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은 인간을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미약한 존재로 보았다.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는
갈대처럼 연약하지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위대한 존재라는 것이다. 한편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했다. 생각은 인간 존재의 증명이자 가치였다.
강가를 걸을 때마다 갈대를 바라본다. 봄이면 뿌리에서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고, 가을이면 은빛 꽃을 피운다. 서리가
내리면 하얗게 말라 한 생을 마감하는 듯하지만, 그 마른 줄기는 겨우내 울타리가 되어 뿌리를 지킨다. 다시 새순이
올라올 때까지 자신의 마지막 힘을 다하는 것이다. 하찮아 보이는 미물조차 혼신을 다해 생명을 이어가는데,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를 이어갈까.
파스칼이나 데카르트 같은 대철학자에 비하면 나는 개미 한 마리만도 못한 존재일지 모른다. 거창한 사상을 남길 능력
도 없다. 그러나 나에게도 한 가지 믿음은 있다.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내 책상 위에는 메모지가 겹겹이 쌓여 있다. 하루에도 몇 장씩 늘어난다. 문득 떠오른 생각, 스쳐 지나가는 풍경, 누군가
의 말 한마디를 허겁지겁 적어 놓은 흔적들이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은 번개처럼 떠올랐다가 안개처럼 사라진다. 적어
두지 않으면 있었던 생각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 메모들은 나에게 일종의 임시 외장하드와도 같다.
처음에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메모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시 들춰보면 서로 떨어져 있던 생각들이 실처럼 이어
지고, 한 편의 수필이 되고, 한 권의 책이 되기도 한다. 창조란 무(無)에서 갑자기 생겨나는 기적이 아니라, 작은 씨앗 하나
에서 시작되는 성장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심지 않고 열매를 기다릴 수는 없다.
예부터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현실이 되듯이, 글 한 줄도 언젠가는 새로운 생각을 싹틔우
는 씨앗이 된다. 오늘 무심코 적어 둔 한 줄이 내일의 글이 되고, 몇 해 뒤에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 쓴다. 생각은 머릿속에서 사라질 수 있지만, 글은 종이
위에 남아 나를 증명한다. 갈대가 겨울을 견디며 새봄을 준비하듯, 내가 남긴 한 줄 한 줄의 메모도 언젠가 새로운 생명을
틔울 밑거름이 될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이 위대하다면, 쓰는 인간은 생각을 세상에 남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해 보고 싶다.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