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새 출발로 아름다운 가족의 달☜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전7:15-29절)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곳 靑少年들은 문제가 생기면, 부모나 선생님 대신 또래 친구들과 의논하려고 합니다. 어른들은 뭐든지 야단만 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이라고 해봐야 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에 아무리 상의를 해도 같이 헤매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난 청소년은 반드시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의 도움을 받아야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즉 도움은 외부(外部)에서 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우리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답(答)은 외부에서 와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도움 받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곧 자존심(自尊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치부(恥部)를 보이고, 맡겨야 하는데다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끝까지 도움을 부탁하지 않고, 눈치만 보며 버티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제문제도 우리나라 관리들이 풀려고 했기 때문에 빚만 산더미처럼 커지고 말았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과감히 나보다 나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또 이것을 위해서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지금까지의 관행(慣行)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전문지식(專門知識)과 경험(經驗)입니다.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은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론(異論)에 밝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또 이론(異論)만 가지고는 현실에 부딪쳤을 때, 한계가 있어서 실험하듯 여기저기 건드리기만 할 뿐, 전혀 수습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어려운 문제를 만난 사람은 몇 가지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선 나보다 나은 사람을 찾아서 기꺼이 도움을 받으려는 겸손(謙遜)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 전문적인 지식(智識)과 함께 실제적인 경험이 있는 사람을 부지런히 찾아야합니다. 그러고 나서 일단 한번 믿고 맡겼으면, 금방 생각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끝까지 그를 믿고 맡겨야합니다. 이제 전도자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려면,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Ⅰ.아집(我執)에서 벗어나라 옛날에는 진리(眞理)를 찾기 위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진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생각(生角)에 큰 도움을 얻습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다양한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내 생각만 최고이고, 다른 사람들은 별로 중시하지 않았는데. 다른 나라를 여행해 보면, 그들마다 소중한 풍습이 있고, 각기 삶의 지혜와 인생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선(獨善)과 아집(我執)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사고방식의 변화입니다. 7:15절)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여기서‘내 허무한 날’이란 전도자의 과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전도자도 자신의 가치를 몰라서 방황하고, 헤매던 과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암흑기(暗黑期)입니다. 세상에 태어나기는 했지만, 자신의 존재의미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사는 기간을 말합니다. 즉 남이 공부하니까 자기도 공부하고, 남이 결혼하니까 자기도 결혼하는 이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자기가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고, 자신의 가치는 어디에서 얻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때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곧 무지(無知)와 미신(迷信)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미신적(迷信的)인지, 남들이 하는 말만 믿고, 따라 갑니다. 그것을 신약 성경은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이라고 합니다.(마7:13절 참조) 내가 누구며,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모르면서 부모님이 원하고, 선생님이 가르치는 길이 옳은 줄 압니다.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면, 자기 생각이나, 논리를 절대적으로 신봉(信奉)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한번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자기를 지탱하는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논리나 인생철학을 절대적으로 신봉(信奉)한 나머지,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일시적인 충동이나 분노에 따라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아집(我執)과 독선(獨善)을 버리기 전에는 하나님의 지혜(智慧)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위대한 생각의 전환점은 자신은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즉 알코올 중독자나, 우울증 환자에게 진정한 치료의 시작도 곧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나,우울증 환자임을 공개적으로 시인(是認)할 그때입니다. 절대로 자기는‘아니라’고 주장할 때는 어떤 치료도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아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 일어날 변화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다른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은 급한 물살이 흐르는 강에 매어 놓은 배의 밧줄을 끊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도대체 이 배가 어디로 갈지를 몰라 두렵기 때문에 마음 문을 철통같이 닫고, 빛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는 이것입니다. 자신의 밧줄을 끊는 때는 도저히 그대로는 살 수 없게 되었을 그때입니다. 즉 죽을병에 걸렸거나, 사업에 실패해서 그대로 있으면, 살 수 없게 되었을 그때가 되어져야 도움을 찾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곰곰이 살펴보니, 의인(義人)이라고 반드시 잘되는 것도 아니고, 악인(惡人)이라고 금방 망(亡)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살기만 하면, 성공하고, 양심대로 행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 합니다. 즉 세상에는 내 생각이나, 판단대로 안 되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한 번 잘 살아보려고, 이것저것 몸부림을 쳐도 결코 행복은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보다 잘난 것도 없는 사람이 이상하게 축복(祝福)받고 잘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다른 외부(外部)의 힘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옹고집을 버리고, 빨리 외부(外部)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성공하고, 시대의 흐름을 외면한 채, 혼자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생각만큼 안 됩니다. 전도자도 처음에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습니다. 의인(義人)은 세상에서 복(福)을 받을 것이고, 게으르고, 나쁜 사람은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방정식(方程式)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함수(函數) 관계가 아닙니다. 지혜자가 깨달은 것은 자기 생각과 다른 원리가 세상에 작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사고(思考)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思考)가 오염되고 고장이 나면서,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사고(思考)하는 대신, 제멋대로 사고(思考)하고, 판단하면서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 문이 열리면서 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빛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7:16절)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지나치게 의인(義人)이나, 지혜(知慧)자가 되려고 한다는 것은 자신의 기준을 절대적으로 옳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주장만 고집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내가 아무리 옳다고 믿어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옹고집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해도 지혜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궤변(詭辯)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생각에 대해서‘지금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옳을 것 같다’는 식으로 말을 해야지,‘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단정해 버리면, 안 됩니다. 그때는 어느 누구의 말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되, 더 나은 생각이 있으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영혼(靈魂)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인생을 책임지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고달픈 인생길을 가면서 넘어진 자를 일으키고, 낙망(落望)한 자를 격려할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직접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고달픈 인생길을 가면서 서로 돕는 사람들이지, 절대자는 아닙니다. 우리가 무지(無知)의 잠에서 깨어날 때는 오직 하나님 말씀이 들릴 그때입니다. 하나님의 계시(啓示)의 말씀이 들릴 때, 우리 눈을 덮고 있던 무지(無知)와 미신(迷信)의 덮개가 벗겨지면서 정신이 번쩍 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영혼(靈魂)의 암흑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빛 아래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진리(眞理)를 몰라서 얼마나 방황하며, 살아왔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야 정신적 방황이 끝나고, 소중한 자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지나치게 악인이나 우매한 자가 되지도 말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아집(我執)과 독선(獨善)의 다른 극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예 자신을 포기하고,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상습적으로 짓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아무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적인 충동이나, 분노에 따라서 닥치는 대로 행동합니다. 일종의 자포자기입니다. 물론 인간은 헤매고 있지만, 완전히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똑똑하고, 의로운 자나, 비참한 자나, 모두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인간의 눈을 어둡게 하는 극단적인 양면은 고집(固執)과 자포자기(自暴自棄)입니다. 인간은 지나치게 교만해서도 안 되고, 자포자기한 채 되는대로 살아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만날 가능성은 누구나 똑같기 때문입니다. 7:18절)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서 극단적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극단적인 사람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자신의 미련하고, 부족한 줄 알기 때문에 극단적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될까 조심합니다. 결국 인간에게 가장 귀한 축복(祝福)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아집과 독선을 버리며, 하나님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올바른 말씀을 들을 기회를 가지는 것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빛은 외부에서 들어와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언제나 혼돈(混沌)속에서 헤멜 수밖에 없습니다. Ⅱ.세상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없다. 만약 기억 상실증에 걸려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하루하루 밥만 먹고 살지 못할 것입니다.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서 자신에 대해 알만한 것을 찾으러 길을 떠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이 주는 복이나 받으려고, 가만히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을 찾아 순례(巡禮)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스스로는 자신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진리(眞理)는 밖에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종교도 인간이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진리(眞理)를 찾아서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인간 세상에는 영혼(靈魂)을 살리는 하나님의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7:19절)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첫째, 열 명의 권력자들에게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열 명의 권력자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백성들의 어려운 문제를 재판하고, 판단해 줍니다. 책도 많이 읽고, 경험도 아주 많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인생의 궁극적인 가치는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 판사나 검사들은 사법시험에 합격한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법이나 판례를 많이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무엇이 인생의 올바른 길인지는 제시해 주지 못합니다. 세상 안에는 진리(眞理)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식(知識)이란 사람들이 살면서 경험한 것들의 집합입니다. 즉 사람들이 과거에 했던 일과 결정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누구와 결혼하며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는 도와 줄 수 없습니다. 왜냐면 세상적인 진리는 현실을 유지시키는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식이나, 지혜(知慧)는 세상을 유지시키는 지혜(知慧)입니다. 참된 지혜(智慧)는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래서 참된 지혜자는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누군가 하나님의 지혜(智慧)를 가지고 찾아와서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 주지 않는 한,인간은 올바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7:20절)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둘째, 세상에 완전한 의인(義人)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선(善)을 행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선(善)을 행하는 사람이라도 전혀 죄(罪)를 짓지 않은 의인(義人)은 아닙니다. 사람의 선(善)은 상대적일 뿐입니다. 즉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의롭다는 것이지,결국 비슷비슷한 존재들입니다. 모두 모순되고 어리석고 헤매는 것입니다. 좀 나은 수준에서 헤매던가, 더 바닥에서 헤매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선(善)을 행하는 것도 일시적으로 선(善)한 마음이 든 것이지, 완전히 자체로 선(善)한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악(惡)한 충동이 생기면, 금방 악(惡)한 사람으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이 선(善)을 행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충동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선(善)한 마음을 주시지 않으면, 선(善)한 사람도 갑자기 악(惡)해집니다. 즉 할 수 있는 능력도 사실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인간이 선(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일시적인 선(善)한 충동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는 스스로 선(善)한 것을 생각하고, 행할 수 있는 능력까지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을 믿을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뿐입니다. 사람을 완전히 믿으면, 결국 지푸라기를 잡거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셈입니다. 사람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느끼는 바에 따라서 얼마든지 선(善)할 수도 있고, 악(惡)할 수도 있습니다. 선(善)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면, 천사가 될 수 있지만, 악(惡)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면, 악마(惡魔)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개는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언제나 개 이지만, 사람은 천사와 악마 사이를 얼마든지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악(惡)해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은 체면(體面)입니다. 그가 체면(體面)을 버리면, 그는 얼마든지 짐승과 같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죄에 대한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곧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 죄를 씻으면, 죄에 대한 수치심이 생겨서 다른 사람이 보든 보지 않든 죄 짓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또 성령이 지속적으로 우리 마음에 선(善)한 마음과 선(善)한 생각을 불어넣으십니다. 7:21-22절)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셋째, 사람의 평가는 정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스스로 볼 수 없습니다. 거울을 통해서나, 자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태도를 통해서 자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이 정중하게 대하면, 자존감이 높아지지만, 다른 사람이 함부로 하고, 욕하면, 자존감이 파괴되어 비참한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 따라서 하기 때문에 그것이 완전한 평가일 수는 없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평가는 거울로 말하자면,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한 거울과 같습니다. 비치는 각도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즉 자기 기분이 좋으면 좋은 말을 하고, 자기 기분이 나쁘면, 욕을 퍼붓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주인 앞에서는 고분고분하지만, 돌아서면, 주인을 저주하는 종들의 비유를 듭니다. 사람은 본인이 앞에 있을 때, 하는 말과 돌아서서 하는 말이 틀립니다. 그래서 남이 하는 말은 참고해도 절대적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오히려 자신이 남을 대하는 태도가 자기 상태를 보여 줄 때가 많습니다. 즉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면, 자기 상태가 좋은 것이지만, 남의 잘못을 꼬치꼬치 따지면서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너무나도 흉한 상태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개의 눈에는 개만 보이고, 천사의 눈에는 천사만 보이기* 마련입니다. Ⅲ.하나님의 지혜는 얻기 어렵다. 이 세성에서 어떤 보물보다 구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님의 지혜(智慧)입니다. 요즘은 성경이 많이 보급되어서 어디를 가든 성경을 구할 수 있지만, 사람이 성경 속에서 진리(眞理)를 캐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진리는 땅속 깊은 곳에 들어 있는 광석(鑛石)과 같기 때문입니다. 7:23절)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 전도자의 축복(祝福)이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지혜(智慧)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맛보았고, 그것을 더 얻기 원합니다. 그런데 도무지 하나님의 지혜는 와주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전도자도 하나님의 진리 속에 들어가는 것이 혼자 힘으로는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셀(cell)공동체로 모여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진리는 교회(공동체)를 통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교회(공동체)는 하나님의 무궁한 진리를 파고 들어가는 금광(金鑛)의 입구입니다. 우리는 예배 때마다 금(金)을 캐는 광부(鑛夫)의 심정으로 모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4:19절)...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는데, 전도자는 믿는 사람들에게“하나님의 진리를 캐는 광부가 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교회(공동체)에 함께 모여 성경에서 캐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너무나도 방대하고, 거창해서 단시일에 소화해 낼 수 없습니다. 평생에 걸쳐서 함께 진리를 캐내야 합니다. 한편 진리가 지혜가 되기 위해서는 보석(寶石)으로 가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캐내는 것은 원석(原石)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치를 가지려면,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완전히 녹여서 자기의 보석(寶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식(知識)을 가진 사람과 지혜(智慧)를 가진 사람은 다릅니다. 지식(知識)은 공부를 통해서 얻지만, 지혜(智慧)는 삶 가운데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고민하고, 부딪치며, 실패하면서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아버지 집에서 곡식 단이 일어서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꾼 것이 지식(知識)이라면, 그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서 인생 밑바닥에서부터 고민하고, 몸부림치며, 깨달은 진리가 지혜(智慧)인 것입니다. 7:24절)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하나님 생명의 말씀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무시하고, 자기의 꿈이나, 환상을 더 믿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꿈이나, 환상은 하나님의 계시(啓示)가 아닙니다. 꿈은 잠재되었던 의식이 표출되는 것으로, 평소에 의식하지 못하던, 온갖 생각들이 들어 있을 뿐입니다. 우선 성경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기적입니다. 다음에는 성경이 해석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일단 읽기만 해도 하나님 뜻을 알 수 있을 만큼 평범하고, 명확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성경 진리는 해석(解釋)이 필요하고, 누군가 가르쳐 주어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얻으려면, 전심(全心)을 다해야 합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연구하는데, 두 가지 장애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7:25-26절)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전도자는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미친 것을 밝히려고 합니다. 어리석음은 무지(無知)와 미신(迷信)이고, 미친 것은 인간의 광기(狂氣)입니다. 그런데 방해되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捕繩)같은 여자가 첫째입니다. 7:28절)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나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언뜻 보면 남자 중에는 지혜자가 있지만, 여자 중에는 없다는 뜻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전도자가 우월론(優越論)자라고 비난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비유입니다.
남자(男子)는 세상의 지혜(知慧)를 말하고, 여자(女子)는 육체의 정욕을 상징합니다. 세상의 지혜(知慧)는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정욕은 그야말로 자신을 되찾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마약처럼 빠져들 뿐이라는 뜻입니다. 즉 세상에서 바르게 사는데, 여자보다 남자를 택하는 것이 낫다는 뜻은 정욕으로 방탕하게 사는 것보다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뜻입니다. 확실히 부잣집 아이나, 가난한 집 아이나, 죽도록 공부해서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은 그런대로 성공적인 삶을 삽니다. 그는 사회적 직책도 얻고, 성실하게 일해서 재산도 모읍니다. 그러나 방탕하게 산 사람은 결국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비유삼아 세상적인 지식(知識)은 남자로, 방탕한 정욕적인 삶은 여자로 비유한 것이지, 여자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지혜(智慧)를 얻는 데는 세상의 공부나, 정욕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혜(智慧)를 얻기 위해서는 비싼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진리(眞理)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외부(外部)에서 진리(眞理)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도, 지혜도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7:29절)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인간의 마음은 부패(腐敗)해서 아무리 연구하고 탐구해도 쓰레기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심리 연구는 한계가 있습니다. 오직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와야 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기도로 진리를 간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예배의 공동체로 모여야 합니다. 그리고 배운 진리를 갈고 닦아서 자신의 보배로 만들 때, 진정으로 부요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진리(眞理)로 심령(心靈)이 부요(富饒)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아-멘 찬송가 358장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 ▣알림 ▷생명의 양식(1:1일 부터) 壬寅年 전.후반기 행정보고서 제출을 원했지만. 비협조하는 이유를 주님이 다 알고 계시므로 다시 한 해 보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장에 피차 손해입니다. 그래서 새해 계획을 다음과 같이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생명의 양식을 하찮게 여기고. 아직 수용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 매일 보급하던 것을 주 3회(수.금.일)로 단축합니다. 다만 정상적 보급을 위하여 요청하는 모범셀(cell)은 차트(chart)를 검토하여 허용합니다. 새 신자 1단계 : 영접기도 ⇨ 묵상과 적용, 생명의 양식(주 3회-매일 1회로)
▷조직 개편(1:1일 부터) 신실하고 충성된 모범생 일꾼 1-2명 추천을 윈했지만. 그도 비협조로 자립할 셀(cell)이 없어 공동체 보호를 위하여 아래와 같이 통합합니다. 1차=카페대표 중심으로 여성☞ 사랑 셀(cell)로 1차=카페대표 중심으로 남성☞ 가족 셀(cell)로 2차=새신자카페는 규정대로 하되☞ 새가족 셀(cell)로 해외거주 성도카페☞ 선교 셀(cell)로 ▷명칭☞ 예)가족(경기/동탄)셀(cell)로 하면 됩니다. 한 셀(cell)을 10명으로 하되. 증가되어 20명이면 분가하세요. 분가하는 셀(cell)은 모범셀(cell)로 인정. 달란트 시상과 축하의 꽃다발을 받게 될 것입니다(먹튀(스파이)는 제외) ※생명의 양식 도둑(도배했다며 삭제하지만. 재 공급 없는 c급 셀(cell)로 차후 자립할 때, 영적기근으로 침체(우울증)등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교갱원 소속 자격▽ 행정서식. 정착완성. 양식보존. 새벽기도. 주일 및 절기예배, 교갱원설립후원. (春)(秋)심방.실명으로 신뢰와 소통. 필수과목☞선택과목 완료. 癸卯年 각 셀(cell)공동체는 1월 1일부터 매주 본인 카페에 보고서를 작성해놓고 매월 말 복사해 가도록 해야 합니다.(위 △ 1월 보고서 견본 참조)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궁금한 내용 문의 ☞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