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반짝였는지
박태일
어떻게 반짝였는지 되새길 수 없는
걸음 일흔을 내다보며
지지리 저리는 살지 않으리라 다짐도 잊고
아흔도 여섯을 넘긴 아버지 옛 벗을 만나
아버지 독주를 좋아하셔 그리하면 안 된다 말하기도 했다는
옛 벗을 만나 혼자 비우는 약주 병 속
아버지는 자꾸 가라앉았다
아버지 가신 지 서른 해 들어서고
어머니 가신 지 스무 해
슬픔도 층계를 만들면 넘어설 길 생긴다 하더니만
아버지 옛 벗은 한 잔 나는 한 숟갈
저녁을 늘이면서 나눌 일이 무엇이던가
남은 자식 걱정 손자 자랑
아버지 셋째 나는 아버지 옛 벗과 겸상으로 앉아
웃었다 세월이 고개 숙여 걷듯이
아버지 바쁘셨던 예순다섯
어머니 누우셨던 일흔여섯
내 떠돈 예순일곱 다시 밟아야 할 길은
때없이 십 리 십 리를 더하고
죽음에 무슨 격이 있을까 보냐
숨었다 튀어 나올 걸음
그 저녁 한 쟁반 장어와 새우
아버지 옛 벗의 둘째 아들 식당 차림에는
슬픔이 밤 고명처럼 박혔는데
아버지 결석한 서른 해 옛날 저쪽
아버지 옛 벗과 안댁
아흔을 넘은 두 세월이 반짝짝 반짝
앉아도 서도 저렇듯 빛날 수 있구나
그랬구나 나는 그렇게 고향 합천으로 출타했다 돌아오지 않았다 출향했다 출가했다 돌아왔다 아버지 어머니 머무셨던 하늘
올챙이 꼬리 꼬리 흔들며 건너왔다
하루하루 한 발 한 발
무엇보다 뱃심을 잃지 말자 중얼거리며
갈까 남을까 망설이는 겨울도 1월 중순 저녁
아버지와 아버지 옛 벗이
함께 술상을 받는 듯한 양산 벌 식당
칠순 코 밑 내 앞날이
바람길 펄럭 구겨 앉는다.
박태일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학사회에 나섬. 시집 그리운 주막, 가을 악견산, 약쑥 개쑥, 풀나라, 몽골에서 보낸 네 철, 옥비의 달,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 시선집 용을 낚는 사람들, 연구․비평서 한국 지역문학 연구, 시의 조건 시인의 조건, 산문집 몽골에서 보낸 네 철, 시는 달린다 들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