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채구로 향하는 날...
오늘 새벽 3시 30분에야 잠을 청했다.
비행기 시간이 14시 15분이라 여유있다고 생각해서 늦게까지 잘 요령으로 무리하게 인터넷과 애정행각에 빠졌다.
대충 짐을 추스르고 알람을 오전 10시에 맞춘 후 누웠다가 혹시나 싶어서 공자가 예약해 준 항공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뜨아~큰 일 날뻔했다. 14시 15분이 아니라 12시 15분이었다.
내가 왜 14시 15분이라 생각했지?
확인하지 않았으면 대형사고 한 번 칠 뻔했다.
다시 알람을 7시 30분으로 맞춘다...몇 시간 못잔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급하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당황했던 기운이 아직도 여운으로 남아 자꾸 서둘게 된다.
이런 날 호스텔에 물건 하나 제대로 빠뜨리고 오기 쉽상이다...
아침까지 걸르고 침착을 유지한 채 짐을 정리한다.
몇 번의 비행기와 버스 짐칸에서 사경을 해맨 나의 배낭 커버는 서서히 찌질이가 되어가기 시작한다.
예상컨대 집에 돌아가면 운명하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퍼만 고장이 안나면 어떻게 다음에 한 번 더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트레블메이트란 사이트에서 잠금장치랑 각종 여행용 물품들을 구입했는데 순간순간 유용하게 쓰인다.
손이 좀 귀찮은 것은 사실이다...잠궜다가 풀었다가...조였다가...늘였다가...^^
그래도 녀석들은 나의 동반자이니 소중하게 사용하자...
체크아웃을 하고...택시로 민항버스정류소로 이동한다.
도착하니 민항버스가 한 대 대기중이다...얼핏 보니 좌석이 거의 다 찬 듯 하다...
10원에 표를 끊고 올라서니 서너 자리 남았고 다 차 있다...
내가 올 때 까지 일찍오셔서 한참을 기다려주신 승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타자 마자 5분 후 출발...오늘 스타트는 좋다...^^
공항에 도착하니 큰 도시만큼 공항에 사람들로 북적인다.
티켓팅 카운터에도 줄이 길게 늘어 있다.
시간 여유는 충분하지만 일단 티켓팅부터 서둘렀다.
짐을 붙이고 보딩패스를 수령한 후...시간이 50분 가량 남는다...
천천히 공항 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떼운다.
문득 공항내 빵가게가 보인다.
잊고 있었던 아침 욕구가 갑자기 분출하고...빵을 사서 기내에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채구가는 비행기는 매우 작은 비행기였다...그나마 자리가 다 차지 않았다...
승객이 많이 없어서일까? 비행기 요금은 내가 이동하는 모든 비행기 요금 중에서 가장 비싸다...
시간은 50분 밖에 안가면서...
비행기에 올라서자마자 빵부터 작살낸다...
잠시 후 승무원들이 음료수 하나 다이제스티브 과자 한봉지를 준다...
비행기 값이 무려 1010원인데 겨우 이거 먹고 떨어지라고?
허허...좀 너무하시네...그래도 열심히 먹었다.
다이제스티브는 4개 정도 남았을 때 물리기 시작하였는데 본전 생각에 꾸역꾸역 먹었다.
수면 부족으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러다 큰 소리에 깨고 말았다...
이 놈의 비행기가 마치 바이킹 타듯이 위아래로 제대로 굴려주시면서 날아가신다.
10여회 정도는 바이킹 상단에서 하단으로 떨어지는 그 기분 그대로 전해준다.
여자 승객들 위주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나 역시 비명감이었지만 체면에...
대신 비행기가 요동칠 때 마다 눈을 꽉 찡그리게 되고 나도모르게 아랫배에 강한 힘이 들어간다.
수차례 비행 중 최악이었다...비행기가 작아서 그런가 보다...
차창 밖으로는 눈덮힌 설산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도착 후 비행기로 붙인 짐을 찾으러 내려갔다.
딸랑 가방 6개가 나오더니만 벨트 서 버린다...순간 고장인가 싶었는데 그 짐이 전부였다...
밸트가 한 바퀴도 안 돌고 전원켜고 부우~7m 정도 가방 싣고 나오더니 끝이다...크크 약간 코믹이었다...
공항버스를 타려고 표를 샀다.(45원...비싸다...거리가 상당히 멀었음...차창밖으로 보이는 설산의 풍경 좋음)
공항은 마치 작은 버스터미널 같은 느낌이었다...
공항을 나서니 택시 몇 대들이 종일 공친 느낌의 자세로 승객이 오던말던 담배 물고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다.
오른쪽에 큰 버스가 보이기에 저쪽인가보다 싶어 그리로 향하는데
영화배우처럼 검은 선글라스 걸쳐주시고...몸매 호리낭창하니 제법 멋있는 청년이 날 보고 뭐라하며 다른 쪽을 가리킨다.
흐미...봉고차다...12인승...그런데 봉고차 앞에 푯말에는 분명히 공항버스라고 적혀있다...크...
10명을 태우고 출발~
내 옆자리 친구가 말을 건다...내가 표를 살 때 옆에 있었던데 내가 영어로 표를 구매하니 영어로 말을 건다.
알고보니 또 대만청년이다.
이 친구도 혼자 구채구를 찾아왔다...
덜 심심했다...이번에는 중국사람들 모두 조용하고 우리 둘이 정체불명의 문법으로 창작된 영어로
신나게 서로를 탐색한다.
대충 그 놈 여친은 일본인, 고추장 무섭다, 신라면 최고다, 중국 세 번째다, 춥다, 서로 스케줄이 어떻다...등..
서로의 숙소를 확인한다. 나의 숙소를 보더니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있다고 한다.
봉고에어포트 버스가 종점에 도착한다...멋진 기사가 대만 청년보고 손가락으로 한 건물을 가리키며 설명한다.
대만 청년은 나보고 따라오란다...뭐여?
내가 왜 널 따라가는겨? 이제 우리 여기서 각자 헤어져야 정상적인 그림 아닌겨?
나의 호스텔까지 길을 안내해주겠다는 것이다.
자기는 중국말을 할 줄 아니..나의 숙소를 기사에게 듣고 내가 해매지 않도록 알려주고 가려고 한 것이다.
넌 구채구에서 만난...땡큐맨...흐흐...그러고 보면 내 인상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가보다...
내가 묵을 호스텔 프러트까지 친절히 안해해 주고 자기 숙소를 찾아 간다.
고맙네...청년...
아마 내일부터 오며가며 또 만나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구채구...겨울 제대로다...
내가 주변 상가와 숙소들은 대부분 비수기로 영업을 하지 않아...한마디로 황량함 그 자체이다...
중간중간에 작은 동네 슈퍼같은 곳만 몇 곳 영업을 하고 식당들도 대부분이 문을 닫아 버렸다...
부는 바람이 그동안 맞았던 차가운 바닷바람과는 차원이 다르신 바람이시다...
깊은 골짜기 얼음과 눈의 기운을 머금고 불어오는 바람이 제대로 겨울과 맞딱드렸다고 느껴진다.
호스텔 수도 배관도 얼어서 녹이고 있고 따뜻한 물도 시간 정해서 공급해준다.
식당이 거의 영업을 하지 않아 호스텔 음식과 가져온 라면, 즉석 비빔밥으로 떼워야 겠다.
호도협에서 먹을 비상 식량은 남겨두고 이 곳에서 몇 개의 실탄을 써야겠다.
호스텔 벽면에 팬더 그림이 귀엽게 그려져있고 그림 옆에 일본어로 올해 10월에 일본인 누가누가 그렸다...라고 적혀있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호스텔 남자 매니저가 와서 그림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일본사람이라고 한다...
여기 매니저로 있게 된 이유는 그냥 매우 복잡하다...친구의 친구와 뭣이 어떻고 저떻고 하다보니 여기에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난 다행히 일본어 초급은 넘고 중급에서 왔다갔다하는 일본어 구사 능력이 있어
이때부터 이 친구와 일본으로 대화를 한다.
어줍짢은 영어보다 훨씬 편함을 느낀다...모처럼 제대로 내가 지끌인다...
녀석도 한국에 대해서 제법 아는 게 많다...
"기무치 피빔팝 머코 시포요"부터 내 담배가 에세라는 것, 부산이 항구도시라는 것...등
남들이 보면 내가 일본이라라고 믿을 것 같다...^^
오늘은 시간이 늦어서 호스텔에서 구채구 매표소까지 간단히 산보를 했다...생각보다 멀었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더 멀게 느껴진다.
가다가 혼자 배낭을 맨 작은 아가씨가 카메라와 함께 지나가며 나랑 마주친다...
서로 눈으로 정체를 탐색하며 그냥 지나친다...귀엽게 생겼네...^^ 후후
내일 제대로 구채구 탑방을 하기로 마음 먹고 다시 길을 돌린다.
찬바람이 겨드랑이까지 파고드는 듯...냉하다...
오가면서 자가용 삐끼들이 몇 번씩 호객행위를 한다.
잘 숙소 구했느냐? 밥은 먹었느냐? ... 대충 이해하건데...숙소와 식당 삐끼인듯 하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이상하게 삐끼는 삐끼처럼 생겼다...^^
오는 길에 조금 전에 마주쳤던 배낭 맨 아가씨 또 마주친다.
재미삼아..."하이"하면서 인사를 했더니 순간 멈칫하더니 미소지으며 자기도 손을 흔든다...
아까 우리 서로 보았다...이거지...ㅋㅋ
와우...요놈봐라...제대로 영어하는 아이다...
자기는 둘째 날인데 청두로 돌아가기 전에 기념될 만한 물건 하나 사고 왔다는 것이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추워서...
구채구의 제대로 된 겨울은 여자도 싫게 한다.
서로 정답게 손 흔들며 헤어지고 슈퍼에 들러 모처럼 완벽한 군것질 거리 구입한다.
과자, 육포, 콜라, 비스켓, 생수...
맥주도 한 잔 하고 싶으나 수면부족으로 두통이 조금 있다.
타이레놀이나 먹어야겠다.
호스텔로 와서 볶음밥 시켜 먹고 코코아 한 잔...그리고 이 글을 쓴 후 방으로 향하고자 한다.
방에서도 와이파이 신호가 잡힌단다...약간 신난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내일은 구채구 -7도~6도 사이라고 하네요...음...해발 2000m라고 합니다. 그래서 약한 두통이 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타이레놀 찾아야겠어요...^^ 인간문화유산...제가 쓰고도 무슨 뜻인지 몰라 어제 쓴 글을 다시 읽었습니다...제가 그렇습니다...ㅎㅎ
오오~ 솔개 여행기는 늘 기다려짐...
곤명팀은 짐~ 맥주한잔 하고 중~~ 잘 지내지?
타이레놀을 먹으니 골이 상쾌하다. 고산병인지 수면부족인지 알 길이 없다. 좀 심심하지만 행복함
고산병 증상으로 추정됨 ㅎㅎ
그런가요? 아무튼 타이레놀 복용하고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 짱이었습니다...아마 비행기로 짧은 시간에 높은 고도로 이동하면서 신체가 적응하는 시간이 살짝 부족했나봅니다...^^
ㅋㅋ 제가 류시화님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이란 책을 미치도록 ㅋ 좋아하는데요^^ 솔개그늘님의 여행기에서도 그 책을 읽을때처럼 쏠쏠한 재미가 있네요.. "봉고에어포트버스, 이상하게 삐끼는 삐끼처럼 생겼다" 등등 ㅋ 오늘도 즐거운 여행되시길!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그 책 저도 세 번 읽었습니다...제가 마치 인도에 다녀온 듯 ... 그 책이 그렇게 빠져 들게 하더군요...그 책에 감히 견주어 주시다니...너무 영광이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