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형제의 '브레멘의 음악대'라는 동화책을 어려서 접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책을 읽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들어보기라도 했을 것 같다. 내 기억 속에도 당나귀 위에 개, 개 위에 고양이와 수탉이 올라서 있는 그림과 도둑들을 쫓아낸 집에서 마침내 그들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의 결말이 남아 있다. 동물들이 참 지혜롭고 재치 있었다는 좋은 이미지와 함께.
이번에 루리 작가님이 비룡소에서 펴 내신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책에도 '브레멘'이라는 지명이 나온다. 이 책이 '브레멘의 음악대'와 무슨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 다시 옛 동화책에 대한 글을 찾아 보았다. 어렸을 적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사실 두 개를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이 동물들이 다 버림받은 존재들이었다는 거다. 당나귀는 늙고 쇠약해서 주인에게 쓸모가 없어졌고 수탉은 노래를 잘 하고 싶으나 안 되고 개는 입 냄새가 심하며 고양이는 쥐를 잡지 않았다고 쫓겨났다. 이들이 브레멘에서 음악대장이 단원을 모집한다는 것을 알고 가는 길에 만나게 된다. 두 번째는 이들이 브레멘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브레멘에 도착하기 하루 전 날, 묵었던 숙소가 도둑들이 살던 곳이었고 그 곳이 마음에 들어 계속 행복하게 산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에도 네 동물이 나온다. 당나귀씨는 모범운전자로 평생을 지냈으나 운전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식당에서 일하던 바둑이씨는 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급작스레 실직자가 된다. 편의점 알방생 야옹이씨는 애꾸눈이라 손님들이 싫어한다고 잘리고 지하철 난전에서 두부를 팔던 꼬꼬댁 씨는 단속에 걸려 쫓겨났다. 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분리되었다.
장편동화 <긴긴밤>을 쓴, 같은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 분은 그림도 잘 그린다. 화면도 적절하게 잘 분할하고 그 속에 주인공들의 심리가 너무 잘 느껴지게 표현하였다. 당나귀씨는 택시들로부터, 바둑이씨는 이삿짐차로부터 떨어져 있고 야옹이씨는 편의점 유리창 바깥에, 꼬꼬댁씨는 수많은 지하철 사람들이 다니는 장애인 블럭 이 쪽 반대편에 홀로 서 있다. 그 옆에는 퇴직금이라 할 수 있을까, 이별 선물로 받아든 참치캔과 김치, 삼각김밥과 두부만 있을 뿐이다. 무리로부터 떨어진 꼬꼬댁씨의 길다란 그림자는 그 마음을 삼켜버렸을 소외감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이들이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달리다 끝이 없는 계단을 올라 쪽방촌을 향한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길기만 하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져 집마다 불을 켜고 가로등도 켜 졌지만 그 길을 무심한 듯 걸어가는 이 넷의 마음은 여전히 칠흙이지 않을까? 그 덤덤함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이런 푸대접과 내쫓김이 이미 처음이 아니기에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넷이 마침내 발걸음을 멈추었다. 환한 빛이 흘러나오는 그 집 안에는 네 명의 도둑이 머리를 감싸쥐고 회의를 하고 있다. 도둑도 나름 고민이 많다. 늙었다고 나가랬고, 멍청하다고 공부하란 소리 들었고, 뭐 하고 살까 고민은 누구나 똑같은가보다. 암울한 그 분위기를 동물 넷이 깼다. '똑 똑 똑' 문을 두드린 것이다. 내가 이 그림책에서 가장 가치있다고 느낀 장면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야말로 '브레멘의 음악대' 원작과의 차이점이라 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 아니,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 중에서 어찌보면 더 대접받지 못하는- 의 도둑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그리고 자신들의 스토리를 나누었다. '그럼 우리는 이제 뭐 하지?' 묻는 순간, 배가 고픈 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물건들을 모은다. 두부, 삼각김밥, 김치와 참치캔. 그리고 도둑들 집에 큰 냄비와 가스레인지, 수저. 그리고 정말 필요하지는 않아 보이는 양초. 자기가 낼 수 있는 마지막 남은 것들. 그러고 보면 내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때에도 두 가지는 여전히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 각자의 몫을 지고 가는 옆지기, 그리고 아직 못 깨달았을 수도 있지만 참치캔 같은, 김치찌개 만들기에는 기가 막힌 재료들! 함께 무엇을 만들기에 필요한 조그만 재능 말이다.
김치찌개를 열심히 끓여 맛있게 먹는 여덟은 조심스레 꿈을 꾼다. 만약에, 여덟이 함께 찌개집을 열 수도 있지 않을까. 꼬꼬댁씨는 카운터를 보고 바둑이씨는 요리를 하고 누군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고 이렇게 저렇게...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활기 넘치는 따뜻한 희망으로 끝난다. 마을의 한 가게에서 냄비도 좀 구해 오고, 문에 페인트로 '어서 오세요' 쓰고 간판도 달면서. 마음의 한기까지 녹여줄 뜨끈한 찌개집을 꿈꾼다.
다시 앞에서 말한 내용으로 돌아가자면, 이 부분이 원작 브레멘 이야기와 다른 점이다. 원작에서는 동물 넷의 재치?로 도둑들의 집을 차지해 버렸다. 도둑들은 그나마 자기 소유로 살던 집에서 한순간 쫓겨났고 동물들이 주인이 되어 살았다. 이후 도둑의 여생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 속에서도 또 누리는 자와 뺏기는 자가 있는 것이다. 이 것을 깬 것이 그림책에서, 동물 넷의 문 두드림이었다. 이들은 마음의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자기와 비슷한 다른 이들의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나눌 성숙함이 있었던 것이다.
실직이 실패라 할 수 있을까? 이들은 주어진 자리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다. 인생의 고난이 타인과 공감하는 폭을 넓혔다. 그랬기에 이들은 두드려서 이야기를 들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으며 그리고 자기가 가진 것을 함께 했다. 육체적 배고픔과 정신적 배고픔을 채운 넷 더하기 넷, 여덟은 자신들에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눈을 떴고 새로운 꿈을 꾸었다. 이런 시선으로 봤을 때 어떤 사람이든 쉽게 볼 사람, 함부로 대해도 될 사람은 없지 않은가.
도둑들도 그렇다. 동물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그려진 첫 장에서 도둑들은 신문을 들여다보며 구직활동을 하고, 또 한 명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길을 건넌다. 개인적인 이유일 수도 있고 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자기가 설 자리가 없어 무기력하게 서성대는 이들이 있다. 그들도 고민이 없는 게 아니다. 뭘 하고 먹고 살아야 할지, 어떻게 인정받으며 살 수 있을지. <아버지의 해방 일지>에서 아버지가 살아생전 즐겨 했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오죽했으먼 그랬을까, 오죽했으먼!"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않았다. 거기서 그림책 다섯 장 분량 정도로 그려질만큼 한참 가야 도착하는 산중턱 어디쯤에 있을 마을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브레멘이 각자가 꿈꾸었던 이상향을 나타낸다면, 이 시대 사람들이 보통 꿈꾸는 것은 어떤 것일까? 실직이 없는 곳, 자기 능력을 인정받는 사회, 집은 한 채 정도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있게 사는 것, 다른 사람에게 꿀리지 않고 존중받는 것? 뭐, 그리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좀 소박해 보여도, 내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또 나 가진 것으로 뭔가 할 수 있는 보람을 느끼고 더불어 살 수 있다면 꼭 브레멘이 아니더라도 괜찮지 않은가. 내가 사는 이 곳을 브레멘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1500세대 아파트 단지에 살며 아이들 데리고 집, 학교만 주로 다니는 나는 뉴스를 통해서나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사회 전체를 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어제도 추운 겨울을 맞아 교회 청년들이 아직 연탄을 떼는 ㅂㅅ마을에 연탄 봉사하러 갈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바로 내가 무슨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것이 떠오르진 않지만 적어도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달라질 것 같다.
며칠 전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오늘 너무 힘들었다 하소연을 했다. 전장연(전국장애인연합회)이 광화문에서 집회를 하는 바람에 집에서 여의도에 있는 회사까지 평소 2번 갈아타고 가는 길을 다섯 번이나 갈아탔다는 것이다. 시간도 시간이고 과정에서 지쳐 하루 종일 힘들었다 한다. 그 때 내가 아이구, 힘들었겠네. 남편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그런데 당장의 짜증 이면에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 거다. <우리가 몰랐던 노동이야기>라는 책에서라던가, 프랑스에서는 교통에의 불편을 느끼면 시청으로 몰려간다는데 우리도 연대로 인한 불편함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사회적 약자가 여럿이 만나 내는 그 목소리를 좀 더 귀히 여기고 귀 기울여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스토리를 재치 넘치는 그림과 함께 하는 것은 축복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그림책은 글보다 그림이 말하는 바가 더 많은데, 첫 장과 끝 장은 숨은 그림 찾기하듯 비포 애프터를 살피는 재미도 있고, 각 주인공들의 스토리를 면 분할하여 한 바닥에 쏘옥 들어오게 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전체 그림이 처음에는 어두운 모노 톤이다가 점점 연노랑으로 밝아지는 느낌을 주는 것도 주제에 알맞은 전개이다.
금방 눈이라도 올 것 같은 부연 하늘에, 어제까지 조금 따뜻하다 싶더니 오늘 다시 영하로 뚝 떨어진 추운 날이다. 회백색의 이 겨울이 누구나 숙제를 안고 살아가는 옆지기들과 함께 함으로 마음과 몸이 밝고 따뜻하게 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노란 전구빛처럼, 봄을 알리는 샛노랑 개나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