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 세월은 허송 세월이 아닙니다! 출2:11-23
天下萬事皆有意(천하만사개유의), 천하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각각 그 숨은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당장 보기에는 아무 의미 없이 헛되이 보내는 허송 세월 하는 것 같아도 그 나중을 보면 그 허송 세월이 허송 세월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한 세상 살아가는 동안 허송 세월이란 없다는 말입니다.
위수 江에서 수 십 년 동안 곧은 낚시하던 강상(태공망, 강태공, 여상)은 주나라 문왕을 만날 때가지 窮八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나이 팔십이 되도록 위수 강에서 곧은 낚시를 하며 가난하고 피곤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제갈공명은 초나라 유비의 삼고초려를 맞을 때가지 남양 와룡강가에서 밭을 갈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 때 제갈공명이 지은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봉황은 하늘을 날되 오동나무 아니면 깃들지 않는도다 鳳翶翔於千仞兮 非梧不棲 선비가 한 곳에 엎드려 있는 뜻은 주인이 아니면 섬기지 않기 때문이라 士伏處於一方兮 非主不依 몸소 들에 나가 밭을 갊은 내가 내 집을 사랑함이요 樂躬耕於隴苗兮 吾愛吾廬 한 가닥 거문고와 서책으로 마음을 달래기는 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림이 아니랴 寄傲於琴書兮 以待天時
봉황은 새는 새이나 그 뜻이 장쾌합니다. 봉황은 한 번 그 날개를 펴고 날으면 구만리 창천을 유유히 웅비하며, 맑은 이슬을 마시고, 대나무 열매로 먹이를 삼고, 오동나무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담백하고, 맑고, 고결한 품위를 가진 새입니다. 참다운 선비는, 대우만 좋다면, 돈만 많이 준다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는 속물 처럼 살지 않는 법이라고 한 것입니다. 봉황이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어찌 사람보다 귀하겠습니까? 아무리 대단하다해도 한낱 미물인 봉황도 앉는 자리를 가려 앉는 법인데 선비가 어찌 그 앉을 자리를 가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뜻입니다.
이렇게 자리를 가리다보니 먹고사는 일이 어렵게 됩니다. 선비의 뜻을 세우자니 먹고살기가 어렵고, 먹고살자니 선비의 뜻이 무너지는 진퇴양난의 곤란한 입장입니다. 이 대목에서 제갈공명은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하여 두 팔 걷어 부치고 쇠스랑 메고 호미 차고 들에 나가 밭을 갈아 먹고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 높은 제갈공명은 모든 것을 초월하였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갈공명은 자신의 마음이 심히 답답하고 우울하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섬길만한 주인과 일자리를 얻기까지 한 가닥 거문고로 마음을 달래며 밭갈이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조선 말 고종의 아버지로 천하를 한 손아귀에 쥐고 호령하던 흥선대원군 이하응도 수 십 년 동안 상갓집 개처럼 천대와 조롱을 받으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부터 가야금을 좋아하였으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에야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붙잡고 우리나라 가야금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황병기 선생.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예능분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악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레슨 한 번 받지 않았으나 지금 독일 바이로이트 바그너 축제 수석 가수가 되어 있는 세계적인 바리톤 염광철 씨 등
이 모든 사람들은 자의이든 타의이든 자기가 가야 할 길에서 멀리 동떨어진 자리에서 흘려보낸 세월을 결코 허송 세월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허송 세월처럼 여겨지던 그 모든 세월이 나중에 보니 오히려 자기 인생에 크나 큰 밑바탕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