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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8회>
씬 1 부감 (궁예의 진영)
어느 시골 관아를 사이에 두고 길 곳곳에 숱한 군막들이 즐비하다.
카메라 서서히 다가가면
씬 2 동 궁예의 그 군영 마당
무수한 황톳바람이 마당과 군막사이를 휩쓸고 있다.
그 극성스러운 바람소리들, 군영의 깃발들이 무수히 펄럭이고 있다.
수많은 군사들이 오가고 있고, 그 한쪽으로 보기에도 딱한 헐벗은 백성들이 끝도없이 몰려들고 있다.
그 아우성을 달래고 있는 군관들.
양식과 옷가지들을 나누어 주고 있다.
군관 조용히들 하시오. 차례를 지켜요.
백성1 세상에 고맙기도 하시지, 이 흉년에 양식과 옷을 주시다니요. 궁예 장군님은 부처님이십니다.
백성2 누가 아니랍니까? 미륵부처께서 오신거예요.
군관들은 여기저기서 땀을 흘리며 벌떼같은 백성들에게 양식과 옷을 주기에 바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몰려드는 장정들을 정리하기에 바쁘다.
군관1 누구나 오라 하시오. 굶주리고 병든 사람은 모두 오라하시오. 이곳에선 먹을 것과 약을 줄것이오. 그리고 원하면 누구든 미륵의 군사가 될 수 있소이다.
이미 그 군관의 옆에는 많은 장정들이 다투어 자원하는 모습이 보인다.
장정1 나를 써주시오. 미륵군에 참여하겠소이다.
장정2 나도 하겠소이다.
장정3 내가 먼저요.
군관1 아아, 차례를 지키시오. 차례들을 지켜요.
아우성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끓고 있다.
씬 3 동 시골관아(임시 군영)
종간 (E) 백성들이 끝도없이 몰려들고 있사옵니다..
씬 4 동 군영 회의장
제장들이 궁예를 중심으로 회의를 하고 있다.
종간 이러다가는 백성들에게 치여서 명주성의 공략이 제대로 될까 모르겠사옵니다.
신훤 그러하옵니다. 지금은 백성들에 대한 구휼보다도 명주성의 공략에 더 힘을 기우려야 할 때이옵니다.
원회 군량미를 나누어주다보니 이미 바닥이 보인다 들었사옵니다.
궁예 ....알고 있소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적을 이길 수 있는가 하는 그것이외다.
모두들 .....
궁예 백성들은 우리를 부처님의 군대로 압니다. 그렇소이다. 나나 그대들이 모두 부처가 되어 저들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저 명주성은 물론이고 어떤 일도 이룰 수 없을 것이외다. 백성이 굶으면 나나 그대들도 굶고 저들이 아파 신음하면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명주성을 취할 수 있는 확실하고도 최선의 방법이올시다.
모두들 ...(숙연하고)
궁예 백성들이 우리의 주인이올시다. 그 점들을 명심하시오.
모두들 예, 장군.
궁예 종간군사
종간 예, 장군
궁예 군율을 엄히 세우시오. 오는 백성들은 막지 말고 모두 받으시오. 저들과 공평하게 먹고 똑같이 나누시오. 지위가 있다하여 하나라도 더 취하는 자가 있다면 극형으로 다스리시오.
종간 예, 장군. 분부 받들어 군령을 지키겠사옵니다.
궁예 머지 안아 공격령을 내릴 것이오. 백성들의 뜻이 완전한 하나로 확인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명주로 향할 것입니다.
결연한 궁예의 표정에서..
씬 5 동 군영
여전히 수많은 백성들이 아우성치며 여기저기 모여들고 있다.
궁예와 제장들이 그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백성들은 궁예를 보자 마치 생불을 대하듯 일제히 합장하며 허리를 숙인다.
장관이다.
궁예는 친절하고 부드럽게 일일이 그들을 어루만지며 가고 있다.
해설 궁예, 이때만해도 그는 실로 살아있는 부처였다. 적어도 연이은 가뭄과 굶주림과 전란에 시달렸던 백성들에 있어서 그는 단비와도 같았고 구세주와도 같았던 것이다. 그랬다. 그는 엄격하게 자신과 수하들을 관리하면서 희망을 잃은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믿고 있는 미륵의 힘이었던 것이다.
씬 6 대관령 산길
명길이 사위 1과 함께 말고삐를 끌고 넘으며 산 길을 타고 있다.
그 뒤로 수십명의 군사가 뒤를 따르고 있다.
모두들 지친 모습이다.
명길 (숨을 훅 내뱉으며) 참으로 험난한 길이로구먼. 이 곳에 비한다면 북원의 산들은 산도 아닐세... 이렇게 험한 산을 어떻게 넘어서 명주성 앞에 이르렀을꼬...?
사위1 두고 볼수록 무서운 자이옵니다. 결코 만만히 볼 자가 아니옵니다.
명길 그러니 우리가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사위1 헌데... 궁예가 과연 명을 받들겠사옵니까....?
명길 아니 오면...? 제깟것이 감히 대장군의 명을 거역 하겠는가?
사위1 그야 그렇긴 하옵니다만..
명길 너무 키워 놓았어. 너무 풀어 놓았다구....이번에 제대로 묶어 놓아야지. 허어, 이거 가도가도 끝이 없구만..
사위1 이 재를 넘어서 수십리를 더 가야 삼척 관내로 들게 되옵니다. 아직도 길이 머옵니다.
명길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대단해. 이길을 넘어 명주까지 이르렀다니...
그들 계속해 산을 넘어가고 있고....
씬 7 북원성 외경
미향 (E) 아버님, 소녀이옵니다.
씬 8 동 양길의 처소
양길 들어오너라.
미향이 안으로 들어온다.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으면
양길 요즘은 어찌 지내느냐? 같은 성 안에 있으면서도 통 너의 얼굴을 볼 수가 없구나. 그래 무엇이 그리 바쁜게냐?
미향 불경을 읽고 있사옵니다.
양길 불경을? 허... 네 서방이 그리하라 시키더냐?
미향 ...........(미소만)
양길 .....나는 부처니 뭐니 하는 것은 흥미없다. 네 서방을 보아라. 그게 어디 사람 사는 것이냐? 너도 너무 빠져들진 말거라. 알았느냐?
미향 .......예, 아버님
양길 조만간 네 서방 궁예가 이 곳으로 올 것이야.
미향 ......(놀라)....?
양길 허허허 무에 그리 놀라느냐? 서방이 온다니 기쁜게로구나. 그 돌부처가 그래도 서방이라고....
미향 그 분께서 하시는 일이 모두 끝난 것이옵니까?
양길 (가로 저으며) 그렇지는 않다. 중요한 일을 맡겨 멀리 보내다보니...그동안 너무 적조하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도 많이 궁금했을게 아니냐?
미향 ........(어두워진다)
양길 표정이 왜 그러느냐? 서방이 온다는데 반갑지 아니한 게냐?
미향 ......아니옵니다. (눈물이 흐른다)
양길 지금 우는게냐?
미향 ......아니옵니다.
양길 쯧쯧쯔... 말 안해도 다 안다. 나도 이 나이가 되도록 살면서 그런 인사는 처음 보았느니라. 네 마음을 안다.
미향 ....아버님은 모르시옵니다. 아무 것도 모르십니다.
양길 그렇지가 않다. 다 알면서도 좋은 때가 있을 것이라고 기다려 온 것이야.
미향 .....
양길 넓게 생각 하거라. 그리고 이번에 오거든...너도 궁예의 안해로서 할 바를 다 하거라. 남자는 말이다. 모두가 안에서 하기 나름인 것이니라. 독하게 한 번 휘어잡아 보거라. 그만한 미모를 가지고 잡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안 그러냐?
미향 .......
양길 허허허허....이제 곧 이 애비는 삼한의 허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면 대왕이 될 것이고 나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이야. 내 다음 대는 네 서방이 잇게 될 것이다. 그렇게되면 너는 황후가 되겠지? 핫하하하하하... 만사 다 좋게 생각하거라.
그러나 미향은 대답이 없다. 양길이 웃다가 고개를 외로 꼰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양길 그래.... 다 좋게 생각해야지. 그래야겠지... 그렇긴하지만서두?
씬 9 궁예의 군영 외경
씬 10 궁예의 처소
궁예가 서찰들을 검토하고 있다.
그 앞에 종간과 은부가 앉아 있다.
궁예 청주까지 견훤이 차지를 했다.....?
종간 그렇사옵니다. 참으로 발빠른 행보가 아니옵니까? .
은부 그런데도 신라 조정은 아무런 대책이나 조치가 없는 것 같사옵니다.
종간 얼마나 한심했으면 최치원이라는 대학사가 조정을 등지고 산으로 숨었겠소이까?
궁예 최치원이라.....
종간 신라가 자랑하는 삼최의 한사람이옵니다. 최씨성을 가진 세 사람 천재 중에 하나지요.
궁예 알고있소이다.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온 이름이예요.
종간 얼마 전에 시무 10조라는 개혁안을 올렸다 들었으나 왕이 받아들이지 않은 모양이옵니다.
궁예 아무리 견고한 뚝도 한 번 구멍이 나면 겉잡지 못하는 것이외다.
종간 그러하옵니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고 바야흐로 장군의 세상이 열리는 것이옵니다. 명주를 취하게 되면 장군께선 바야흐로 새로운 제국의 주인이 되실수 있사옵니다.
궁예 제국의 주인이라..... 허허허, 이보시오 종간군사. 제국의 주인은 백성이라고 하였소이다. 벌써 잊으신 모양이구려.
종간 하오나 그 주인들의 주인은 장군이시옵니다. 그점 또한 잊지않고 있사옵니다.
궁예 처음 마음을 끝까지 같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만이 모두를 이기는 길이예요.
그 때 신훤의 소리가 들려온다.
신훤(E) 장군, 신훤이옵니다.
궁예 들어오시오.
신훤이 안으로 들어온다.
궁예 무슨 일이오?
신훤 북원 쪽에 나가있는 초병의 보고가 올라왔사옵니다. 명길 장군이 대관령을 넘어 이리로 오고 있다 하옵니다.
궁예 .....?
종간 명길 장군이...?
신훤 예, 이 근처에 거의 온 것 같사옵니다.
은부 양길의 의심병이 도진것이옵니다.
모두들 ......(은부를 보면)
은부 분명 복지겸이 부추겼을 것이고 양길이 이를 허락했을 것이옵니다. 장군의 충성심을 다시 살펴보자는 것이지요.
궁예 ..........?
은부 십중팔구 장군을 북원으로 돌아오라고 할 것이옵니다.
종간 돌아오라니요? 명주를 눈 앞에 두고 있는 막중한 시점이 아니오이까?
은부 양길은 소인이 잘 아옵니다. 그 의심병 때문에 번번히 큰 것을 잃었습니다. 이번일이야 더욱 그렇지요. 험한 대관령을 경계로하여 우리는 많은 군사를 모았고 여러 고을을 점령하여 이렇게 떨어져 나와 있사옵니다. 얼마든지 의심할 수 있지요.
궁예 ...... 음
은부 제게 생각이 있사오니 일단은 저들을 맞을 준비를 하시오소서.
씬 11 궁예의 진영
명길과 사위1이 호종 군사들을 이끌고 군영 앞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기치창검이 질서정연하고 수많은 군사들이 열을지어 들어서고 있는 그들을 맞고 있다.
온갖 공격용 장비들이 우람하게 곳곳에 버티어선채 줄지어 있다.
그 사이를 지나며 그들은 눈이 크게 떠지고 있다.
사위1 참으로 군세가 대단하옵니다. 북원을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아니옵니까?
명길 복지겸의 말이 맞았어. 이만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는데 제 마음대로 하자면 뭘 못하겠는가?
그 때 궁예가 신훤, 원회 등 장수들을 거느리고 명길을 맞으러 나오고 있다.
백성들과 군사들이 일제히 어우러지며 허리가 땅에 닿도록 합장하며 몰려든다. 그들은 모두 장군님, 이라거나 미륵부처님, 이란 말들을 합창하듯 불러대며 그렇게 몇 번이고 허리를 조아린다.
그것은 아우성이다.
물밀처럼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든다.
궁예는 그들을 어우르며 명길쪽으로 간다.
보고있던 명길의 눈매가 가늘게 떨고 있다.
사위도 놀라고 두려운 빛으로 그런 궁예를 보고 있다. 그들들 시야로 ‘대미륵성전(大彌勒聖戰) 불국정토(佛國淨土)’의 대기가 펄럭이고 있다.
궁예 어서들 오시오소서. 먼 길 오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명길 오랜만이오. 대단하구먼... 이제 완전히 진짜 미륵이 된 것 같네그려.
궁예 ......(미소).......들어가시지요.
명길 어흠... 가세.
그들 그렇게 안으로 향하면.....
씬 12 궁예의 거소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다. 명길과 사위1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묘한 시선으로 묻는다.
명길 그 군영 앞에 세워놓은 수기말인데...
궁예 ........?
명길 그게 뭐라고 쓴것인가?
궁예 왜 그러시온지....
명길 수기라면 마땅히 양길대장군이라 쓰여져 있어야 할 것인데... 어째서 미륵...성전인가?
불국정토는 또 무엇이고?
궁예 (미소 지으며) 허허허, 그것 말씀이옵니까? 그것은 우리가 싸우는 이유와 다음 세상에 얻을 평화를 알리는 것입니다.
명길 그걸 묻는게 아닐세. 주군을 뫼시는 장수로써 내걸은 구호가 맞지 않다는 것이야. 이야말로 오만방자한 일이 아닌가? 어찌하여 우리 형님이신 양길대장군의 수기를 세우지 않는겐가?
궁예 미륵의 세계란 모든 이들이 갈망하는 낙원의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대장군께서도 얼마나 그것들을 염원하고 또 알리고 싶어 하시겠습니까? 그것이 잘못된 것일런지요?
명길 일리는 있는 말일세 만은 그래도 뭔가 섭섭하구먼... 다음에는 대장군의 수기를 앞에 세우도록 하게나.
궁예 예, 유념하겠사옵니다.
은부 헌데 어인 행차시옵니까?
명길 궁예장군을 북원으로 들어오라는 영을 뫼셔온 것일세.
종간 그렇다면 소환장을 가지고 오신것이옵니까?
모두들 긴장해서 명길을 본다. 명길이 궁예를 보고 있다. 그 시선에서..
씬 13 인서트
군영 마당에 명길이 타고온 말들과 수하들이 서 있다.
깃발들은 그렇게 무수히 펄럭이고 있고 원회와 신훤이 긴장한 표정으로 안쪽을 보고 있다.
원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 것 같구먼.
신훤 그런것 같으이. 명길장군이 괜스레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씬 14 동 궁예의 거소 안
종간 소환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온지요?
궁예 .....(담담하고)
은부 .......(웃는다)....
명길 나야 알겠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게지.
종간 지금은 전시상황이옵니다. 적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장수를 갑자기 불러드리다니요? 허면 명주를 포기하신다는 뜻이옵니까?
명길 아닐세. 궁 장군이 없는 동안엔 내가 이곳을 맡아 지휘할 걸세.
궁예 .......?
종간 소장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사옵니다. 이 급박한 시점에 어찌 그런 명을 내리셨는지?
명길 대장군께서 오라고 하시면 가는 거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가?
종간 너무도 부당한 처사이옵니다. 대장군께서 뭔가 착오가 있으신 듯 싶사옵니다.
명길 뭐라? 지금 대장군의 명을 거역하겠다는 겐가?
종간 대장군께서 생각이 있으신 분이시라면 그런 명을 내리실 리 없사옵니다.
명길 (발끈해) 뭐라!!
궁예 종간군사, 그만 하시오.!
궁예의 위엄에 주위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궁예 대장군의 영이라 하시는데 어찌 긴말을 하겠소이까? 그것은 군령입니다. 영을 뫼시도록 합시다. (명길에게) 영을 따르겠사옵니다. 차비를 하고 내일 일찍 떠나도록 하겠사옵니다. 먼길 오셨는데 오늘은 푹 쉬시오소서.
명길 (아직도 불쾌한 듯) 어흠... 음.. 요즘 장수들은 도통 위아래가 없어 놔서...
궁예 거듭 송구하옵니다.
명길의 더욱 커지는 헛기침 소리에서...
씬 15 인서트 (밤)
궁예의 진영에 어둠이 내렸다. 횃불이 곳곳에 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종간(E) 가셔서는 아니되옵니다.
씬 16 동 거소
궁예와 종간, 은부가 모여 있다.
종간 뭔가 흉계가 있는 게 분명하옵니다.
궁예 .........
은부 아닙니다. 가신다고 하신 것은 잘하신 일이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옵니다. 소인도 함께 가겠사옵니다.
종간 하지만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
은부 가지 않으면 앞 뒤가 적이 되옵니다. 가셔야 하옵니다.
종간 .......?
궁예 ......은장군의 말이 맞소이다. 가지 않으면은 우리는 앞뒤로 곤경에 처하게 될것이오. 아직 명주성을 치려면 어차피 좀더 준비가 필요한 터였소. 그동안 다녀오도록 합시다.
종간 (한숨) 한심하고 답답한 일이옵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성을 공략할 장수를 불러들이다니요? 그런자가 대장군이라니...
궁예 허허허, 세상사는 것이 어디 조급해 한다고 되는 것이겠소이까? 내가 없는 동안 이곳일이나 잘 관리해 주시구려.
종간 그야 이를 말이겠사옵니까마는......이번에 명주를 얻으면 무진주의 견훤에 필적한 만한 세력을 얻게 되실 터인데..
씬 17 무진주성 외경
견훤(E) 뭐라, 뭐가 어쩌고 어째? 불을 지르려고 했다?
씬 18 대전
견훤이 불같이 노해 있다. 그 옆에서 박씨가 보고 있다.
견훤 불을 지르다니, 어디다 불을 질러? 네 놈이 제정신이었느냐?
추허조 최승우 그놈..... 오만방자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 놈이었사옵니다. 그런 자에겐 그저 뜨거운 맛을 보여주는 것이...
견훤 닥쳐라, 이놈아. 아이구 가슴이야, 너는 싸움만 할줄 알았지 도대체 아는게 뭐가 있느냐?
추허조 .....
박씨 폐하, 그쯤 하시오소서. 소리가 너무 크시옵니다.
견훤 최승우가 누구인지 너는 몰랐단 말이냐?
추허조 .......(불만이 많다)......
견훤 군사의 책임이 크네. 어찌해서 저런 못난 놈을 보냈단 말인가?
능환 (미소지으며) 노여움을 거두시오소서, 폐하.. 추허조를 보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사옵니다.
견훤 이유라니..?
능환 그 자의 그릇을 알아보기 위함이었사옵니다. 당대의 학자이고 삼최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난세에는 가진 것 없이 이름만 높은 자들이 많은 법이옵니다.
견훤 그래도 그렇지...
능환 인물은 인물인 것 같사옵니다. 출세나 명예를 탐하는 자였다면 아마 저 추장군을 따라 나섰을 것이고 또한 담력이 약한 자였다면 추장군의 억압에 못이겨 따라나섰을 것 아니겠사옵니까?
견훤 .........(생각하다가 끄덕인다)
박씨 그 사람 얘기는 저도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 오기만 한다면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그렇사옵니까, 폐하?
견훤 ...... (역시 끄덕인다)
능환 이제는 아무래도 폐하께오서 납시실 차례가 되신 것 같사옵니다.
추허조 예? 그건 아니될 말씀이오. 형님은 모르시우. 그 자가 얼마나 건방지고 오만불손한지... 거기에다 폐하를 모신다니 말도 아니되오.
견훤 네 놈은 가만 있거라. 현인을 모시러 가는 길이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으려 삼고초려를 했듯이 말이다.
추허조 삼고....초려라굽쇼? 그게 뭔데요? ...
박씨 호호호 (입을 가리며 웃는다)
추허조 ....(뻥해서 영문을 모르고)
능환 내일 아침에 폐하를 모실 차비나 해 놓거라.
견훤 날이 밝는 대로 떠나도록 하세. 그 사람을 한시라도 빨리 만나보고 싶구먼....
설레임을 감추지 못하는 견훤의 모습에서..
디졸브 되면....
씬 19 옥계사 가는 길(낮)
견훤을 위시하여 능환과 추허조 등이 뒤를 따르고 있다.
견훤 과연 최승우가 우리에게 와 줄지 모르겠구먼...
능환 잘 되실것이옵니다. 폐하께서 납시셨는데 어찌 따르지 않겠사옵니까?
견훤 (끄덕이며) 그리 되어야 할 것인데... 그리만 된다면 자네와 더불어 나는 양날개를 얻게 되는 것이야.
능환 과찬이시옵니다.
견훤 허조야.
추허조 예, 폐하.
견훤 이제 네 놈도 장군이 아니더냐? 허면 지략도 함께 갖추어야 할 터.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공부좀 하거라.
추허조 .......
견훤 그래... 이제 우리는 나라를 건설했다. 남보다 용력이 조금 우월하다고 해서 그것만을 믿고 전장에 나서는 때는 이제 지났느니라. 배워야 하느니라.. 수천수만의 군사를 지휘해야 할 네 놈이 아니냐?
추허조 수천... 수만이라 하셨사옵니까?
견훤 그렇다 이놈아. 이제야 귀가 뚫리느냐?
추허조 허허허, 수만의 군사라니 꿈만 같사옵니다.
견훤 허허허, 허조에게는 숫자를 보여주어야 뭘 알아들으니 딱한 일이야.
능환 (웃으며) 하지만 우리 철기군의 선봉장수가 아니옵니까? 허조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되옵니다.
추허조 허허허... 역시 형님 밖에 없으시우. 폐하께오선 이 추허조 알기를 동네 싸움개 보듯 하시니...
그말에 모두들 웃는데 저만큼 옥계사가 보여온다.
능환 폐하, 옥계사이옵니다.
견훤 .......
씬 20 그 옥계사 마당
씬 21 동 옥계사 방안
최승우가 책을 읽고 있다.
잠시 후 동자승의 숨가쁜 목소리가 들려온다.
동자승 나으리... 나으리....
최승우 (장짓문을 열고) 무슨 일인데 그리 급하시오? 허허허...
동자승 대왕이 오시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왕폐하를 따라오고 있사옵니다.
최승우 .......?
동자승 대왕 폐하가 오신다니까요?
최승우 허허.... 대왕 폐하가 오신다? .... 알았으니 가보시오. (책장을 다시 들여다본다)
동자승 .......???
씬 22 동 방앞 마당
견훤 일행들이 길게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들 처소 앞에 이르러 방안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최승우를 본다.
최승우는 미동도 없이 태연하게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견훤이 이윽고 입을 뗀다.
견훤 실례하겠소이다. 나는 무진주의 견훤이라는 사람이올시다.
최승우 .......(계속 책에만 시선)....
견훤 .......
능환 최학사이시지요? 나는 대왕폐하를 뫼시는 능환이라는 사람이올시다. 그대를 뵙고저 폐하께서 먼길을 오셨습니다. 예로서 맞으시지요?
최승우 (비로소 고개를 들며)
대왕이라... 지금 대왕이라 하셨소이까?
견훤 .......?
추허조 저런... 저.. 저...
최승우 (정면으로 마주보며) 대왕이라....? 하하하, 작은 고을 몇 개를 차지했다고 해서 대왕이라.. 허허허... 적어도 왕을 칭하려 한다면 옛 삼한의 하나는 온전히 열어야 합당한 이름이 되지 않겠소이까?
추허조, 발끈하지만 능환이 제지한다.
견훤 (웃으며) 최학사의 대명을 오래전부터 흠모해 왔소이다. 이렇게 뵙게 되어 참으로 기쁘오.
최승우 소생도 견장군의 존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소이다. 용맹이 뛰어나고 지략 또한 갖춘 분이라 들었는데.. 어찌 도적의 괴수 노릇을 하고 계시오이까?
추허조 (참지 못하고) 도저히 아니되겠구먼... 내 저놈을......
견훤 (제지하며) 허조야... (낮은 음성으로 부르지만 그 무게가 천만금과도 같다) 하하하... 그렇소이다. 이 시대의 도적 아닌 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소?
최승우 (비로소 눈을 반짝이며 한참을 보다가) 마음을 열어보이시니 그래도 속을 감추는 살쾡이들보다는 나아 보입니다.
추허조 .....(끓고)
능환 ......(정색하여 보고있고)
견훤 도적은 도적이되 나라를 훔치려하는 도적이올시다. 그것을 훔쳐서 옳게 쓰고 아니 쓰고는 바로 그대같은 대학인들이 할 일일 것이외다. 나를 도와주시구려. 진심으로 청하는 말이외다.
최승우 허허허허... 글줄 외는 재주 밖에 없는 서생에게 도움을 달라시니 안타까운 말씀이십니다.
견훤 최학사....
견훤, 무릎을 꺽고 꿇어 앉는다.
모두들 그 모습에 경악한다. 능환은 입을 굳게 다물었고 추허조는 반대로 입을 딱 벌렸다.
총례와 김총, 수달 등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비로소 최승우의 안면이 굳어지며 그렇게 한참을 보고섰다.
다시 견훤이 말한다.
견훤 이렇게 간절히 청하오. 부디 이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시오.
아주 오랫동안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된다.
최승우가 서서히 일어선다. 그리고 방안을 걸어나와 마당에 이르러 그도 무릎을 꿇는다.
모두들 침묵을 삼킨채 말없이 보고 있다.
최승우 대왕폐하, 일어나시오소서. 소생이 잠시 참주인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씻기 어려운 대죄를 범했사옵니다. 어서 일어나시오소서, 폐하...!
견훤 (비로소 환히 웃으며 어깨를 껴앉는다) 고맙소, 최학사.
최승우 미천한 이 몸을 이렇게 대해주시니 어찌 견마지로를 다하지 않겠사옵니까? 이 목숨을 폐하께 바치오리다.
견훤 고맙소.. 참으로 고맙소, 최학사..
견훤이 일어서며 최승우를 일으킨다.
최승우 폐하, 절받으시오소서.
드디어 최승우가 신하로써 다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린다.
모두들 그런 최승우를 보고 있다.
최숭우를 보는 견훤의 표정이 그렇게 커 보일수가 없다. 절을 마치고 일어서는 최승우를 토닥거리는 견훤의 모습위로
해설 최승우, 일찍이 소개하였던 것처럼 그는 신라말 최씨로 이루어진 세 천재중의 하나이다. 신라의 귀족으로써 당나라에 유학하여 벼슬하였고 당나라의 관료로서 혼란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있던 중국 대륙을 누구보다도 정통하게 꿰뚫어 보았고 경험했던 사람, 그가 이제 견훤의 오른팔이 된 것이다. 견훤으로써는 어찌 무릎을 꿇고라도 그를 원하지 않았으랴. 한편, 이무렵의 궁예는 북원의 양길에게로 소환되어 가고 있었는데....
씬 23 길
궁예와 은부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오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병사는 여남은 명 뿐이다.
여전히 남루한 승복에 따르는 무리도 얼마 되지 않아 장군의 행차치고는 너무도 초라해 보이는 모습이다.
은부 주군, 얼마나 재미있는 세상이옵니까?
궁예 그게 무슨 말이오?
은부 북원의 양길은 글한자도 읽지 못하옵니다. 그런자가 삼십여개나 되는 성을 함락시키고 맹주노릇을 하고 있사옵니다. 더군다나 주군같은 분을 수하로 두고 있구요.
궁예 .............
은부 잘된 일이옵니다. 이번을 기회로 아주 끝을 내시오소서.
궁예 끝을 낸다........?
은부 양길은 명주성도 탐이 나고 또 그러다보니 주군께서 힘이 커지는 것도 두렵고....갈팡질팡이옵니다. 소인에게 생각이 있사옵니다. 그저 지켜만 보시오소서.
씬 24 양길의 성 외경
양길 (E) (반색하며) 궁예가 오고 있다 하였는가?
씬 25 동 양길의 처소
양길이 복지겸과 마주해 서 있다.
양길 하하하.. 그러게 내가 뭐라 그랬는가? 궁예는 사람을 속일만한 위인이 못되. 명주를 눈 앞에 두고서도 내가 부르니까 지체없이 달려오고 있지 않나?
복지겸 그렇게만 보실 일이 아니옵니다. 그 자가 다소곳이 오고 있는 이유는 나름대로 명분을 쌓고자 오는 것이옵니다. ‘보아라, 나는 이렇게 변함없이 충성을 다바치는데 모두들 나를 시기해 의심하기만 한다’ 이렇게 세상에 알리려는 술책이옵니다. 명주를 점령하게되면 태도가 달라질 것이옵니다.
양길 (뭔가 반론을 하고 싶지만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복지겸 잡아두시오소서. 이번에 궁예가 오면 절대 돌려보내지 마시오소서. 우리에 갇힌 범은 사람을 즐겁게 하지만 숲에 풀린 범은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양길 .....! 허면... 명주는 어찌한단 말인가?
복지겸 .....(그것만은 자신없다) 그 곳엔 명길 장군이 가 계시지 않사옵니까?
양길 명길이...?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겐가, 지금? 명길이 무슨 재주로 명주를 쳐? 내 아우이기는 하나 장수감으로선 한참 부족한 사람이야.
복지겸 .........(말문이 막힌다)......
양길 (한숨) 기왕 부른 것이니 한 번 더 확실하게 의중을 살펴보세. 그리고 정말 자네 말이 맞으면 이곳에 잡아두고 그렇지 않다면 하루라도 빨리 명주를 얻어야할게 아닌가?
복지겸 .......
양길 (대형지도를 황홀하게 바라보며) 두고 보게.. 이제 천하는 내 수중으로 들어올 것일세. 나는 북쪽 한산주로 진격하고, 궁예는 동북진하여 명주와 그 일대를 얻는다면 옛 삼한 영토의 절반을 차지한 형국이 아닌가?
복지겸 대장군, 명주는 신라 구주의 하나이옵니다. 엄청나게 큰 땅이옵니다.궁예가 그곳을 얻는다면 그 땅은 궁예의 것이지 대장군의 영토가 아닐 것이옵니다.
양길 그러니까 보자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으로서는 트잡을 잡을것이 없질 않은가? 오라고 하니 그 먼길을 오고 있어...(달래듯) 큰 장수란 대범할줄도 알아야하는 것일세. 사람을 좀 넉넉하게 볼 줄도 알아야 하고....그렇지 않고 어떻게 천하의 주인이 되겠는가?
복지겸 ....(답답하다)
씬 26 인서트
서산 너머로 저무는 해.
씬 27 세달사 어느 암자
도선과 왕건이 열려진 문을 통해 낙조를 바라보고 있다.
도선 저 낙조를 보게나, 오늘도 하루가 가고 있어.
왕건 ..........
도선 이제 곧 밤이 오고 다시 또 아침이 올게야. 하루가 이와 같고 한 해가 이와 같고 백년 천 년이 늘 이와 같았네....(사이) 사람이 나고 죽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다를 것이 하나도 없네. 자, 그렇다면 찰라와도 같은 이 세월을 어떻게 살고 보낼 것인가....
왕건 가르침을 주시오소서.
도선 허허허허.... 공자와 내가 이리로 온 것은 그 이치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네. 먼저 공자 자신이 누구 인가를 알아야 할것일세. 진아, 즉 참된 나를 볼수 있어야 밖을 보는 눈이 열려,
왕건 ...............
도선 인간의 마음 속에는 광활한 대 우주가 들어 있네. 나를 돌아보는 순간 우주를 보게 되지. 그 우주 속에 갈갈이 ?겨진 이 땅덩어리와 신음하며 죽어가는 중생들이 들어 있어. 안타까운 것은 아무나 그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야.
왕건 보고 싶사옵니다.
도선 허허허허.....그렇다면 먼저 눈과 귀를 씻고 혼탁한 마음을 씻어야지.
왕건 일러주시오소서
도선 일러달라는 그 마음이 벌서 반은 알고 있는 것이거니...지금부터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것이야.
왕건 .............?
도선 그리고 다 비운 그 마음으로 자신을 찾아야 하느니..... 내가 그대 옆에 기도하며 모든 사악한 것들과 마군이들을 쫓아줄 것이야.
왕건 대사님의 은혜가 하늘 같사옵니다.
도선 허허허허....다 정해진 하늘의 이치를 행할 뿐일세...나무관세음보살.. (책을 주며) 오늘부터 이 책을 읽게나.
왕건 무슨 책이옵니까?
도선 읽다보면 알 것이야. 사람들은 이 책을 도선비기라 하지.
왕건 (크게 놀라며) 도선비기?
해설 도선비기. 숱한 관심과 화제를 뿌리면서 천여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예언서의 이름이다. 도선이 지었다 하여 도선비기라 한다. 책의 내용은 오늘에 전하여지지 않고 있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데 풍수지리와 그에 얽힌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쓰여진 듯 하다. 이것을 지금 왕건이 전해받고 있는 것이다. 이때의 일을 고려사절요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태조의 나이 열일곱이 됨에 도선이 다시 와서 보기를 청하고서 당신은 백륙(百六-음양서에 말하는 백육년년만의 액운)의 운세를 만났으니 말세의 창생들이 공을 기다립니다 하고 군사를 쓰고, 진을 설치하며 필요한 지리와 천시를 읽는 법, 산천에 제사지내는 법과 감통하는 법, 그리고 보우하는 이치를 말하여 주었다” 라고 쓰여져 있다.
도선 사람들은 비기라 하지만 자연의 이치와 조화를 적어놓은 것 뿐일세. 이 책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 달리 보이지. 오로지 선택받은 자만이 제 뜻을 알수가 있어. 창생을 구할 길이 여기에 있으니 한자도 버리지 말고 다 마음에 담아 넣게나.
왕건 (감격하여) 대사님!
도선은 처절할만큼의 핏기를 내뿜고 있는 노을을 본다. 노을빛에 그의 얼굴이 초연히 물들고 있다.
씬 28 송악성/왕륭의 처소
평달이 찻잔을 내려놓는다. 평달과 식렴이 함께해 있다.
평달 대사께서는 왜 굳이 세달사로 조카를 데리고 가셨을까요?
왕륭 우리 같은 범인들이 어찌 신승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다만.... 뭔가 때가 이르고 있는 것 같으이....
평달 때라니요?
왕륭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이미 송악의 운명은 얼마 아니남았다고 말일세. 대사께서 오신 것은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시려고 하시는 것 같으이..... 우리 건이가 그 세상을 감당 하실 것이라고 하신 분이 대사님일세.
평달 형님께오선 진심으로 우리의 송악이 운명이 다 했다고 보시옵니까?
왕륭 다 했다기 보다도 .... 새것을 위해서 옛 것을 버리는 것이겠지. 식렴아.
왕륭 예, 백부님.
왕륭 이제는 너희들의 세상이 오는 것이다. 송악은 너희들이 새롭게 이르켜야 할 것이다. 장사를 더욱 열심히 배우고 건이를 도와 우리 왕씨 문중이 아닌 왕씨의 나라를 이르켜야 할 것이니라. 도선 대사께서는 말씀 하셨다. 우리 건이가 삼한의 창생들을 구할 것이라고... 너희들의 도움이 없이는 그것들이 참으로 어려울 것이야. 아니그러하냐?
식렴 명심. 또 명심하겠사옵니다. 백부님.
평달 형님, 하옵고.... 건이의 혼사는 어쩌실 요량이시옵니까? 아무래도 강장자분의 관심이 갈수록 크신 듯 한데....
왕륭 .....글쎄...
평달 글쎄...라 하심은.....?
왕륭 강장자는 타고난 장사군일세. 인근의 누구보다도 우리와 오래 되엇고 가까운 사이지.
하지만...그 사람은 그저 장사군일뿐이야. 이익만 쫓아 다니는 장사꾼 말일세.
평달 ...........?
왕륭 아우님이 보기엔 과연 연화가 제왕의 베필로 합당하다 보는가? 황후감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말이야.
평달 (놀라) ......?
왕륭 내가 마루고 있는 것은 그때문일세.
씬 29 강장자의 집/마당
진서방이 수많은 짐을 부리는 숱한 일꾼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 모습들을 강장자와 유금필이 보고 있다.
진서방 아, 그 소금들은 밖으로 다 내가게. 이 짐바리들은 배에 실을 것이니까 잘 다루고...... 아, 비단은 저 족으로 옮기게.....
유금필 (보고 있다가) 대단 하옵니다. 다들 어디로 가는 것이옵니까?
강장자 어디 가는 곳이 한 두 곳이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내가 이 일대의 장자라해도 장사에 있어서는 송악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 없다네.
유금필 이야기는 들었사옵니다마는....
강장자 우리와 송악이 힘을 합치며는 그야말로 패서 일대는 온통 우리 세상이 될 것인데....
유금필 양가의 교분이 오래 되었다 들었사옵니다. 어지해서 아직도 혼사를 이루지 못하시는지요?
강장자 송악의 사정때문일세. 장사군은 그저 장사꾼답게 살아야 하는것인데 송악사람들은 다른 생각들이 있는듯 하이.....
그대 하녀 슬이가 와서 아뢴다
슬이 나으리. 안에 찻상 대령이옵니다.
강장자 오냐, 자네도 가서 차 한잔 하세
유금필 아니옵니다. 들어가시오소서.
강장자 허허허, 나는 자네가 우리집에 오고 부터 근심걱정이 다 사라졌네. 이런 큰 장사를 하려면 든든한 주변이 있어야 하거든. 자네는 하늘이 내게 보내준 신장이야, 신장...허허허...
유금필 별 말씀을...
강장자가 안으로 들어 가고 유금필은 다시 거하게 움직이고 있는 짐바리들을 감탄처럼 보고 있다.
씬 30 강장자 거소
강장자와 연화모 백씨, 그리고 연화가 차를 마시고 있다.
백씨 용왕제 이후로 송악에서 통 소식이 없사옵니다?
강장자 ....글쎄요. 장사일이 바븐 모양이지요.
백씨 그동안 우리 사람들이 송악에 여러번 다녀왔지만 건이 공자를 통 보지 못했답니다. 소문을 듣자니 세달사에 들어가 있다는 얘기도 있던데..
강장자 세달사?
연화 세달사에는 무엇 때문에요?
백씨 내 말이 그말이다. 그렇게 바쁘다는 사람이 그 깊은 산중 절에는 왜 가 있단말이냐?
강장자는 고개를 외로 꼬고 생각에 잠긴다.
한참을 그러다 무릎을 탁 친다.
그런 강장자를 모녀가 본다.
연화 왜 그러시옵니까, 아버님?
강장자 도선 대사가 은밀히 송악에 왔다고 하였느니.....(또 생각하다가) 바로 그것이야.
백씨 무엇이 말이옵니까?
강장자 그 옛날 건이가 태어날 때 도선대사가 이곳에 왔었지. 그리고 무언가를 예언하였다고 들었느니. 송악의 왕성주는 그 말에 따라 집을 고쳐지었고....
백씨 그런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
강장자 바로 그것이야. 도선대사는 뭔가 이유가 있어서 이곳에 왔고 건이를 데리고 세달사로 간것이야.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말이지.
연화 왜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 하옵니까?
강장자 (한참 연화를 보다가) 허허허허.... 그 이유라는 것이....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큰일일것이니라. 아주 큰일.... 송악사람들은 우리같은 장사꾼이 아니거든. 적어도 천하를 흥정하려고 하는 사람들이야.... 하지만.... 이르기 어려운 것들이지(도리질하며) 어려운 일들이야....
연화 ......?
씬 31 세달사 어느 암자
외경 (밤)
도선이 계곡 바위 턱에 앉아 어둠속에서 참선을 계속하고 있다.
바람소리와 산짐승 울음소리들이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쪽달이 밝다.
도선 (E) 이제부터 공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할것이야. 이런 말이 있지. 하나의 칼을 목수가 들면 연장이 되고 도적이 들면 흉기가 되고 어린 아이가 들면 자신을 다치게 한다는 것이야.
씬 32 그 암자 방
도선은 보이지 않고 왕건이 책을 읽고 있다.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책속에는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다. 글자하나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들추어도 보이지
않는다.
도선 (E-계속) 내가 쓴 비기 또한 그와 같아서 사람들이 보질 못하게 하였다네. 이제 그대 앞에 놓였으니 세상을 구하는 목수가 되어 보게나. 자신을 버리라고 하였어. 모든 욕망과 탁한 마음을 씻어내고 이 책을 보게나 그제서야 뭔가가 보일 것이야.
왕건 그런 것이었사옵니까? 대사님. 그렇다면 이 왕건이가 아직도 한낮 미몽속에 허우적 거리는 범부에 불과했사옵니까? 아니보이옵니다. 아무것도 아니 보이옵니다.
도선 (E-책망하듯 날카롭게 에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라 하였어. 진실로 자신을 보고 우주를 보라 하였어. 미망에 잠겨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질 못하는 게야. 자신을 돌아보게. 자신을 보아.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우주를 끌어내란 말일세. 그대는 누구인가? 뭣하러 이 세상에 왔는가? 그대 스스로를 영웅이라 생각하는가? 영웅이 무엇인가? 저 궁예나 견훤이 군사를 일으켜 세상을 구하겠다고 엄청난 기세로 일어서고 있는데 그대는 저들과 무엇이 다르다 생각하는가가? 그대는 저들속에서 어찌할 것인가? 무엇으로 세상을 구하고 창생을 구할 것인가? 자신을 버리게 그리고 그 속에 새로운 우주를 담게나. 그리하면 보일 것이야. 다 보일 것이야.
도선의 추상같은 꾸짖음과 책을 보려고 허우적거리는 왕건의 필사적인 그 노력이 어우러지며, 왕건의 얼굴에서 디졸브...
씬 33 길
궁예들이 가고 있다.
흙먼지가 기승을 부린다. 그 때 길쪽에서 남루한 차림의 걸승이 다가오고 있다. 은부가 저만큼 먼곳을 가리킨다.
은부 북원성이 다 와가옵니다.
궁예 .......(끄덕인다 그러다가 다가오는 허월을 본다)
허월 (가까이 오며) 허허허...미륵의 행차가 어찌 이리도 초라한고...?
궁예 ......?
허월 나도 소문을 좀 들었지. 살아있는 미륵이 온다 하길래 누구인가 했더니 바로 그대들이로구먼..
궁예 ....(보다가 예사 중이 아님을 직감한다)
허월 생 미륵이라, 어마어마한 존칭이지. 헤헤헤... 이보시게, 그렇다면 자네 속명이 궁예가 맞는가?
은부 무엄하구나.. 이 분이 뉘신 줄 알고 수작을 부리는 겐가?
허월 누구긴 누구야? 미륵을 팔아 장사를 해 먹는 땡초지..
은부 뭐라?
궁예 (팔을 들어 제지한다) 보아하니 범상치 않은 도인이신가 본데 뉘시온지요?
허월 (미친 듯이 웃다가) 나같은 늙은이의 이름을 알아 무엇하려고....내가 알기로 그대는 죽주의 기훤이 밑에 있다가 지금 가고 있는 북원의 양길이에게 갔었지.
궁예들 .......?
허월 그리고 이제 명주를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의심많은 양길이가 그대들을 불렀단 말씀이야. 아니그런가?
궁예 그렇사옵니다. 다시한번 여쭈옵니다. 도인은 뉘시온지요?
허월 (들은척도 않고) 세상을 구하겠다고 세달사를 뛰쳐나왔는데 아직도 이러고 헤매고 있으니... 미륵이란 이름이 부끄럽도다. 황천에 가 있는 범교가 이 일을 알면 얼마나 상심을 할꼬.
궁예 (놀라) 지금 뭐라고 하셨소이까? 황천이라니? 범교 스님께서 세상을 뜨셨단 말씀입니까?
허월 쯧쯧쯧.... 살아있는 부처를 칭하면서 스승이 죽은줄도 모르니 그리고 무슨 세상을 구하겠다고.. 잘들 가 보시게.
궁예 어르신... 보아하니 불문에 계시는 듯 한데. 뉘시옵니까?
허월 나는 허월이라는 중일세.. 나중에 또 보게 될 걸세.
허월이 웃으며 사라져 간다. 그 모습을 보며 뭔가 생각에 잠기는 궁예.
은부 미친 중이 아니옵니까?
궁예 그렇지 않아요. 예사로운 사람이 아닌 것 같소이다. (보다가) 스승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범교 큰 스님께서...
궁예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은부가 숙연히 보고 있다.
궁예 허망한 세상입니다. 스승께서 돌아가셨는데 이 몸은 아직도 이렇게 먼길을 헤매고 있으니.... 은장군
은부 예, 주군.
궁예 사람을 세달사로 보내어 이 사람의 조상을 전하도록 해 주시구려.
은부 예, 주군. 조처하겠사옵니다.
궁예 가십시다.
씬 34 북원성
성안으로 궁예들이 들어서고 있다.
기다리고 있던 복지겸과 양길의 수하들이 이들을 맞고 있다.
미향도 보인다.
복지겸 어서들 오시오. 대장군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은부 허허, 자네 참 오랜만에 보네 그려. (미향에게) 마님, 그동안 안녕하셨사옵니까?
미향 .....(묵례만)
궁예 (미향에게) 오랜만이오. 별고 없으셨소?
미향 예, 장군.
복지겸 자, 어서 안으로 드시지오.
씬 35 양길의 거소
궁예들이 양길에게 막 절을 끝내고 있다.
양길이 흠족한 듯 보고 있다. 환선길과 이흔암, 사위들도 자리해 있다.
양길 어서들 오게나. 먼길 오느라 고생들 하였네.
궁예 부르심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왔사옵니다.
복지겸 ...... (날카롭게 보고 있다)
궁예 어인 부르심이온지 소장은 궁금하옵니다.
양길 무엇 큰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세. 자네는 그동안 참으로 믿지 못할 만큼의 전공을 올려왔네. 위로차 부른 것이야.
궁예 명주성의 공략을 눈앞에 두고 있사옵니다. 소장들을 위로해 주시려는 뜻은 참으로 고맙사오나.....
양길 (제지하며) 아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네. 하지만 그런 큰 전투를 앞에 두었는데 내 어찌 그냥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 것 뿐일세.
은부 지당하시옵니다. 대장군의 크고 넓으신 뜻을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소장들은 그저 감읍, 또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이제 곧 대장군께서는 폐하로 불리실 것이옵니다. 폐하시옵니다.
양길 (기분 좋아서) 아, 뭐... 그거야.....
모두들 그런 은부를 본다. 궁예는 말이없고 복지겸은 약간 찡그린다.
은부는 계속한다.
은부 폐하, 명주는 궁예장군께서 기필코 함락시킬것이옵니다. 어찌
폐하라 아니 불리시겠사옵니까? 세상에 누가 폐하 밑에 무릎을 꿇지 않겠사옵니까?
양길 고맙네. 나도 그리 생각하네. 하지만 아직까지는 시기가 아닐세. 명주가 함락되면 그리 되어야지.
은부 이름있는 공장이들을 불러 호화찬란한 왕관을 만드시오소서. 빛나는 옥좌를 만드시고 만인을 호령하시오소서. 그 일을 궁예장군께서 곧 이루어 드릴 것이옵니다.
양길 암, 암... 그래서 내가 이렇게 크게 위로한번 해주려고 부른게 아닌가? 아니그런가, 사위?
미향 ......
궁예 감사하옵니다.
복지겸 ......
양길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일세. 이 좋은 날 어찌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 연회를 준비하거라. 오늘 크게 한 번 마셔보자꾸나. (디졸브)
씬 36 동 성안 연회장
분위기가 무르 익어 있다. 풍악이 울리고 기녀들이 춤을 춘다.
모두들 왁자하게 취해있다.
양길 사람들은 내가 이번에 그대들을 부른 것에 대하여 간혹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야.
궁예 .....
양길 혹시나 자네들을 믿지 못하여 그리하였는가 하고 말이야. 그럴수도 있지 않은가? 자네는 여기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고 군사도 많아 생각하기에 따라서 내가 아무리 부른다고 하더라도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
은부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폐하. 촌각을 다투어 가며 이렇게 왔지 않사옵니까?
양길 물론, 물론일세. 역시 내 믿음은 정확했어. 그렇고 말고... 그러니까 일체의 오해를 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야. 아니들 그런가?
복지겸 ......
환선길 이를 말이옵니까? 이번에 영을 받고 즉각 달려온 것으로 보아 궁예 장군의 충성심은 세상에 들어나게 되었사옵니다.
이흔암 암, 소장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양길 이곳에서 며칠 푹 쉬면서 우리 앞일을 한 번 의논해 보세나. 오늘은 마음껏 마시고, 자 드세 들어.
술자리는 무르익는다.
양길은 계속 웃음을 터뜨리고 복지겸은 말이없다. 미향은 궁예를 보고있고 은부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복지겸을 본다.
씬 37 그 성 일각
건물 모퉁이에서 복지겸과 은부가 함께 서 있다.
은부가 웃으며 말한다.
은부 이번 일은 다 자네가 꾸민것일 테지? 하지만 좀 심했네 그려.. 전장에 나간 장수를 아무 이유도 없이 불러들인단 말인가?
복지겸 자네들 속을 나는 다 읽고 있다네. 명주를 얻으면 궁예는 돌아오지 않을 걸세. 궁예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야.
은부 참으로 딱하이. 아까 다 보지 않았는가? 지금 양길은 황제자리가 급한 것일세. 아니그런가?
복지겸 사네들이 사는 세상은 신의라는 것이 있네. 한 번 몸을 의탁했으면 지킬줄을 알아야 하는 것이야.
은부 (웃고)... 장부란 죽을 자리를 보고 몸을 맡기는 법일세. 양길은 아니야.
복지겸 그렇다면 궁예가 진정한 영웅이란 말인가?
은부 (끄덕인다)....물론이지. 마음을 여시게. 죽을 자리는 제대로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복지겸 ......?
씬 38 미향의 방
궁예와 미향이 차를 앞에 두고 앉아 있다.
냉냉한 분위기다.
궁예 (차를 마시고는) 그 동안 어찌 지냈소?
미향 ....분부하신대로 불도에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궁예 (끄덕이고) 무슨 경전을 읽고 있소?
미향 미륵경이옵니다.
궁예 .....(보다가 미소) 아니오. 그대는 경을 한 줄도 보지 못하였소.
미향 .......?
궁예 그대의 얼굴엔 번뇌만이 가득하오. 아직도 티끌 하나 털어내지 못하였소.
미향 ......(눈물이 흐른다) 그렇습니다. 소녀는 부처가 아니옵니다. 미륵도 아니옵니다. 평범한 여인일 뿐이옵니다.
궁예 딱한 일이오.
미향 소녀는 미련하여 아무것도 모르옵니다. 미륵경에 이르기를 미륵부처는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하여 제도하신다 하셨습니다. 하온데, 미륵의 아낙인 소녀를 어찌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시옵니까?
궁예 (고개를 가로젖는다)
쯧쯧쯧..... 나무석가모니불.
미향 서방님은 부처일지 모르겠지만 소녀는 사람이옵니다.
궁예 .......(표정이 굳어져 무섭게 본다).....
미향 이렇게 사는 바에야 차라리 목숨을 끊고 싶사옵니다. 소녀를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궁예 ........
미향 어찌 하실것이옵니까?
궁예 무엇을 원하오?
미향 장군께서는 소녀의 낭군이시옵니다. 싫든 좋든 그리되었사옵니다.
궁예 ......(여전히 차갑게 본다)
미향 진정한 서방님으로 뫼시고 싶사옵니다. 서방님의 아낙이고 싶사옵니다. 아니면 죽음 뿐이옵니다.
궁예 (한참 그렇게 보다가 웃는다) 무슨 말인지를 알겠소. 그렇소이다. 내게는 계율따위는 이미 없소이다. 왜? 나는 깨달았기 때문이오. 미륵이 되었기 때문이오.
미향 .....
궁예 오늘 밤 그대는 부부의 연을 맺기를 원하는 것 같구려. 내가 계율을 고집하면 분명 그대는 목숨을 버릴 것이오. 그 옛날 원효도 그리하여 계율을 넘어서 버렸지.
미향 ....
궁예 그리하리다. 그러나, 기억하구려. 이밤뿐이외다. 오히려 오늘의 일이 그대에게 있어서 두고두고 아픈 상처가 되어 무간지옥같은 어둠을 보게 될것이오. 이후로 나를 원망마오. (사이) 이리 오시구려. (사이) 가까이.... 더 가까이....
미향 .....
궁예 어서....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히고 있다.
미향은 떨고 있고 궁예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그런 미향을 보고 있다. 그런 궁예의 표정에서
<끝> (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