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부: 바다 건너 마주 보는 두 분 부처님.
당시 일본은 한 해 한 번씩 삼엄한 경계를 펼치며 일반에게 국보 1호 공개 행사를 갖는데, 잠시 경계가 느슨한 틈에 관람객의 실수로 일본 열도가 뒤집힐 큰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로써 韓·日間 논쟁이 시작된 건 당연하다.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Karl Jaspers)가 이 불상을 보고 "인간 실존의 가장 정화된 모습"이라며 극찬했던 일화가 있다.
쌍둥이설이 있는 우리나라의 국보 83호 금동보살과 일본 국보 1호 목조보살의 구체적인 비교로 불상의 미소(아르카익 스마일)에 담긴 종교적, 예술적 의미로 "신라의 미소" 또는 "천년의 미소" "천년의 향기"라 불리는데, 이 사건에 일본 미술 사학자들은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만다.
* 일본 교토 고류지(광륭사, 廣隆寺) 목조보살과 우리나라 금동보살 정보들을 참고하면,
* 우리나라엔 금동보살은 국보 78호(6세기 후반 3국 시대) 와 제83호(7세기 초반 신라) 로 지정 (현재는 지정 번호제 폐지)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2층에 마련된 전용 전시 공간 '사유의 방'에 두 금동보살이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 양국의 보살상을 비교하면,
형태적 유사성은 머리에 쓴 낮은 관의 모양, 상반신을 벗은 모습, 무릎 위에 올린 팔의 곡선 등이 거의 일치한다.
크기로는 한국의 금동보살 높이는 약 93.5cm, 일본의 목조보살은 약 123.3cm로 30cm 정도 크기 차이는 있으나 비례감과 모양이 판박이로 매우 흡사하다.
제작국에 대한 논란은 앞서 말씀드린 일본 목조보살의 재질이 적송(홍송)임이 밝혀지면서, 적송의 주산지이자 국보 금동보살이 신라에서 제작됨을 감안하면, 일본의 국보도 신라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확실시 된다.
제작국 논란에 일본 학계에서도 '재질(적송)'과 '제작 기법' 때문에 신라 전래설을 부정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도래인(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이 일본 땅에서 만들었다'는 說을 혼용하고 있다. "일본 학계도 반박할 수 없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 두 불상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가 그리워하는 듯한 마음을 한 수의 詩에 담으면-.
兩尊佛遭遇 (양존불조우): 두 부처님의 만남.
金銅瑞像映神京 (금동서상영신경)
상스러운 金銅보살, 신령스러운 서울 비추고,
慈貌紅松隔海情 (자모홍송격해정)
赤松보살 자애로운 얼굴로, 바다 건너 정 나누네.
一體分身千里外 (일체분신천리외)
본래 한 몸인 분신이 천 리 밖 멀리 떨어졌어도,
千秋微笑共心聲 (천추미소공심성)
한 결 같은 천 년 미소와, 심장 소리 공감하네.
결국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근육의 긴장을 통해 고뇌하는 인간을 그렸다면, 신라의 반가사유상은 모든 번뇌를 씻어낸 듯한 '찰나의 미소'를 통해 영원한 평온을 보여준다. 바다를 사이에 둔 두 쌍둥이 불상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치 않는 미소로 우리에게 천년 묵힌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것 겉다."
"역사는 때로 사소한 사건 하나로 그 거대한 진실의 문을 열어주곤 한다. 수수께끼 같은 미소 뒤에 숨어있는 이 불상의 고향은 과연 어디일까?
한 대학생의 우발적인 행동으로 인해 천년 동안 봉인되었던 '신라의 향기'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된 기막힌 사건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 바다를 사이에 두게된 부처님의 발자취를 연상해 보세요."
맺음말
"적송(赤松)의 결마다 새겨진 신라의 숨결과, 금동(金銅)의 빛 속에 투영된 백성의 염원은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피어난 꽃이다. 비록 몸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으나, 두 불상이 짓는 오묘한 미소는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에게 위로를 건넨다.
로댕의 고뇌보다 깊고, 인간의 언어보다 정화된 그 '사유(思惟)'의 세계.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어스름한 조명 아래서 직접 그 미소를 마주하는 순간, 천 년 전 신라의 장인이 조각해낸 미소가 오늘날 우리의 마음속에 어떻게 공명하는지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