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만든 '13개 식민지'의 진짜 역사
미국을 만든
'13개 식민지'의 진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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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주의의 탄생지는 어디일까? 바로 13개 식민지다.
13개 식민지는 1607년 버지니아 식민지 설립을 시작으로
1732년 조지아 식민지까지 영국이 북아메리카 동해안에
조성한 13개의 식민지를 의미한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개척사가 아니다. 야망과 저항, 그리고
변화를 거쳐 현대 미국의 기초를 만든 장대한 여정이다.
처음엔 유럽 세력이 흩어 놓은 작은 전초기지에 불과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은 하나의 힘으로 뭉쳐 세계 최강 제국
중 하나였던 영국에 맞서 독립을 선언하고, 끝내 쟁취해냈다.
물론 이 13개 식민지가 모두 똑같았던 것은 아니다.
문화와 구조는 제각각이었지만, ‘영국 지배에 대한 반대’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힘을 합쳤다. 수십 년간의 탐험과 정착,
전쟁과 외교를 거치며 이들은 내외부의 수많은 도전을 헤쳐 나갔다.
그렇다면, 미합중국을 만든 "건국 13주"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는
이 역사 속에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과 인물들이 있었을까?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긴 저항 속에 형성된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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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미국의 뿌리가 된 '13개 식민지'는
결코 쉽게 탄생하지 않았다. 영국의
지배에 맞선 갈등과 정치적 긴장,
저항의 과정 속에서 형성됐고, 이는
결국 혁명으로 이어져 제국주의에
맞선 공동 전선을 만들었다.
유럽 강국의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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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기 동안 유럽 열강은 북미 대륙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영국이 패권을 장악하기 전,
프랑스·스페인·네덜란드·스웨덴 등이
지금의 13개 식민지가 될 땅에 발자취를 남겼다.
콜럼버스가 쏘아 올린
유럽인 영구 정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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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비록 훗날 미국 땅을 직접 밟지는 않았지만, 그의
항해는 스페인으로 하여금 아메리카 탐험을 촉발했다.
그 결과 플로리다 세인트 오거스틴이 세워졌고, 이는
미국 땅에 건설된 최초의 유럽인 영구 정착지가 됐다.
존재감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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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와 17세기 초, 프랑스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는세인트로렌스강 유역을
탐험하며 캐나다에 식민지를 세웠다.
같은 시기 네덜란드와 스웨덴은 지금의
뉴욕·뉴저지·델라웨어·펜실베이니아
지역에 거점을 마련했다.
북미 최초의 영국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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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년, 영국은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북미 최초의 지속적 식민지를 세웠다.
이어 1620년 도착한 청교도들은
매사추세츠 플리머스를 건설하며
영국 식민지 확장의 토대를 다졌다
우위를 점한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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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13개 식민지는 여러 유럽 국가의 통치를 받았지만,
영국은 대(對)스페인·네덜란드 전쟁과 필립 왕 전쟁에서
승리하며 지배권을 굳혔다. 영국은 유럽 경쟁국뿐 아니라
토착민들과의 싸움에서도 우위를 점하며
대서양 연안을 장악했다.
세 구역으로 나뉜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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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 식민지는 지역적으로 뉴잉글랜드,
중부, 남부 세 구역으로 나뉘었다.
각 지역은 지형과 경제 구조,
문화적 특징이 달랐지만, 영국이라는
공통의 지배 체제 아래 놓여 있었다.
북부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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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식민지(매사추세츠, 뉴햄프셔, 로드아일랜드, 코네티컷)는
척박한 땅과 천연 항구를 가졌고, 특히 보스턴은 무역 중심지로
성장하며 ‘보스턴 학살’과 ‘보스턴 차 사건’ 같은
혁명적 사건의 무대가 됐다
애국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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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와 거친 토양 때문에 농업이 힘들었지만
이곳에서는 나단 헤일, 존 애덤스, 새뮤얼 애덤스 등
혁명 지도자들이 등장해 초기 저항과
헌법적 가치 확립에 기여했다
중부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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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식민지(뉴욕,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델라웨어)는
비옥한 평야와 기나긴 강(허드슨강, 델라웨어강)을
바탕으로 밀 중심으로 한 농업과
상업 또한 발전한 곳이었다.
비옥한 땅의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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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펜실베이니아를 중심으로 이 지역에선
알렉산더 해밀턴과 존 제이 같은 지도자가 등장해,
미국의 경제적 토대와 외교, 법 체계에 큰 영향을 남겼다.
남부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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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식민지(메릴랜드부터 조지아까지)는
따뜻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 덕분에 농업이 발달했다.
특히 대규모 플랜테이션은 경제적 번영을 이끌었지만,
동시에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 구조는
훗날 국가적 분열의 씨앗이 됐다.
대통령을 배출한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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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는 남부 식민지에서 인구가 가장 많았고,
조지 워싱턴·토머스 제퍼슨·제임스 매디슨 같은
건국의 아버지들을 배출하며 미국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사유 vs 자치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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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 방식은 왕이 임명한 총독이 다스리는 왕령 식민지,
토지를 하사받은 귀족이 통치하는 사유 식민지,
그리고 주민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자치 식민지
등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어느 곳이든
입법 의회는 존재했고, 대체로
부유한 지주들이 지배권을 쥐었다.
지방 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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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사회의 일상은 지방 자치에 의해 좌우됐다.
뉴잉글랜드는 마을 회의를 통해 주민 참여가 활발했으며,
남부는 소수 엘리트가 카운티 단위로 행정을 주도했다.
방식은 달랐지만 두 지역 모두 식민지 주민들이
세금과 규칙을 스스로 결정하는 데 일정한 권한을 행사했다.
제국의 경제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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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식민지는 오직 영국의 부를 불리기 위해 존재했다.
이는 중상주의(mercantilism)라 불리는 경제 원칙이었다.
영국은 다른 나라와의 교역을 제한하고,
수입보다 수출을 강요했으며, 식민지 제조업을 억제해
자국 경제를 보호했다. 이러한 정책은
식민지 주민의 불만을 키웠다.
무역 규제가
불러일으킨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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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규제가 심화되자 식민지인들은 영국이
자신들의 시장을 침해한다고 반발했다.
억압적이고 경제적으로 해롭다는 인식이 퍼지며,
훗날 혁명을 촉발할 항의의 씨앗이 심어졌다.
앤 여왕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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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년부터 1713년까지 이어진 '앤 여왕의 전쟁 '은
영국과 프랑스·스페인의 충돌로, 캐나다에서 플로리다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쟁은
식민지인들에게 제국 전쟁의 참혹함을 체험하게 했고,
군사적 경험과 더불어 공동 정체성의식을 강화했다.
위트레흐트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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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은 전쟁을 끝내며 영국에
캐나다의 아카디아, 뉴펀들랜드, 허드슨만 등
귀중한 영토를 안겨줬다. 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영국의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식민지인들이
영국 군사력에 의존하는 현실을 굳혔다.
영국 대 프랑스의
북미 패권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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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대 들어 영국과 프랑스는 다시
북미 패권을 두고 맞붙었다. 이른바
프렌치-인디언 전쟁은 조지 워싱턴 같은
지도자들에게 군사적 경험을 제공하며,
훗날 혁명 전략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영국, 땅과 함께 얻게 된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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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3년 파리 조약은 전쟁을 종결시키며
영국에 방대한 영토를 안겼다. 하지만
전쟁 비용으로 쌓인 막대한 부채 탓에
영국 의회는 식민지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했다.
이는 식민지 주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혜택도 없는 과세’라는 항의로 번지게 된다
식민지 주민들의 불만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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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유리, 차 등에 매겨진 세금은
일상 비용을 높이며 불만을 폭발시켰다.
식민지인들은 의회에서 투표권조차 없는 상황에서
세금이 부과되는 것을 기본적 자유의 침해라 규정했다.
보스턴 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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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정도 세금은 철회됐지만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1770년 보스턴에서는 보스턴 학살로 민간인들이
영국군에게 희생됐고, 1773년에는 식민지인들이
차를 바다에 던지는 '보스턴 차 사건'이 벌어졌다.
충격을 받은 영국은 보스턴을 겨냥한 가혹한 법,
이른바 ‘참을 수 없는 법(Intolerable Acts)’으로 응수했다
공동 대응책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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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맞서 벤자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패트릭 헨리 같은 지도자들이 대륙회의를
소집해 공동 대응을 논의했다.
매사추세츠에서 불붙은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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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 4월 매사추세츠 렉싱턴과 콩코드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며 전쟁이 본격화됐다.
식민지 민병대는 영국군과 교전하며 단순한
저항을 무장 독립 투쟁으로 끌어올렸다.
독립선언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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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7월 4일, 식민지 지도자들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자치와 자유를 선언했다.
이는 8월 2일 공식 서명되며 새로운 국가,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 의 탄생을 알렸다
대영제국과
13개 식민지 사이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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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 장군이 이끄는 대륙군은
13개 식민지에서 병력을 모집해 6년 동안
대륙 전역에서 독립을 위한 전투를 벌였다.
1781년 요크타운에서 영국의 항복으로
전쟁이 사실상 종결됐다.
미국 헌법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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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3개 식민지는 연합 규약
(Articles of Confederation) 아래 동맹을 결성했다.
그러나 중앙 권력이 부족해 운영에 한계가 있었고,
결국 1789년 알렉산더 해밀턴과 제임스 매디슨 등
연방주의자들이 새로운 헌법을 추진했다.
그 결과 보다 강력한 연방 체제가 마련되며
국가의 기틀이 다져지게 된다
50개 주를 아우르는 연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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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미국은 루이지애나 매입, 알래스카 매입, 하와이 합병 등
영토 확장을 거듭하며 원래의 13개 식민지를 넘어 50개 주를
아우르는 거대한 연방으로 성장했다. 처음에는
영국의 변방이었던 식민지가 이제는 세계를
움직이는 초강대국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출처
(TheCollector) (Britannica)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