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준, 시 같은 그의 첫 산문집"
시인 박준은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만큼이나 긴 제목의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오랜 준비 끝에 내놓았다. 마음을 잔잔하게 흔드는 제목과 이목구비 없는 연인의 묘한 표지 그림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책은, '시인 박준', '박준이라는 사람'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때로는 시처럼, 때로는 산문처럼 펼쳐 보인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이긴 하나, 마음 가는 대로 그 어딜 펴서 읽어도 무방하다.
시인은 지난 기억의 장면들을 하나둘 꺼내 차분한 호흡과 섬세하고 담백한 언어로 민낯과도 같은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에 관해 들려준다. 그를 통과한 죽음, 가난, 관계, 사랑, 이별의 글들은 자주 울고 웃게 만들면서 삶은 어떻게든 살아지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시인의 말처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시인과 같이 울고 나면 조금 힘이 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읽는 내내 우리와 보폭을 정확히 맞춰줍니다. 까만 뒤통수를 내보이며 앞서 가는 책도 아니고 흰 얼굴로 흐릿하게 멀어지며 뒤로 가는 책도 아닙니다. 그냥 옆에 있는 책입니다. 마냥 곁이 되는 책입니다. 가끔 사는 게 힘들지? 낯설지? 위로하는 듯 알은척을 하다가도 무심한 듯 아무 말 없이 도다리 쑥국이나 먹자, 심드렁히 연인에게 말하기도 하는 책입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벤허> 단체관람을 간대. 나는 못 갔지. 돈이 없으니까”, 하는 아버지에게 “나도 수학여행 못 갔네요. 돈 없어서. 그런데 다행인 것은 그때가 딱 IMF 때라 못 가는 친구들이 많았어. 다행이지. 가난도 묻어갈 수 있다니”, 의기양양 아버지와 대화를 섞게 하기도 하는 책입니다. 몇 해 전 사고로 누나를 잃고 누나의 편지를 정리하며 누나의 여고 시절 편지 속 “오늘 점심은 급식이 빨리 떨어져서 밥을 먹지 못했어”라는 구절에서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10여 년 전 느낀 어느 점심의 허기를 10여 년 뒤 느낌으로써 거미줄 같은 세상사 연연의 끈을 계속 쥐게도 해주는 책입니다. 어쨌거나 울 사람은 우는 그대로 안 울 사람은 안 우는 그대로 그렇듯 내키는 그대로 살게 하는 책. 울든 안 울든 네가 발 딛고 선 그 지점이 언제나 출발선이니 언제든 너는 자유야, 하는 아리송한 전언을 주는 책. 그렇게 희망이 되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