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仇英) 필(筆)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의 역사적 가치 / 장진성(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1. 구영 <청명상하도> 仇英 仿張擇端淸明上河圖(요녕성박물관遼寧省博物館)
1) 구영仇英(약 1494-1552년), 강소성江蘇省 태창太倉 출생. 자 實父, 호 십주十洲. 하층민 출신으로 채회彩繪, 칠공漆工으로 생계 유지. 이후 소주蘇州로 와서 직업 화가였던 주신周臣에게 그림을 배움. 전문적인 직업화가로 명성을 날림.
2) 현재 그림의 끝 부분에 구영의 관지款識인 ‘仇英實父製’와 그의 인장인 ‘十洲’와 ‘구영지인仇英之印’이 보이지만 이 그림은 구영의 진작은 아님. 소주편이라고 할 수 있음.
○ 소주편蘇州片-명나라 때 소주지역에서 다량의 안작贋作(가짜 그림)이 제작 되었는데 이것을 소주편이라고 함.
3) 본 그림은 12세기 초에 활동했던 화가였던 장택단張擇端이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북경 고궁박물원 소장)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여겨짐.
- 그러나 이 두 작품 사이에 양식적인 친연성은 별로 발견되지 않음.
- 이 그림의 작자가 장택단의 <청명상하도>를 직접 보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음.
- 장택단의 <청명상하도>를 모방한 여러 작품 중 하나를 이 그림의 작자가 보고 그렸을 가능성이 높음.
4) 구영 필 <청명상하도>의 수장收藏 내력
○ 명대 저명한 수장가인 항원변項元汴(1525-1590) 소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림에 있는 그의 인장印章은 가짜라고 판단됨.
○ 청대 건륭제 시기에 황실 소장품이 됨.
○ 석거보급․속편石渠寶笈․續編에 기록됨. 건륭제 이후 가경제嘉慶帝, 선통제宣統帝의 인장이 찍혀짐.
○ 1922년 자금성紫禁城에서 쫓겨난 마지막 황제(선통제) 부의溥儀(Puyi)는 다수의 그림을 궁궐에서 가지고 나옴 (두루마리 그림 1,285건, 서화첩 68건)
○ 1932년 부의는 일본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滿洲國의 수도 장춘長春으로 구영 필 <청명상하도>를 비롯한 명작들을 가지고 옴.
○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부의는 명품들을 가지고 장춘을 탈출, 일본으로 가려고 함. 심양沈陽에서 부의 체포됨.
○ 부의로부터 몰수한 명품들은 동북인민은행東北人民銀行에 임시 보관된 후 1949년 7월에 신설된 동북박물관東北博物館(현 요녕성박물관)으로 이관됨.
2. 전 장택단 필 <청명상하도> 수장 내력
○ 장택단 1120년대 초에 <청명상하도> 제작
○ 1186년 장저張著의 제발: <청명상하도>를 그린 인물이 장택단이라고 명시함.
○ 원대元代 : 진언렴陳彦廉--1351년 양준楊准--1365년 주문부周文府-원나라 멸망 후
민간에 유전流轉
○ 명대明代 : 주문징朱文徵, 서부徐溥--1515년 이동양李東陽--1524년 육완陸完, 고무굉顧懋宏
--엄숭嚴嵩--1578년 태감太監(내시) 풍보馮保--명나라 멸망 후 민간에 유전
○ 청대淸代 : 육비치陸費墀, 필원畢沅--가경제嘉慶帝
○ 선통제(마지막 황제 부의)--1945년 부의 체포됨-1948년 동북은행에 보관-1950년 동북박물관(현 요녕성박물관)으로 이관--1953년 북경 고궁박물원으로 이관
3. 구영 필 <청명상하도>
1) 장택단 필 <청명상하도> : 청명절淸明節의 풍경? 청명절의 세시풍속歲時風俗이 그림 속에 잘 나타나 있지 않음. 최근에는 이 그림을 청명절의 풍속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태평성세太平盛世,’ ‘평화, 정치적 안정, 경제적 번영’을 보여주는 일반적인 이미지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함
- 북송의 수도 개봉開封의 경제적 번영
- 홍교虹橋 : 경제적 번성
- 도시풍속화
2) 구영 필 <청명상하도>의 무대는 개봉이 아닌 소주蘇州 지역
- 연날리기, 무대공연戱臺, 교외나들이踏靑, 밭갈이, 사찰 방문, 홍교, 수박手搏, 무예 연습鍊武, 성문城門, 그네뛰기鞦韆, 집짓는 장면, 금명지金明池, 용주龍舟 등 다양한 풍속 장면이 그려짐
- 도시풍속화의 백미
- 구영 필 <청명상하도>는 명청明淸대 도시풍속화의 모델이 됨.
- 다수의 임모본copies이 제작되어 1704년까지 조선에도 이 임모본 중 하나가 전래됨.
4. 淸院本 淸明上河圖(1736년, 臺北 國立故宮博物院)
1) 1736년 음력 12월 15일 건륭제乾隆帝의 황명皇命을 받아 궁정화가들인 진매陳枚(Chen Mei), 손호孫祜(Sun Hu), 금곤金昆(Jin Kun), 대홍戴洪(Dai Hong), 정지도程志圖(Cheng Zhidao)가 완성
2) 건륭제 등극 후 ‘태평성세’에 대한 희구希求를 주제로 하여 그린 그림
3) 전체 5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음: 조용한 농촌 풍경, 홍교虹橋, 성문城門 근처의 상업지구, 송죽헌松竹軒 일대의 풍경, 금명지金明池와 궁궐
4) 홍교 근처의 시장과 상업 활동, 선박 운송, 성시城市 풍경, 시정市井의 다양한 풍속이 그려져 있음. 청대 궁정화가들이 구영 필 <청명상하도>와 그 임모본을 참고하여 이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높음 (무대공연, 수박手搏 장면 등).
5. 서양徐揚 필 <고소번화도姑蘇繁華圖> (1759년, 요녕성박물관)
1) 건륭제 1751년 제1차 남순南巡, 소주 지역에서 서양을 발탁, 궁정화가로 기용.
2) <고소번화도姑蘇繁華圖>의 본래 이름은 <성세자생도盛世滋生圖>. 소주 지역의 경제적 번성을 중심으로 ‘태평성대’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기획된 그림
- 1759년에 건륭제는 청나라의 숙적이었던 서몽고족을 정벌하고 회부回部를 평정, 복속함. 신강新疆의 탄생
- 청제국 최대의 판도, 태평성대의 도래到來
3) <건륭남순도권乾隆南巡圖卷>, 1764-1770년 서양이 조수助手들과 함께 제작
4) 상업지구, 무대 공연을 포함한 다양한 시정市井의 풍속 표현을 볼 때 구영 필 <청명상하도>와 그 임모본을 서양이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음.
6. <태평성시도> (국립중앙박물관)
- 미스테리mystery 그림
- 구영 필 <청명상하도>를 참고해서 그려졌을 가능성은 높으나 풍속, 인물, 건물 표현을 보면 매우 다른 그림임. 어떻게 이 그림이 만들어졌을까?
첫댓글 작년 겨울 중국으로 부터 청명상하도와 고소번화도 2점을 기획전시실 메인홀에 전시하다가 가져갔습니다. 우리나라에 동궐도와 비견될 만 하지만 동궐도에서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다는 것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