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은 조용히 들어온다
썰물이 되면 바다는 넓은 갯벌을 내어준다. 사람들은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하나둘 갯벌로 들어간다. 나는 학창시절 마산
산호동 바닷가에서 살았기 때문에 조개캐러 자주 다녔다. 처음에는 가까운 곳에서 조개를 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욕심
이 생긴다.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적고, 조개는 훨씬 많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이 한마디가 사람을 바다 깊숙이 이끈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조개를 캐는 재미에 빠지면 시간도, 바람도, 물의 흐름도 잊는다. 손에 잡히
는 조개가 많을수록 발걸음은 더 안쪽으로 향한다. 그 사이 밀물은 아무 소리 없이 다가온다. 발목을 적시던 물은 어느새 무릎
까지 차오르고, 뒤를 돌아보면 이미 돌아갈 길은 물에 잠겨 있다. 그제야 사람은 허둥지둥 뛰기 시작하지만, 욕심으로 벌어진
시간의 간격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의 주식시장도 이와 닮아 있다.
식당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주식 이야기뿐이다. 군인도, 주부도, 은퇴한 노인도 모두 투자자가 되었다. 10%의 수익
은 성에 차지 않고, 두세 배의 수익을 이야기해야 성공담이 된다. 주식은 더 이상 일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일상의 대화가
되었다.
1929년 대공황 직전, 구두닦이 소년마저 주식 종목을 추천하자 조지프 케네디는 시장이 과열되었음을 직감하고 모든 주식을
팔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늘날에도 그 일화는 '구두닦이 지표'라는 이름으로 회자된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오히려 가장 위험한 순간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경고다.
시장은 언제나 탐욕을 보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보상은 종종 더 큰 탐욕을 부른다. 사람들은 기업의 가치보다 '나보다
더 비싸게 사 줄 사람'을 기대하며 투자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더 큰 바보 이론'이라 불렀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주식을 받아 줄 사람이 없는 '마지막 바보'가 된다.
갯벌에서도 가장 위험한 사람은 조개를 가장 적게 캔 사람이 아니다. 가장 많은 조개를 캐겠다는 욕심에 가장 깊숙이 들어간
사람이다. 그는 조개를 가장 많이 담았을지 모르지만,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가장 늦게 돌아서야 한다.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투자 열풍도 그렇다. 지금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미래 산업에 대한 냉정한 분석보다 '나만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돈을 버는 이야기가 들릴수록 마음은 조급해지고, 조급함은 판단을 흐린다.
결국 사람들은 기업을 사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사고, 가치를 사는 것이 아니라 군중을 따라 걷는다.
바다는 욕심을 꾸짖지 않는다. 다만 때가 되면 밀물을 보낼 뿐이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상승장은 영원하지 않고, 탐욕은 언제나
조용한 경고를 무시하게 만든다. 밀물은 파도 소리를 크게 내며 오지 않는다. 사람들의 환호와 웃음소리 사이를 조용히 스며든다.
그래서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얼마를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지금 나는 왜 사고 있는가?"일 것이다. 기업의 미래를
믿어서인지, 아니면 모두가 사니까 나도 사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만이 밀물이 시작되기 전에 갯벌을 빠져나올 수
있다.
조개는 내일도 캘 수 있다. 그러나 목숨은 한 번뿐이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기회는 다시 오지만, 한 번 잃은 원칙과 삶의 기반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갯벌에서 살아 돌아오는 사람은 가장 많은 조개를 캔 사람이 아니라, 물때를 아는 사람이다. 투자에서도 끝내 웃는 사람은 가장
큰 수익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탐욕보다 원칙을 먼저 지키는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