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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인은 청와대가 왜, 공포(恐怖)장소인가?
구중궁궐(九重宮闕), 제왕(帝王)적 대동령제, 공포(恐怖)장소
이런 이유로 윤석열당선자와 인수위는 청와대를 기피하고,
용산 국방부 시대를 열겠다고 무리수를 두고서라도 기어이 진행하고자 한다.
현정부로 하여금 협력해 달라는 절차 형식을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대로 진행하고자 한다.
하지만, 현정부가 이를 곤란하게 받아 거절하자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발끈하며
온갖 말들을 만들면서 정치적 공세 모드를 취하는 중이다.
왜, 발목잡느냐고? 이제 자신들이 지난 5년 동안 어떻게 발목잡는 정치를 해 왔는가?
반성을 먼저 하고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가? 물론 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말이다.
발목 잡는 정치의 진수를 보여준 자들은 누구인가?
구중궁궐(九重宮闕)? 우리 대통령의 권위 문제를 이전 조선시대 왕과
같이 간주하는 경향성을 이유로 제시하고 고집을 부린다.
제왕적 대통령에 대해서 부정적 쉴드(shield)를 치면서
적극적으로 청와대 기피론을 기어이 취임식도 하기 전에
이슈로 몰면서 밀어 붙이려 한다. 이러면 반드시,
문제가 된다는 것이 공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왕이란 의미로 대통령을 연결시킨 것은 현당선자가 오히려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닌가? 손바닥에 王 자를 쓰고 나온 사람은 당선자가 아니었는가? 자신들이 내부적으로 청와대를 극렬하게 부정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정하고, 그것을 정당화시키고 합리화해서 기어이 밀어붙이려 하다보니 이렇게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배경은, 우리 사회 전체를 이런식으로 명령하고, 거기에 무조건 복종하라! 취임도 하기 전 이렇게 서두르는 것은, 이런 명령 체계의 사회를 인식시키는 절차를 밟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행보는 아닌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굳이 가지고 있는 자산(資產)을 버리고 일을 만들고자 하는 것인가? 지금 강원도 산불로 집을 잃어버리고 재산상에 손해를 입은 이들이 오갈데가 없기에 돕는 일은 시급하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 장기간 길어지다보니 사회 순수 상인들이 정부 정책 시행으로 제대로 장사를 하지 못해 입은 손실 부분에 대한 지원 문제도 시급한 부분이다. 그런데 왜, 굳이 청와대 버리고 국방부로 이전해가는 것부터 급격하게 시행하고자 강하게 밀어 붙이는가?
그것도 잘 준비되어 있는 국가 자산인 청와대 집무실부터 버리려 하는 일을 먼저 만들어서 강하게 밀어붙이려 하는가? 국민과의 소통, 국민의 말을 듣겠다 해놓고서 전혀 동의도 구함 없이 갑자기 용산 국방부 집무실 시대를 밀어붙이려 하는 이것은, 상식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재정상의 재원이 새로 들고, 안보상의 공백이 일어나고, 국방부 산하 10개 이상의 부대가 이동을 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으로, 복잡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국방부 주변과 공원이 조성되는 작업들은 계속적으로 진행이 될 것이다. 이런 사업진행으로 대통령집무실이 제대로 일을 볼 수 있겠는가? 외교적으로 다른 나라 정상들을 맞아야 하는데 공원 조성의 공사와 소음 때문에 다른 국가 정상들과 회담이 어떻게 원활하게 진행이 가능하겠는가? 먼저 많이 산적한 기존 문제들을 풀어가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이 상식이다. 그런데 일부터 또 다시 만들려고 하니, 그것도 상식 이상의 행보로 밀어붙이려 하니, 이런 문제들이 연대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을 사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5월 10일 계획대로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개방한다"고 "국민의 이름으로" 앞세우면서 그대로 진행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정부로 하여금 청와대에서 일찍 나가달라는 쉴드를 치지 않는가? 도대체, 누가? “신구정권권력충돌” 현상을 일으키는 것인가? 당선자와 그 인수위가 취임도 하기전 공약대로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이를 언론에 신구정권의견충돌이라고 검찰 때 했던대로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은 아닌가?
공약 내용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청와대가 그렇게 공포스런 장소인가? 자신들이 “5월 10일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개방한다”라고 정해놓고서 현정부로 하여금 그렇게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협조"를 좀 해달라는 겸양의 형식을 갖추면서 은근히 강제성을 부리는 정치를 펼치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무서운 강제력이다. 말이야 “협조”, “국민들을 위한 청와대 개방이다” 이러한 논조이지만 실상은 현 정부보고 빨리 나가 달라는 것, 그런 소리가 울리는 것이 아닌가?
꼭! 꼴보기 싫으니 하루라도 빨리 나가라는 식의 저의가 이런 식의 여론몰이로 강제되고, 그렇게 안 되자 현정부가 비협조적이라는 것을 부각(浮刻)시키고, 그래서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이 점을 우리 사회와 국민들에게 강하게 전달되도록 몰이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는가? 당선자와 인수위는 “국민의 이름으로!” 너무 무리한 일들을 무대포로 밀어붙이는 일을 단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현정부의 비협조적이고, 국민을 위한 5월 10일 청와대 개방이 안 되게 되었다는 것으로 연결시키는 전형적인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정부 지난 5년 내내 이런 식으로 정부와 대통령의 국정 동력을 방해하고, 철저히 막아놓고, 자신들이 실패한 정부로 규정하며 국민들에게 인식되도록 하는 정치를 해 왔던 것이 국힘당이다. 그래놓고서 이제는 당선이 되어 정권을 잡고서는 취임식도 하기 전에 헌법에 정해져 있는 취임식 기간까지의 현정부의 존재감 조차도 못 보겠다는 식이 아닌가? 현정부의 청와대 정치가 눈에 가시처럼 여겨진다는 것이 아닌가?
현정부나 민주당이 당선자나 국힘당보고 용산 국방부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겨가라고 한 것인가? 아니다. 자신들 스스로 갑자기 그렇게 일을 벌린 것이다. 갑작스럽게 그렇게 정하고서는 억지로 밀어붙이는 그림을 그려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현재의 정부에게 조금이라도 권력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심보가 드러나 보인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국민에게 청와대 개방을 위해서!”란 정치적 발언으로 잘 엮어서 국민들에게 현정부가 협력하지 않는다고 고해바치는 여론몰이를 하고 있음이 비쳐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고하기를, 자신들이 최대한 예의를 다해서 “협조” 부탁했는데 현정부가 비협조적으로 나옴으로 차질이 생겼다고, 그래서 5월 10일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기 행사가 안 되게 되었다는 이것을 정치화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국민들 불만을 조성하는 몰이를 하는 것이다. 이런 행보는 사회와 국민을 병들게 하는 정치운동이다.
윤당선자는 통의동 현 집무실에서 당분간 집무를 보고 결코,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너무나 강경한 어조의 고집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동시에, 어떻게 해서든 청와대를 정한 시간에 국민들에게 개방하고 돌려드리겠다는 것으로 정치적 효과를 높인다는 것이다. 이 점을 사회 이슈화로 몰고자 ㅏ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진행 자체는 국민들에게 사전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젼혀없다는 것이다.
무조건 밀어붙이는 형식을 취한다. 지난 5년 동안 해 온대로 좀 방법을 달리해서 극단성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주니 이것이 국민들에게 잘 먹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런 여론몰이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환경을 교묘하게 조성해오는 힘이 되고 있다. 자신들이 신구정권충돌 현상으로 몰아가는 것이지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 이런 형태는 협작질 수준의 정치와 여론몰이로 자기 중심의 사회 환경 조성에 전문적인 정치적 행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당선자와 그 주변인들은 이를 방해로 간주하는 것 같다.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며 직접적인 공격성을 드러낸다. 방해하고, 막고, 전혀 협조하지 않은 것은, 국힘당의 전매특허이다. 이를, 지난 5년 동안 자신들이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래도 정부와 민주당이 자신들에게 강한 페이스를 취했던가? 오히려 당해주었던 것이다. 우리 군의 분위기는 이런 민주당을 약한 정부로 규정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협조를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너무 서두르는 것이고, 안보 문제와 무리하게 서두름으로 여러 측면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기 때문에 취임을 하고, 정권을 잡은대로 잘 준비해서 순리대로 진행을 하라는 점에서 곤란함을 드러낸 것이다.
콩볶아 먹듯이 뚝딱하려 하지 말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안보(安保)에 만전(萬全)을 기해서 하라는 것이다. 국방부와 군부대 정리와 정보 시설 문제들을 비롯한 모든 제반 사안들을 제대로 잘 구축해서 진행하시라고 지극히 정상적인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들어보니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 사실이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나라를 운영함에 있어서 무게감의 문제이다. 현정부가 전임 정부로써 안보 문제와 국가 운영의 순리 차원에서 걱정하며 제대로 권유를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바에 의하면, 국힘당은 우리 나라와 정치 질서와 상관 없는 별도의 명령 체계가 은밀하게 통용되고 있음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해 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보들을 많이 하고 그것은 전혀 우리의 근본, 혹은 역사와 전통적인 배경과 상관이 없는 움직임들이기 때문이다. 이점을 우리 사회는 유념해야 할 것이다.
당선 되었다면, 이를 잘 받아야 하는 겸손함은 미덕이 아닌가? 그러지 않더라도 자신이 공정(公正)과 상식(常識)을 강조한 검찰총장 출신이 아닌가? 그런데 벌써, 국민들에게 의견 수렴도 없이 무대포로 밀어붙이는 이것이야 말로 제왕적인 모습이 아닌가? 아니, "국민과 언제나 소통하겠다" 했고, "국민들을 위함"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것이 국민들과의 소통인가? “청와대 버리고 국방부로 옮기는” 문제가 그렇게 가벼운 문제인가? 이렇게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자 하는 급한 행보는 아니다.
국민들에게 청와대를 개방한다는 이유를 들이밀면서 무조건 밀어붙이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고자 국민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후임 정부의 교만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제발, 너무 지나치게 국민, 국민하고 내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정말 국민들의 의견을 묻는 차분한 나라 환경 조성을 해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런식으로 이율배반적인 국민 이름 사용이 시간이 흐른 어느날부터 부정적인 인식이 되는 것은 아닌가? 우리 사회 안에서 이질적인 배경과 분위기가 될까 두렵다. 존중도 없는 입으로만 국민, 국민 이름 부르기는 좀 절제했으면 좋겠다.
왜, 이렇게 굳이 고집을 부리는 것인가? 혹시, 이는 괘씸죄가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 입장에서 괘씸죄가 아니라 일본에게 적용되는 괘심죄 말이다. 이에 대해서 지금부터 이야기를 나열하면서 설명을 해가도록 하고자 한다.
우리 현정부는 일본과의 원활하지 못한 외교 관계에 놓였었다. 이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우리에 대한 공격적이고 교만하고 일방적인 외교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를 자신들 과거 종이었던 조선 대하듯이 하는 일본적인 외교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늦었지만 우리로써는 이렇게 대처하는 당연한 국가적 노선이었다. 미국의 엄청난 중재와 압력이 가해졌음에도 우리로써는 이런 일본을 경계하고 응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위기는 박근혜전정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의 우리에 대한 영향력은 MB 정부에 이르러서 뉴 라이트 조직 등장과 함께 우리 정부 안으로 들어오는 합법적인 배경으로 등극을 하게 된 직접적인 출발점이었다. 뉴 라이트 멤버들이 MB 정부 안에 80% 이상이나 들어갔고, 지금의 국힘당의 국회의원들 모임의 내부에서 일본 관련 교육과 강의들이 성행되었다. 이때의 일본 식민지근대화론이 다시 이슈로 일어났고, 사회적이고 정치적 배경으로 확산되려 했으며, 심지어 우리의 건국이념까지 갑론을박으로 들어가고, 일본 중심의 환경이 급격하게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즉, 우리 사회 양성화 기반으로 본격적인 가동이 시작되었다고 말함이 좋을 것이다.
문화적으로는 영화가 한일 가까우지기와 일본 우월적인 배경으로 각색(脚色)되고, 연출되어 상영되었다. 일본적인 배경들이 우리 사회 안에서 미화되고, 영화를 통한 한일 거리 좁히기 시각들이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려 했다. 이렇게 각색(脚色)되어 우리 사회 안에 안착(安着)되려 하는 이런 운동들과 배경이 무서운 일이다. 종교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한 한일 가까워지기와 일본 침략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한 선상에 두려고 하는 강의나 선교적 차원의 운동들이 대형교회 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이러한 배경은, 그 이전부터 사회 저변에서 점차적으로 준비되며 무르익어 왔던 것이다. MB 때 이러한 일본 중심적인 환경이 우리 사회 안에서 양성화되고 합법화되는 최대의 기점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일 가까워지기 환경들이 열리기 시작하며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극대화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MB는 일본에 가서 일본 왕에게 세 번의 절을 하는 모습이 방송으로 우리 사회에 소개되었다. “독도 또한 때가 되면 넘게 주겠다”는 적극적인 언행을 하는 행보가 일본 주요 언론 매체를 통해서 우리 사회에 전해졌다. 여러 측면에서 한국 정부의 일본 협력 관계가 단행되려 했다. 당시 MB 한국 정부의 일본 영향력은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주하(主下/奏下)관계가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 양성화 과정으로 전환되도록 함에 독특했던 시기였다. 즉, 일본이 고무되던 시기였다. 일본 입장에서는, 일본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앞당기도록 하는 최고의 한일 관계 발전이 이루어지는 한반도 준비 단계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박근혜전정부에 이르러서 더 발전된 형태로 적용되도록 하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의 잠재되어 있던 항일 정신이 그대로 일어났고, 대일본 응전이 강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 안으로 일본에 대한 경계령이 발동하고, 공격적인 한국 정부 시대로 우리 정신이 복원되었다. 지금의 시점에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찰개혁과 함께 점점 약해져 오고 말았지만 말이다. 당시 현정부의 단호한 일본 관계와 이에 대한 일본의 한국 때려잡기 작용으로 무역 제재조치가 단행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진정한 운동이고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다. 나라 안의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복구되는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잘못된 힘과 영향력에 대한 항거가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움직임의 정의이다. 당선자가 억지로 청와대를 버리려 하는 이러한 움직임의 변화는 변화 축에 낄 수도 없다. 일본의 움직임은 그랬던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대로 한국 정부와 사회를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그렇게 잘 준비해 왔다고 믿었다. 한국의 조,중,동으로 구성된 한국 사회 언론들이 한국 사회 정보들을 잘 종합하고 구체화해서 보고를 잘 해 주는 한국 언론 장악에 만족했던 것이다.
일본 자신들이 공들여오고 심어 놓은 간자(間者)들의 인간 띠는, 충분히 확보되었다고 믿었다. 이들이 오랜시간 한국 국민들을 많이 친일화 해놓았다고 믿었다. 한국 정부와 정치, 전 사회에 거쳐서 탄탄하게 잘 구축되고 완전 장악되어 있다고 믿었다. 성공적인 백년대계(百年大計)가 막바지 단계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상이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적 계산하의 백년대계(百年大計) 70년 시대를 맞고, MB 정부로 하여금 본격적인 한국 정부 공략으로 단단해졌다고 믿은대로 박근혜전정부 때, 더 강한 일본적인 영향력 구조를 놓고자 작전을 단행했던 것이다. 당시 박근혜정부의 주요한 정부 당직자들은 이런 점에서 대통령을 무시한 행보들은 얼굴마담처럼 세워놓고 일본과의 긴밀한 일들이 잘 진행되는 비밀작전을 펼쳐 왔던 것이다.
이런 배경 가운데서 “위안부 졸속처리”와 “화해, 치유 제단” 본격적인 활동, “한일민간차원의가까워지기발대식”,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체결” 등, 우리 사회 공식적인 차원의 한일 관계는 일본이 원하는 대로, 그리고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정부 그로기 상태로 들어가는 현상은 일본의 영향력이 얼마나 우리사회를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배후에서 어떻게 잘 몰아오고 있는가? 이것이 반영되던 사회적 배경이었다. 우리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함이 문제이다. 아니, 이렇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사회 언론들이 자기 사회 내부 문제와 합리적 사고로 판단하도록 몰아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너무나 비일비재한 현실이 아닌가?
이런 모든 배경들이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면서 일단락(一段落)되었다. 우리 정부와 사회는 일본과의 관계는 적대적 환경이 조성되었고, 우리의 의지와 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경계와 적국에 대한 정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본 물건 불매 운동”이 이를 대변해주는 사회적 환경이 깊어져 왔다.
지금도 일본과 그 물건들에 대한 이런 사회 운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일본이 독일처럼 완전히 제국주의 정신을 버리고 말 그대로 좋은 이웃나라로 돌아갈 때까지, 우리는 일본에 대한 적대적 경계를 풀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제대로 국가적 환경으로 조성되지 않으면, 우리는 일본에 의해서 계속 유린되고 모든 면에서 힘든 상황이 계속 지속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는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 혹은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이 한 국가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법칙이 도는 세상이다. 이런 역사적 굴곡(屈曲)이 흐르며 장구(長久)한 시간으로 생성(生成)되고 소멸(消滅)되는 힘이 교차(交叉)되는 법칙의 세상이 실현되는 역사이고, 지구적인 환경이고, 나라 존재의 이치이다.
이러한 역사의 장(場)에서 얼마나 당대의 국민들과 정치적 지도자들이 깨어있는가? 얼마나 훈련되고, 각성 되어 있고, 되도록 하는가? 얼마나 자신들의 힘을 기르고, 자기 정신을 뼈 속 깊이 박히도록 하는가? 얼마나 자신들의 뿌리와 전통과 삶을 보존하고 계승발전되도록 하는가? 얼마나 사회 공동체적으로 결합된 힘이 잘 조직화되도록 하는가? 얼마나 이런 사회를 위해서 관리 조절되고 이것이 자신들의 손안에 있는가? 아니면 다른 힘의 영향력 아래 두는가?
이런 문제가 나라와 사회, 국민들을 좌우(左右)하는 것이다. 그 시대의 정치는 그렇게 자기 사회와 국민들이 좌우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은 이런 점에서 우리를 노리는 도전(挑戰)이고, 작용(作用)이고, 우리 사회 안에 던져지는 돌이다. 일본은 지난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우리 안에 간자(間者)들의 힘과 조직력을 다시 수습(收拾)하고 진화된 조직력이 정비(整備)되어 총 공격을 펼치도록 환골탈태(換骨奪胎)로 우리 안에서 더욱 강화 되었다.
그에 반해서 우리는 긴장을 놓고 수성(守城)이 안 되는 안일에 너무 빠진 것이다. 국민들이 계속해서 정부와 결합된 힘으로 뭉쳤어야 했다. 하지만 이를 군 중심의 사회 기반이 조절하는 것인지? 그래서 지금 당선자가 이런 군대를 장악하고자, 혹은 방해하고자 함인지 모르겠지만, 국힘당은 무언가 알고서 미리 쐐기를 박으려는 측면도 읽혀진다.
아니면, 일본의 우리 사회 이해와 그 깊이가 우리 군의 존재와 실존적인 역할의 힘을 제압하고자 함인지, 이러한 배경은 앞으로 전개 됨을 통해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일본은 다시 자신들이 원하는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기반으로 이전의 작용(作用)의 환경이 그대로 지속되도록 해놓는 우리 사회 정리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지금의 당선자 인수위원회의 멤버들이 어떤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래서 안철수위원장은 이전부터 우리와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우리의 냄새, 느낌, 색깔이 전혀 공감이 안 되는 모호한 빛이 둘러싸여 있는 이미지였던 것이다. 이들이 결합되었으니 앞으로 우리 정부 구조와 국가 경영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이들의 은밀한 부분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부드러운 색깔로 우리와 우리 사회를 유린하는 나라적 환경이 펼쳐 질 것인가? 안철수 위원장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실패한 정부”라고 규정부터 하며 힘주어 강조했다. 이러한 이들 모임의 색깔은 얼마나 내부적으로 극단적인 현정부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들은 반드시 현문재인 정부를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일본의 극렬한 명령이 도사리는 배경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우리 사회를 극단적 환경으로 몰고, 전임 정부와의 단절(斷絕)을 꾀할 것인가? 왜냐하면 한국적인 전통과 계승이 이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주장들을 주의하고 조심하는 듯한 언행을 보이지만, 취임 후 권력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하면, 전임 정부 죽이기를 단행할 것이다.
이는 일본에 충성하지 않은 이들의 말로를 우리 사회에 보여줌으로써 공식적으로 우리 사회 참교육을 시키고자 함이 그 배경이기 때문이다. 이를 적극적으로 이행하려 하는 자들이 당선자를 밀어붙일 것이다. 이것은, MB 정부를 통해서 충분히 선행되도록 해 주었다. 안철수의 역할, 여론조작의 힘이 될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 사회를 몰아갈 무서운 파괴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실패한 정부”인지, 국민들에게 선정적(煽情的)이고 선동적(煽動的)인 분위기 몰이를 부드러움으로 잘 진행할 수 있는 인물이 될 것이다.
공과(功過)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국힘당과 보수진영은 무조건적 부정이다. 현정부는 세계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모든 선진국들이 마이너스 상태로 들어갔다. 그런 중에서도 이 정도로 나라를 안정화시켜 왔던 것이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도 지난 2년 동안 세계 그 어떤 나라들보다도 잘 했다. 지금 말미에 들어오면서 우리 나라에 집중되고 있음으로 좀 힘든 상황이 진행중에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당선자와 인수위의 공격처럼 무조건 부정시되어야 함이 아니다.
자신들은 취임식도 하기 전에 정부와 사회 문제를 불러오고 불안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는가? 국민들과 벌써 소통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닌가? 지난 5년 동안 현정부와 여당을 죽이는 야당 역할을 했다. 무조건 방해하고 막고, 막말 정치로 사회 혼란을 조성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나라 정권을 장악했음에도 사회 안정과 수준 높은 품위와 환경을 조성하려 하지 않고, 취임도 하기 전에 나라와 사회 환경을 극단적인 분위기로 몰아가는 고집부리기에 집중하지 않는가?
왜, 그렇게 청와대 들어가기를 싫어하는가? 왜, 그렇게 청와대를 공포의 장소로 몰고자 하는가? 왜, 그렇게 무조건 제왕적 대통령제 몰이로 부정하고, 타파(打破)해야 하는 분위기 조성에 열을 내는가? 어떤 점과 부분에서 우리 대통령의 위치가 “제왕적”이란 말인가? 그럼 자신이 유세 기간 동안에 손바닥에 王 자를 써서 언론들 앞에 내보인 것은 무엇인가?
누가, 도대체 왕처럼 행세를 했다는 것인가? 굳이 그런 인물들이 있었다면, 과거 자신들이 숭배하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정도가 그렇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다가 더 갔다가 붙이자면 나라 돈을 어마어마하게 사라지게 한 MB도 이에 속할 것이다. 현대통령이 과연 왕처럼 그렇게 우리 앞에 보여 주었던가?
대통령의 위치와 권위는 필요하다. 우리나라 모든 국민의 아버지가 아닌가? 나라의 최고의 어른이 아닌가? 마땅히 그에 합당한 권위는 온 나라와 국민을 하나 되게 하고 강력한 국가와 사회 질서를 위해서 대통령에게 주어야 한다. 이것은 정의이고 상식이다. 지구 안에 192개의 국제 규정에 의한 국가들이 존재한다. 이 나라들마다 지도자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차이는 있지만 그 지도자들에게 합당한 지위와 권위가 주어진다. 우리는 이를 국가의 권력이라 한다. 이들 나라 중에 얼마나 지도자에게 합당한 힘과 권위가 부여되는가? 독재와 공산주의와 같은 그러한 비정상적인 체제를 제외한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지도자에 대한 대우가 어떤가?
이것은 국가의 질서, 부와 강대함이 드러나게 하는 기본이다. 미국 또한 대통령 중심의 국가 제도나 관리는 특별하다. 물론 국회의 견제나 헌법과 민주주의 정신들이 잘 조화 되고 선진화 된 사회 구조가 적절하게 잘 대처된다고 본다. 하지만 모든 결정권은 미 대통령에게 집중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강대한 국가로 구심력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힘이다. 일본은 어떤가? 수상에게 어느 국민이, 어느 정치인이 함부로 대하는가?
이런 점에서 우리 대통령의 위치와 권위는 당연하다. 임기 기간 동안은 치외법권(治外法權)적인 인물로 우리 스스로 세워드리고 대접해드려야 한다. 이는 인간 사회가 군집되고 집단화 된 사회 공동체이고, 이런 사회성은 스스로 안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성은 그 본성이 동물보다 더 못한 사악성과 교활성이 이성을 누르고 탐욕으로 점철 될 때, 어떤 악도 저지를 수 있는 힘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내지 합리화시키는 마의 능력까지 부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치우치고 조직화 되는 사회가 강성해 질 때, 그 사회는 방종의 힘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혼란과 자기 사회 방임과 배타주의적인 정신이 그 사회를 얼마든지 파멸(破滅)로 몰아가는 소멸(消滅)의 순간에 처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보여주었다. 우리에 대한 일본은 이러한 나라적 배경을 노리고 그런 방향으로 몰아가는 파괴적 힘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군집의 집단과 사회를 통합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은 법과 구조적으로 잘 구축되어야 하고, 현실과 실제적으로 이 모든 것을 잘 종합하고 구체적으로 지도해서 결실을 보게 하는 훌륭한 지도자가 몰아 갈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 자신들이 속한 조직에 장(長)이 누가 되는가? 이에 따라서 잘 되고, 밝아지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지 않는가?
대통령을 잘 선택하여 세우고, 그가 충분하고 합당하게 나라를 잘 운영하고 이끌고, 다스릴 수 있도록 합당한 권세를 주어야 하는 것은 정의이다. 물론 그렇다고 일반적인 준법정신으로부터 자유롭고, 헌법을 지키고 사회 공동체로부터 얼마든지 자유롭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모든 면에서 한 인간으로 모범자가 되어야 하고, 국민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나라와 민족에 대한 애정과 긍휼의 마음으로 가득 차야 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안보 정신과 국가 수호 정신에 있어서 투철해야 한다. 그러자면 신분이 확실하고, 자국 중심에 대한 정신이 강한 분이어야 한다. 전 국가 사회, 모든 국민들을 통솔하고 인도해 가야 하고, 자애로운 마음이 강하고 넓어야 하고, 지혜롭고 통찰력으로 자국과 전세계를 통찰해내는 능력자여야 한다.
그러자면, 이분에게 그에 대한 마땅한 위치와 권위, 힘을 손에 쥐어 주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왕권(王權)과 같은 정신의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 과거 왕권과 같은 구조 그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왕이 온 나라를 다스리고 온 나라를 바르게 펴가는데 필요한 권력의 힘과 정신 차원에서 계승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도(制度)는 폐(廢)하지만 정신(精神)은 그대로 지속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것을 이해못하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지도자나 리드자가 되면 안 된다. 이 점에서 현 당선자의 국가관에서 이 다스림의 문제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다른 체계나 사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혹시 국가를 운영하고 다스리는 문제를 사감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수준에 머무르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되는 문제이다.
다스림과 관련해서 민감한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들이 왜,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안 되는가? 바로, 이런 부분을 하나님께서 여성들에게 주지 않은 것이다. 여성은 돕는 베필로 하나님께서 기능을 주신 것이지, 다스리고 인도하라는 힘을 주신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신앙이 있던 없던, 이런 이치를 잘 알고 실행하는 나라는 그 어떤 나라이든 힘을 갖고, 강대해지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 간다.
물론 특별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나라의 통치적이고 리드하는 지도자에 올라서면 그 사회와 나라는 점진적으로 약해져 간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왕권의 치(治)와 그 정신(精神)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여성들은 이에 대한 본성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여성은 감정(感情)과 안정(安定)이면 족하는 존재이다.
오늘 날 세계 속에서 여성들을 나라의 수장으로 세우는 나라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나라들은 10년, 20년 세월이 가고 나면 알게 된다. 이는 지구 세계를 하나의 통치 체제로 만들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책략(策略)의 물결’이다. 감성적이고 안정이면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여성들을 각 나라의 수장들로 세워 놓아야 자신들이 ‘전지구를 하나의 통치체계로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자기 국가와 사회, 민족에 대한 영웅의식이 있어서, 이것은 왕권에 대한 치(治)와 정신의 문제를 아는 남성들의 영웅의식을 말함이다. 그래서 밀어주고 지지하여 세워놓으니 자기 민족정신으로 양심이 살아나니 배반하고 돌아서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세계 관리 철학’에서 진화된 배경이 여성들을 세우는 것이다.
20세기 중반 후기로 들어서면서 세계는 여성 지도자들, 여성 페미니즘 정신들을 유행처럼 몰면서 지도자 반열에 올리는 세상을 몰아오기 시작했다. 특히 “이반 일리취”의 젠더 관련 이론이 세상에 던져지고 보편적인 정신으로 퍼지면서부터 지구적 환경으로 대세가 되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자국 자체적으로 깨달은 나라들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자기 사회를 남녀 동등한 사회 방향으로 인도하지만, 국가 최상층부의 지도자 그룹에는 세우지 않는 이런 국가의 내부 지침 등을 나라 내부용으로 잘 구축하는 나라들은 좋은 선례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는 것이다.
현정부가 각 부처에 여성들을 많이 세워 놓았다. 그런데 그런 부처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가장 많은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정부 자체의 힘을 무너트리고 반대 정치 세력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최대의 문제 부처들로 되어 온 것이 아닌가? 영국은 성공적인 여성 지도자들이 국가 정치 지도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후의 영국은 현재의 정부와 경제적 위치와 국력은 어떻게 되어오고 있는가?
그런데 다스림에 있어서 이와 대칭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국가의 권력’이나 ‘대통령의 권위’ 문제를 약화시키려 하는 배경이다. 그것은 “작용(作用)”의 문제이다. 이는 현대의 특징 중에 특징이다. 특히 우리 한반도를 통해서 적용되는 “작용(作用)”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힘이 우리 나라와 사회를 둘러싸고 돌면서 일정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당대의 정황(情況)의 문제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해방을 맞아 자유, 인권, 주권, 국민 이와 같은 환경이 우리 손안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해방되었고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하고, 외관상으로 그 범위내에서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일상을 살아오고 있다. 하지만, 이 “작용(作用)의 힘”이 동시에 공존(共存)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 사회적 환경과 나라의 공적이고 정부 구조에 직접 영향력이 ‘조절(調節)되는 작용의 힘’이 동시에 공존되는 사회를 의미함이다.
조절(調節)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이 제한(制限)된 배경 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접적인 것은 “국군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의 손안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 한반도의 근본 왕권이 되는 치(治)와 정신(精神)이 불안전한 조건하에 놓였다는 의미이다. 다른 힘의 영향 아래 철저히 제한 받는 불안전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세계 군사 6위 국가가 가장 약하고 작은 나라도 가지고 있는 군사작전권을 다른 나라가 갖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이는 우리 사회 정치적 기반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현당선자와 그를 둘러싼 구성원들과 조직적 배경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아마도 더욱더 의존적인 정치적 환경으로 군사적 주권을 받으려하지 않을 것이다. MB의 아바타적인 경향성이 강한 집단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불합리한 조건이 77년의 세월이 흐르다보니 우리 내부적으로 국민들이 많이 깨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기 사회 결핍(缺乏)현상 구조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다. 이런 차원에서 많이 복원(復原)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국가가 이런 정신으로 많이 복원되면서 힘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 싸고도는 강국들의 역학(力學)구도가 이것을 그대로 두면, 한국이 너무 강대해지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돌면서 우리의 정치구조와 사회를 조절해오던 “작용(作用)의 힘”이 더 이상 한국을 활용하지 못하게 되고, 어려워지고 곤란해지는 환경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풀 숲을 건들어서 뱀에게 도망가도록 해주는 꼴이라는 것이다. 우리에 대해 무언가 조치를 취하게 하는 호루스의 눈 말이다. 이것이 당선자와 그들 진영이 갖는 우리나라 조망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美日의 작용(作用)의 힘이다. 일본은 재탈환의 작용(作用)이고, 미국은 중국 문제 해결을 위한 작용(作用)의 힘이다. 이것이 美日이 지난 77년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도는 우리 정부와 사회를 은근히 내정 간섭하는 조절의 작용의 힘이다. 지금의 코로나 펜데믹 마지막 정착지가 되는 것도 미국의 미군 부대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정부를 우리 국민들과 사회에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갈리게 하는 작용의 힘이다.
이것이 韓美日의 공동체 개념으로써 우리 사회 안에서 움직이는 “작용(作用)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이 힘은 지난 우리의 현대사 내내 우리의 대통령의 권위의 문제, 이것은 제도적인 차원의 권위 문제가 아니다. 국가를 다스리고, 우리 스스로 조절하고, 국익을 창출하고,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도록 다스리는 힘의 원리이자 정신으로써 우리의 근본(根本)이며, 뿌리가 되는 국가 통치 원리 문제이다.
이것이 잘 될 때,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안녕, 온 사회의 질서가 구현(具現)되고, 영구적인 국가 기반을 강하게 확립하고, 모든 사회 구조들과 국민성이 국가 발전에 동력이 되며, 이러한 힘이 온 세계로 뻗어 나가고, 후대에 좋은 나라를 물려주는 계승 발전이 잘 이루지는 이것이야말로 역사와 전통이 실현되는 좋은 나라 표본(標本)인 것이다.
日本은 이런 한국적인 상황이 불편한 것이다. 왜냐하면 日本은 한반도를 여전히 노리고 한반도를 통해서 어떻게 해서든 육지로의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기 때문이다. 과거의 자신들이 지배했던 한반도를 다시 재탈환하기 위해서 日本은 온 나라 국력을 여기에 집중해서 힘을 길러오고, 지금까지 우리 사회 안에 자신들을 도와줄 간자(間者)들을 오랜 세월 심어오고, 그들에게 힘을 주고 부귀영화를 손에 쥐도록 해주었고, 그런 힘과 조직력으로 우리 사회 안에서 日本을 위한 사회 환경을 펼치도록 해 온 것이다.
그것은 문화와 종교적으로 韓日이 가까워지도록 하는 서민과 생활 가운데서 운동을 일상적 삶 가운데서 펼치도록 하고, 때론 사건 사고들로 日本을 위한 사회 환경 조성, 적극적으로 日本을 위해서 역할을 하는 언론 여론몰이, 혹은 일본 보호를 위한 나쁜 이미지를 막고, 제거하는 언론 역할 등으로 우리 전 사회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순수한 일상 가운데서 일반적인 생활과 모든 사회적 조건들을 활용하여 운동하도록 해 오는 “작용(作用)의 힘”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적인 배경이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가 결합되지 못하도록 대립과 불신 사회를 조성하는 모든 사회적 운동과 작용을 펼쳤지만 이것은 정치적으로 몰아오는 日本적인 작용에 비하면 낮은 단계의 힘의 작용이다.
정치적으로는 통치의 원리와 정신을 부정적으로 만들어가는 정부와 국민 분리 “작용(作用)의 힘”이었다. 이데올로기 정신으로 대처함으로 통치의 원리를 희석시키려 했고, 즉 헌법이나 법 정신이나 민주주의 자유 정신으로 자신들의 자유로운 활동과 운동을 보호받는 사회 환경 놓기와 국민적이고 국가적인 통합과 결합의 통치의 힘을 부정되게 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작용(作用)의 힘”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개념 깔기이다. 그리고 이것을 잘 받아들이도록, 즉 국민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자 "국민을 위함", "국민과의 소통", "국민 중심의 나라" 등등, 이러한 의미로 대통령제가 우리 사회의 문제의 화근(禍根)이라고 열내며 설파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상으로는 이미 국민들과 소통이 안 되는 행보를 한다. 이처럼 잘못된 정치와 정치인들이 활동하는 사회는 국민들을 우매하게 만들고, 거기다가 반 자기사회 정치구조나 정치인들은 자국민들과 자기 사회를 죽이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우리사회는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이런 정치기반과 언론이 결합될 때, 국민들의 우매함과 어리석음은 더욱더 빨라질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 의해서 자기 사회가 무너지는 것이다. 문제가 진정 문제가 안 되고, 문제 아닌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언론 여론화로 국민들의 눈과 귀가 고장나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우리는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윤당선자 김은혜 대변인은 시종일관 교묘하게 현정부가 방해한다고 말장난하는 여론몰이를 한다. 사회 이슈화를 유행처럼 몰아가는 우리 사회 적극적인 정치적 아류들의 역할이다. 우리 사회에 작용(作用)되는 힘의 배경으로 우리 사회 정치구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국민의힘 당이 얼마나 “제왕적 대통령제”를 우리 사회 문제로 몰아오고자 했는가? 그런데 당선자가 여기에다가 청와대 들어가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공포가 된다는 것인가? 그 건물만 바라봐도 제왕적 대통령제가 거부되고, 싫어지고, 공포라고 강조하는 이런 태도는 과연, 얼마나 순수한가? 그 건물이 우리 정치의 집이고, 1번지이고, 현대 우리 사회 역사요 주요한 문화재로 준비되고 있는 주요한 장소인데, 그곳이 거부되고 공포스럽다고 느껴진다면, 이분이 우리 사회 과연,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70년 동안 우리 현대사의 정치 1번지로 대통령의 집무실이 되어 온 우리 사회 역사와 전통의 장소가 아닌가? 그렇게 되어오고 있는데, 대통령에 당선되신 분이 무조건 이렇게 부정하고 버리려 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常識的)인가? 그것도 국민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국민”들에게 돌려주고, 이제는 "국민들을 중심한다"고 하면서 그에 맞지 않는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무조건 청와대 부정하는 몰이를 하는 것인가?
그런데 아는가? 유혹의 말은 언제나 달콤하게 들리고 느껴진다. 그리고 그 유혹의 달콤한 말은 상대에게 지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말로 속삭인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진정한 ‘내심(內心)’, 혹은 국힘당 ‘내부용’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가? 묻고 싶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한국의 힘이 강해지는 힘의 상징인 대통령의 위치와 권위를 죽이고 없애는 것인데, 이것을 직접적으로 말할 때, 과연 우리 사회 누가 들어주겠는가?
당선자가 당선 직후 왜, 그렇게 “국민” 이름을 필요 이상으로 앞세우며 분위기를 조성하는 여론몰이를 해오는가? 이 또한 계속 듣게 되지만 그대로 맞게 실천되지 않으니 거부되려 하지 않는가? 우리 사회에서 무엇을 하려고 저렇게 국민들의 이름을 사용하며 국민의 힘을 빌리고자 하는가? 하고 마음이 동했다. 그런데 지금의 청와대 버리기란 말인가?
그리고 동시에 국방부 장악(掌握)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은 일본으로부터 들어오는 명령체계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 작용(作用)되는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이렇게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청와대를 돌려준다"는 선한 이유를 들이 되면서 현정부를 하루라도 더 밀어내고자 함과 동시에 우리의 안보, 국력과 직결되는 군대를 장악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 하는 작전을 펴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의 교활한 작전과 명령이 이들 국힘당 내부 안에 친일본적 소그룹이 조직화되어 극소수의 비밀회담을 통해서 현정부를 하루라도 권력과 힘을 스톱시키는 일본 입장의 괘씸죄 적용이 가능해진 배경이 아닌가? 의혹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적인 조절의 국정 운영이 아니라 이런 여러 개인들의 의견에 의해서 진행되는, 바로 이런 배경이 명령이 하달되는 통로가 따로 있다는 국힘당의 전형적인 배경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이런 점에서 "기시다" 총리의 회심의 미소가 당선자 당선 직후 입가에 엷게 드리워졌던 것이다. 일본은 언제나 韓日 정부 간에 과거사 문제를 비롯해서 어떤 협약(協約)이나 협정(協定)이 진행되는 과정은, 이를 잘 반영해 준다. 일본은, 언제나 우리 정부로 하여금 준비를 해서 올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서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의 행보를 취해온다. 다시 말해서 모든 조건을 한국 정부가 갖추어서 갖다가 바치라는 식이다.
이런 배경에는 이유가 있다. 이는 지금의 국힘당이 오랜 세월 우리나라 정권을 잡았을 때, 당시 국힘당 주도의 우리 정부의 일본과의 외교전의 비공식적(非公式的)인 자리에서 “주하(奏下, 主下)”관계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한일 관계의 우리 외교부의 환경도 이런 배경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비공식적으로 일본을 섬겨오는 의식을 치르는 배경이 통용된다는 것이다. 이제 그런 세력들이 다시 정권을 잡고 재집권을 한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통치 구조가 너무 강해진 것이다. 점점 갈수록 일본과 그 격차와 세계 속에서 우리의 위상이 일본 위에 올라서려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이런 한국적 상황이 너무나 불편해진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의 권위와 통치력이 살아나니 국방력이 살고, 경제력과 사회 전반에 거쳐서 살아나는 기운이 강성해지는 것이 아닌가?
이를 가만히 두고 본다면, 우리 사회 발전이 계속 강력해 질 것이다. 이런 한국적인 환경이 강성해지면 일본이 우려한 100년 내 한국을 장악하지 못하면, 자신들이 진다는 자기들 식대로의 무속적인 의미 앞에 다급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한국을 간섭하고 조절하는 영향력 행사를 할 수 있겠는가? 이런 현실 앞에 일본은 다급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내부 협력기반과 세력들이 이런 일본을 위한 총력전을 펴는 우리 내부 정치력과 그들과 함께하는 보수진영의 극단주의자들이 지금과 같은 청와대 버리기와 국방부 장악이 억지로 이루고자 함이 무대포로 진행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일본의 힘이 약해지고 경제력도 죽어가는 현실이 되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이런 한국 대통령제와 청와대 시대를 끝내야 하는 필요성이 일본으로써는 다급해진 것이다. 윤당선자의 행보는 이런 이유가 그 배경이기에 이렇게도 급격하게 서두르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된다. 반드시 이행하고자 함이 주요한 시점이기에 “국민”들을 앞세우고, 우리 사회 언론 구조적 여론몰이의 적극적인 지지아래 사회 환경을 조성해오는 것이다.
전형적인 똥고집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배후에 그 어떤 힘이 강하게 작용되기에, 즉 반드시 이행하라! 이러한 힘의 작용이 배경이기에 이런 똥고집 현상이 주도되는 것이다. 인수위원들은 어떤 류의 인물들로 구성되었는가? 과연, 얼마나 자기 나라와 민족 중심의 인물들로 구성되었는가? 이런 배경을 살펴보면 금방 드러나게 될 것이다. 전형적으로 자기 사회 배타주의적인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이들의 언행과 공격성을 보면 안다. 김은혜 대변인의 말장난과 교활성이 드러나는 현정부 공격성은 이를 잘 반영해 주고 있다.
무엇이 제왕적 대통령제인가? 현정부를 봐도 전혀 그러한 모습은 없다. 당선자는 현정부와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대립하지 않았는가? 정면으로 들이박고, 말도 함부로 하고, 대립각을 세웠지 않는가? 이전 시대 기준으로 본다면 관(官)의 반역자가 되어 검찰 반역을 꾀했던 것이다.
국힘당과 보수진영의 인물들은 극단적으로 정부와 대통령을 공격하고 얼마나 막말을 일삼았던가? 옛날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비교한다면 보안법과 정부와 대통령 모독죄에 속하는 언행들과 사회 반역행위자들로 감옥가야 하는 행동들을 얼마나 해대면서 사회 혼란을 가중시켜 왔던가? 전혀 협치도 없었고, 막무가내로 막고 방해하고 무조건 실패하고 부패한 정부였다고 부정 몰이를 얼마나 해댔던가?
그럼에도 현정부와 대통령은 전혀 철퇴를 가하고 공권력을 동원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국힘당이나 보수진영의 인물들은 더욱더 교만해져서 대통령을 보고 간첩, 빨갱이, 공산주의자, 주사파 정부와 여당이란 여론몰이에 올인을 했다. 민생 문제야 어떻게 되든 말든 막고, 방해하고, 말로 죽이는 공격적 정치만을 일삼았다. 오로지 우리 사회를 대립 구도로 몰아 온 장본인들이 아닌가? 그런데 무슨 제왕적 대통령제인가? 오히려 제왕적 정치 기반은 국힘당 자신들이었다.
왜, 그렇게 청와대 들어가는 것을 공포스럽게 생각하는가? 무조건 공간적으로 “제왕적 분위기”라고 치부하며 취임도 하기 전에 이렇게도 무대포로 몰아가고자 하는 사회 몰이가 과연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차라리 일본의 명령이 “건진 법사” 형태로 하달이 된다고 간주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처럼 극단성을 보이면서 국민들에게 그것을 현정부의 비협조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정치형태로 정권교체를 목적으로 삼을 때의 영락없는 배경들이 아닌가? “국민들에게 청와대를 돌려주는 일”이 지연된다고 하는 여론몰이를 하면서 말이다. 굳이 신구권력충돌 현상으로 국민들에게 비추도록 하고자, 그리고 언론들에게 이런 개념을 여론몰이 해주라고 주문하는 것 말이다.
현정부와 대통령이 자신들보고 용산 국방부로 들어가라! 아니면 국민들이 그렇게 하라! 라고 직접 요청을 해서 지금 그렇게 하는가? 당선되고 먼저 한 일이 국방부 답사한다고 설레발치고 다닌 것이 누구인가? 바로 자신이 그렇게 결정을 해서는 며칠 만에 국민들 앞에 공포하고, 무조건 단행하려고 하는 현재의 당선자 모습이 과연 정상적인 행보인가?
이것이야 말로 “제왕적인 독재자”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과 소통, 국민들을 위함이라 말을 했으면,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당선자의 마음이라면, 순리대로 조용히 나라 5년 동안의 통치 문제를 구상하면서 사색하고, 마음으로 정리하고, 충분한 준비위 시간을 갖추는데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아니,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당선자가 가지고 나온 일이란 것이 기존 잘 지어져 있는 좋은 자산인 청와대를 버리고 어떻게 억지로 이전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지금 현 정부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국민들에게 청와대를 돌려준다”는 자기식대로 슬로건을 내세워 “일찍 좀 나가 주시는 협조를 부탁합니다”하는 식이 아닌가? 이는 헌법에 대한 방종(放縱)하는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이야 말로 제왕적 당선자의 모습이 아닌가?
나라를 다스리고 운영하는데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치 몇 개월 밖에 안 되는 분이 아닌가? 아무리 전문가들과 참모진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대통령 자신이 직접 철학적으로 운영 원리가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점에서 당선 후, 준비 기간 60일 동안은 좋은 기회가 아닌가? 국민들 앞에 나서기 보다 인수위원들과 조용히 국가 운영에 진지한 나눔의 시간을 갖고, 남는 시간들은 각분야별로 연구하고, 준비하는 충분한 학습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이것이 오히려 국민들에게 듬직한 믿음을 주시는 것이 아닌가?
신선하게 보이게 하겠다고 직접 나서서 어줍짢은 설명을 하고 준비 안 된 모습을 보이기보다 적절한 적임자들에게 맡기고 5년의 시간동안 나라를 잘 다스리고 운영하기 위해서 깊이 생각하고 전문적인 정보 수집에 집중하는 시간이 되어야 함이 정석이 아닌가? 지금은 당선자는 아직 행동해야 할 때가 아니다. 앞으로 5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취임식도 하기 전부터 너무 드러내서야 되겠는가?
어느 정도 신비함이 느껴지도록 해야지, 취임도 하기 전에 언론 앞에서 서서 벌써 실수하고 부족한 모습부터 보이면서, 나라를 혼란으로 더 몰아가는 행보를 드러낸다면, 정작 취임 후에 조금만 실수에도 그것이 얼마나 크게 와 닿겠는가? 정말, 조용히 5년 간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며 운영할 것인가? 그런데다 이 다스리는 문제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그것의 상징인 청와대부터 버리려 하는 자세는 안 봐도 다음 5년 동안 나라를 어떻게 몰아갈지 우려가 앞서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취임도 하기전에 청와대부터 버리려 하고 새롭게 다른 장소를 물색하고 다니고 브리핑하고, 밀어붙이려 하니 똥고집처럼 벌써, 느껴지지 않는가? 새정부 출범도 하기 전에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취임 직후 기존 산적해져 있는 나라 문제부터 챙기고, 순서대로 정리한대로 하나하나 처리해가고자 하는 모습이 우선이다. 무엇을 새롭게 하려고 해도 충분히 검토하고 부작용 문제까지 파악해 놓고서 진행하는 것이 지혜가 아니겠는가? 지금 아파 죽겠다고 하는 국민들은 전국적으로 넘쳐나는 어려운 때가 아닌가? 그런데 국가 재정이 낭비되려 하는 모습부터 먼저 보이려 하는 고집을 부리지 않는가?
안 해도 되는데 말이다. 게다가 국가 기반의 가장 중요한 안보 문제가 우습게 되려하는 경향성이 드러나는 불안전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바로, 우리 나라의 통치와 권위의 상징이 되는 청와대와 대통령의 위치를 흔들어대는 것이다. 힘이 구축되고 안정적인 사회 배경이 너무 좋아지기 때문에, 이것이 일본의 눈에 확들어어고 일본식으로, 풍수지리적인 문제가 개입되어 우리에게 작용되는 힘이 되는 것이다.
일본은 조일합볍을 하고나면서부터 우리 국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우리의 맥(脈)과 기(氣)를 끊어놓는다고 미신적인 장치를 하기 시작했다. 나라 국토도 소우주(小宇宙)이고 우리의 신체와 같다고 하면서 그러자면 우리의 전국 국토 곳곳에 혈과 맥이 있고, 이것을 끊어 놓아야 한다라는 풍수지리를 들이대며 전국을 찾아다니면서 쇠 말뚝을 박았던 것이 아닌가?
도대체 우리 사회는 이런 사실을 아는가, 모르는가? 지금, 윤석열 당선자가 하는 당선 행보는, 바로 국력의 힘이 나오는 상징적인 장소인 청와대를 일본식으로 해석하고, 간주하여 철저하게 버리고 부정적인 환경 조성으로, 이것이 쇠 말뚝 박기와 똑같은 선상에서 자행하는 행보라고 우리는 간주(看做)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당선자 배후에는 이러한 일본적인 미신 경향의 인물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간주된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의 100만개가 넘는 샤머니즘과 다신교적 개념이나 종교성이 우리 사회 안에 작용(作用)하는 현실이 되어 있다. 역시 우리 한국 교회와 불교 안에까지 스며들어 작용되어 온 시공간적 의미가 충분히 주어져 있다.
그래서 극단적이고 무대포적인 청와대 공포 분위기 조성이 단행되는 것이다. ‘국방부로 이전하겠는다’는 무조건적 밀어붙이기 반안보 몰이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를 문제 삼자 이들 중의 일부의 인물들은 극단적인 표현들을 사용하면서 저급한 행보들을 드러낸다. 당선자와 인수위의 이상한 행보와 언론몰이는 “신구정권충돌” 문제를 부각시킨다.
이는 우리의 전통사회 계승 발전을 끊어 버리는 작전 아닌 작전을 펼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여론몰이 현상을 단순히 처리하고 안일(安逸)하게 간주한다면, 앞으로의 정권 5년의 나라의 힘과 권위는 많이 무너 질 것이고, 국방력은 너무 많이 이상해지는 현실이 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제 윤당선자의 개인적인 영웅 스토리가 이해가 된다는 점을 다루어 보도록 하자! 어떤 점에서 이해가 되는가? 사법고시 9회 떨어지고 10번 째에 붙었다는 것은 어떤 힘의 작용이 이 사람을 이처럼 우리 사회 대통령 만들고, 어떻게 자신들을 섬기는 인물로 성장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순응을 잘하는 그러한 정신과 인물로 만들어 놓을 것인지, 오랜시간 연구되어 져 온 인물이 아니었는가?
이런 점에서 이해가 된다고 생각된다. 오랜 시간 실패만 하고, 그 시간이 길어지며 인정받지 못하고, 쓰임을 받지 못하면, 이 사람의 마음은 죽고, 약해지고, 작아진다. 이러한 인성은, 어떤 대상이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오랜 시간 지배하는 관계가 있을 때, 이 사람은 그러한 배경에 대해 잘 섬기는 인물로 준비되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완전히 추락(墜落)되도록 하고, 그런 시간을 통해서 이 사람의 감정과 정신을 지배하고, 이러한 배경에서 순종적인 인성이 형성되는 관계가 되었을 때, 이 사람을 다시 힘을 주고, 세워주면서 철저하게 자신을 그렇게 해 준 대상을 위해서 섬기는 삶을 살도록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인적 자원 문제의 신분과 성장 배경은 이런 점에서 인위적으로 많이 만들어지는 사회 공간이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작용(作用)의 힘”이 움직이고 조절하는 사회, 즉 현대 우방(友邦)이나 동맹(同盟)의 울타리 개념으로써 작용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이 힘이 우리를 목적대로 활용하고 이용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 인적 구성원들 가운데서 적절한 대상들을 골라서 길들이고, 조절하고, 정치화하고, 사회 각 분야에 세우고, 우리 사회를 조절하는 배경으로써 “작용(作用)의 힘”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컨트롤타워가 있음이다. 여기서 바로 IMF 구조가 놓이고, 사드 재배치와 같은 상황이 만들어 질 것이며, 젊은이들의 의지와 감성을 죽이고 건드는 헬 지옥 같은 사회 어두운 배경이 깊어지고, 시집 장가도 안 가고 자녀도 놓지 않도록 부정의 힘으로 몰고, 성소수자 문제와 퀴리 축제가 배치되고, 차별금지법 같은 외국인 보호 장치가 우리 사회 문제로 구축되고, 숱한 사건 사고들이 숨돌릴 틈없이 일어나고, 남성 여성 간의 전쟁이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나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컨트롤타워의 힘의 작용에 의해서 중동 같은 먼 나라의 난민들이 받아들여진다. 이런 배경은, 테러의 문제들이 점점 만들어지는 이러한 과정이 생성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들이 합법적인 배경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컨트롤타워가 작용되는 나라 공간을 의미함이다.
이 뿐만 아니다. 언제나 이런 힘의 작용에 의해서 세워져서는 안 될 인물들이 재구성되어, 즉 본래 토종의 정신과 힘을 뺀 다음 토종의 힘이 전혀 없는 재주입 된 자신들의 앵무새나 로봇처럼 된, 숙주 인간들이 세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이들에게는 새로운 의미이고, 이런 대상들, 즉 자기 사회에 대해서 방임적이고 죽은 자들이 세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세워져야 할 자기 사회 인재들은 철저히 제거되고, 힘을 빼앗아 버리는 이러한 작용의 힘이 바로 우리 사회 공공성과 일반성을 조절해오는 컨트롤타워로써 우리 사회 정황의 문제인 것이다.
이 정황의 문제는, 우리의 매 시대마다 당대의 우리 사회를 몰아오고, 몰아가는 둘러싼 환경, 혹은 정치, 경제, 영향, 변화, 전 사회와 국가적 상황, 이러한 우리를 둘러싼 모든 배경과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문제를 가리킴이다. 이에 의해서 우리가 영향을 받아 변질(變質)되고,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들이 다 빠지고, 다른 사회가 되고, 국가의 힘이 빠지고, 질서가 위협받고, 이유를 알지 못하는 움직임들이 지배하는 국가적 상황을 정황의 문제로 보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바로 현대 작용의 힘이다. 다만, 이것이 현대적으로 우방, 동맹 관계로 합법적 울타리가 되어 모두 다 덮어버리는 것이다. 우리 힘이 약하고 배반자들이 많은 조건으로 인해서 포기되고 덮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복잡한 사회 현상이다. 다만, 어려서부터 이에 의해서 조절되고 길들여져 온 인물들은 이것이 정의이고, 자신들의 힘이 되어 자기사회와 자기 기반을 버리며, 죽이는 역할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런 인간들이 득세하는 현실이 주도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당선자가 일본이 오랜 시간 관계하며 길들여 온 대상이라면, 이것이 가능한 것은, 당선자의 아버지 윤기중씨가 연세대 교수이면서 “대한학술원”에 소속되어 일본의 비밀 회원이란 이중 신분으로 평생 190만원의 자금을 지원 받는 회원이란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이라면, 아마도 어려서부터 이분은 일본이 한국의 정부와 사회를 조절하기 위해서 준비를 해온 인물? 그래서 9회의 사법고시 실패로 완전히 마음을 장악하고 길들여지는 과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가? 이는 일본 작용의 힘에 복종하고 섬기는 비굴하고 철저히 순응하는 마음으로 준비되도록 한 과정이 아니었는가? 추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유추(類推)가 사실이라면, 이분의 지금 “청와대 버리기” 취임도 하기 전,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는 선정적인 몰이로 기어이 몰아붙이려 하는 무대포 행위는 그 개연성이 충분히 가름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현정부조차 하루라도 더 빨리 나가도록 그러한 여론과 환경을 조성하는 당선자와 인수위의 정치력은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국민들과의 소통을 강조한 것이 순수한 배경이라면, 취임(就任)하고 나서도 차분하게 이를 진행하는 질서가 느껴지게 되어 있다. 믿음이 가도록 지극히 정상적인 역할로 온 사회를 따뜻하고 흐뭇하도록 하면서 움직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함이 순리(順理)이고 정석(定石)이다. 또한 국민들에게 사전에 묻거나 동의를 구함도 진정이라면, 이분이 강조하는 대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밀어붙이려 하는 것은, 일본에 대한 충성심, 이런 관계에 대해서 들어보니, 즉 일본에 대한 한국 신하들의 충성심에 대해서 들어보니 우리가 감히,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온 몸과 정신을 다해서, 충성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직접 보았다. 한일 무역규제문제로 대립되던 때, 한 여인이 언론 기자회견을 요청해서는 일본과 일본 수상 "아베"의 이름을 정성스럽게 호칭하며 그 충성스럽게 표현하며 사죄를 구하고, 우리 문재인 정부와 그 일당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일본과 “아베” 수상님께 함부로 구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 대신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하면서 우리 국민들은 대부분이 일본에 대해서 좋은 생각과 자세를 갖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그러한 태도의 행동이 온 나라 국민들 앞에서 자행되었던 것이다. 벌써 이를 잊었단 말인가?
지금, 당선자의 청와대 버리기와 국방부 들어가기 정치적 행보 또한 이에 준하는 그러한 우리 사회 안의 적극적인 반응(反應)이고 순응(順應)의 자세가 공식적으로 자행되고 있다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와 같은 이상한 행보가 취임도 미리 처리부터 해놓는 기반 고르게 하듯한 조건을 만들고자 하기에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가리켜서, 이를 지켜보는 일본으로 하여금 흐뭇한 웃음을 짓고 만족스럽게 한다는 그러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 아닌가?
일본적인 경향성은, 우리 사회 안에서 은밀하게 자신들만 통하는 의미부여로 우리 사회 내부에서 나름대로 일본을 위한 언행과 주요한 기념식, 장소와 건물 세우기, 상징적인 물건 만들기, 그리고 자신들 신체 일부에 부착(附着)하는 물건들로 서로 알아보고 통용되고, 우리 땅 안에 숱한 의미부여를 남겨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와 사회가 모르는 의미부여의 행보들과 조직적인 배경 은밀히 만들어 온다고 것이다. 우리 사회 속에서 단체장들이나 주요 기반의 리드자들, 그리고 주요한 위치의 역할이 큰 이들 누가, 이렇게 "소시어패스"로 일본을 위한 의미부여와 환경 조성에 앞장서는지, 우리 사회는 살피고 지켜보는 경계가 가동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들 조직들은 우리 사회 안에 가장 좋은 장소나 호텔 등지에서 몇 날 며칠 씩 비밀(祕密) 회담들을 하면서 정신 교육과 우리 사회를 조절하고 몰아가는 은밀한 계획들을 실행하는 모의와 운동들을 전개해 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들이 바로, “소시어패스”군들의 은밀한 사회 운동과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우리 가운데서’ 가장 정상적이고 사회적 지도자와 주요한 인물로 살아오면서, 가장 좋은 이미지와 공식적인 행보와 존경의 대상이 되는 위치에서, 낮에는 자기 사회, 밤에는 일본, 이러한 이중적 행동가들이 움직이는 사회 공간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 안에서 일본을 위한 삶으로 온갖 악을 자행하는 그러한 인물들 말이다.
이러한 배경에 의해서 우리 사회 정치는 저급해지고, 우리의 토종 지도자들이나 사회 저변의 자기 사회 정신이 강한 국민들이 사라지고, 음식이나 병원과 약물 등으로 이들의 은밀한 조직력과 행보는 우리사회를 죽이는 힘의 작용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힘의 작용이 지금에 이르러서 너무나 강성해지고 가속도(加速度)가 붙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힘의 본체(本體)인 일본의 한국 사회에 대한 파괴력이 더욱 급격해지고 빨라졌기 때문이다. 이를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알아차리지 못하고, 각성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국가적으로, 국민적으로 각성이 안 되고, 혹은 각성이 늦어진다면 이들의 힘과 조직적인 작용은 부동산 문제 그 이상으로 우리 온 사회를 죽이는 힘으로 작용 될 것이다. 우리의 순수한 토종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을 완전히 거두어내는 “작용(作用)의 힘”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를 정복(征服)하고, 우리를 통해서 육지로의 진출을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일본의 “작용(作用)의 힘”은, 멈출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일본과 일본 정부의 백년대계(百年大計)의 국정 동력이다. 그 육지로의 진출은 “韓日 해저터널로 완성”되고 이때가 되면, 우리 정부와 사회 구조는 일본의 힘 아래 다시 들어가는 미래적 현실이 될지 모른다. 이것이 일본의 포기할 수 없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급(時急)하게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사회적 구조로 자리 잡아 오고 있는 일본적인 어두운 작용의 힘을 거두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 힘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수종들고 받드는 그와 같은 인적 자원들을 속히 제압하는 일이 국가적으로 지혜롭게 처리되고 국민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사회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우리나라 권력과 경제 구조적인 힘을 장악하여 일본과 직결되고 있는 힘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됨이 없고서는 부동산 문제와 같은 정책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 사회를 조절하는 힘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되어야 우리가 살길이다. 이를 무시하고, 안일하게 함께 공존을 도모하고자 韓日이 함께 미래로!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이런 환경 조성은, 결국 일본에 먹히는 일본 주도의 배경임을 각성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국가의 시급한 과제이고, 본질이며, 나라와 국민적인 정신 복원의 문제이다. 이것이 바로 안 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 안에 이런 ‘파괴적 일본 작용의 힘’이 우리와 함께 공존(共存)되면서 우리는 약해지고 일본이 강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일본적 작용의 힘이 시간적으로 흘러오면서 이 힘이 우리보다 더 강해졌다. 이런 일본적 배경이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떻게 작용되는가? 사건(事件)사고(事故)의 나라 공간이 정치와 정부를 곤란으로 내모는 환경몰이가 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하수와 저급한 배경이 됨으로 국민들로 하여금 식상(食傷)하도록 해놓는다. 현대 사회 내내 이데올로기 몰이는 우리를 더욱더 불신과 대립 사회가 깊어지도록 해오고 있다.
지구상의 그 어느 나라가 시작부터 지금까지 데모로 시작되는 나라가 그 어디에 있는가? 철저한 대립구조로 몰아오는 작용의 힘이다. 통일은 더욱더 멀어져가고, 이제는 전쟁의 기운의 방향으로 점진적 환경이 조성되는 과정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이 일본적 작용의 현상이다. 이런 한국 상황은 일본이 얼마나 원하는 환경이고 조건인가? 더욱이 일본은 한반도 상에 전쟁 일어나기를 얼마나 바라는가?
이를 우리 사회가 빨리 각성하지 못하고, 결코, 이런 방향으로 생각을 못하도록 몰아가는 언론적인 배경에 의해서 시간적으로 세월만 보낸다면, 지금까지 경험한 것처럼 반비례적으로 우리나라는 두 성질이 교차(交叉)되면서 일본은 살고, 우리는 죽는 그러한 나라적 환경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당선자와 그들의 국가 운영을 유념(留念)해서 지켜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온 사회와 국민들은 경계와 감시, 그리고 우리 사회 주요 기관들은 견제하는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특히 국민의 이름으로! 우리의 감성을 흔들어서 선동하는 정치력과 언론 여론 몰이에 어리석은 국민 반응으로 나라 망치는 역할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확인되지 않는 이들이 펼치는 속임수에 속아 넘어 가고, 이로 말미암아 마비현상의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선자가 정말, 자기 사회를 위해서 정권을 펼치고, 국정을 운영한다면, 당연히 우리 온 사회는 적극적으로 지지(支持)하고 따라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합당하지 않는 행보로 나라 혼란과 질서를 파괴하려 할 때는 우리는 경계하고 무조건 따르고 수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우리 자신들과의 전쟁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노리고 찬탈의 공격적 행보를 국가 노선으로 삼고, 우리를 향해서 매사에 걸고넘어지고, 독도 찬탈을 일관되게 자행하는, 일본과의 싸움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독일 같지 않고, 지금도 우리를 노리고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공격적 접근을 펴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 줄기차게 우리를 공략해 오며, 독도찬탈, 역사왜곡, 위안부, 강제노무자 부정하기, 과거만행장소국제 기구에 등재하기, 군사적 도발, 무역규제, 심지어 IMF 한국 정착시키기 최우선 국가 등등, 지금도 우리를 노리고서 이렇게 해오고 있는 나라이다.
이런 옆 나라를 잘 대처하고, 그 힘을 꺾어놓고 앞으로 나아갈 때, 이것이 우리의 지혜와 힘이 될 것이다. 오대양 육대주 가운데서 아시아만큼 지역적인 협력이 안 되는 지구상에 그 어떤 지역이 또 있는가? 오로지 일본 같은 사악한 나라가 우리 옆에 있기 때문임을 우리가 제대로 인식할 때, 그것이 우리의 평화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국도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필요하다는 정책을 구사하는 목적 지향의 우방 나라들이 더욱 위협적임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다가 우리를 먹이감으로 생각하는 일본적인 경향은 반드시, 우리가 꺾어야 하는 대상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일본이 하는대로 주도되고, 우리는 약하고 소극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힘과 지혜라고 하면서 공격적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일본을 수용하고자 하는 현재와 같은 국가 기조는 교활하고 사악한 일본의 침략적 배경에 스스로 먹이감이 되는 저자세의 우매함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금번 당선자와 이들 국힘당의 나라 정권 장악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음이다.
일본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략하는 자들이다. 우리를 이런 일본적인 경향성을 우리를 재정복하고자 하는 제국주의 정신의 포기할 수 없는 기조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진정, 우리의 모든 기반을 빼앗으려 하는 작용(作用)의 힘이다. 그리고 自己화하고자 하여 육지(陸地)로의 진출을 노리는, 즉 이런 배경으로 우리를 먹이감으로 생각하는 일본 문제를 해결하고, 막지 못한다면, 그것은 상대적으로 우리의 약화(弱化)와 사회 혼란, 고통의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는 경험을 했다. 일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니 우리에게 나라적 빛이 들어오고, 우리 사회 문제가 무엇인지 눈이 뜨이고, 얼마나 음성적으로 우리의 이익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갔는지를 알게 되었고, 우리 사회 대기업의 상생관계가 일본과 되어 있고, 우리에게 진정한 힘이 되는 진실 여부의 문제가 약간 바로 잡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힘이 다시 우리 사회를 제압하고 재작용의 힘이 되려하고 있다. 다른 순수 서민의 주장을 들었다. 우리 사회 순수한 일반 국민이 지난 5년의 문재인 정부 부동산 실패를 경험하고 말하기를, 토착 왜구 등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것도 괜찮고, 오히려 빨갱이들이 문제이고, 누가 되든 나라만 잘 운영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환경과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조성해오는 무리들과 조직적인 운동들이 무섭게 우리 사회를 몰아오는 힘이 되고 있다. 다음 5년 동안의 정권이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를 얼마나 일본 중심으로 몰아 올 것인지, 이점이 너무 걱정되고 우려되는 부분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지난 5년 동안 이들의 결합의 힘, 바로 “작용(作用)의 힘”이 문재인정부를 제대로 막고, 방해하고, 언론의 여론몰이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 지금처럼 제대로 우리 사회를 재정리하여 다시 일본 중심의 힘이 작용하도록 해놓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아직은 확인되고 온전히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취임식도 하기 전부터 이상한 행보로 사회 문제로 몰아오는 윤당선자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나라와 국방력을 어떻게 몰아올지, 개연성이 느껴졌을 뿐이다.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다. 다만 하는 행보를 볼 때, 이러한 작용(作用)의 문제가 다시 환골탈태 되어 살아났음이 아닌가? 우려가 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음 5년의 나라 공간이며, 정부나 국민들 모두가 이런 거대한 작용의 힘앞에 서게 될 것이다.
글을 맺도록 하자!
이제, 우리 사회는, 그리고 야당이 될 민주당은 다시 경계(警戒)하고, 국민적인 대동단결(大同團結)로 앞으로의 우리 사회를 직시해야 한다고 역설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우리 사회 내부와 국민적인 결합 환경을 잘 지켜내야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北韓의 현재 행보는, 미국의 작용의 힘이 중국에 대한 전쟁의 시점을 만들어가는 우리 사회 평화 종말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점진적으로 몰아가는 배경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현당선자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이 문제가 앞으로 5년 간 우리 사회의 회오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펜데믹 지금의 한국 상황은, 문재인 정부를 우리 사회와 국민들로부터 완전히 불리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작용이 미군 부대로부터 일어나는 배경일 수 있음이다. 지금의 오미크론 시작은 미군 부대와 그 주위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한다.
이는 우리 국민들이, 즉 우리 토종 국민적인 힘이 문재인정부와 결속되려 하고, 코로나 상황을 세계적으로 성공적인 결과로 나오려하며 힘이 모아지려하자, 이를 끊어놓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대한민국 사회가 완전히 돌아서도록 하기 위해서 말미에 작용되는 힘이라고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 안에 거대한 미군 부대는 앞으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몰아갈지, 우리는 거대한 힘을 트로이의 목마처럼 끌어들인 꼴이 언젠가는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날이 있을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모든 땅과 조건, 건축 등과 관련해서 우리가 부담하고, 그 안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마음대로 검토도 할 수 없고, 생화학 연구를 하는지, 어떤 거대한 정보 시스템의 힘으로 우리 사회를 조절하는지, 알수도 없으면서 모든 재정을 우리가 제공해주는 이런 바보 같은 쇼파 협정이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용산 지하수는 엄청난 오염과 독극물 현상이 깊이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청와대를 버리고 용산으로 가고자 고집함에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인가? 그곳에서 건강상에 문제나 생기지 않을지? 그 주변 주민들의 암 발병률이 높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배경은 전혀 우리 정부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나라와 국민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 꼴이 무슨 말인가?
앞으로 평택 미군 시대, 과연 무슨일들이 진행되고 일어날 것인가? 국토를 꽁자로 제공해 주었다면, 정기적으로 철저하게 그 안에 들어가서 조사하고 확인하는 절차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정당한 협약이 이루어졌어야 한 것이다. 그래야 미국이 우리 나라 안에서 비밀리에 무언가를 하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막을 수 있는 주권 국가의 마땅함이 아닌가?
기억하는가? 메르스 사태가 일어 나기 전, 미국에서 바이러스 관련한 생화확 제를 가지고 들어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전세계에서 미국만큼 생화학과 살생무기 등등, 이와 관련해서 가장 많은 연구와 실제로 그런 바이러스 제품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또 어디에 있는가? 이런 배경이 우리 안에서 너무나 좋은 조건으로 전국 곳곳에 미군부대가 분포되어 있지 않는가? 그런데 이를 우리가 카바하고 제대로 관리하며, 그 어떤 일을 은밀하게 하고자 하는 미국의 고도의 전략이 실행되지 않는가?
우리 정부가 과연 이러한 차원에서 자국과 국민들을 보호할 의지와 조직이 가동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드 배치도 우리가 모든 재원을 부담하고 우리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직접 그것을 운용하고, 매년 관리비 그리고 고장이나 부품 등 100억이 넘는 비용 모두를 우리가 부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시 재배치를 하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안에서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 이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앞으로 이런 점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더 많은 비용을 끌어내기 위해서 핵잠수함이나 핵무기까지도 이런식으로 장사를 할지 모른다. 그래서 현당선자나 안철수위원장이 TV 토론회에서 미국의 전술핵을 괌이나 미국으로부터 사서 들어오는 부분을 거론하는데 입이 맞았던 것이다. 이 둘이 결합되고 하나가 된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 같다. 우리 자체 무기 개발이나 기술 발전이 아니라 거금을 주면서 미군 무기를 사되, 그 관리는 사드처럼 미국이 여전히 하는 것이다.
핵무기 한국 배치 개념이 이렇게 해서 우리는 천문학적인 재정을 우리가 미국에 부담하고, 그것의 직접 관리와 운용은 여전히 미국이 주관하는 불합리한 협정 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앞으로 한미 관계가 거대한 무기 협정으로 재조명 되는 것이 아닌가? 사드배치가 그래서 우리에게 교훈으로 핵잠과 핵무기 한국 배치의 가이드 라인이 되어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 공포는 윤당선자의 청와대 문제가 아니라 윤당선자와 안철수위원장의 결합이고, 이 배경이 다음 5년 동안 우리를 과연 어떻게 미일 관계의 비밀이 많이 축적되는 공포의 기간이 될 것인가? 하지만, 이런 배경이 이 두 사람 자신들에게 공포로 역배경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우리를 몰아가는 거대한 미국의 작용의 힘은, 많은 비밀을 요구 할 것이고, 그것을 맡아 실행하는 우리 정부와 지도자는 불행한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자신들에게 부메랑이 되고, 버림 받는 정부로 되돌아가 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자주와 자유가 없는 인물이나 나라 구조는 그 자체가 불행한 것이다. 힘을 잠시 제공 받는 이런 사회 구조는 그래서 외관상 자유요 인권이지만 작용의 힘 아래서 조절되기에 굴절되고, 수많은 비밀이 그 지도자와 정부 기간, 그리고 5년의 시간이 끝날 때, 더욱 불안해 진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러한 작용의 문제를 해결하고 스스로 힘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와 국민적인 온 나라 힘이 하나가 되고, 나라 안의 배반자들을 모두 몰아내는 온전한 자국 중심의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될 것이다. 현정부의 말기 코로나 문제는 이런 점에서 미국의 작용이 개입되는 문제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를 가지고 지금의 국힘당이 공격의 중심으로 몰고자 한다면, 또 우리 문제로 이런 진실은 덮이고 묻히고 말 것이다. 하지만 국힘당과 당선자의 통치기간을 곤란하게하고 힘들게 몰아갈 동일한 사건들이 이 작용의 힘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조금 말을 안 듣고 벗어나려 하면, 그래서 영구적으로 하인처럼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대행해야 하는 불행의 정부와 지도자로 서야 하는 나라적 현실 말이다. 이것이 우리네의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과연 어떻게 여론몰이를 할 것인지, 하지만 우리 군대가 우리 사회를 조절하는 배경이라면, 이는 또한 다른 문제로 작용(作用)되는 현실이지 않을 수 없음이다.
아, 세상의 복잡한 힘이 우리를 어디로 몰아가는 작용의 힘인가? 그런데 우리에게는 현명한 지도자가 있는가? 왜, 당선인과 인수위원들에게 우리 “청와대”는 그렇게도 공포의 장소로, 배격(排擊)이란 말인가? 아, 우리의 군대가 필요하고, 현정부를 하루라도 빨리 내보내고자 하는 국민감정 호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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