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전쟁사]
<39> 엘 시드(El Cid),
 
11세기 스페인 전쟁영웅,
적은 그를 군주라 불렀다
 
감독: 앤서니 만/출연: 찰턴 헤스턴, 소피아 로렌
1961스페인 국토회복운동 배경으로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과 싸우는 실존인물 로드리고 장군 활약상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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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이베리아 반도에선 가톨릭 왕국과 이슬람 세력 간의 전쟁이 계속됐다. 스페인의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 Reconquista)이라 불리는 이 싸움은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있는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벌인 전쟁이다. 레콩키스타는 재정복을 뜻한다.
당시 아스투리아스,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 등 가톨릭 왕국들이 싸운 상대는 무어(Moor)인이다. 무어인은 이베리아를 정복한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계 부족들과 동쪽에서 이주해 온 아랍·베두인·흑인 등 이슬람교도들을 말한다. 이 전쟁은 718년 가톨릭 왕국 아스투리아스의 공격을 시작으로 1492년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왕국인 그라나다가 함락될 때까지 800년간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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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왕에 충성 다하는 군인정신 감동
영화 ‘엘시드’는 11세기 스페인의 국토회복운동을 배경으로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과 싸우는 실존 인물 엘 시드 장군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나라와 왕에 충성을 다하는 군인정신이 감동적이며 전쟁 스펙터클이 장대하다.
스페인의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는 그는 실제로 카스티야의 귀족이자 발렌시아를 정복한 통치자였다. 본명은 로드리고 디아스 비바르. 무어인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지만 기독교와 이슬람의 화해를 주장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아랍인들로부터 군주(cid)라는 뜻의 이름 ‘엘 시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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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족 왕 석방해주고 반역죄로 몰려
상영시간 3시간의 대작인 이 영화는 1080년, 기독교와 무어인 간의 전쟁이 치열할 때, 로드리고 장군(찰턴 헤스턴)이 전투에서 사로잡은 무어족 무타민 왕을 석방해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이 일 때문에 반역죄로 몰리게 된다. 로드리고는 명예 회복을 위해 반대파의 수장인 고르마즈와 결투를 벌인다. 고르마즈는 바로 약혼녀인 시멘(소피아 로렌)의 아버지. 고르마즈가 죽게 되자 약혼자 시멘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복수를 결심한다. 이후 로드리고는 카스티야 왕의 신임을 얻어 승승장구하고 시멘과 결혼한다. 하지만 그녀의 복수심은 여전하다.
한편 카스티야 왕이 죽자, 둘째 알폰소 왕자가 첫째 왕자를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다. 이에 분개한 로드리고는 알폰소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결국 불경죄로 추방된다. 시멘은 로드리고의 정의로운 용기에 증오심을 거두고 그를 따르게 된다. 이 내전을 틈타 무어족이 해안으로 침략해온다. 로드리고는 동맹을 맺은 무타민 왕, 뒤늦게 참전한 알폰소 왕과 함께 스페인을 지켜내고 자신은 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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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이슬람 화해를 주장한 국민영웅
영화는 전쟁영화의 미덕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주인공 엘 시드는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騎士), 정세를 잘 읽는 탁월한 군 전략가, 국가에 충성심이 강한 장군, 적군까지 포용하는 군의 지도자 등 결점 없는 전쟁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백의종군했던 이순신 장군과 여러 면에서 닮았다.
그는 기사의 명예를 위해 약혼자의 부친이지만 결투를 청하며, 정변을 일으켜 권좌에 오른 알폰소 왕에게 서슴지 않고 직언을 하기도 한다. 또한 전쟁에서 이겨 스스로가 왕이 될 수 있었지만 영토를 알폰소 왕에게 바쳐 국가에 충성을 다한다. 이로써 전쟁영웅을 넘어 국민영웅이 된다. 마지막 전투에서도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 시신으로 위장한 채 그대로 출정하는 심리전을 펼친다.
전쟁 스펙터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컴퓨터그래픽(CG)을 사용하지 않은 전쟁 스펙터클은 고전 할리우드 대작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웅장함을 선사한다. 1961년 제작했음에도 마지막 발렌시아 해안에서 벌어지는 기마병 전투 등은 지금 봐도 기대 이상이다.
영화는 70mm 대형 화면으로 제작됐는데 60년대 당시 할리우드가 TV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함이었다. 감독은 ‘로마제국의 멸망’ 등을 연출한 앤서니 만. ‘벤허’ ‘십계’ 등 주로 고전 할리우드 대작영화에 출연한 찰턴 헤스턴의 젊은 시절 연기와 이탈리아 출신 미모의 여배우 소피아 로렌의 청순한 모습을 볼 수 있다.
8∼15세기, 이베리아 반도는 종교전쟁터
8∼15세기, 유럽 이베리아 반도에서 벌어졌던 국토회복운동은 종교전쟁이었다. 수세에 몰린 기독교가 강자 이슬람교와 싸운 전쟁이다. 800년 동안 유럽 남쪽 전체가 이슬람 세계였다. 칼과 코란을 든 이슬람 세력이 중동과 아프리카를 넘어 유럽으로 팽창해 나갔다. 지금은 상당 부분 역전됐지만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갈등은 여전하다. 이념이 사라진 최근엔 종교전쟁만 남은 듯하다. 여기에 민족주의가 더해지면서 전쟁의 양상은 참혹해지고 있다.
주인공 로드리고에게 ‘시드’라고 불러 준 사람들은 적군 무어인들이다. 로드리고가 관용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그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중재에 앞장선다. 역사적으로도 그랬다. 기독교 세력인 카스티야에서 추방당한 뒤 무어인의 왕국 사라고사의 무타민과 알무스타인 2세 밑에서 이슬람 율법과 관습을 배웠다. 스페인의 통일을 위해 기독교인으로서 이슬람교를 이해하려 했던 것이다.
<김병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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