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름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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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되면 우리 4남매는 시골 큰집으로 우르르 몰려가 이삼 주를 보내곤 했다. 몰려 온 꼬마 손님들을 챙기느라 어른들은 고생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큰어머니를 뵙고 인사를 드리고 나면 사촌 올케언니의 연이은 “애기야!”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뛰어 다녔다. 시골 생활은 신나고 재미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날이 조금 서늘해지면 남포불 밝힌 대청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총총 박힌 하늘은 집안보다 더 밝았다. 쏟아지는 별빛아래서 우리는 우리보다 좀 더 어렸던 조카들과 밤이 깊도록 놀다 잠들곤 했다. 가끔 "에헴"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면 할아버지가 계신 사랑채가 저 아래로 보였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할아버지는 방에만 계셨다. 오십 중반 무렵 눈을 다치셨다는데 그 후로 점점 눈이 나빠졌고 우리가 한참 뛰고 구르며 놀던 무렵에는 거의 앞을 보지 못하셨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가 계시던 사랑채는 늘 정지된 그림처럼 보였다.
별이 밝아 하늘이 훤한 여름밤이면 사랑채 아래로 재동 아재 댁 ‘슬레이트’ 지붕과 논이 보였다. 누구네 논이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큰집 논은 작은 고개를 넘어야 있었다. 마루에 앉으면 논을 지나 들로 가는 고갯길이 컴컴한 산 속으로 들어가는 하얀 뱀처럼 보였다. 화가 박병춘의 산길 그림들을 보면 늘 떠오르는 고갯길이다. 소 먹이러 가는 사촌오빠를 따라갔다가 소가 이리저리 움직이면 어찌해야 할지 몰라 무서워 도망친 적도 있고 산길 귀퉁이에 뱀이 벗어 놓은 허물을 보고 놀라서 울며 뛰어 넘기도 했던 길이다. 컴컴한 밤이어도 우리 눈에는 고개 너머 너른 들이 펼쳐지고 멀리로 강이 보이는 것 같았다. 큰댁이 있던 의령은 낙동강 근처라 자주 큰물이 들었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한해 농사를 망치는 때가 많아서 어른들은 걱정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길게 늘어진 강과 모래톱은 우리에겐 늘 멋진 풍경이었다.
작은 큰아버지는 면 소재지의 버스정류장에서 차표와 주전부리를 파는 작은 가게를 하셨다. 거기엔 면 사무소외에도 학교와 우체국이 있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우리가 큰집에 있으면 작은 큰아버지는 나와 동갑내기인 쌍둥이 사촌들에게 과자를 한아름 들려서 큰집으로 보내곤 하셨다. 큰집에서 한 이틀 놀다 지겨우면 이번에는 사촌이 과자 먹으러 가자고 자기 집으로 다시 우리를 끌고 가곤 했다. 큰집 뒤는 당동 아재 댁이었는데 자식들 따라 부산으로 나가시고 당시에는 빈 집만 남아 있었다. 그 뒤로 동네 아이들이 학교 갈 때 가는 길이 있었다. 신작로를 따라 빙빙 도는 길은 너무 멀어 우리는 자주 이 길을 이용했다. 사촌이 나뭇가지를 들고 앞을 휘휘 저어야 숨어 있던 길이 보였다. 방학이 되고 며칠만 아이들이 지나가지 않으면 금세 수풀이 되어버린다고 했다. 한참을 밀고 당기며 고개에 오르면 우리는 “야호!” 하며 소리를 질렀다.
파란 하늘과 짙은 초록 숲이 하얀 신작로를 더 하얗게 보이게 하는 풍경이었다. 길은 창백해진 얼굴로 말갛게 하늘만 쳐다보고 숲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분명 땀을 뻘뻘 흘리며 발개진 얼굴을 한 채 올라선 고개인데 이상하게도 그곳엔 땀방울이 흐를 틈도 없었다. 한여름의 태양도 그 풍경을 뜨겁게 만들지 못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공간. 산도, 들도, 멀리 보이는 나무도 그림처럼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멀리 지나가는 낡은 버스도 분명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 계속 같은 자리에 멈추어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고등학생일 때 이상의 수필 「권태」에서 ‘초록은 권태다.’라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이상은 시시각각 변하는 초록을 보지 않고 글을 썼다는 치기어린 교만을 가득 안고, 그럼 나에게는 무엇이 권태일까 생각하며 떠올린 풍경이다. 지금까지도 권태라는 말을 떠올리면 여전히 그 쨍 한, 조금의 움직임도 허용되지 않던, 마지막 숨을 멈춘 것처럼 보이던 그 풍경이 생각난다. 고갯길에 올라서서 내려다 본 풍경을 나는 지금도 눈앞에 사진처럼 찍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새파랗게 질린 하늘과 새털처럼 가벼운 하얀 얼굴에 하늘을 그대로 담은 채 걸려있는 구름들, 버스가 지나며 흐트러뜨린 먼지마저 도로 위에 가만히 떠 있다. 세상에서 제일 밝은 그림이다. 어느 한 곳에도 그늘이 없다. 너무 밝아서 아무것도 숨지 못하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그저 가만히 있다.
방학 때면 늘 그 길을 걸었다. 내 기억엔 여름 풍경과 겨울 풍경이 있어야 하는데 언제나 떠오르는 건 그 여름날의 풍경이다. 풍경이 멈추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 ‘그림 같다’라는 말과는 달랐다. 오히려 그림 속 장면들은 역동적인 경우도 많은데 이 풍경은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음에도 모든 것이 정지한 듯 배경에 딱 붙어 가만히 있다.
그 순간 느껴지는 권태로움이 있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혹은 아무것도 변하게 만들지 말라는 압박 같았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뛰어들고 싶은 풍경이 나를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나와는 유리된 어떤 것을 보는 것 같은 .
앞서서 나뭇가지로 풀을 쳐 내던 사촌과 뒤따르며 고함을 질러대던 동생들과 내 손길이 계속 가야했던 조카까지 난리를 내며 걷다가 만난 적막이라고 할 것이다. 아니면 막막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고요는 금방 바스러졌다. 우리는 다시 고함을 지르며 얼마 남지 않았다고 서로를 독려했고 그렇게 떠들다 보면 금세 작은 큰댁에 도착하곤 했다. 그렇게 두어 번을 오가면 우리의 여름방학이 지나갔다.
- 한국산문 2023 8월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