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회관에서 집으로 오늘 길은 빨리오는 길은 10분, 늦게 오는 길은 15분이 걸린다.
오늘은 삥 돌아서 향로봉으로 왔다.
40분 걸렸다.
눈이 와서 그런지 어릴 때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기봉, 익경, 학진 이렇게 세명이 향로봉에 살았다.
정식 지명은 발한동인데, 왜 향로봉이라 하는지 누구에게 물어도 모른다고 한다.
추측컨데 동네 언덕 위 작은 산이름이 향로봉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북평고 다니던 익경이는, 향로봉 시장에서 부모님이 중국집을 했다.
울릉도에서 오신 부모님은 참으로 너그러웠다.
고등학생 놈들이 대낮부터 가게에서 술을 마셔도 나무라지 않았다.
익경이는 일산에서 교통사고 나서 죽었다.
학진이는 묵종고 대대장을 할 정도로 덩치도 크고 잘 생겼다.
배 타다가 중고차 영업을 하다가 지금은 소식을 모른다.
내가 강릉고에서 전학을 와서 많이 싸웠다.
나를 샌님으로 알고 덤비다가 나에게 큰코 다쳤다.
기봉이는, 묵종고 상과 나와서 빌빌 거리다가, 노가다 하다가 운이 풀렸다.
노가다 건설 업체가 포항제철 하청업체라서, 어떻게 비비고 들어가서 지금은 광양 제철소에 근무한다.
셋 중에는 그나마 잘 풀린 경우다.
과거 향로봉은 발한 삼거리에 버금 갈 정도로 흥청거렸다.
울릉도 여객항이었고, 밀수 통로였다. 그래서 익경이 부모님이 울릉도에서 와서 중국집을 하게 된 것이다.
밀수품 시계를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한 개 얻어서 차고 다니다가, 술집에 맡기고 술을 먹어치웠다.
향로봉에서 발한삼거리로 오자면 철길을 따라 긴 골목이 이어지고, 그곳은 창녀촌이었다.
내가 첫 경험을 했던 어린 매춘부가 있던 골목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있던 곳을 아무리 찾아봐도 도무지 알길이 없다.
향로시장 들어가는 입구에 향로식당이 있는데 이십여가지 반찬의 부페인데 , 일인당 8800원이다.
향로시장안의 수십개 가게들이 다 문 닫았는데 미용실 하나가 겨우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