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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지 하 련
1
숨이 노닷게 정거장엘 들어서, 대뜸 시계부터 바라다보니, 오정이 되기에도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았다. 두시 오십분에 떠나는 기차라면 앞으로 늘어지게 두 시간은 일찍이 온 셈이다.
밤을 새워 기다려야만 차를 탈 수 있는 요즘 형편으로 본다면 그닥 빨리 온 폭도 아니나, 미리 차표를 부탁해놨을 뿐 아니라, 대단히 늦은 줄로만 알고, 오 분 십 분, 이렇게 달음질쳐 왔기 때문에, 그에겐 어처구니없이 일찍 온 편이 되고 말았다.
쏠려지는 시선을 땀띠와 함께 측면으로 느끼며, 석재(碩宰)는 제풀에 머쓱해서 밖으로 나왔다.
아카시아나무 밑에 있는, 낡은 벤치에 가 털버덕 자리를 잡고 앉으니까 그제야 화끈하고 더위가 치쳐오르기 시작하는데, 땀이 퍼붓는 듯, 뚝뚝 떨어진다.
수건으로 훔쳤댔자 소용도 없겠고, 이보다도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더 숨이 막혀서 무턱대고 일어나 서성거려보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으나, 그는 어디가 몹시 유린되어, 이도 흐지부지 결단하지 못한 채 무섭게 느껴지는 더위와 한바탕 지긋이 씨름을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목덜미가 욱신거리고 손바닥 발바닥이 모두 얼얼하고, 야단이다.
이윽고 그는 숨을 돌이키며, 한 시간도 뭐할 텐데, 어쩐다고 거진 세 시간이나 헛짚어 이 지경이냐고, 생각을 하니 거반 딱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하긴 여게 이유를 들라면 근사한 이유가 하나둘이 아니다. 첫째 그가 이 지방으로 ‘소개’하여 온 것이 최근이었으므로 길이 초행일 뿐 아니라, 본시 시골길엔 곧잘 지음*이 헷갈리는 모양인지, 실히 오십 리라는 사람도 있었고, 혹은 칠십 리는 톡톡히 된다는 사람, 심지어는 거진 백 리 길은 되리라는 사람까지 있고 보니 가까우면 놀다 갈 셈치고라도 위선 일찌감치 떠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디만치 왔을까, 문득 그는 지금 가방을 들고 길을 걷는 제 차림차림에서 영락없는 군청 고원*을 발견하고, 또 그곳에 방금 퇴직군수로 있는 장인이 연관되어 생각히자 더욱 얼울한* 판인데다, 기왕 고원 같으려거든 얌전한 고원으로나 뵈었으면 차라리 좋을 것을, 고원치고는 이건 또 어째 건달 같아 뵈는 고원이다. 가방도 이젠 낡았는지 빠작빠작, 가죽이 맞닿는 소리도 없이, 흡사 무슨 보퉁이를 내두르는 느낌이다. 일부러 가슴을 내밀고 팔을 저어 걸으면서, 이래봬도 이 가방으로 대학을 나왔고, 바로 이 속에 비밀한 출판물을 넣고는 서울을 문턱같이 다닌 적도 있지 않았더냐고, 우정 농조로 은근히 기운을 돋우어보았으나 그러나 생각이 이런 데로 미치자, 그는 이날도 유쾌하지가 못하였다. 돌아다보면, 지난 육 년 동안을 아무리 ‘보석’으로 나왔다 치고라도, 어쩌면 산 사람으로 그렇게도 죽은 듯 잠잠할 수가 있었던가 싶고, 또 이리 되면 그 자신에 대하여 어떤 알 수없는 염증을 느낀다기보다도 참 용케도 흉물을 피우고 긴 동안을 살아왔다 싶어, 먼저 고소가 날 지경이다.
이어 머릿속엔 강(姜)이 나타나고 기철(基哲)이 나타나고, 뒤를 이어 기철과 술을 먹던 날 밤이 떠오르고 한다. 술이 거나하게 취했을 무렵이었다. 석재는 오래 혼자서 울적하던 판이라, 전날 친구를 만나니 좌우간 반가웠다. 그날은 정말이지 광산을 한다고 돈을 두룸박*처럼 차고 내려온 기철에게 무슨 심사가 틀려 그런 것도 아니었고, 광산을 하든 뭘 하든, 만나니 그저 반갑고 흡족해서, 난생 처음 주정이라도 한번 부려보고 싶도록, 마음이 허순해졌던* 것이다. 이리하여 남같이 정을 표하는 데 묘한 재주도 없으면서, 그래도 제 깐엔 좋다고 무어라, 데숭을 피웠던지, 기철이도 그저 만족해서
“자네가 나 같은 부랑자를 이렇게 반가이 맞어줄 적도 있었든가?…… 아마 퍽은 적적했든가보이.”
하고 웃으며, 술을 권하였다. 그런데 이 ‘적적했든가보이’라는 말을, 그가 어쩐다고 ‘외로웠든가보이’로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에겐 이렇게 들렸기에 느껴졌던 것이고 또 이것은 그에게 꼭 맞는 말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사실 그때 강을 만나 헤어진 후로 날이 갈수록, 그는 커다란 후회와 더불어, 어떻다 말할 수도 없는 외로움이, 이젠 폐부에 사무치는 것이었다.
“그래 외로웠네. 무척…….”
기철의 말에 그는 무슨 급소를 찔린 듯, 먼저 이렇게 대거리를 해놓고는 다시 마주 바라다보려는 참인데, 웬일인지, 기분은 묘하게 엇나가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는 만만하니 제 자신을 잡고 힐난하기 시작하였다.
친구가 듣다 못하여,
“자네 나헌테 투정 인가?”
하고 웃으며,¡
“글쎄 들어보게나. 자네가 어느 놈의 벼슬을 해먹어 배반자란 말인가? 나처럼 투기장에 놀았단 말인가? 노변에서 술을 팔었으니 파렴치한이란 말인가? 아무튼 어느 모로 보나 자네면은 과히 추하게 살어온 편은 아니니 안심허게나.”
하고 말을 가로채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말이 이렇게 나오고 보면 그로선 투정인지 뭔지, 먼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냐, 내 말은 그런 말이 아냐. 아무튼 자넨 날 잘 몰라. 자넨 나보다 착허니까, 그렇지 나보다 착하지, 그러니까 날 잘 모르거든. 누구보다도 나를 잘 보는 눈이 내 마음 어느 구석에 하나 들어 있거든. 특히 ‘악덕’한 나를 보는 눈이……”
그는 겁결에 저도 얼른 요령부득인 말로다 먼저 방패막이를 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친구는 큰 소리로 웃으며,
“관두게나. 자네 이야긴 들으면 들을수록, 무슨 삼림 속을 헤매는 것처럼 아득허이.”
하고 손을 저었다.
둘이는 다시 잔을 들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그는 웬일인지 점점 마음이 처량해갔다. 아물아물 피어나는 회한의 정이, 그대로 잔 위에 갸울거리는 것 같았다. 어디라 지향없이 미안하고, 죄스러워, 그는 소년처럼 자꾸 마음이 슬퍼졌다.
“……난 너무 오랜 동안을 나만을 위해 살어왔어. 숨어다니고 감옥엘 가고 그것 다 꼭 바로 말하면 날 위해서였거든. ……이십대엔 스스로 절 어떤 비범한 특수인간으로 설정하고 싶어서였고, 삼십대에 와서는 모든 신망을 한 몸에 모은 가장 양심적인 인간으로 자처하고 싶어서였고…… 그러다가 그만 이젠 제 구멍에 빠져 헤어나질 못허는 시늉이거든.”
그는 취하였다. 친구도 취하여, 이미 색시와 희롱을 하는 터이었으므로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으나 그는 중얼대듯 여전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거년 정월에 강이 왔을 때, 상기도 사오 부의 열이 계속된다고 거짓말을 했겠다! 일천 원 생긴다구 마늘 사러는 가면서…… 결국 강의 손을 잡고 다시 일을 시작는 게 무서웠거든. 그렇지! 전처럼 어느 신문이 있어 영웅처럼 기사를 취급할 리도 없었고 이젠 한번만 걸리게 되면 귀신도 모르게 죽는 판이었거든. ……부박한 허영을 가진 자에게 이러한 죽음은 개죽음과 마찬가질 테니까…… 이 사람!”
그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의 거짓말을 함빡 곧이듣고는 앓는 친구에게 세상 걱정까지 끼쳐 실로 미안하다는 듯이 바라다보던 그때 강의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다.
친구가 이리로 왔다. 그는 말을 계속하였다.
“나는 말일세, 난, 누구에게라도 좋아, 또 무엇에라도 좋고. 아무튼 ‘나’를 떠난 정성과 정열을 한번 바쳐보구 죽고 싶으이. ……웨? 웨 나라고 세상에 났다가 남 위해 좋은 일 한번 못허란 법이 있나?”
이리 되면 주정이 아니라, 원정(原情) 이었다.
“이 사람 취했군. 웨 자네가 남을 위해 일을 않었어야 말이지……”
친구는 취한 벗을 안유하려* 하였으나, 그는 쥴곧 외고집을 세웠다.
“아니 난 한번도 남 위한 적 없어. 인색하기 난 구두쇠거든. 이를테면 난 장바닥에서 났단 말야. 땟국에 찌들은 이 읍내기 장사치의 후레자식이거든. ……그래두 자네 같은 사람은 한번 목욕만 잘 허구나면 과거에서도 살 수 있고 미래에서도 살 수 있을지 몰라. 허지만 나는 말야, 이 못난 것이 말이지, 쓰레기란 쓰레기는 홈빡 다 뒤집어 쓰고는 도시 현재에서 옴치고 뛰질 못허는 시늉이거든…….”
“글쎄 이 사람아, 정신적으로 ‘기성사회’의 폐해를 입긴 너 나 할 것이 있겠나.……아무튼 자네 신경쇠약일세. ……그게 바로 결백증이란 병일세.”
친구는 한번 더 소리를 내어 웃었다. 석재는 그 후로도 간혹 이날 밤에 주고받은 이야기가 생각되곤 하였다. 역시 취담이다, 돌쳐 생각하면 쑥스러웠으나 그러나 취하여 속말을 다 못했을지언정 결코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와 같이 노상 그가 곤욕을 당하는 곳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안으로 그 암실(暗室)에 트집을 잡은 것이었기에, 그예 문제는 ‘인간성’에 가 부딪고 마는 것이었다. 결국, 네가 나쁜 사람이라는, 애매한 자책 아래 서게 되면, 그것이 형태도 죄목도 분명치 않은, 일종의 ‘윤리적’ 인 것이기 때문에 더한층 그로선 용납할 도리가 없었다. 이번 처가 쪽으로 피란해 오는데도 무턱 ‘얌치없는 놈! 제 목숨, 계집자식 죽을까 기겁이지.’ 이러한 심리적 난관을 적잖이 겪었기에 위선 ‘우리 집에 내 갈라는데 무슨 참견이냐’고, 대받질*을 하는 아내나 처가로 옮겨준 후, 그는 어차피 서울도 가까워진 판이라, 양동(楊洞)서 도기공장을 한다는 김(金)을 찾아갈 심산이었던 것이므로 이리로 온 지 스무 날 만에 이제 그는 서울을 향하고 떠나는 길이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좌우로 갈라선 산모랭이 길을 걸으려니 생각은 다시 그때 학생사건으로 들어와 감옥에서 처음 알게 된, 그 눈이 어글어글하고 몹시 순결한 인상을 주는 김이란 소년이 눈앞에 떠오르곤 한다.
문득 길이 협곡을 끼고 뻗어올랐다. ‘영(嶺)’이라고 할 것까지는 못되나 앞으로 퍽 가풀막진* 고개를 연상케 하였다. 이따금 다람쥐들이, 소곤소곤 장송을 타고, 오르내리락 장난을 치기에 보니, 곳곳에 나무를 찍어 송유(松油)를 받는 깡통이 달려 있다. 워낙 나무들의 장대한 체구요 싱싱한 잎들이라 무슨 크게 살아 있는 것이 불의한 고문에나 걸린 것처럼 야릇하게 안타까운 감정을 가져오기도 한다.
‘저게 피라면 아프렷다.’
근자에 와, 한층 더 마음이 여위어 어디라, 닿기만 하면 생채기가 나려는지, 그는 침묵한 이, 유곡을 향하여 일말의 측은한 감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넘어 노변에 자리를 잡고 그는 잠깐 쉬기로 하였다. 얼마를 걸어왔는지 다리도 아프고 몹시 숨이 차고 하다.
담배를 붙여 제법 한가로운 자세로 길게 허공을 향하여 뿜어보다 말고, 그는 문득 당황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해가 서편으로 두 자는 더 기운 것 같다. 모를 일인 게, 구는 지금껏 무슨 생각을 하고 얼마를 걸어왔는지 도무지 아득하다. 고대* 막 떠나온 것도 같고, 까마득히 먼 길을 숱해 한눈을 팔고, 노닥거리며 온 듯도 싶다. 이리 되면 장인이 역전 운송부에 부탁하여 차표를 미리 사놓게 한 것쯤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길이 얼마나 남았든지 간, 위선 뛰는 게 상책이었다.
그는 허둥지둥 담배를 문 채 일어섰던 것이다.
아카시아나무 밑 벤치 위에 얼마를 이러고 앉아 있노라니 별안간 고막이 울리도록 크게 라디오 소리가 들려온다.
저켠 운송부에서 정오 뉴스를 트는 것이었다.
거진 한 달 동안을 라디오는커녕 신문 한 장 똑똑히 읽어보지 못하던 참이라, 그는 ‘소문’을 들어보고 싶은 유혹이 적잖이 일어났으나, 그러나 몸이 여전 신음하는 자세로 쉽사리 일어서지질 않는다.
뉴스가 끝날 즈음 해서야 그는 겨우 자리를 떴다. 무엇보다도 차표를 알아봐야 할 필요에서였다.
마악 운송부 앞으로 가, 장인이 일러준 사람을 뻐끔히, 안으로 향해, 찾으려는 판인데 어째 이상하다. 지나치게 사람이 많았다. 많아도 그냥 많은 게 아니라, 서고 앉은 사람들의 이상하게 흥분된 표정은 묻지 말고라도, 그중 적어도 두어 사람은 머리를 싸고 테이블에 엎드린 채 그냥 말이 없다. 이리 되면 차표고 뭐고 물어볼 판국이 아닌 성싶다.
그는 잠깐 진퇴가 양난하였다.
이때 웬 소년 하나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밖으로 나온다.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얼결에 소년을 잡았다. 소년은 옷깃을 잡힌 채, 힐끗 한번 치어다볼 뿐, 휙 돌아서 저편으로 갔다. 그는 소년이 다만 흥분해 있을 뿐, 별반 적의가 없음을 알았기에, 뒤를 따랐다.
소년은 이제 막 그가 앉아 있던 벤치에 가 앉아서도 순시껀 슬퍼하였다.
“웨 그래 응, 왜?”
보고 있는 동안 이 눈이 몹시 영릉하고, 빛깔이 흰 소년이 이상하게 정을 끗기도* 하였지만, 그는 우정 더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소년은 구태여 그의 말에 대답할 의무에서라기보다도 이젠 웬만큼 그만 울 때가 되었다는 듯이
“텐노오 혜이까(천황 폐하)가 고오상(항복)을 했어요.”
하고는 쉽사리 머리를 들었다.
“……?”
그는 가슴이 철썩하며 눈앞이 아찔하였다. 일본의 패망, 이것은 간절한 기다림이었기에 노상 목전에 선연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도 빨리 올 수가 있었던가?’ 순간 생각이라기보다는 그림자와 같은 수천 수백 매듭의 상념(想念)이 미칠 듯 급한 속도로 괭개비*를 돌리다가 이어 파문처럼 퍼져 침몰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것은 극히 순간이었을 뿐, 다음엔 신기할 정도로 평정한 마음이었다. 막연하게 이럴 리가 없다고, 의아해하면 할수록 더욱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나 이상 더, 이것을 캐어물을 여유가 그에게 없었던 것을 보면 그는 역시 어떤 싸늘한, 거반 질곡(桎梏)에 가까운, 맹랑한 흥분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우리 조선도 독립이 된대요. 이제 막 아베 소오또꾸(총독)가 말했대요.”
소년은 부자연할 정도로 눈가에 웃음까지 띠며 이번엔 말하는 것이었으나, 그러나 벌써 별다른 새로운 감동이 오지는 않는다.
‘역시 조선 아이였구나.’
하는, 사뭇 객쩍은 것을 느끼며 잠깐 그대로 멍청히 앉아 있노라니, 이번엔 괴이하게도 방금 목도한 소년의 슬픈 심정에 자꾸 궁금증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막연하나마 이제 소년의 말에, 무슨 형태로든 먼저 대답이 없이, 이것을 물어볼 염치는 잠깐, 없었던지 그대로 여전 덤덤히 앉아 있노라니, 이번엔 차츰 소년 자신이 싱거워지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나 벽력같은 소식을 전했기에, 이처럼 심심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소년은 좀 이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기쁘잖어요?”
그는, 이, 약간 짓궂은 웃음까지 띠며 말을 묻는 소년이, 금시로 나이 다섯 살쯤 더 먹어 뵈는 것 같은, 이러한 것을 느끼며, 당황하게 말을 받았다.
“왜? 왜, 기쁘지!……기쁘잖구!”
“……”
“너두 기쁘냐?”
“그러믄요.”
“그럼 웨 울었어?”
그는 기어이 묻고 말았다.
소년은 좀 열쩍은 듯이 머리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징 와가 신민또 토모니(짐은 우리 신민과 함께), 하는데 그만 눈물이 나서 울었어요. ……텐노오 혜이까가 참 불쌍해요.”
“텐노오 헤이까눋 우리나라를 뺏어갔고, 약한 민족을 사십 년 동안이나 괴롭혔는데, 불쌍허긴 뭐가 불쌍허지?”
“그래도 고오상을 허니까 불쌍해요.”
“……”
“……목소리가 아주 가엾어요.”
그는 무어라 얼른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설사 소년의 보드라운 가슴이 지나치게 ‘인도적’이라고 해서 이상 더 ‘미운 자를 미워하라’고, ‘어른의 진리’를 역설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내가 약한 탓일까, 반성해보는 것이었으나, 역시 ‘복수’ 란 어른의 것인 듯싶었다. 착한 소년은 그 스스로가 너무 순수하기 때문에 미처 ‘미운 것’을 가리지 못한다, 느껴졌다.
“……넌 텐노오 헤이까보다도 더 훌륭허다!”
그는 소년의 머리를 쓰담고 일어섰다.
소년은 칭찬을 해주니까 좋은지,
“그렇지만 우리 회사에 사이상허구 긴상허고, 기무라상, 가와지마상 이런 사람들은 주먹을 쥐고 야, 야, 하면서, 막 내놓구 좋아했어요.”
하고, 따라 일어서며,
“야, 긴상 저기 있다.”
하고는 이내 정거장 쪽으로 달아났다.
“……그 사람들은 너보다 더 훌륭하고…….”
그는 소년이 이미 있지 않은 곳에 소년의 말의 대답을 혼자 중얼거리며 자기도 정거장을 향하고 걸음을 옮겼다.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데, 다리가 약간 후들하는 게 좀 이상하다.
긴상이란 키가 작달막하니 퍽 단단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방금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지, 많은 사람들은 입속에 기이한 외마디 소리를 웅얼거릴 뿐, 얼이 빠진 듯 입을 다물지 못한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의 얼굴이라기보다는 기막히게 어처구니없는 얼굴들이다.
“이제부터는 모도가 우리의 것이고, 모도가 자유이니 여러분 기뻐하십시요!”
이렇게 거듭 외쳐주었으나 장내는 이상하게 잠잠할 뿐이었다.
시간이 되어 차표를 팔고, 석재가 운송부에서 표를 찾아오고 할 때에도 사람들은 별반 말이 없었다. 꼭 바보 같았다.
2
석재가 김이란 청년을 찾아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아침에 잠을 깨니, 여느 때와 달리,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건 ‘공산당(共産黨)’ 의 소문이었다.
눈을 크게 떠 그놈을 붙잡고는 다시 한번 느근거려 가슴 위에 든져보나, 그러나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 알 수 없는 피곤으로 하여 다시금 눈이 감길 따름이다.
그는 허우대듯 기겁을 하고, 벌떡 일어앉았다.
조금 후 그는 몸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어떤 내부로부터의 심한 ‘허탈증’을 느끼며,
‘나는 타락한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었다.
사실 그는 팔월 십오일 후에 생긴 병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제 생각하면 병은 그날 그 아카시아나무 밑에서부터 시초였는지도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가 깨닫기는 김이란 청년을 만나서부터다.
―그날 차가 서울 가까이 오자 차츰 바깥 공기만이 아니라 기차 속 공기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 그가 역에 내렸을 때는 완연히 춤추는 거리의 모습이었다. 세 사람 다섯 사람 스무 사람, 이렇게 둘레를 지어 수군거리는가 하면, 웃통을 풀어헤친 또 한 패의 군중이 동떨어진 목소리로 만세를 외쳤다. 그도 덩달아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솟구쳐 얼결에 만세도 한번 불러볼 뻔하였다. 사뭇 곧은 줄로 뻗친, 김포로 가는 군용도로를 마냥 걸으며, 그는 해방·자유·독립, 이런 것을 아무 모책 없이 천 번도 더 되풀이하면서, 또 일방으로는 열차에서 본 일본 전재민의 참담한 모양을 눈앞에 그리기도 하였다. 그것은 정말 끔찍한 것이었다. 뚜껑 없는 화물차에다 여자와 아이들을 칸마다 가득히 실었는데 폭양에 며칠을 굶고 왔는지, 석탄연기로 환*을 그린 얼굴들이 영락없는 아귀였다. 섞바뀌는 열차에 병대들이 빵이랑 과자를 던졌다. 손을 벌리고 넘어지고, 젖먹이 애를 떨어트리고…… 그는 과연 ‘군국주의 전쟁’ 이란 비참한 것이라고 느껴졌다기보다도, 그때에서야 비로소 일본이 졌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석재가 청년의 집에 당도하기는 밤이 꽤 늦어서였다. 두 달 전에 왕래한 서신도 서신이려니와, 전날 친분으로 보아, 그동안 아무리 거친 세월이 흘렀기로 설마 폐로워야* 하랴, 싶어, 총총히 들어서는데, 과연 청년은 반색을 하고 그를 맞아주었다.
“장성 했구려. 어른이 됐구려.”
아귀가 버는 손에 다시금 힘을 주며, 그는 대뜸 감개가 무량하였다.
이때, 그의 가냘픈 손을 청년이 두 손으로 움켜 몇 번인지 흔들기만 하다가 끝내 말을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어린애처럼 느껴 우는 것이었다. 아뿔싸! 그는 일변 당황하면서, 자기도 눈시울이 뜨끈함을 느끼었으나, 그러나 다음 순간, 그것은 어디까지 그의 눈물이 아니요, 시방 청년이 경험하는 바, 커다란 감동에서 오는, 청년의 눈물인 것을 그는 알았다.
이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무엇인지 초조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반드시 울어야만 하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튼 무슨 감동이든 한번 감동이 와야만 할 판이었다. 어찌하여 나에겐 이것이 오지 않을까? 언제까지나 오지 않을 것인가? 온다면 언제 무슨 형태로 올 것인가?
이튿날 그는 김을 따라, 마을 청년들의 외침 에도 섞여보고, 태극기를 단 수백 대의 자동차가 끊임없이 왕래하는 서울 거리로 만세를 부르며 군중을 따라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돌아올 땐 또 하나 벽력같은 소식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산당’이 생겼다는 소문이었다.
‘최고간부의 한 사람이 기철이라 한다!…… 이런 일도 있는가?’
그는 내부의 문제, 외부적인 문제 일시에 엉클려 헤어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러고 앉아서 ‘나는 타락한 것이 아닌가?’고, 주지박질을 해본댔자 무슨 솟아날 궁기* 생길 리도 없어, 석재가 마악 자리를 개키려는데, 이때 청년이 들어왔다.
“서울 안 나가시렵니까?”
청년이 그의 상태를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예나 지금이나 침착한 ‘동지’로만 믿는 모양인지,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것을 부단히 의논하였다. 이럴 때마다 그는,
“암 그래야지. 혼란한 시기라고 해서 수수방관하는 기회주의는 금물이니까. 허다가 힘이 모자라 잘못을 범할 때 범하드래도 위선 일을 해야지.”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하루 집에 있어 쉬려오.”
하고 누워버 렸다.
아침을 치르고 청년이 서울로 떠난 후 혼자 누워 있으려니 또 잠이 오기 시작한다. 이 잠 오는 건, 어제 들어 새로 생긴 병이다. 무얼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혼란하여, 갈피를 못 잡게 되면, 차츰 머리가 몽롱하여지고, 그만 졸음이 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보가 되 려 나보다.’
그는 걷어차고 밖으로 나왔다.
거기는 옆으로 한강을 낀 평퍼짐한 마을이었다. 섬같이 생긴 나지막씩 한 산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그는 모르는 결에 나무가 많고, 강물이 가까운 곳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멀리 안개 속으로 서울이 신기루와 같이 얼른거리고, 철교가 보이고, ‘외인묘지’ 의 푸른 나무들이 보이고: 그리고 한강물이 지척에서 흘러가는 곳이었다.
잠깐 시선이 어디 가 머물러야 할지, 눈앞이 아리송송한 게,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다. 눈을 감았다. 순간, 머릿속에 도깨비처럼 불끈 솟는 ‘괴물’이 있다. ‘공산당’이었다. 그는 눈을 번쩍 떴다.
다음 순간 이 괴물은, 하늘에, 땅에, 강물에, 그대로 맴을 도는가 하니, 원간* 찰거머리처럼 뇌리에 엉겨붙어 도시 떨어지질 않는 것이었다. 생각하면 긴 동안을 그는 이 괴물로 하여 괴로웠고, 노여웠는지도 모른다. 괴물은 무서운 것이었다. 때로 억척같고 잔인하여, 어느 곳에 따뜻한 피가 흘러 숨을 쉬고 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귀 막고 눈 감고 그대로 절망하면 그뿐이라고 결심할 때에도, 결코 이 괴물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었다. 괴물은 철같이 어두운 밤에서도 환히 밝은 단 하나의 ‘옳은 것’을 지니고 있다. 그는 믿었다. ‘옳다는’ 이 어디까지 정확한 보편적 ‘진리’는, ‘나쁘다는’ 어디까지 애매한 윤리적인 가책과 더불어 오랜 동안 그에겐 커다란 한 개 고민이었던 것이다.
차츰 흐려지는 시선을 다시 강물로 던지며 그는 생각는 것이었다. 김·이·박·서, 그외 또 누구누구…… 질서 없이 머리에 떠오른다. 모두 지하에 있거나 해외로 갔을 투사들이다. 그리고 지금 자기로선 보지도 못하고 이름도 모르는 새로운 용사들의 환영이 눈앞에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는 불현듯 쓸쓸하였다.
‘다들 모였단 말인가?’
그러나 이제 기철이 최고간부의 한 사람이라면, 이보다도 우수한 지난날의 당원들이 몇이라도 서울엔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사람들이 ‘당’을 만들었단 말인가?’
그는 다시금 알 수가 없어진다. 문득 기철이 눈앞에 나타난다. 장대한 체구에 패기만만한 얼굴이다. 돈이 제일일 땐 돈을 모으려 정열을 쏟고, 권력이 제일일 땐 권력을 잡으려 수단을 가리지 않을 사람이다. 어느 사회에 던져두어도 이런 사람이 불행할 리는 없다. 그러나 여기 한 개의 비밀이 있었다. 이런 사람이 영예로워지면 질수록 흉악해지는 비밀이었다. 대체나 ‘겉’이 그렇게 충실하고야 ‘속[良心]’ 이 있을 리가 없고, 속이 없는 사람이란 외곽이 화려하면 할수록 내부가 부패하는 법이었다.
‘목욕을 한대도 비누하고, 물쯤은 준비해야 하지 않는가?’
다시 눈앞엔 다른 한 패의 사람이 나타났다. 어디까지 옹졸한 주제에, 그래도 소위 그 ‘양심’이란 어금*길에서 제 깐엔 스스로 고민하는 척 몸짓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석재 자신 비슷한 축들이었다. 이건 더욱 보기 민망하다. 추졸하기 짝이 없다기보다도, 온통 비리비리하고, 메슥메슥해서, 더 바라다볼 수가 없다. 아무튼 통틀어 대매에 종아리를 맞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그래 이 사람들이 모여 ‘당’을 만들었단 말인가?’
물론 그럴 리는 없다 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얼굴이 후끈 달아옴을 깨달았다. 조금 전 기철이 최고간부라는 데 앙앙하던 마음속엔 ‘그럼 내라도 될 수 있다’는 엄폐된 자기 감정이 숨어 있지 않았던가? 그는 벌컥, 팔을 베고, 앙천(仰天)하여 드러눕고 말았다.
얼마가 지났는지,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런데, 웬일일까? 하늘이 이마에 와 닿아 있다. 실로 청옥같이 푸르고 넓은, 그것은 무한한 것이었다. 그러나 곧 그것은 하늘이 아니라 강물의 착각이었다. 순간 그는 이상한 홍분으로 하여, 소리를 버럭 지르고 일어앉았다.
비로소 조금 전 산비탈에 누워 잠이 든 것을 깨닫는다. 어느 결에 석양이 되었는지 가을 같다.
그는, 다시 한번 커다랗게 소리를 질러본다. 그러나 아무 의미도 없고 또한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비상히 큰 목소리는, 그대로 웅얼웅얼 허공을 돌다가, 다시 귓전에 와 떨어진다. 저 아래, 기를 든 아이들이 만세를 부르며 놀고 있다.
외로웠다.
사지를 쭉 뻗어 땅을 안고, 잔디를 한 움큼 쥐어보니, 가슴이 메는 듯 눈물이 쑥 나온다.
‘나는 아직 젊다…… 나는 아직 젊다!’
조금 후 그는 연상 무엇인지를 정신없이 허둥대둥 중얼거리고 있었다.
3
이튿날 석재는 청년을 따라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어제 그는 꽤 어둑어둑해서야 산에서 내려왔던 것이고, 내려와보니 어느새 청년이 돌아와 마치 기다리고나 있은 것처럼,
“어델 갔다 오세요?”
하면서 그가,
“발써 돌아왔드랬소.”
하고 대답할 나위도 없이 대뜸 큰일이 났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까지의 자기 세계를 떠나, 이 씩씩한 후진에게 성의를 다할 임무가 있음을 깨달으며, 옷깃을 바로하고 정색하며 마주 앉았다. 이야기는 대략, 방금 일본인 공장주의 부도덕한 의도로 말미암아 모든 생산물이 홍수와 같이 가두로 쏟아졌다는 것, 이에 흥분한 종업원 내지 일반 시민들은 가장 파괴적인 방법으로 사리(私利)만을 도모하여 영등포 등지 공장지대가 일대 수라장이 되었다는 이러한 것들인데, 아닌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난처하였다. 한때 피치 못할 현상일지는 모르나, 이대로 방임해두었다가는 이른바, 그들의 ‘개량주의화’의 위기를 초래하여올지도 모르는 적잖은 사태였다. 이리 되면 그로서도 피안 화재시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중앙에서 대책이 없습디까?”
“책상물림의 젊은이들이 및 개인의 정열로 활동하는 모양인데, 너나없이 노동자라면 그대로 우상화하는 경향이 있어놔서, 일의 두서를 잡지 못허두군요.”
“그래, 김은 어델 관계하고 있는 중이오?”
“조일직물과 123철공장인데 뭐보다도 기계를 뜯어 없애는 데는 참 딱해요. 대뜸, 우리는 제국주의 치하에서 착취를 받었으니 얼마든지 먹어 좋다는 거거든요.”
“……‘자계급’이 승리를 헌 때라야 말이지. 또 승리를 헌 때래두 그렇게 먹는 게 아니고…… 아무튼 큰일났구려·…‥ 그러다간 노동자 출신의 부르조아 나리다.”
두 사람은 어이없이 웃었으나, 사실은 웃을 일이 아니었다. 뭘로 보나 노동자의 진지한 투쟁은 실로 이제부터라 할 것이었다. 지도자가 맥없이 노동자를 우상화한다거나, 그 경제적 이익을 옹호해야 된다고 해서, 그들의 원시적 요구의 비위만을 맞추어준다는 것은, 노동자 자신의 투쟁력을 상실케 하는 것 이외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칫하면 앞으로 일하기 무척 힘드리다.”
물론 이야기는 이 이상 더 계속되지 않았으나 석재는 청년의 부탁이 아니라도 날이 밝으면 영등포로 나가볼 작정이었던 것이다.
곧장 신길정으로 가는 삼거리 길에서, 먼저 서울엘 들러 오겠다는 청년과 그는 나뉘었다.
혼자 123철공장을 향하고 걸으려니, 또 뭐가 마음 한 귀퉁이에서 티격태격을 한다.
‘네가 이젠 공장엘 다 가는구나? 노동자를 운운하고…… 그렇지! 이젠 잡힐 염려가 없으니까…….’
이렇게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윽박질러 처넣기도 하고 또 때로는
‘암 가야지, 반성이란 앞날을 위해서만 소용되는 것이니까. 과도한 자책이란 용기를 저상케* 하는 것이고, 용기를 잃게 되면, 제이 제삼의 잘못을 또다시 범하게 되는 거니까…….’
이렇게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로다 배짱을 부려보기도 하는 것이었으나 ‘용기’ 란 대목에 와서는 끝내 마음 한 귀퉁이에서 ‘뭐? 용기?’
하고는, 방정맞게 깔깔거리는 바람에 그만 그도 따라 허, 웃고만 셈이다. 인차* 길 가던 사람이 저를 보는 것 같아서 우정 시치밀 떼고 걸으며, 그는 여전 지잖을 자세로,
‘그래, 난 겁쟁이다, 그러나 본시 용기라는 말은 무서운 것이 있기 때문에, 즉 그 무서운 것을 이기는 데로부터 생긴 말이라면, 또 달리는 가장 무서움을 잘 타는 사람이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나도 이제부터 이기면 되잖나?·…… 앞으로도 무서운 것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고, 나는 이겨나갈 자신이 있다.’
이렇게 콩칠팔 새삼륙*으로 우겨 대며 123철공장으로 들어섰다.
마악 정문으로 들어서려는데 누가,
“김군 아닌가?”
하고 손을 잡는다.
깜짝 놀라 치어다보니 천만 뜻밖에도 그 사람은 민택이었다. 그와 같은 사건으로 들어갔을 뿐 아니라, 단지 친구로서도 퍽 신실한 데가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아!”
그는 이 ‘이 사람아’를 되풀이할 뿐 손을 쥔 채 잠깐 어쩔 줄을 몰랐다. 이런 순간에 민택이를 만나는 것이, 어쩐지 눈물이 나도록 그는 반가웠다.
두 사람은 옆으로 돈대*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인차 그는 ‘당’의 구성이 역시 국내 있던, 합법인물 중심이란 것으로부터 방금 석재 자신에게도 전보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럴 리는 없다고 부정은 해오면서도 열에 아홉은 그러려니 했던 것이고, 또 이러함으로 이제 와서 뭘 새로이 놀랄 것까지는 없었으나, 그래도 그는 무엇인지 연상 어이가 없다.
“그래 이 사람아, ‘당’을, 허 그 참…….”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모양이 딱한지,
“허긴 그래. 허지만 당이 둘 될 리 없고, 당이 됐단 바에야 어떡허나.”
하고 민택이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조금 후 두 사람은 신길정서 서울로 나가는 전차에 올랐다. ‘공산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철교를 지나고 경성역을 돌아 차츰 목적한 지점이 가까워올수록 그는 모르는 결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생각하면 일찍이 그 청춘과 더불어 ‘당’의 이름을 배울 때, 그것은 실로 엄숙한 두려운 것이었다.
그가 전차에서 내려, 군데군데 목검을 집고 경계하는 ‘공산당’ 층계를 오르기 시작하였을 제는, 오정이 훨씬 지난 때였다. 별안간 좌우에 사람이 물 끓듯 하는데, 이따금 “김동무!” 하고 잡는 더운 손길이 있다. 모두 등골에 땀이 사뭇 차 얼굴이 붉고 호흡이 가쁘다.
그는 온몸이 화끈하며 가슴이 뻐근하였다. 얼마나 윽박질리고, 밟히던 지난날이었던가? ‘당’이라니 어느 한 장사가 있어 입밖엔들 냄직한 말이었던가? 그는 소년처럼 부푸는 가슴 위에 일찍이 ‘당’의 이름 아래 넘어진 몇 사람의 친구를 안은 채 이런 일도 있는가고, 이렇게 백주 장안 네 거리에서 ‘당’을 들고 외우* 뛰고 모로 뛰어도 아무도 잡아가지 않고 아무도 죽이지 않는 이런 세상도 있는가고, 사람이든 기생이든 나무토막이든 무엇이든 잡고 팔이 널치가 나도록 흔들며 큰 소리로 외쳐 묻고 싶은 충동을 순간 그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는 뭐가 무엇인지,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한동안 전연 판단을 잃은 상태였다. 그저 웃는 얼굴들이 반가웠고, 손길들이 따뜻할 뿐이었다.
복도를 지나 왼편으로 꺾어진 넓은 방에서, 기철의 손을 잡았을 때에도 그는 전신이 얼얼한 것이 생각이 그저 띵할 뿐이었다. 그러나
“웨 이렇게 늦었나?”
‘어찌 이리 늦소?’ 하는 똑같은 인사를 한 대여섯 번 받은 후, 그가 열 번이나 스무 번쯤 받았다고 느껴질 때쯤 해서, 그제야 조금 정신이 자리잡히는 성부른데, 그런데 이 새로운 정신이 나면서부터, 이와 동시에 마음 어느 구석에선지 피뜩
‘내가 무슨 버스를 타려다 참이 늦었더랬나?’
하고 딴청을 부리려 드는 맹랑한 심사였다.
이건 도무지 객쩍은 수작이라고 허겁지겁 여게 퇴박을 주었는데도 웬일인지 이후부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점점 냉랭해지는 생각이었다. 그는 난처하였다.
잠깐 싱글해서 앉아 있는 석재를 기철이는 아무도 없는 옆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를 잘 알고 있는 기철은 먼저 ‘당’을 조직하게 된 이유부터 자상히 설명을 하면서,
“자넨 어찌 생각할지 모르나, 정치란 다르이…… 지하에나 해외에 있는 동무들을 제쳐두고, 어떻게 함부로 당을 맨드느냐고 할지 모르나, 그러나 이 동무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일은 해야 되겠고, 어떡헌담, 조직을 해야지. 이리하여 일할 토대를 닦고, 지반을 맨들어놓는 것이, 그 동무들을 위해서도 우리들의 떳떳한 도리가 아니겠느냐 말일세.”
하고 말을 끊었다.
기철은 조금도 꿀릴 데가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뭔지 그저 퀭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야릇하게도 이 ‘동무’란 말이 새삼스럽게 비위에 와 부닥친다. 참 희한한 말이었다. 어제까지 고루거각에서 별별 짓을 다 하던 사람도 오늘 이 말 한마디만 쓰고 손을 잡고 보면, 그만 피차간 ‘일등 공산주의자’가 되고 마는 판이니, 대체 이 말의 조화 속을 알 길이 없다기보다도, 십 년 이십 년 몽땅 팽개쳤던 이 말을 이제 신주처럼 들고 나와, 꼭 무슨 흠집에 고약이나 붙이듯 철썩 올려붙이고는, 용케도 냉큼냉큼 불러대는 그 염치나 뱃심을 도통 칭양할 겉이 없었다. 물론 그는 십 년 전에 만나나 십 년 후에 만나나, 비록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경우라도 눈이 먼저, 만나면 꼭 ‘동무’라고 부르는 몇 사람의 선배와 친구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부르는 ‘동무’는 조금도 이렇지가 않았다. 그러기에 열번 대하면 열 번, 그는 뭔지 가슴이 철썩하곤 하였던 것이다.
그는 차츰 긴 말을 지껄이기가 싫어졌다.
“잘 알겠네.”
끝내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으나, 사실 기철의 이야기는 옳은 말 같으면서 또한 하나도 옳지 않은 말이기도 하였다. 어딘지 대단히 요긴한 대목에 대단히 불순한 것이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떻게 된 ‘당’이든 당은 당인 거다. 그는 일찍이 이 당의 이름 하래 충성되기를 맹세하였던 것이고…… 또 ‘당’ 이 어리면 힘을 다하여 키워야 하고, 가사* 당이 잘못을 범할 때라도 당과 함께 싸우다 죽을지언정 당을 버리진 못하는 것이라 알고 있다. 이러하기에 이것을 꼬집어 이제 그로서 ‘당’을 비난할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었다.
잠깐 그대로 앉아 있노라니 별안간, 기철이란 ‘인간’에 대한 어떤 불신과 염증이 흑 끼쳐온다.
그는 모르는 결에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좌우간 이상 더 이야기가 있을 것이 그는 괴로웠다.
“자네 바쁘지?…… 나 내일 또 들림세.”
그는 끝내 자리를 일어서려 하였다.
그러나 기철은 황망히 그를 잡았다.
“무슨 말인가? 안되네! 자네 같은 사람이 이럭허면 ‘당’이 누구와 손을 잡고 일을 헌단 말인가?”
순간, 그는 가슴이 찌르르하였다. 생각하면 그동안 부끄러운 세월을 보냈기는 제나 내나 매한가지였다. 가사 살인 도모를 하고 야간도주를 한대도 같이 하고 같이 죽을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제 기철이 당의 중요인물일진대, 기철을 비난하는 것은 곧 당의 비난이 되는 것이었다.
‘앞에도 적 (敵)이요, 뒤에도 적인 오늘, 이것이 허용된단 말인가?’
그는 제 자신에 미운 정이 들었다. 이제 와서 홀로 착한 척 까다로움을 피우는 제 자신이 아니꼬웠다.
그러나 결국 그는 사람 못 좋은 사람이었다. 조직부에 자리를 비워두었다고 거듭 붙잡는 것을, 갖은 말로 다 물리친 후 위선 ‘입당’의 수속만을 밟아놓기로 하였다.
그는 기철이 주는 붓을 받아 먼저 주소와 씨명을 쓴 후 직업을 썼다. 이젠 ‘계급’을 쓸 차례였다. 그러나 그는 붓을 멈추고 잠깐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다.
투사도 아니요, 혁명가는 더욱 아니었고……·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운동자一모두 맞지 않는 이름들이다.
마침내 그는 ‘소(小)부르조아’ 라고 쓰고 붓을 놓았다. 그러고는 기철이 뭐라고 하든 말든 급히 밖으로 나왔다.
거리에 나서니 서늘한 바람이 후끈거리는 얼굴을 식혀준다.
그는 급히 정류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노량진행 전차를 타고 섰노라니, 무엇인지 입속에서 뱅뱅 도는 맴쟁이가 있다. 자세히 알아보니 별것이 아니라, 고대 막 종이 위에 쓰고 나온 ‘소부르조아’라는 말이다.
“……흠……?”
그는 육 년 징역(懲役)을 받은 적이 있는 과거의 당원인 자신에 대하여 무슨 보복이나 하듯, 일종의 잔인한 심사로 무심코 피식이 고소를 하는 참인데, 대체나 신기한 말이다. 과시 탄복할 정도로 적절한 말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그 자신을 들어 뭐니뭐니 해왔어도, 이렇게 몰아 단두대에 올려놓고 댓바람에 목을 뎅겅 칠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피식이 고소할 순간까지도 차마 믿지 못한 이‘심판’ 아래, 이제 그는 고스란히 항복하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그는 몸이 허전하도록 마음의 후련함을 깨닫는다. 통쾌하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무엇인지 하나, 가슴 위에 외쳐, 소생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그는 전후를 잃고, 저도 모를 소리를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나의 소시민과 싸우자! 싸움이 끝나는 날 나는 죽고, 나는 다시 탄생할 것이다…… 나는 지금 영등포로 간다. 그렇다! 나의 묘지가 이곳이라면 나의 고향도 이곳이 될 것이다……’
별안간 홧홧증이 나도록 전차가 느리다.
그는 환히 뚫어진 ‘영등포’로 가는 대한길을 두 활개를 치고 뛰고 싶은 충동에, 가만히 눈을 감으며 쥠 대에 기대어 섰다.
『문학』 1호(1946. 8)
지 하 련
본명이 이현욱(李現郁)인 지하련(池河連)은 1912년 거창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본 쇼오와(昭和)고녀를 졸업했다. 1940년 「결별」 이 『문장』 에 추천되어 등단했다.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해 1947년 남편 임화와 함께 월북할 때까지 작가로 활동했다. 1946년 발표한 「도정」은 수작으로 평가받아 조선문학가동맹의 제1회 조선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결별」 「가을」 「산길」 「체향초(滯鄕抄)」 등의 작품이 있다. 1960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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