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랩 벨
올림픽 트랙 종목에서 마지막 한 바퀴는 지금도 종을 쳐 알린다
시간 지킨다는 전통과 자부심...일의 미래는 생산성 아닌 상징성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한 우려와가 온갖 곳에서 화제다.
모든 사람이 미묘한 존재론적 위기를 느끼는 가운데 개개인의 일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보통 사람인 우리의 삶과 일이 지속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내가 꼽는 물증 중 하나가 내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막할 동계올림픽에 나타난다.
그 물건의 이름은 '라스트 랩 벨(Last Lap Bell)'이다.
라스트 랩 벨은 트랙을 빙빙 도는 종목의 마지막 바퀴를 알릴 때 치는 종이다.
하계 올림픽은 육상 트랙에서의 장거리 종목이나 사이클에서, 동계 올림픽은 쇼트트랙 등에서 친다.
이 종은 아직도 스위스 라쇼드퐁에 있는 대장장이가 만든다.
구리 80%, 주석 20% 비율의 청동을 대장간에서 직접 녹인 뒤 모래틀에 붓고 식힌 뒤
표면을 가공하는 방식의 원시적 주조 종이다.
2017년 스위스 정부 초청으로 이 종 대장간에 가본 적이 있다.
당시엔 덩치 큰 남자 한 명이 모든 걸 하고 있었다.
그만큼 규모가 작았다.
라스트랩 벨은 원래 올림픽에 쓰던 종이 아니다.
목축용 종이다.
스위스는 국토 중 산악 비율이 세계 1위인 나라라 전통적으로 방목형 목축을 했다.
방목을 하면 소가 어디 있는지 모를 수 있으니 소의 목에 단단한 가죽 목걸이를 단 뒤 종을 매달아 두었다.
그 종을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 각 올림픽의 로고를 새긴 게 라스트랩 벨이다.
이 종이 올림픽에서 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타임키퍼인 오매가의 의지다.
스포츠 행사에서 정확한 시간을 측정해서 출력하고 보여주는 일련의 기술을 '타임키핑'이라고 한다.
오메가는 역대 올림픽 중 가장 오랫동안 공식 타임키퍼를 하고 있는 회사다.
오메가는 타임키핑의 전통이라는 상징성을 잇기 위해 매 올림픽마다 라스트 랩 벨을 만든다.
스위스 로잔에 있는 올림픽 박물관에도 서울올림픽과 평창동계올림픽을 포함해 이들이 만들어 둔
역대 라스트 랩 벨이 모두 전시되어 있다.
역으로 오메가의 타임키핑 기술에는 '전통이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첨단 기술밖에 없다.
그 기술이 상품이다.
그건 오메가의 기술도 아니다.
오메가가 속한 스와치그룹의 자회사 '스위스 타이밍'의 기술이다.
스위스 타이밍은 주요 스포츠대회의 시간 측정 솔루션을 제공하는 B2B 회사다.
티쏘나 론진 등 스와치그룹의 다른 브랜드가 타임키퍼가 되어도 타임키핑 실무는 이 회사가
(각 브랜드의 유니폼을 입고) 진행한다.
즉 올림픽 타임키퍼 오메가와 라스트 랩 벨을 스위스 타이밍이 제공하는 정확한 시간 측정의 상징물이다.
상징적 마스코트가 되는 게 인간 노동의 미래일까.
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AI까지 댈 것도 없이 문명의 역사는 생산성 향상의 역사다.
농업을 통한 식량 생산성 향상이 문명을 낳있다.
원양 향해를 통한 무역 생산성 향상이 해양 제국을 낳았다.
외연기관과 내연기관과 대량생산 체계가 만든 공업 생산성 향상이 현대 문명을 낳았고 인터넷을 통한
정보 생산성 향상이 오늘날의 세계를 빚고 있다.
어차피 개별 인간은 기술이 초래하는 생산성 경쟁을 이길 수 없다.
대신 '상징성 경쟁'에서는 이길 수 있다.
상징선은 생산성과 별개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라스트 랩 벨이 그 증거다.
라스트 랩 벨의 제조방식인 주조는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야금술이다.
2026년 동계올림픽에 울릴 라스트랩 벨과 시날시대의 에밀레종 제조법은 기법적으로 같다.
올오메가의 탈을 쓴 스위스 타이밍은 한층 진보한 첨단 기술로 스포츠의 여러 메타데이터를 만들 것이다.
그 사이에서 여전히 스위스 산골짜기의 대장장이가 만든 종소리가 울릴 것이다.
어느 여름 스위스에서 운전을 하다 GSP를 잘못 보고 실을 잃은 적이 있다.
창문을 ㅇ려고 운전을 하는데 어ㅏ딘가에서 수십 개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길 옆 산비탈에서 풀을 뜯던 소들의 목에 걸려 있던 종소리였다.
라스트 랩 벨과 같은 방식으로 만드렁진 종들이 여전히 소들의 목에 걸려 울리고 있었다.
나 말고는 차 한 대 없던 도로에서 종소리들만 울리던 그떄의 기묘한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나는 '그 소리를 떠올릴 때마다 세상이 어찌 변하든 내 한 몸 하나 건사할 방법은 있을 거라 생각하곤 했다.
그게 뭐가 될지는 몰라도 박찬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