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대학서열은? :서부삼성, 동부사성 그외 잡,,,,
여섯 명의 시민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에게 포위당한 프랑스의 도시 ‘칼레’
1년 가까이 영국군의 거센 공경을 막아내지만 더 이상 원병을 기대할 수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결국 칼레시는 항복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영국왕 에드워드3세에게 자비를 구하러 간 칼레시의 항복사절단!
그러나 점령자가 제시한 항복의 조건은?
‘좋다.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책임?’ 숨죽인 항복사절단!
‘이 도시의 시민대표 6명이 목을 매 처형받아야 한다’
광장에 모여 소식을 들은 칼레의 시민들!
‘아니 도대체 누가 죽으려고 자청한단 말인가?’
‘그래도 그들만 죽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살 수 있는 거잖아’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 광장의 시민들! 바로 그 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그 여섯 사람 중 한사람이 되겠소’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
'자 칼레의 시민들이여, 나오라, 용기를 가지고 두려워 마라....‘
그러자 뒤이어 교수형을 자처하는 다섯 사람! 시장, 상인, 법률가 등 부유한 귀족들!
그렇게 시민들을 대신해서 죽을 여섯 명이 결정된다.
그리고 다음날, 광장에 아침 일찍 모인 여섯 명의 자원자들.
점령자의 요구대로 속옷 차람에 목에는 밧줄을 걸고 교수대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칼레시와 칼레시의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그러나 이들이 처형되려는 마지막 순간, 임신을 한 왕비의 간청을 들은 에드워드3세는 죽음을 자처했던 여섯명의 시민들을 살려주게 된다.
그 이후 이 짧고도 기막힌? 이야기는 한 역사가에 의해 기록이 되고
여섯 명 시민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인 ‘노블리스 오블지주’의 상징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수 백년이 지난 후
이 이야기를 들은 로댕이 용감하게 자원한 6명의 칼레시 인질들을 대가다운 솜씨로 표현하여 ‘칼레시민’ 동상을 조각 했습니다. 로댕은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하여 10년이란 세월을 소비하였습니다.
1884년에 칼레시 측의 주문을 받은 로댕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895년 드디어 완성 작품을 칼레시 시청 앞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칼레 시민들은 영웅적인 선조들을 아름답게 미화하여 굳센 영웅상으로 표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주연격인 유스타슈 드 생 피에르를 중앙에 세우고 선동하는 듯한 모습을 하게 하고, 나머지는 피라미드 형식으로 나열하는 고전적인 조각상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로댕이 완성한 작품은 사람들이 기대한 것과 같은 애국적 영웅의 늠름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 동상은 영웅을 조각한 것이었지만 비틀린 팔, 비탄에 빠진 채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은 죽음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받침대도 없습니다. 칼레시 한복판 바닥 돌에 고정되었습니다. ‘비참한 모습의 영웅들’이었습니다. 로댕은 파격적인 발상으로 인물들을 흩어지게 배열했으며 각자의 개성을 생생하게 살리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표정 속에 불어넣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아름답게 표현했다면 인물들의 사실성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고..” “높은 곳에 두었다면 영웅성을 찬양함으로써 진실을 잊게 했을 것이다“ 애국주의나 영웅주의 대신 사실성 속의 진실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동상 옆으로 지날 때 마다 나도 그 여섯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되겠소 하는 고백을 할 수 있도록...
만일 그 때 모두가 살려고 하고 아무도 죽으려하지 않았다면 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한 사람들 여섯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첫댓글 이런 책임감 있는 상류 계층이 있음 좋겠다.......
멋지십니다
멋지네요.. 근데 오타 나신거 같아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나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하는듯 합니당
ㄳ...나도 내용 중에 나오는 말이라서 그냥 생각없이 갔다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