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어지러운 사회상과 정치상황으로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어수선하여, 잠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아,
벌떡 일어나 서재로 가서 멍하니 어두운 창 밖을 내다보다가
손에 잡힌 책을 펴니, 아래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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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오솔길을 걸어가다가 불현듯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용기가 뭐에요?” 아버지가 도로 물었다. “너는 용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아이가 대답을 했다. “나보다 덩치가 더 큰 아이가 다른 친구를 괴롭힐 때,
내가 나서서 그 덩치 큰 아이를 혼내 주는 거에요.”
“그래, 그것도 용기일 수 있지. 하지만 그건 참된 용기가 아니야.”
그러면서 아버지는 말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계속 산길을 걸어갔다.
산모퉁이를 돌아설 때마침 그곳에 제비꽃 한 송이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아버지가 그 꽃을 가리키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용기란 바로 저런 거야.”
아무도 보지 않는 산속에서, 그 누구의 갈채도 없지만,
생명의 몫을 다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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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순간, 멍멍한 생각과 잠이 홱 달아나면서
오늘의 이 사회모습과 큰 소리 치는 정치지도자와 대선을 꿈꾸는 주자들의 행태와
자신의 신앙자세가 주마등같이 스친다.
오늘날 이 사회는
진실과 사실보다, 서로 비난과 책임전가가 박수를 더 받는다.
논리보다 핑계가, 화합보다 갈등이, 용서보다 공격이 힘을 더 얻는다.
양보와 타협으로 화해하려는 자보다, 고함지르며 분열시키는 자가 인기를 더 얻는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내게 유 불리로 판단한다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내편이냐 네편이냐로 구분한다.
합리적이냐 불합리적이냐가 아니고, 기분 좋으냐 나쁘냐로 표현한다.
오늘날 각 당대표와 정치지도자들을 보라
그들에게는 진정성이 보이는 비전보다 표를 의식한 포퓨리즘만 판을 친다.
무거운 책임감과 인격을 지닌 진실한 모습보다 오직 투사의 모습만 나타낸다.
정책대결은 볼 수 없고 상호 비방, 흠 짓내기, 꼬투리 잡기, 책임전가만이 난무한다.
국가안위와 국민경제를 위한 확고한 현실적인 정책제시보다 인기와 표를 얻기 위한
불안하고 사탕발림 식의 언어의 수사에 불과한 과장 포장된 정책만 마구 발표한다.
국민과 국가를 위한 대승적이고 합리적인 미래 안목을 지닌 덕목과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선거 꾼과 협작 꾼에 불과한 정치인만 보인다.
오늘날 자신을 포함한 신자들의 모습을 보아도
저 산속 제비꽃 한 송이처럼,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그 누구의 갈채도 없지만
묵묵히 자기의 생명의 몫을 다하는 진실한 신자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라도 찾을 수 없고,
자기 이해, 자기과시, 자기충족을 위해 이웃을 질시, 배타, 공격하는 행태로
주님의 모습과는 다른, 위선으로 가장되어 사랑과 양보, 진실성이 결여된
껍데기 신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은
투사를 요구하지 않는다.
진실한 용기를 가진 자를 요구한다.
인간사는 그런 용기의 사람을 통하여, 이 땅의 역사를 바꾸어 가기 때문이다.
또한 ,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는 자녀를 요구한다.
진실한 신자를 요구한다.
진실한 신자만이 누가 보든 않든, 용기 있게 주어진 생명의 몫을 다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