려다보기도 한다. 5년 전에도 이 길을 걸었어~ 라며 훌쩍 큰 아이들과 뛰어가다 멈추다 하는데 옛 기억을 상쇄하듯 행복한 순간이다. 아이들 볼이 상쾌한 바다바람에 붉게 상기되고 짧아진 낮시간으로 마침 하늘과 바다도 발그스레 물들기 시작한다.
부산어묵으로 속을 데우고 이젠 진주로 향할 시간이다. 광안대교를 건너서는 황령터널 방향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이미 퇴근이 한창인 시간이라 차들이 많다. 가쪽 차선에 붙어있다가 그만 광안리 쪽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도착예정 시간도 15분이 늘어났다. 그런데 나쁘지 않다. 교대 다닐 때 동아리 선배, 친구와 하필 비 오는 날 와서 스티커 사진 찍었던 광안리, 그 때는 광안대교가 생기면 바다 물길도 바뀌고 흉물일거라 했었는데 그 이후도 여러 추억이 어린 광안리 밤바다를 가까이 보며 지나간다. 골목길을 지나 밤데이트 장소였던 황령산 아랫자락을 지나고 반여동 옛 집으로 빠지는 도로를 보며 그 길따라 가고 싶은 설레임도 느낀다. 추억이 어린 길은 돌아가도 바로가도 아름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