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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민수기1장1~54절
제목 : 약속의 성취, 여정의 준비
민수기는 광야의 행군을 위한 인구조사에서 시작됩니다.
인구조사는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인 동시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 주는 명확한 증표입니다.
1. 인구조사 명령(1~4절)
1) 인구조사 시기입니다(1절)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애굽 땅에서 나온 후 -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10대 재앙으로 인해 마침내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
언약의 땅 가나안을 향해 출애굽을 감행한 시점과 장소는
B.C.1446년 1월 15일 고센 지역 라암셋(Rameses)에서 였습니다(출12:37).
그리고 이때는 야곱이 요셉의 초청으로 그 가족과 함께 애굽으로 이주한 (B.C.1876년) 때로부터 430년이 흐른 뒤였습니다(출 12:40).
한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후2달 만에 시내 산에 도착했습니다(B.C. 1446년 3월 15일, 출 19:1).
그리고 시내 산에서 성막 계시와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가지 규례들을 지시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출애굽 2년(B.C.1445년) 1월 1일에 성막을 건립했습니다(출40:17).
그리고 성막 건립 후 곧 레위기 규례가 주어 졌습니다.
시기상 이 규례들은 출애굽 제 2년 1월에 주어진 것입니다.
이어 민수기 규례가 출애굽 제 2년 2월 1일부터 주어지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이 모든 규례들은 시내산 기슭에서 주어 졌거나 혹은 일어난 사건들 이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제 2년(B.C.1445년) 2월 20일에 시내 산을 떠났습니다.
이때는 시내 산에 도착한 지 9개월 닷새가 지난 뒤였습니다(10:11).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 -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시점부터 만 1년 보름이 지난후의 첫날로서, 성막이 세워진 지 한 달 후이며(출 40:2,17),
이스라엘이 군대로서의 조직을 완료하고 시내 광야를 떠나기 20일 전입니다(10:11).
여기서 '2월'은 '시브 월' 곧 바벨론식 명칭(바벨론 포로 이후)으로는
'이야르 월'이며, 오늘날 태양력의 4,5월에 해당합니다.
한편 이스라엘이 이곳 시내 산에서 근 1년 동안 계속 체류한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 된 선민으로서 그들의 삶에 필요한 종교·도덕·사회의 각종 율법을 계시 받고, 또한 그들의 삶의 중심적 역할을 할 성막을 건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출애굽의 감격에 도취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시간 내에 가나안에 입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따르는 신앙과 그분을 중심한 경건한 생활이었습니다.
만약 이것 없이 가나안이 쟁취된다면 그곳은 그들에게 복된 땅이 아니라 타락과 방종의 땅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직역하면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입니다.
여기서 '그리고'라는 접속사가 본서와 레위기와의 연계 관계를 보여준다는 견해가 있으나, 차라리 먼저 전개된 출애굽기의 사건들을 이어받는 말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원문에는 이문구가 첫머리에 있어서 본서가 지니는 신적권위를 처음부터 강변(强辯)해 주고 있습니다.
본서는 이렇게 여호와의 분부로 시작해서 여호와의 명령으로 끝맺고 있습니다(36:13).
이러한 구성은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의 광야 훈련과정을 기록한 본서의 내용 전개와 잘 부합되는 것입니다.
실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군대를 조직했고,
질서있게 진을 쳤으며(2:1-34),
질서있게 행군했고(10:11-28),
대적들과 싸워 연전 연승을 거두었습니다(21:1-3,10-35; 31:1-54).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할일에 대한 지시를 받았습니다(33:50-36:13).
비록 여러 번에 걸친 불신앙적 태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는 했어도, 전반적으로 광야의 훈련을 무사히 겪어낸 이스라엘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매우 큽니다.
즉 이스라엘 군대의 행동 원리였던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 순종'은 오늘날의 십자가 군대인 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합니다.
광야 회막에서 - 여기서 '광야'(미드바르)란 건조한 계절에는 생물이 살수 없는 불모지가 되고 강우기(降雨期)에만 풀들이 자라는 '스텝'(steppe)지역을 가리킵니다.
결국 10월과 4월 사이에 내리는 약간의 겨울비와 8,9월에 내리는 이슬로 1년을 버텨야 하는 팔레스틴의 기후 조건으로 볼 때 실로 '광야'는 인간이 견뎌내기 힘든 '죽음의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곳에서 식량 생산을 위해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이 1년여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 기적 중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의 땅'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회막'은 바로 이 기적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공합니다.
즉 그들은 그들의 삶 중심부 깊숙이 개입하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죽음의 땅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광야에 세워진 회막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고,
생명을 싹트게 하는 생명의 처소,
곧 '광야 교회'라 불리워질 수 있습니다(행7:38).
한편 본문에 언급된 회막(오헬 모에드)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만나는 장소'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리고 개역 성경에는 '오헬'이라는 동일한 원어가 '성막'(출 26:9), '장막'(출 16:16),'회막'(출 33:8)등으로 별 구별 없이 혼용(混用),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처럼 '만남의 장소'라는 독특한 의미를 강조할 때의 원어는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서의 만남'이란 뜻의 '모에드'와 결합된 '오헬 모에드' 형태로 언급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이며 동역자인 모세를 당신의 처소에서 친근히 만나 그에게 당신의 원대한 계획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구약의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시기만 한 분으로서 인간이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초월적인 분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만나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시고 또한 기뻐하십니다(사 55:1-7).
2)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하라고 합니다(2절)
“[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회중('에다')는 '약속하다', '징벌하다'는 뜻의 '야아드'란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이는 단순한 의미의 군중(콜 카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하에 있는 이스라엘, 곧 언약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교회를 가리켜 '회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 남자의 수 - 고대 이스라엘은 통상적으로 여자와 어린 아이를 독립된 개체로 인정치 않았으며, 그렇기에 오직 남자 성인(20세 기준)만을 인구로 계수하는 것이 관행(慣行)이었습니다(마 14:21).
그러나 이는 그들이 여자나 어린이의 인격과 생명을 무시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이것은 당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부장(家父長)이 그 가족을 대표했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이 주로 성인 남자들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것 등의 종교적인 견지에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고전 11:3,7-9; 딤전 2:12,13).
특별히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군대를 조직하려는 목적상 하나님의 거룩한 군사로의 부름 때문에 성인 남자들만이 계수되었습니다.
가족과 종족을 따라 - 가족(미쉬파하)이란 아버지와 어머니를 중심한 1세대의 가정을, '종족'(베트 아보트)이란 '아버지', '우두머리(조상)'를 의미하는
'아브'와 '집','가족' 등을 의미하는 '바이트'의 합성어로서 곧 많은 가족들이 모인 집단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것은 '가족'보다는 크고 '지파'보다는 작은 규모의 집합체를 뜻합니다(수 7:14).
한편 이와 같이 혈연관계를 중심하여 각각을 계수하게 한 것은 결코 분열 의식이나 비정상적인 경쟁의식을 부추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1)각자의 출생 근원을 기억하게 하며,
(2) 각각의 가족공동체가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추진해 간다는 공동체 의식과 선민(選民)의식 및 역사의식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습니다.
명수(名數)대로 - 여기서 '명수'란 사람을 샘할 때 각각의 대상이 되는 '머리'
(HEAD), 또는 '계산된 수'(count, number)를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KJV에서는 '그들의 이름 수대로'(according to the number of names)라는 뜻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는 한 사람의 누락도 없이 모두 계수되어야 함을 나타낸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마치 택한 백성들의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하나의 누락도 없이 등재(登載)됨을 연상시킵니다(계 21:27).
계수(計數)할지니 - '계수하다'란 말은 히브리어로 '파카드'인데 '계수하다'는 의미보다 오히려 '점호하다', '정열하다'는 뜻의 군사적인 용어로 번역함이 좋습니다(Lange).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군대 조직으로 재편성하시기 위해 인구
조사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출 12:17,51).
한편 KJV에서는 '총계를 내다'(take the sum)로, 여타 영역본에는
'명부에 게재하다','등록하다'(register)로 번역했습니다.
3) 이십 세 이상으로 그 진영별로 계수합니다(3절)
“[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이십 세 이상으로 - 여기서 '20세'란 육체적으로 성숙하고 건장한 자인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미숙하지 않은 자란 의미를 내포합니다. 따라서
(1) 비록 체력적으로 건장하고 나무랄데가 없다 할지라도 연령이 20세에 미달될 때에는 군대 조직에 계수함 받을 수 없었고
(2) 비록 연령상으로는 20세가 넘었다 할지라도 체력적으로 전쟁에 참가하기 어려운 자, 곧 신체 허약자 및 신체장애자들 역시 군대 편제상 계수함 받을 수 없었습니다(Matthew Henry).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 중 이 두 조건들이 모두 갖춰지지 못할 때 그는 '싸움에 나갈 만한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십자가의 군사로 부름 받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고 강건할 때 비로소 대적 마귀와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요일 2:13,14).
한편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는 본장에서 무려 14회 반복되고 있습니다.
4)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뽑습니다(4절).
“[4]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
우두머리 - 각 지파 장로들의 모임을 대표하는 자(NIV, the chief leader)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모세와 아론을 보필하여 이번 연구조사를 주도해 갈 자로 부름받았습니다.
너희와 함께 하라(이트켐이흐유) - 직역하면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라'란 뜻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은 수많은 민사 소송을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한 행정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출 18:13-26).
하지만 광야 행진과 가나안 정복 전쟁을 조직적으로 수행해 낼만한 군사 체계는 아직 미흡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단의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즉 군대는 한 사람의 독불 장군이 지휘할 때보다 명석한 참모들과 유능한 일선 지휘관들의 협조가 뒷받침될 때, 보다 능률적으로 움직여진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판단보다 여러 사람의 판단과 협력이 어우러질 때 교회가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謀士)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잠 15:22).
2. 지파별 지휘관 명단(5~16절)
1) 함께 설 사람의 이름입니다(5절)
“[5] 너희와 함께 설 사람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 지파에서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요”
함께 설 사람 - 여기서 '서다'(아마드)란 말은 시중들기 위해 곁에서 긴장하며 기다리고 서 있는 자세를 일컫습니다.
그러므로 모세, 아론과 '함께 설 사람'이란 두 지도자를 보좌하여 하나님의 뜻을 원활히 수행해 갈 협력자 내지 조력자(助力者)를 뜻합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의 교회 지도자들은 바로 우리의 유일한 지도자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선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조력자로서 복음 전파 사역을 담당한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열 두 지파에서 우두머리 이름입니다(5~16절)
“[6] 시므온 지파에서는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요[7] 유다 지파에서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8] 잇사갈 지파에서는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요[9] 스불론 지파에서는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요[10] 요셉의 자손들 중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요 므낫세 지파에서는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요[11] 베냐민 지파에서는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요[12] 단 지파에서는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요[13] 아셀 지파에서는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요[14] 갓 지파에서는 드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요[15] 납달리 지파에서는 에난의 아들 아히라이니라 하시니[16] 그들은 회중에서 부름을 받은 자요 그 조상 지파의 지휘관으로서 이스라엘 종족들의 우두머리라”
본문은 인구 조사를 담당할 실무진들의 명단을 하나님께서 친히 제시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들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하나 같이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즉 그들의 이름에는 '엘'(하나님), '아비'(아버지), '아히'(형제), '술'(반석)등의 종교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셈족 계통의 어근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는 적어도 그들의 삶이 하나님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1) 각 지파 두령과 이름의 의미
한편 각 이름들을 도표화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파명두령명 | 이름의 의미 |
르우벤 엘리술 | 하나님은 반석이심 |
시므온 슬루미앨 | 하나님과 평화롭게 |
유 다 나 손 | 하나님께 예물 드린자 |
잇사갈 느다넬 | 하나님께서 주심 |
스불론 옐리압 |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심 |
브라임 엘리사마 | 하나님께서 들으심 |
므낫세 가말리엘 | 하나님은 상급이심 |
베냐민 아비단 | 아버지는 심판관이심 |
단 아히에셀 | 내 형제가 도움 |
아셀 바기엘 | 하나님께서 만나 주심 |
갓 엘리아삽 | 하나님께서 더하심 |
납달리 아히라 | 고난의 형제 |
2) 회중에서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여기서 '회중'(에다)은 '증거'(창 31:52), '증인'(레 5:1) '징벌'(미 6:9), '약속'(암 3:3)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로서(2절), 이스라엘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의를 증거 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은 언약 민족임을 시사해 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민의식 속에서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출 19:5,6).
그런데 5-15절에 언급된 족장들은 부름 받은 회중 가운데서 또다시 부름을 받은 자들이므로 더욱 영예로운 위치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 역시 죄악 세상에서 불러 내시사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롬 8:30)으로 말미암아 선택 받은 자로서의 영예를 누리고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벧전 2:9).
더욱이 그 중에서도 일꾼으로 소명을 받은 교회 지도자들은 더한층 그 영광의 직분에 감격하면서 성심껏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고후 3:6-11).
3. 각 지파별 계수 및 총계(17~46절)
1) 모세와 아론이 지명된 사람들입니다(17절)
“[17] 모세와 아론이 지명된 이 사람들을 데리고”
지명된(니케부 베쉐모트) - '그 이름으로 표시된'이란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매우 직접적이고 개인적입니다.
아마 그것은 사명감을 보다 분명히 하고, 신적 직분의 권위를 각자에게 부여하기 위한 배려로 생각됩니다.
모세(출 3:1-4:31), 여호수아(신 31:23), 기드온(삿5:11-24), 사무엘(삼상 3:1-21), 이사야(사 6:1-13), 예레미야(렘 1:4-19),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막 3:13-19), 바울(행 9:1-22)등이 하나님에 의해 직접적으로 지명된 일꾼의 대표적 경우입니다.
한편 초대교회 이후에는 사도들과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교회 직원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행 7:5-7; 14:23; 딛 1:5).
그러나 간접적으로 선출된 일꾼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명 받아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딤전 6:12), 디모데처럼 신적 권위를 갖고 사역해야 할 것입니다(1:1-16 강해,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의식).
2) 둘째 달 첫째 날에 온 회중을 모입니다(18절)
“[18] 둘째 달 첫째 날에 온 회중을 모으니 그들이 각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인 남자의 이름을 자기 계통별로 신고하매”
자기 계통별로 신고하매 -즉'출생을 밝혔다'.'계보에 입적하였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선민으로서의 구비 요건 중 가장 중요시 한 것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출신을 명확히 아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개체로서의 자신 이전에 하나님과 연관된 가문 및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신을 더 중요시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이 가문을 통해 계속 자신이 살아갈 것을 신앙처럼 믿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각 지파는 계보에 올라가 있는 자들에 한해서 군사수를 점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보에 들지 않은 자들은 약속의 후손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정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스 2:62).
그 결과 출애굽시 이스라엘을 따랐던 '중다한 잡족'(출 12:38)은 군사로 동원되지 않고 단순히 노동에만 종사한 듯이 보입니다(신 29:11).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살면서 불평불만의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초래하게 했습니다(11:4-6,33).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이 군대 편성에서 제외된 것은 당연합니다.
한편 오늘날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하는 교회 역시 구성원들인 성도들의 계보와 출생이 분명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로서 난 자(요 1:13),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신자(약 1:18), 생명책에 녹명된 자(빌4:3)라야 진리와 복음을 위한 투사가 될 수 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사단의 수하에 있으므로, 진리의 편에 서지도 못하고(요 8:44)사단을 대적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마 12:25,26).
그러므로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가시적인 교회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는 거듭났다고 자처하는 신자들이 최선을 다해 불의와 싸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자들이 거듭나지 못했거나 영적 출생을 거의 무시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폐단을 개선하지 못하는 한, 교회는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히는 소금'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마 5:13).
3)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시내 광야에서 그들을 계수하였습니다(19절)
“[1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가 시내 광야에서 그들을 계수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 이 말의 뜻은 회막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받았던 모세가 그 명령을 게으름이나 부주의 함 없이 신속, 정확하게 준행했음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이어서 인간이 그것을 수행해도 되고 그렇지 않아도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볼 때 그 명령이 불합리하고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오직 전적인 순종만이 요구될 뿐입니다(창 22:1-19).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폭꾼의 포악스런 명령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그 명령과 더불어 그 명령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역동적인 힘을 제공합니다(창 1장; 느 9:8).
그러므로 명령 받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순종뿐입니다.
계수 하였더라 - 성경 기록상 계수 기간은 단 하루 걸렸음을 알수 있습니다(1,18절).
이처럼 60만 명이 넘는 장정들의 인구 조사가 단 하루 동안에 끝날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일전에 성막건축을 위한 인두세(人頭稅) 수금시 인구 조사를 철저히
실시했던 그 자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며(출 30:11,12; 38:26)
(2) 이스라엘 백성이 한 곳에 밀집하여 모여 있었다는 사실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고
(3) 또한 각 두령들의 헌신적인 노력 및 백성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4) 르우벤 지파 계수된 자는 46,500명입니다(20,21절)
“[20]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각 남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21] 르우벤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사만 육천오백 명이었더라”
르우벤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 - 르우벤은 이스라엘(야곱)의 12아들 중 장남이었으나, 서모(庶母) 빌하와 간통함으로써 가문과 여호와의 영광을 더럽혔습니다(창 35:22;49:4).
그 결과 그는 저주를 받아 장자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대신 요셉이 그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대상 5:1,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 여전히 르우벤 지파가 인구 조사 결과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아마 그의 영적 장자의 지위는 인정치 않더라도, 육체적으로 야곱의 첫째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는 본서 기자(記者)의 의도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5) 시므온의 지파 계수 된자가 59,300명, 갓 지파 계수된 자가 45,650명입니다(22~25절)
“[22] 시므온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각 남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23] 시므온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오만 구천삼백 명이었더라[24] 갓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25] 갓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사만 오천육백오십 명이었더라”
르우벤 지파와 함께 시므온과 갓 지파가 언급된 것은 그들이 르우벤 지파와 가장 절친한 형제 지파이기 때문입니다.
즉 시므온은 르우벤을 장남으로 낳은 레아의 둘째 아들이며,
갓은 레아의 시녀인 실바의 장남입니다(창 29:33; 30:10,11).
한편 이들 세 지파는 진 배치에 있어서도 동일한 선상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일련의 조치는 결코 파벌 의식을 조장키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갈등과 마찰을 해소시키고 형제의 우애를 돈독하게하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조치였습니다.
사실 인간이 모인 곳에는 어디나 갈등과 긴장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만유를 통일하시며 평안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당면한 모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엡 4:6).
6) 유다 지파(74,600명), 잇사갈 지파(54,400명), 스볼론 지파(57,400명)
“[26] 유다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27] 유다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칠만 사천육백 명이었더라[28] 잇사갈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29] 잇사갈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오만 사천사백 명이었더라[30] 스불론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31] 스불론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오만 칠천사백 명이었더라”
광야 행진에서 유다 진기(陣旗)에 속한 지파의 총계입니다.
여기서 유다가 레아의 넷째 아들이면서도 르우벤 진(陣) 배열에 소속되지 않은 것은 그가 르우벤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장자에 피택 되었으므로 독립적인 지위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창49:8-12).
특별히 이 지파는 가장 많은 군인 수를 보유하였을 뿐 아니라. 광야 행진중 선봉(先鋒)에서는 영예로운 승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야곱의 예언(창 49:8-11)이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바, 이후 예수님께서 이 지파에서 출생하심으로써 야곱의 메시야적 예언은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마 1:2; 계 5:5),
한편 유다 지파와 절친한 레위 지파가 이곳에 등재되지 않은 것은 그 지파는 특별히 성막봉사자들로 성별(聖別)되어 군복무를 면제 받았기 때문입니다(47-53절; 8:9-26).
그리고 유다 진영의 깃발아래 소속된 잇사갈과 스불론은 각각 레아의 다섯째와 여섯째 아들입니다(창49:1-28 강해, 이스라엘 열 두파의 형성과 분류).
7) 에르라임 지파(40,500명),므낫세 지파(32,200명), 베냐민 지파(35,400명)
(32,33,34,35,36,37)
“[32]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33] 에브라임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사만 오백 명이었더라[34] 므낫세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35] 므낫세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삼만 이천이백 명이었더라[36] 베냐민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37] 베냐민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삼만 오천사백 명이었더라”
본문은 요셉과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들의 총계이다.
여기서 요셉의 두 아들의 지파가 삼촌들의 지파와 동등한 위치에서 계수된 것은 구속사의 일익(一翼)을 담당했던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축복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창 48:5-20).
그중에서도 동생 에브라임 지파가 모든 면에서 형 므낫세 지파보다 우위를 차지한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주권적 선택의 결과였습니다(창 48:13,14,17-19),
즉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유언적 예언을 통해 '그 아우를 그 형보다 크게' 하셨던 것입니다(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이성과 제도에 얽매이시지 않고 당신의 선한 계획을 추진해 가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초월적이고 주권적인 섭리 앞에 인간은 다만 겸손히 그것을 수용, 인정해야 할 뿐이다(롬 18-29).
8) 단 지파(62,700명), 아셀 지파(40,500명),납달리 지파(53,400명)
(1:38,39,40,41,42,43)
“[38] 단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39] 단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육만 이천칠백 명이었더라[40] 아셀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41] 아셀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사만 천오백 명이었더라[42] 납달리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43] 납달리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오만 삼천사백 명이었더라”
본문은 단 지파와 그의 가까운 지파들 곧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의 군인수 총계입니다.
이들은 계수 때나 행진시를 불문하고 맨 마지막에 언급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육적으로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열등한 지파였기 때문입니다(2:25-31: 10:25-27).
특히 단 지파는 가나안 정착 이후에 이스라엘 내에서 기업이 될 땅을 얻지 못해 방황하기도 했으며, 또한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자적으로 우상 숭배를 일삼아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기도 했습니다(삿18장).
그러므로 계시록의 기록에 의하면 결국 이들은 12지파의 반열에서 제외되는 비운을 맞게 됩니다(계 7:5-8).
이는 단의 장래를 예언한 야곱의 말이 온전히 성취된 것입니다(창 49:16-18). 이러한 단 지파의 결말은 곧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자들의 최후가 허무와 절망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단 진영의 깃발 아래 소속된 아셀은 레아의 여종 실바의 막내 아들이고, 납달리는 라헬의 여종 빌하의 막내 아들입니다(창 30-13).
9) 열두 지휘관이 계수하였습니다(44절).
“[44] 이 계수함을 받은 자는 모세와 아론과 각기 이스라엘 조상의 가문을 대표한 열두 지휘관이 계수하였더라”
열두 지휘관 - 이들은 이번 인구 조사를 위해 이스라엘 12지파를 대표하여 뽑힌 자들이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족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시'는 '높이 들리다'란 뜻의 '나사'에서 파생된 말로, 곧 각 지파의 군대 지휘관들을 의미합니다.
한편 이 말이 4절에서는 '우두머리'(captain)로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보다 자세한 내용은 4절 주석을 참조하라.
10)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을 다 계수했습니다(45절).
“[45]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 조상의 가문을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이 다 계수되었으니”
이 십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 한자 - 1:3 주석 참조.
계수되었으니 - 즉 성전(聖戰)을 담당할 군인 명단에 등재 되었음을 뜻합니다(2절).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곧 (1) 그들이 사적(社的)인 존재에서 이스라엘은 백성을 대표하여 싸우는 공적(公的)인 존재로 변화되었다는 점과
(2) 그들 사명의 최종 목표는 가나안 정복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점
(3) 그리고 무엇보다 계수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확실한 증표를 얻었다는 점 등을 강조합니다(딤후 2:19).
*딤후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한편 오늘 십자가의 군병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도 단순히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등재된 것만으로 자족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구됨과 소유됨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삶의 최종 목표인 영적 가나안 곧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날마다 사단과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있어야 합니다.
11) 계수된 자의 총계는 603,550명이었습니다(46절)
“[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 - 이스라엘 12지파 중 싸움에 나갈 만한 군사로 부름 받은자의 총계(總計)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는 대략 아홉 달 전 성막 건축을 위한 속전대상자의 총계와 동일합니다(출 30:11-16; 38:26).
이러한 일치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본문의 통계는 성막 건축 전 속전 대상자의 명단 조사 결과(출 38:26)에 전적 의존한 것으로서, 여기서는 단지 군대 편제를 위해 가족과 종족과 지파별로 분류하여 공문서로 작성했을 뿐이라는 견해(Keil, Pulpit
Commentary).
(2) 본문의 통계는 속전대상자의 인구 조사와 긴밀히 연관되었으나'603,550명'이라는 정확한 수치는 이번의 인구 조사에서 처음으로 총계된 숫자라는 견해입니다(Lange).
여기서는 첫번째 견해가 타당한 듯한데, 그 근거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즉 (1) 이번 징병 대상자의 총계가 단 하루 동안에 완료되었다는 사실
(2) 시간상 저번 성막 건축 전의 속전 대상자의 총계가 있어야만 분명히 인두세(人頭稅)를 징수할 수 있었고, 또한 그 세금에 근거하여 그 기금으로 성막 건축을 완료할 수 있었겠기 때문이라는 사실
(3) 그리고 이번의 인구 조사에서는 각 개인보다는 유난히 '가족과 종족을 따라' 계수하라는 명령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결국 오경(五經)의 기록자인 모세는 지난번 성막 건축전의 속전 대상자 총계를 근거로 이번 징병대상자의 총계를 산출했던 것 같습니다.
4. 레위 지파의 책임(47~54절)
1) 레위 지파는 병역 의무로부터 면제 되었습니다(47절)
“[47] 그러나 레위인은 그들의 조상의 지파대로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성별(聖別)되어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성막을 호위하며, 또한 그곳에서 진행되는 제반 업무에 전적으로 봉사할 사명을 맡았기 때문이다(3장; 출 13:2,13).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세상적인 일, 심지어 자신의 생계를 위한 여타의 노동도 할 수 없었으며,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3:12,13).
한편, 그러나 여기에 레위인이 계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은 전체 이스라엘 군인수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뜻일 뿐, 그들이 전혀 계수함 받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레위지파가 가지는 독특한 의미 및 직무를 따라 일 개월 이상 된 남자들로써 별도로 계수함 받았습니다(3:39).
*3:39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레위인을 각 종족대로 계수한즉 일 개월 이상 된 남자는 모두 이만 이천 명이었더라”
2) 그들은 하나님의 일만 하도록 구별된 자들입니다(48,49절)
“[48]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49] 너는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에 계수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은 금송아지 숭배 사건때 하나님께 전적 헌신함으로 말미암아 (출32:26-29),
그후 오직 하나님의 일만을 하도록 특별히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레위인 성별 사상은 일찍이 레위기 규례 속에서 암시되어 오다가(레25:32-34), 이제 본서에 이르러 완전히 공식 인준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레위인들은 명분상 이스라엘 장자들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초태생 규례(출 13:2,13)에 근거해 그들 대신 하나님께 바쳐진 것으로 간주되어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 속에는 계수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3)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였습니다(50절).
“[50]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
증거막 - 곧 하나님의 임재를 증거하는 성막을 가리킨다.
한편 이 말이 생겨난 것은 성막 속에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을 증거하는 증거판(십계명 두 돌판)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막이나 장막이란 말 외에 특별히 '증거막'(the tabernacle
of the testimony)이라 지칭할 때엔 언제나 하나님의 율법, 계명, 규례 등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모든기구 - 이 말은 '그것(성막)에 속한 모든 기구', 곧 언약궤, 향단, 진설병상, 등대, 번제단, 물두멍등을 가리킵니다(출 25:29,38,39; 27:3,4; 37:16,24; 39:36-39)
모든 부속품 - '그것(성막)에 딸린 모든 것', 즉 말뚝, 줄 등을 말합니다(출 35:18; 38:40).
실로 성막과 모든 기구들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는 동시에(출 40:34,35),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그의 중보 사역을 보여주는 가견적 상징물입니다 (히 8:1-6; 9:1-15;10:19,20).
그러므로 그것들은 세심한 배려 속에 잘 관리되어야 했습니다.
한편 영적으로 오늘날에는 성도들 각자가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성전이며(고전 3:16,17; 6:19), 신령하고 보편적인 성전을 이루는 각 지체들입니다(엡 2:21,22).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몸을 모든 악의 요소로부터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성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롬 12:1,2).
운반하며 - 기본 동사 '나사'는 '들어 올리다'로서 곧 손으로 옮기는 행위 외에 각종 도구를 사용하여 물건을 운반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사실 레위인 중에는 성물을 그 종류에 따라 고핫 자손처럼(4:15) 어깨로 메어 옮기기도 했으며,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처럼(7:7,8) 수레로 운반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봉사하며 - 곧 '그것을 돌보라'(NIV, take care of it)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즉 레위인들에게는 성막의 기구들을 돌보는 책임이 공식적으로 부여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그러나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는 교회의 지체들,
곧 성도들을 돌보는 책임이 부과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빌2:4).
*빌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장막 사면에 진(陣)을-이 말은 레위인의 존재 목적을 분명히 한 구절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처소인 거룩한 장막 주위에 항상 거하면서
(1) 성막 봉사를 위한 준비를 해야 했으며
(2) 성막에 접근하는 자들을 통제해야 했고
(3) 성물이 탈취당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지 않도록 긴장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친위대(親衛隊)로서 오직 그분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오늘날 우리들 의존재 목적을 명확히 제시한 것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과 늘 동행하면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영적 레위인들인 것입니다(고전 10:31).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4) 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감당하여야 합니다(51절).
“[51] 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 이 말은 하나님의 지상 임시 처소라 할 수 있는 장막의 이동과 설치를 가리킨 말입니다(4:4-33),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동 생활을 연일 계속해야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동에 편리한 장막 구조를 허락하셔서 그것을 걷고 세우는 일을 반복하게 하셨다.
한편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영원한 거주지로 삼을 수 없었으며, 가나안을 목적 삼고 장막을 매일 걷고 세우는 일에 충실해야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광야 같이 험준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큼니다.
즉 세상에 대해서는 행인과 나그네요 이방인 일 수 밖에 없는(히 11:13; 벧전2:11) 우리들은 유한하고 제한적인 이 세상에 안주하여 잠시 잠깐의 쾌락을 추구하기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매일 진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분명 이 땅에 거주하는 인생을 '풀','안개'와 같이 순간적이고 임시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시 103:15; 약 4:14).
외인(주르) - 원래는 이방인이나 적대국 백성을 의미했으나, 여기서는 비(非)레위 지파 사람들 즉 이방인 뿐 아니라 이스라엘 중에서도 레위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한편 레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준 받지 않은 외인들의 성막접근을 철저히 막아야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침범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실로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총없이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을 스스로 보존하시기 위한 비상 조치입니다(츨 19:12; 삼상 6:19).
한편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보존하는 파수꾼으로서 '외인'의 접근을 사전에 막아야 했으며, 그래도 가까이 오는 자는 단호히 살해해야 했습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성막이 파괴되거나 하나님의 거룩이 훼손되는 날이면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전체에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53절; 17:13;18:5; 수 9:20; 22:20).
5) 성막은 막사 중심에 쳤습니다(52절)
“[52] 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
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 여기서'막사(幕舍)'이란 거주 또는 공격을 하기 위해 친'진'(陣)을 가리킵니다.
특별히 본문에서는 성막을 중심하여 성막 주위에 이스라엘 12진파의 진 곧 장막을 칠 것이 명령되어 있다(2:1-34).
결국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행진할 때나 질주할 때를 막론하고 항상 하나님의 성막을 중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군기 곁에 칠 것이나 - 히브리어에는 군기(軍旗)를 가리키는 세 가지 용어가 있습니다.
첫째가 본절에 사용된 '데겔'로서 백성들의 단체나 집합을 상징하는 의미의 기(standard)를 지칭합니다(2:34; tl 20:5).
이것은 주로 전쟁에 있어서의 군호(軍號)를 가리킵니다.
둘째는 '네스'인데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집중시키는데 사용되는 푯대 또는 기를 가리킵니다(사 13:2; 18:3).
따라서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기)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네스', 즉 이스라엘의 구심점이 되심을 적절히 보여 줍니다(출 17:15).
셋째는 '오트'로서 이것은 '데겔'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지만 '데겔'이 큰 군대를 위해 사용된 반면 이 말은 작은 무리나 가족을 위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시 74:4).
그리고 성경에서 '오트'는 '데겔'이나 '네스'보다 더 많이 사용 되었는데 흔히 표지, 푯대를 뜻합니다.
한편, 이처럼 이스라엘이 성막을 중심으로 4방면에 기(旗)를 세우고 진(陣)을 친 것은 적어도 다음 3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1) 이스라엘의 삶이 예배 중심이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2) 이스라엘 군대의 통수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뜻입니다.
(3) 이스라엘의 군대 조직과 질서가 '여호와 신앙'으로 통일성을 갖는 동시에 또한 각 지파별로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삶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곧 성도 각자가 몸담고 있는 교회를 중심한 예배 생활에(행2:46),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생활(대상 29:11,12),
신앙 공동체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바로 인식하여 서로 단결하며 피차 조화를 이루는 생활(고전 12:4-27)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6)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쳤습니다(53절)
“[53]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 특별히 하나님께 헌신되어진 레위 지파사람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그 사면 가까이에 진을 쳐야했습니다.
그 이유는
(1) 그들의 직무상, 그들은 성막을 위해 언제라도 봉사해야했기 때문에 늘 가까이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고
(2) 그들의 책임상, 그들은 성막 안으로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 사면을 단단히 호위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성막을 침범한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면치 못했고,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는 이스라엘 전체 위에 임했습니다.
물론 당시 성막 호위를 맡은 담당 레위인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책임을 지킬지니라 - 여기서 '지키다'(솨마르)란 말은 모든 주의를 기울여 세심하고도 확실하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본 명령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생명을 돌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수행할 것을 요구한 내용입니다.
또한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름 받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절대적인 명령이기도 합니다(창 26:5; 레 8:35).
7)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습니다(54절).
“[54]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행하되 ... 행하였더라(와야아수...켄 아수)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행했다...그렇게 행했다'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전적인 복종을 강조하기 위해 이처럼 반복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실로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순종(順從)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가장 귀한 덕목이 아닐 수없습니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민족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즉 본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민족 지도자로 추앙을 받는 모세도 사실은 하나님의 사환(使喚)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히 3:5).
*히3: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이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교회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즉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나 장로는 하나님의 종으로 봉사할 수는 있어도
지도자로 군림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기 때문입니다(마 23:10).
*마23: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전재에 참여할 장정만 약 60만 명에 이릅니다.
70명으로 애굽에 내려간(출1:1~9) 아브라함의 후손의 약 200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는 그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성취입니다(창22:17).
‘후손’의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은 ‘땅’의 약속도 지키실 것입니다.
광야는 이미 이루신 약속을 붙들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으며 걷는 자리입니다.
장차 받을 은혜가 의심스럽다면 이미 받은 은혜를 헤아려 보십시오.
2) 레위인은 인구조사에 포함되지도, 싸움에 나가지도 않았습니다(47~54절).
대신 성막과 성막의 기구를 운반하고 지키는 일을 맡았습니다.
성(城)의 파수꾼으로서 승리가 병력과 병기가 아닌,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가 세속화에 무력해진 것은 거룩의 경계(境界)를 허물고,
경계(警戒)를 등한시했기 때문은 아닙니까?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명단은 곧 정체성이며, 그 정체성이 삶의 방식을 규정합니다(3,17~47절).
‘싸움에 나갈 만한’장정의 수를 조사하는 것은, 약속의 땅에 이르는 길이 단순한 ‘여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싸우며 전진해야 할 ‘행군’임을 보여 줍니다.
눈에 보이는 적들과 맞서는 싸움이라기보다는, 거룩한 백성으로서 정결과 정체성을 지키는 싸움이 될 것입니다.
2) 모세와 아론을 도와 병력을 조사할 사람을 지파별로 한 사람씩 임명합니다(4~16절).
그들은 ‘회중의 추대를 받고 조상 때부터 각 지파의 지도자로 활약하던’군대의 지휘관들입니다.
민수기에서 그들의 명단이 세 번(2,7,10장)이나 언급될 정도로 지도자들의 역할과 헌신은 중요했습니다.
지도자의 자격과 자실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에,
더 엄한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공동체 외적인 조건에 치중하느라 정작 지도자를 검증하거나 양성하는 일에 소흘하진 않았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