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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립의 공격과 심판을 예고함
이사야 29:13-20
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15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16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17 오래지 아니하여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지 아니하겠으며 기름진 밭이 숲으로 여겨지지 아니하겠느냐
18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19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20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오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
이사야 28장부터 35장까지의 신탁은 히스기야 왕 때 셉나가 국고와 왕국을 맡고 있을 때 주어진 것입니다. 그때는 사르곤 왕이 블레셋의 아스돗을 침략하여 함락한 주전 711년과 산헤립이 남유다를 공격한 주전 701년 사이가 됩니다. 특히 이사야 30장 1-2절을 보면, 히스기야가 애굽과 동맹을 맺은 이후에 이 신탁이 주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사 30:1-2).
그리고 이것이 산헤립이 주전 701년에 남유다를 공격한 계기가 되었고, 산헤립이 즉위한 때는 주전 705년이기 때문에 이 신탁이 주어진 때는 주전 705년에서 701년 사이입니다. 아마 이 신탁은 대략 주전 702년에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 단서는 이사야 32장 10절입니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사 32:10).
그리고 곧바로 국고와 왕궁을 맡고 있었던 제2권력자 셉나가 서기관으로 좌천되고 그 대신 엘리아김이 그 자리에 앉게 되어 국고와 왕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주전 702년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탁이 주어진 때는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그 나라가 멸망한지 대략 20년 정도 지난 때입니다.
우리가 이미 확인한 것처럼 산헤립은 바벨의 정신을 가진 왕으로서 그는 장차 주의 백성을 멸절시키려고 등장하는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의 모형입니다. 따라서 산헤립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주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주의 남은 자들을 위해 산헤립을 패하게 하시고 주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류 종말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불법의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 2:8).
앗수르 비문에 따르면 산헤립은 주전 701년에 남유다를 공격하여 예루살렘을 제외한 46개의 성읍을 점령했습니다. 성경 역대하 18장은 이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였더라”(왕하 18:13).
그리고 산헤립은 라기스에서 전령관을 보내 히스기야의 항복을 종용합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산헤립에게 손을 빌며 사죄하였습니다. 이에 산헤립은 히스기야와 조건부 합의를 하고 물러갑니다.
[
14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감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15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16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왕하 18:14-16)
그러나 산헤립은 10년 후에 남유다의 예루살렘 도성을 무너뜨리려고 대군을 이끌고 다시 찾아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구스 왕 디르하가를 움직여 앗수르 군사와 맞붙도록 원정을 떠나게 하십니다. 이때가 주전 689년입니다. 즉, 산헤립의 예루살렘 공격은 남유다를 향한 2차 공격인데 그때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왕하 19:9) 라기스에서 립나로 돌아가야 했고 그 날 밤에 주의 놀라운 간섭으로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이 순식 간에 사망함으로 산헤립은 완전하게 패배한 상태로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얼마 후 두 아들에게 살해 당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가운데 이사야 28-35장까지 다룰 것입니다. 사실 29장부터 39장까지는 이사야서의 제2단원이며, 이 단원은 산헤립의 공격과 하나님의 심판 및 주의 남은 자에 대한 구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구성은 29-35장은 신탁으로 되어 있고, 36장부터 39장은 산헤립의 공격과 연관된 사건에 대한 진술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28장과 29장은 주전 701년 산헤립의 공격이 있기 전, 남유다 모든 성읍들 및 예루살렘의 부패한 상황을 고발하는 신탁입니다.
개역개정과 수많은 번역은, 에브라임, 즉 북이스라엘에 대한 내용을 담은 28장 1-4절을 미래형으로 번역했지만 원어는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래로 해석한 것은 이 신탁이 언제 주어졌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함으로 인한 결과로 여겨집니다. 제 경우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28-35장이 주전 702년 정도에 주어진 것으로 보기 때문에 북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은 벌써 20년이 지난 과거 사건입니다. 따라서 1-4절은 원어의 완료 동사에 따라 과거로 번역함이 옳습니다. 감사하게도 공신력있는 NASB도 완료로 번역했고, 구약 학자의 최고의 권위자인 이 제이 영(E. J. Young, Edward Joseph Young)도 완료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1-4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옳습니다.
[
1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에 화로다! 술에 빠진 자의 성,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 그리고 그 성의 꽃 같던, 그러나 쇠잔해 버린 영화로운 관에 화로다!
2 보라! 주께서강하고힘있는자를사용하셔서쏟아지는우박같이, 파괴하는광풍같이, 큰물이넘침같이, 주의손으로그면류관을땅에던지시고
3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짓밟혔도다
4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의 영화가 쇠잔해 가는 꽃 같이 사라졌도다. 마치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이 그것은 본 자가 얼른 와서 따서 먹어 버렸도다
](사 28:1-4, 스데반 황 역)
이사야 5장을 보면, 웃시야 왕 통치 기간에 주 하나님은 술 취한 자들에 대해 이미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
1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13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14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사 5:11-14)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이 없이 교만한 마음 가운데 술에 찌들어 살며 정신 차리지 못하던 북이스라엘은 아름답던 사마리아를 노리던 앗수르의 살만에셀에게 잡아 삼켜져서 멸망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주 하나님은 주를 경외하며 술 대신 주의 영으로 살아간 참된 신자들에게 친히 영원한 면류관과 아름다운 화관이 되어 그들에게 영광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그들을 또한 지도자로 세워 정의와 공의가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도구로 삼으실 것입니다.
[
5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6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사 28:5-6)
이렇게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자기들의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남유다 백성이지만, 신기하게도 북이스라엘의 추악한 점철을 밟습니다. 심지어 남유다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도 술에 취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
7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8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사 28:7-8)
더 무서운 현상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이 주의 말씀을 조롱한 것입니다.
[
9 그들이 이르기를 (이사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11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
](사 28:9-13)
남유다 백성에게 주께서 선지자를 통해 주의 말씀을 전하면 그들은 갓난 아이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처럼 “바바바바바바바바”하며 거절하고 조롱했다는 뜻입니다. 이때 주의 소중한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당하는 수치와 모독과 안타까움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제가 지금 설교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어떤 장로가 맨 앞에 앉아서 ‘에베버버’라고 떠들며 설교를 조롱하고 방해한다면 이 예배가 어떻게 되며 저는 얼마나 낙심하고 화가 나고 비참을 느끼겠습니까?
이에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바바바바바바바바’라고 말하는 앗수르가 와서 너희를 다 사로 잡을 것이고 말도 다 표현 못할 비참과 궁핍과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바울은 신기하게도 초대 교회 시대에 성령의 은사인 방언에 대해 이사야 28장 11절을 인용해서 말합니다.
[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니라. …
](고전 14:21-22)
즉,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소중히 여긴다면 방언은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남유다는 백성은 물론이고 그 나라의 지도자인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마저도 술과 방탕과 세속에 물들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주를 경외하지도 않고 주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았으니 주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신 것입니다.
[
14 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사 28:14-15)
남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애굽과 동맹을 맺고 안일한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 왕도 믿음을 놓치고 거짓 선지자들과 어리석은 제사장들에게 속아넘어간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에 이사야를 통해 주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가 선포됩니다.
[
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사 28:16)
이 선포는 지금 애굽을 의지하고 거짓 안정을 느끼며 안일에 빠진 남유다 백성에게 그들이 쌓은 집은 모레에 쌓은 집이지만,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쌓은 집은 반석 되시는 그리스도 위에 쌓는 안전한 집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풍랑이 일고 비가 내리면 모레 위에 쌓은 집은 무너지지만 반석에 쌓은 집은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반석은 하나님이 시험하여 검증한 반석이며 동시에 그 반석은 모든 것을 시험하는 반석입니다. 즉, 그 위에 서는 것은 영원히 보호하지만, 그렇지 않은 모든 것은 풍랑이 일 때 무너질 것입니다.
[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7:24-27)
물론 이 기촛돌 반석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지금 남유다는 애굽을 의지함으로 모레 위에 집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회개하고 반석에 서는 남은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께서는 주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조롱하며, 나아가 세상을 의지하고 거짓 안정을 느끼면서 술과 방탕에 찌들어 사는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앗수르라는 우박과 창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
17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18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
](사 28:17-18)
그리고 주께서 몽둥이로 사용하시는 앗수르라는 우박과 창수가 일어날 때 남유다의 어리석은 자들은 말로 다 표현 못할 비참과 두려움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원수로 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19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지나가며 주야로 지나가리니 소식을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
20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21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의 일을 행하시리니 그의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의 사역을 이루시리니 그의 사역이 기이할 것임이라
](사 28:16-21)
여기서 브라심 산과 기브온 골짜기는 주 여호와께서 다윗 왕 및 여호수아의 전투에서 그들 편에 서서 원수를 제거해 주신 곳인데, 지금은 도리어 주의 백성의 원수인 앗수르를 사용하여 자기 백성을 치실 것이니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주의 백성 가운데 가짜와 찌꺼기를 제거함이요, 참된 주의 백성으로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오만함을 버리고 회개할 것을 권합니다.
[
22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 (그렇지 않으면)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
23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사 28:22-23)
하나님은 이런 심판의 상황에서 회개하는 자에게 위로와 보호와 복락으로 베푸시고 그렇지 않고 완고한 자에게는 더욱 매질하실 것이며, 나아가 가짜들은 이런 기회에 완전하게 제거되어 오직 주의 참된 자녀들만 남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완전하게 아시고 사람의 가장 깊은 곳을 아시는 주께서는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즉, 진노할 자에게 진노하시고, 위로할 자에게 위로하시고, 버릴 자를 버리시고 찾을 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하나님은 농부가 파종하는 씨앗들을 각 종자에 맞게 다양하게 다루신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
24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25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
26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27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28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사 28:24-29)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28장에서 우리 주 하나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것은 반석입니다.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 반석을 믿고 서면 원수로 인한 낭패 또는 지옥의 위협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 28:16).
이 말씀의 궁극적인 심판은 ‘지옥’입니다. 즉, 하나님이 말씀이신 반석을 무시하고 의지하지 않는 자는 주야로 영원히 두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지옥에서 벗어나는 위대한 구원의 진리를 알려면 교만하고 오만한 마음을 회개하고 주의 말씀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한편,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한 마음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의 말씀을 등한시 여기고 업신여기고 조롱하는 것이라고 거듭 알려주고 있습니다.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사 28:14).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사 28:22-23).
반면,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받들면 반석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석에 뿌리를 내린 삶은 유쾌함과 안식이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리라”(사 28:12).
더 늦기 전에 회개하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으로 돌아와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주께서 성경을 통해 하시는 말씀과 지시에 주의 영을 따라 행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유쾌함과 안식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물론 죽음을 지날 때, 그리고 인류의 역사가 끝날 때에도 주의 공의로운 진노가 아닌 영원한 복락에 들어가는 길이고, 심지어 이 땅에서도 감사와 사랑과 안전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비결니다. 바로 그 비결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반석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이제 이사야의 신탁은 29장으로 넘어갑니다. 이사야는 22장에서 예루살렘을 “환상의 골짜기”로 비유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어두워진 남유다를 경고했었습니다. 이제 10년 후에 주어진 신탁에서는 주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도성을 ‘아리엘’이라고 부르며 구체적으로 재앙을 경고합니다.
‘아리엘’이라는 단어는 이사야 29장에서만 6번 나오고 다른 곳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뜻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만 히브리어 최고의 단어 사전 BDB(Brown Driver Briggs)에 따르면 아리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사자(라이온)”라는 뜻이 있고 주의 심판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불 난로”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아리엘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이고 다른 하나는 심판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루살렘은 아리엘로서 이제 주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그 후 하나님의 사자(라이온)에 의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맥에서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에서는 아리엘에게 임할 심판을 말합니다. 그것은 이번 한 해의 절기가 지난 후 임하는 심판이 될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친히 아리엘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물론 앗수르의 산헤립 왕을 통한 심판입니다. 이때 ‘아리엘’은 주께 “하나님의 거룩한 불 심판을 받는 제단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7절을 보면 아리엘을 공격한 원수를 주께서 친히 치실 것입니다. 즉, 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라이온”이 되셔서 주의 양떼의 원수를 죽이시고 잡아 삼키실 것입니다.
한편, 이 신탁은 사탄에 대한 묵시적 표현인 ‘리워야단’, 바로 앞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묵시적 표현인 “환상의 골짜기”, 바벨론에 대한 묵시적 표현인 “바다의 광야”, 에돔에 대한 묵시적 표현인 ‘두마’처럼 ‘아리엘’이라는 묵시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먼 훗날까지의 예언을 환상으로 보는 신탁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아리엘’은 구약의 예루살렘 성과 성전만을 뜻하지 않고, 이 땅의 하나님의 백성 및 그들의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아리엘’과 관련한 신탁은 일차적으로는 산헤립과 관련하고 그 다음으로는 바벨론 제국의 침략, 나아가 예수님 당시에 로마 제국의 침략, 심지어 예수님 재림 당시에 있을 적그리스도의 침략 및 이 땅의 주의 마지막 교회 시대까지 내다보는 환상입니다.
이러한 배경과 문맥을 마음에 두고 이사야 29장 1-4절을 보겠습니다. 이 내용은 아리엘에 대한 주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주의 심판은 멸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결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짜와 거짓을 씻어내어 떨어져 나가게 하고 오직 남은 자들만이 예루살렘에 남아서 머물게 될 것입니다.
[
1 화로다, 아리엘이여아리엘이여다윗이세운성읍이여이제한해동안절기를지키고나면
2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 즉 불로 태운 번제단과 같이 되리라
3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에워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4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이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이리라
](사 29:1-4)
3절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성벽을 공격하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물론 주전 586년의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의 침략도 연상되고 심지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신지 37년 후에 있던 주후 70년의 로마의 디도 장군의 침략, 그리고 주의 재림 직전 종말의 기간에 마귀의 아바타인 적그리스도가 주의 교회를 둘러싸 박해하는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특히 4절은, 예루살렘이 원수에 의해 포위를 당한 채 적군의 위협을 받는 상태에서 예루살렘 성 안의 주의 백성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비참과 굴욕과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때 굶주림 가운데 죽는 자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 중에는 참된 주의 자녀가 아니기에 죽음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져 신음하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산헤립이 그의 대군을 시켜 예루살렘 성벽을 포위하고 이제 곧 공격하고자 할 때의 기사를 보면 사령관 랍사게가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성안의 백성에게 전한 말이 있습니다.
“랍사게가 이르되 … 자기의 대변을 먹으며 자기의 소변을 마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도 말을 전하라고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냐 하더라”(사 36:12).
또한 ‘아리엘’이 심판과 구원의 이중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4절 역시 주께서 예루살렘 성을 정결케 하시는 과정에서 찌꺼기를 제하시고 참된 남은 자만을 살려내시는 그러한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이리라”고 것은 28장에서 다룬 것처럼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무시하고 도리어 주의 말씀을 전하는 자 앞에서 “바바바바바바바바”라고 지껄이며 방해하고 조롱하던 자들과, 심지어 이 비참한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으니 우리의 운명에 대해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묻자”라고 제시하는 자들에 대한 운명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이미 이사야는 이런 제안 때문에 바른 제안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사 8:19).
반면에 주의 혹독하고 거룩한 의로운 징계 앞에서 신음하며 회개하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이 티끌에서 날 것이라”(사 29:4). 그들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처럼 저 깊은 영혼 속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신음과 애통 가운데 회개하는 자들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주 앞에 회개하는 주의 남은 자들을 위해 친히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기 위해 사용하셨던 산헤립과 그의 군대를 멸하십니다.
“그러나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날려 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요새를 쳐서 그를 곤고하게 하는 모든 자는 꿈 같이, 밤의 환상 같이 되리라”(사 29:5-7).
이때 여기서 ‘아리엘’의 의미는 하나님의 라이온(사자)를 뜻합니다.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the Lion of the tribe of Judah)라고 말하였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주의 남은 자를 앗수르로부터 구원하시는 이유는 ‘아리엘’ 때문입니다. 즉, 그들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남은 자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Lion) 다윗의 뿌리가 이겼도다”(계 5:5).
즉, 다윗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 때문에 구언약 시대의 남은 자들도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임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든 신약 시대든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로만 구원 받는 것입니다.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사 37:35).
따라서 앗수르의 산헤립, 그리고 인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세상 나라들과, 심지어 먼 훗날 마귀는 너무나 잡아먹고 싶던 예루살렘 성읍 및 주의 백성이 거하는 성전을 잡아먹지 못한 채 굶주릴 것입니다.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사 29:8).
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사야는 다시 예루살렘 성과 유다 백성이 왜 산헤립의 공격을 받게 되는지 한번 더 확인시켜줍니다. 그것은 그들 마음에 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며 소돔과 고모라 사람처럼 주의 심판의 경고를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오래 참으심을 마무리하시고 이제 앗수르 왕 산헤립을 사용하여 유다 백성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땅에서 멸절되어 영원히 멸망할 것입니다.
9절부터 11절 내용은 이 경고를 되풀이 합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주의 신탁을 전해도 조금도 바뀌지 않고 도리어 더욱 완고해지는 것을 보니, 이제는 맘껏 완고해지라는 이사야의 포기하는 마음과 그로 인한 애통입니다.
“그래, 이제는 차라리 더 어리석어져라. 그래서 세상 사람들처럼 아예 아무런 영적인 지각과 감각조차 갖지 말도록 하여라. 스스로의 착각 속에 취해 살거라. 지금까지 방탕한 가운데 술에 취하여 살아온 것처럼 이제는 영적으로도 아예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개의치 말고 살도록 하거라. 이제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깊은 잠에 빠지게 하셨도다. 너희의 눈 역할을 하던 선지자들의 눈은 감겼고, 너희의 머리 역할을 하던 선견자들의 마음은 깊은 잠에 빠졌도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를 위해 주셨던 이 모든 신탁이 적힌 이 책은 너희에게 봉인된 책과 같을 것이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선지자나 선견자에게 신탁이 쓰인 이 책을 가져가서 읽어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은 ‘이 책은 봉인되어 있어서 읽을 수 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혹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일반 사람에게 이 책을 가져가서 읽으라고 하면 그 사람은 ‘나는 글을 읽을 줄 몰라서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은 기록된 말씀의 신탁을 알 수 없으니 주의 심판에 대해 알 수 없고 또한 회개하거나 심판을 준비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주의 심판은 이제 더 이상 미뤄질 수 없이 자명하여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완고한 마음은 교만한 마음이며 세상의 어둠에 물든 어리석고 미련한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주의 말씀을 들어도 회개하거나 주의 심판에 대해 준비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참으로 주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는 증거요, 나아가 남은 자들에 속할 수 없는 가짜인 것입니다. 이들은 위선자들이며,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같은 자들입니다.
신기한 것은 29장 10절에서 여호와께서 “잠들게 하는 영”을 ‘부으신다’라고 할 때 ‘부으시는 것’은 전제 또는 관제를 드릴 때 사용되는 동사 (나사크)인데 이는 주께 전적인 헌신과 희생을 나타내고 싶을 때 포도주나 독주를 제단에 부어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잠들게 하는 영’으로 포도주를 붓듯이 남유다 백성에게 부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사 29:10).
이는 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의 헌신과 희생이 위선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참으로 깊은 표현입니다. 즉, 주의 백성이 드리는 제사가 주께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는 위선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드리는 예배의 전제를 도리어 영적 어둠의 독주로 만들어 그들에게 부으심으로 더욱 그들을 어리석게 만들어 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가장 위험한 부패 및 위선은 예배의 부패와 위선인 것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이런 위선과 완고함에 대해 주께서 아시고 선포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있도다.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으로서 사람이 만든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일 뿐이라”(사 29:13).
그들은 주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에 대해 지독한 위선적인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그들은 …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는도다”(겔 33:30-32).
이런 자세가 위선이며 예배의 부패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안에 있지만 전통을 따를 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사야의 이 말씀을 인용하여 책망하셨습니다.
[
3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마 15:3-9)
그러므로 그들은 주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구원의 길을 아는 지혜가 가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사 29:14).
그럼에도 이들이 얼마나 지독한 어리석음에 떨어졌는가 하면 그들 생각에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에 대해 알지도 못하시며 따라서 심판도 하지 못하실 것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사 29:15-16).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지독히 어리석은 사람들의 심중에는 언제나 이런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이 죄를 하나님인들 어찌 알랴! 이 문제를 하나님인들 어찌 해결하리요. 죄 짓고도 버젓이 사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하나님이 존재하기나 하겠어? 안 들키는 것이 상책이고, 세상에서 무조건 힘과 돈과 건강과 명예와 인기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어?”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자들의 “패역함은 심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패역”은 원어로 (헤페크)인데 이 뜻은 주의 말씀에 늘 반대로 행하고 주께서 그릇 되다고 하신 것을 옳다고 하는 반역 정신 및 비뚤어짐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 대들려는 심보가 패역이고 주께서 정하신 창조 질서 및 권위 질서를 도전하는 것이 패역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디서나 많은 죄로 문제를 일으키고 무질서를 발생시킵니다.
이러한 패역에 대한 하나님의 대처는 오직 회초리와 심판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패역한 자는 매와 멸망을 자초하는 가장 어리석은 자이고, 그가 그렇게 패역하게 되는 이유는 놀랍게도 교만입니다. 즉, 자기 멋대로 행하여야 직성이 풀리고, 자기가 온 세상의 왕이 되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패역은 마귀의 정신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으며 이에 당돌하게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상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패역함이 없는지요?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권위 질서를 존중하는지요? 아니면, 혹은 주의 말씀을 고집스럽게 어기며 죄악의 상태에 머물고 있는지요? 더 늦기 전에 패역의 죄를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와 주의 말씀을 온 맘 다해 지켜 나가기 바랍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각자 지은 죄에 대한 공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의 죗값을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치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받아야 할 율법의 저주를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지셨다는 사실을 믿고 감사하며 아버지께 돌아오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의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아직 호흡이 남아 있다면 나의 영원한 운명은 아직 결정 난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주를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저주가 해결되고 주의 의로 인해 영생을 얻고 지금 당장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과거에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그 구속은 우리가 알다시피 어린양 예수의 피로 성취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이러한 복을 누리는 자들은 주의 계시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붙든 자들입니다. 그들이 남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진정한 의미의 야곱 족속입니다.
[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23 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24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 29:22-24)
사랑하는 여러분!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온 남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는 신속합니다.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겪는 고난은 항상 짧고 그 이후로 오는 영광은 영원합니다. 그 영광은 남유다의 예루살렘에 머물지 않고 온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
17 오래지 아니하여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지 아니하겠으며 기름진 밭이 숲으로 여겨지지 아니하겠느냐
18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19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사 29:18-19)
17절은 이사야 32장 15절과 맞물립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사 32:15).
즉, 남은 자들에게 주의 영이 부어질 것이고 그들로 인해 광야에 있던 이방 백성들에게도 주의 영이 부어져서 아름다운 밭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친히 심판으로 강포한 자를 소멸하실 것이기에 주의 참된 모든 자녀는 영원한 안전을 보장받고 감사와 거룩함과 사랑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오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사 29:20).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짧고 죽음 이후 곧바로 주님을 만나서 삶을 정산해야 합니다. 현재 진행되는 세상 역사와 자연 현상을 볼 때, 무엇보다 문화와 과학의 급속도로 빠른 변화를 볼 때, 죄악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동성애, 낙태, 종교 다원화가 활개치는 것을 볼 때, 주의 재림은 그리 오래 남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인생은 어느 때든 신속히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영생을 얻은 상태에 있습니까? 정말 거듭난 신자가 확실합니까? 오늘이라는 날에 날마다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을 누리고 있습니까? 혹은 잘 모르겠습니까? 잘 모른다고 하면 이는 대단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당장 회개하고 온 마음을 다해 영원한 반석이신 주 예수께로 돌아와 그분을 믿고 의지하며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 바랍니다.
위대한 성 어거스틴을 만들어낸 성경 구절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주의 백성이 반드시 마음 속에 새겨야 할 구절일 것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1-14).
우리 주의 모든 백성이 더욱 경성하며 깨어서 오직 우리의 여생은 주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며 주를 닮아가면서 많은 풍성한 열매를 맺어 주 하나님께 기쁨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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