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책을 빌려왔거든 한결같이 아끼고 보호하라 만약 찢어지고 손상되었으면 그대로 잘 보충하고 고쳐야 한다 이 또한 사대부로서 해야 할 온갖 행실 가운데 하나다 --- 안씨 ---
안씨 왈 차인전적 개수애호 약유결해 취위보치 차역사대부 백행지일야
顔氏曰 借人典籍 皆須愛護 若有缺害 就爲補治 此亦士大夫 百行之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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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옛 어린이 교재《소학小學》 제5 <가언편嘉言篇>에 실려 있다 거기에는 '약유결해若有缺害'가 '선유결괴先有缺壞'로 되었다 '만약 찢어지고 손상되었으면'이 '앞서 찢어지고 망가졌더라도'로 달리 바꿔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약유결해'는 책을 빌려온 뒤 '책장이 훼손되었다면'의 뜻이고 '선유결괴'는 책을 빌리기 전부터 진작 훼손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어느 쪽이든 반드시 잘 고쳐야 한다
옛날 제양강록濟陽江祿의 이야기다 책을 읽다가 읽기를 마치기 전에 비록 급한 일이 닥쳐오더라도 반드시 말아 잘 정돈하기를 기다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기에 책이 망가지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 하여 사람들은 그가 책을 빌려달라 요구해 와도 싫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읽던 책을 책상 위에 어느 한 부분을 마구 흩어 놓아서 어린아이라든가 비첩들의 더럽히는 바가 되기도 하였고 바람과 비와 벌레와 쥐로 인하여 갉히고 찢어지고 손상하게 되었다 참으로 귀한 덕을 더럽힌 것이었다
강록은 늘 성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일찍부터 늘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지 않은 일이 없었으며 게다가 가령 헌 종이에 오경五經 말씀이라던가 또는 경전 뜻이 씌어 있거나 성현들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면 조용히 간직하거나 사를지라도 감히 다른 곳에 쓰지 않았다 하였다
위 제양강록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예나 지금이나 책을 빌려 가는 자가 빌린 책을 잘 반납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되돌려 주지 않거나 또는 필요한 부분을 몰래 찢은 채 아예 입을 다무는 이도 더러 있었다 40년 전 <대정신수대장경>과 더불어 동국대발행 <고려대장경>을 구했다 신수대장경 중 불화佛畫, 만다라를 통째로 빌려 간 뒤 아직도 무소식이다
1982년 처녀작으로 수필집을 내고 지금까지 70여 권 책을 내었으나 소장한 저자본은 몇 권 안 된다 30권 이상 책들을 구할 수가 없다 하나하나 내 소장본마저 빌려 간 뒤는 깜깜무소식이거나 혹 모르겠단다 이미 없어졌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저자, 역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