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전의 몰락과 군산 자동차 공장의 폐쇄
전후 일본은 전자 입국을 기치로 파나소닉, 소니, 샤프 같은 내로라하는 기업들을 육성했고, 이 회사의 제품들은 세계를 석권했다. 그런데 이렇던 일본의 가전 산업은 지금은 몰락하고 말았다. 가끔 사람들은 그 이유를 ‘기술력이 떨어져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 정반대이다. 기술력은 여전히 뛰어나다. 그런데 왜 세계 1위였던 일본 가전이 몰락했을까?
또 우리나라 군산 경제를 떠받치고 있던 한국GM 군산 공장이 문을 닫았다. 수천 대를 수출하던 군산 공장 출고장은 잡초만 가득한 폐허로 남아 있다. 이 회사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대거 떠나자 군산의 경제는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GM 군산 공장은 왜 문을 닫았을까?
그러면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일본 가전의 몰락과 군산 자동차 공장의 폐쇄 사태의 실상은 무엇일까?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뒤, 일본은 동아시아 세계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되었다. 더욱이 히데요시 사후 일본은 국내적으로도 다시금 전란에 접어들었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이러한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한 뒤, 1603년에 에도 막부(江戶幕府) 즉 도쿠가와 막부를 수립하고 도요토미 정권을 멸망시켰다. 일본의 패권을 장악한 도쿠가와 막부의 통치하에 이후 260여 년 동안 국내외적 평화가 이어졌기에 이 시기를 가리켜 이른바 ‘도쿠가와의 평화(팍스 도쿠가와나(Pax Tokugawana)’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후에 평화가 찾아오자 전쟁에 참여했던 사무라이(무사)들은 할 일이 없어졌다. 모두 실업자가 된 것이다. 또 새 세대들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실업자는 한정없이 늘어났다. 할 일은 없고 실업자 천지가 되어 1700년에는 마침내 대경제 불황이 닥쳐왔다. 이에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실시했다. 곧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의 철학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시다 바이간은 25세 때 한학자 오구리 료운(小栗了雲)을 만나 철학을 배웠다. 그의 철학적 내용은 노동은 보수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된 목적은 자기 수양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그의 철학사상을 받아들여 백성들에게 인건비를 싸게 받거나 무임금으로 일을 하게 했다.
“노동하라. 노동이야말로 수양을 위한 가장 올바른 길이다. 노동의 대가를 바라지 마라. 그저 노동은 수양의 기쁨으로 여겨라.”
라는 기치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놀면 뭐하나 수양이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전 국민이 이러한 이념을 좇았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을 고용하기 위하여 분업이 실시되었다. 재단하는 사람은 재단만 하고 바느질하는 사람은 바느질만 하고 단추 다는 사람은 단추만 다는 식이다. 될수록 많은 인원을 고용하기 위한 조치였다. 일은 적고 시간은 많으니 각자가 맡은 일을 대충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무라이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바느질이 좀 비뚠 데가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아라고 하면 ‘할복하겠습니다.’라고 하였고, 만든 신발 바닥에 흠이 조금 있는데 이런 물건을 누가 사가겠느냐고 하면 ‘예, 할복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보수와 상관없이 완벽한 물건이 생산될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일본 물건이 세계로 팔려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1980년대에는 마침내 일본은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런데 이를 본 미국이 가만두지를 않았다. 이와 같은 일본의 경제 상황은 엔화 약세와 일종의 시장교란 행위이니 엔화를 올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곧 1985년의 플라자 합의라는 것이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일본·서독·영국·프랑스가 달러를 절하하고 엔·마르크·파운드를 절상하기로 한 환율 조정 합의이다.
미국은 폴 볼커의 긴축과 레이건의 확장 재정으로 달러가 강해져 미국 수출이 위축되고 무역적자가 커졌다. 미국 산업계의 보호무역 압력이 커지자 백악관은 환율 개입 협상을 시작했다. 합의 직후 달러는 1987년 루브르 합의 때까지 크게 절하되었고, 엔·마르크는 각각 65.7%와 57% 절상되었다. 엔고로 일본 수출경쟁력이 약화되자 초저금리와 유동성 확대가 이어져 자산 버블이 형성됐고, 1989년 붕괴로 ‘잃어버린 10년’의 단초가 되었다.
이리하여 파나소닉, 소니, 샤프 같은 내노라하는 기업들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몰락했다. 파나소닉은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여 지난 20년간 열심히 벌어온 순이익을 한꺼번에 까먹었다. 소니는 주력인 TV 부분이 7년 연속 적자를 기록함에 따라 회장과 사장이 동시에 퇴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더 심각한 것은 샤프주식회사이다. 한동안 액정표시장치(LCD) TV로 일본시장을 석권하던 샤프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함에 따라 도산 위기에 몰렸고 급기야 대만 기업에 팔려나가는 수모를 겪었다. 2002년에는 aiwa가, 2009년에는 sanyo가, 2015년에는 도시바가 차례로 무너졌다.
여기에는 일본의 기업경영 방식도 문제가 있었다.
일본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각 사업부가 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사업부의 부장이나
과장 같은 중간관리층이 핵심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경영진이나 현장은 그들의 의사결정을 추인하거나 따르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소위 의사결정이 미들 관리자층에서 이루어지고 이 의사결정 결과가 위나 아래로 전달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온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이 방식이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중간관리층은 자율성을 가지고 각 사업
부를 전방위로 이끌어 갔으며 각 현장은 강한 자부심으로 수많은 개선 아이디어를 내면서 품
질을 개선해 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경영방식은 디지털 시대로 접어듦에 따라 무용지물이 되기 시작하였다. 제품이 표준화 모듈화됨에 따라 현장 개선 활동의 중요성은 약화되었고 그 대신 경영진의 신속하고 과단성 있는 의사결정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 기간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해 보지 못했던 경영진은 과감한 투자 의사 결정을 못 내리거나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 결과 지금 같은 몰락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군산의 자동차 공장 폐허를 신문 기사를 통해 살펴보자.
2009년 2월 GM대우(현 한국GM)에는 군산 공장에서 생산한 라세티 프리미어가 전북 군산항에서 수출용 선박에 오르기 전 항상 늘어서 있었다. 당시 세계 금융 위기로 수출 부진을 겪던 GM대우는 수출 전략 차종으로 개발한 라세티 프리미어 2000 대를 처음으로 수출하며 위기 극복을 기약했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경영이 크게 나아지지 않은 GM은 2018년 군산 공장을 폐쇄했다. 수출을 앞둔 차로 가득했던 군산 공장 출고장에는 이제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잡초만 남아 있다.
군산의 자동차 공장의 풍경은 처참하다. 전북 군산시 소룡동, 옛 한국GM 군산 공장 출고장은 7년 전만 해도 갓 생산된 쉐보레 크루즈와 올란도 수백, 수천 대가 빽빽이 들어차던 곳이었다. 수출선적을 기다리던 새 차 행렬은 군산 경제를 지탱하는 자부심이었다.
그곳에는 색 바랜 ‘쉐보레 군산 출고 사무소’라는 간판만이 이곳이 한때 연간 27만 대 자동차를 쏟아내던 군산 경제의 심장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 황량한 풍경은 제조업이 무너진 국가가 맞게 될 미래를 보여주는 묵시록이기도 하다.
2018년 당시 GM은 글로벌 판매 부진 여파로 일부 해외 공장 문을 닫았다. 이 과정에서 군산 공장도 폐쇄 대상이 됐다. 군산 공장을 ‘폐쇄 1순위’로 만든 건 노조 리스크에 따른 경쟁력 상실이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군산 공장은 GM 내 ‘리스크 공장’으로 분류됐다. 2012~2018년 한국GM 전체 파업 일수는 현대차·기아의 2~3배에 달했다. 잦은 파업과 GM의 해외 공장 가운데 낮은 생산성은 GM 본사의 구조조정 결정에 명분을 제공했다.
대기업이 떠나자 군산 경제의 허리가 꺾였다.
2010년대 중반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로 수출길이 막혀 군산 공장의 가동률은 20%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회사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노조는 적자 해소를 위한 구조조정, 근로시간 조정 등을 대부분 거부했다. 한국GM은 북미와 남미·중국 공장과 생산성 경쟁을 해야 했지만 군산 공장에서는 글로벌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요구가 반복됐다. 금속노조 한국GM지부는 파업을 무기로 매년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을 요구했다. 결국 GM 본사는 군산 공장을 ‘투자 부적격’ 대상에 올렸고 결과는 공장 폐쇄라는 ‘공멸’이었다. GM 철수 이후 해고된 직원들은 강성 노조 출신이라 뽑으면 안 된다는 말까지 돌았다.
일자리가 사라지자 도시는 급격히 활력을 잃었다. 인구 통계는 군산의 미래가 지워지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8년 대비 지난해 군산의 30대 인구는 25% 급감했다. 10대 이하(-23%), 20대(-16%)의 감소세도 가파르다. 반면 50대는 3%, 60대 이상은 24% 늘며 고령화가 심화됐다. 일자리가 사라지며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과 아이들이 떠났다는 뜻이다.
한국GM이 떠난 이듬해(2019년) 아이들의 놀이터인 금강랜드는 키즈몰 등으로 꾸며보려 했지만 아이들이 크게 줄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터져서 그냥 두고 있다. 군산 국가산단 내 유일한 초등학교인 새만금초등학교의 올해 입학생은 단 6명. 6년 전엔 15명이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의 가전업 몰락과 군산 한국GM의 폐쇄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일본의 가전은 이시다 바이간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사무라이 정신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다져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산업이었다. 그들의 무보수 정신으로 쌓은 튼튼한 산업이었다. 이러한 공든 탑이 무너진 것은 미국의 플라자 합의라는 엔화 강세 조치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강대세력이라는 외부의 힘에 의하여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군산의 한국GM이 떠난 것은 강성 노조의 리스크에 따른 경쟁력 상실이었다. 회사가 넘어지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무리한 요구를 거듭한 노조의 요구 때문에 회사가문을 닫게 된 것이다. 외부에서 온 위험 때문이 아니라 제 살을 제가 뜯어먹어 자멸한 것이다. 일본의 가전이 외부에서 온 힘과 기존 경영방식의 고수 때문에 무너진 것이라면, 우리나라의 군산 한국GM은 노조의 마신 독에 중독되어 사라진 것이다.
군산의 지난 7년은 우리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을 때 펼쳐질 한국의 미래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사업이 부진한데 강성 노조가 비용 구조까지 악화시키자 글로벌 본사는 물량을 해외로 옮겼다. 대기업이 이탈하자 협력업체 생태계와 지역 경제가 차례로 무너졌고, 청년들이 떠나갔다. 중국이라는 무서운 경쟁자, 기업을 옥죄는 강성 노조와 반기업 입법, 젊은 인재의 씨를 말리는 세계 최고속 고령화로 인해 사면초가인 한국 제조업의 위기가 계속될 경우 우리 사회가 겪게 될 미래가 군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