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時不再來 💝
(시불재래)
한 번 지나간 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요즘에는
億(억)이나
兆(조)를 쉽게 말하지만
우리 인생은
백 년을 산다해도
삼만 육천 오백일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중에 잠잘 때와 병든 날과
어려서 철모르던 때와
늙어 활동하지 못할 때를 빼고나면,
정말 짧은 우리 인생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정해진 날 중에서
하루를 쓰고 있는 것이다.
2022년 현재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84세 라는데
그도 남자는 77.3세...!!!
정말 오늘을 즐기지 못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될 뿐입니다.
행복하면
웃음이 절로 나오겠지만
웃어서라도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조건없이 그냥 웃어야 겠지요.
내일은
늘 내일일 뿐입니다.
오늘에
최선을 다한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https://naver.me/x9cpnY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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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한 방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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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고교 선배들과 만나는 모임에서 였다.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이어령 교수였어.
아직 이십대의 천재 선생이 칠판에 두보의 시를 써 놓고 해설을 하는데 황홀했었지.”
경기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그는 대학으로 옮겨 교수가 되고 대한민국의 지성의 아이콘이 됐다.
그리고 돌아가신지 세 달이 됐다.
말하던 그 선배가 덧붙였다.
“그 양반은 낮았던 대한민국의 정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거야.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지.”
나라마다 민족의 나침반이 된 천재들이 있다.
일본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개화 무렵 일본의 방향을 서구화와 민족주의로 잡고 교육에 헌신했었다.
우찌무라 간조는 일본인의 정신적 성장을 추구하고 많은 훌륭한 제자들을 남겼었다.
이어령 교수도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
이어령 교수가 대학에서 정년 퇴직을 할 무렵의 짧은 소감을 담은 시사잡지를 보고 메모를 해 둔 것이 아직 남아 있다.
“나뭇잎들이 낙엽이 되면 빨리 줄기에서 떨어져야 하듯이 사람도 때가 되면 물러 앉아야 해요.
새잎들이 돋는데 혼자만 남아 있는 건 삶이 아니죠.
갈 때 가지 않고 젊은 잎들 사이에 누렇게 말라 죽어있는 쭉정이를 보세요.”
그는 아직 윤기가 있을 때 가을바람을 타고 땅에 내려오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귀중한 철학이었다.
죽음에 적용해도 될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겨두었다.
다시 세월이 흘렀다.
어쩌다 화면에서 본 이어령 교수의 얼굴에 골 깊은 주름이 생기고 병색이 돌았다.
어느날 몰라볼 정도로 살이 빠진 그의 모습이 보이고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어떻게 병을 맞이했고 죽음 앞에서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자의 죽음은 많은 걸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은 가장 위대한 설교였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어령 교수의 부인이 말하는 장면이 흘러나오는 걸 봤다.
“남편은 항암치료를 거부했어요.
남은 시간이 얼마 안되는 데 항암치료를 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남편은 남은 시간을 자기 맘대로 쓰고 싶다고 했어요.
다른 노인들은 할 일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남편은 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남편은 컴퓨터로 글을 썼어요.
남편은 몽테뉴의 수상록처럼 날마다 일기를 썼어요.
그날그날 생각나는 걸 가장 자유로운 양식으로 쓴 거죠.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손가락에 힘이 빠져 더블 클릭이 안되는 거예요.
남편은 손글씨로 글을 썼어요.
처음에는 글 사이에 그림도 그려놓고 했는데 점점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는 거예요.
그림도 없어지고 갈수록 글씨도 나빠졌어요.
건강이 언덕 아래로 굴러내려가는 거죠. ”
'그는 무너져 내리는 몸을 보고 어떻게 했을까?'
그에 대해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남편은 걸으려고 애를 썼어요.
일어났다가 맥없이 주저앉아 버리곤 했어요.
그러다 걸을 수 없게 된 걸 깨달았을 때 그렇게 펑펑 울더라구요.
그 머리가 좋던 남편이 기억이 깜빡깜빡하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치매가 온다고 생각하고 또 펑펑 울었죠.
남편은 두 발로 서서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했어요.”
중년의 미남이었던 그의 장관 시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위에 금가루라도 뿌린 양 번쩍거리는 느낌이었다.
인간은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녹이 슬고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 다음 순서인 죽음을 그는 어떻게 대면했을까?'
부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남편은 보통사람보다 열배 스무배 예민한 예술가였어요. 죽음 앞에 강인하지 않았어요.
고통과 죽음을 너무 민감하게 느꼈어요. 너무나 외롭고 두려운 심정을 자신의 글에 그대로 표현했죠. 남편은 노트에
‘나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일까?’
라고 썼어요.
그 노트를 다 쓰고 ‘눈물 한 방울’이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책을 내려고 했죠.
그런데 노트 스무장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갔어요.”
듣고 있던 인터뷰의 진행자가 물었다.
“나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말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못 찾은 거죠. 죽어봐야 알 것 같다고 썼어요.”
“제목으로 정한 ‘눈물 한 방울’의 의미는 뭐라고 보시나요?”
진행자가 다시 물었다.
“자기를 위한 눈물이 아니예요.
남을 위해서 울 수 있는 게 진정한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남편은 남긴 거예요.” ♥
늙음과 병 그리고 죽음 앞에 정직해져야 할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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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夫婦]의 정[情]
참으로 영원할 것 같고 무한할 것같은 착각속에
어이없게도 지내고 보면
찰나인 것을 모르고,
꽃길같은 아름다운 행복을 꿈꾸며 우리는 부부라는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얼마전 병문안을 드려야할 곳이 있어, 모 병원
남자 6인 입원실을 찾았다.
암 환자 병동이었는데, 환자를 간호하는 보호자는 대부분이 환자의 아내였다.
옆방의 여자 병실을
일부러 누구를 찾는 것처럼 찾아들어 눈여겨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환자를 간호하는 보호자 대부분이 할머니를 간호하는 할아버지가 아니면 아내를 간호하는 남편 이었다.
늙고 병들면
자식도 다 무용지물,
곁에 있어줄 존재는
오로지 아내와 남편뿐이라는 사실을 깊이 느꼈다.
간혹 성격차이라는 이유로, 아니면 생활고나
과거를 들먹이며,
부부관계를 가볍게 청산하는 부부도 있지만..
님들 이여!
너무 서두루지 마시라.
우리는 언젠가는
갈라져야 하는 운명이며,
다만 신께서 때를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젊음은 찰나일 뿐,
결국에 남는 것은 늙어 병든 육신만 남아 고독한 인생여정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때는 잘 나가던 권력자나 대기업가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권력의 뒤안길에서 그들이
지금 누구에게 위로받고 있겠는가,
종국에는 아내와 남편 뿐일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리며 천하를 호령하던 이들도, 종국에 곁에 있어 줄 사람은
아내와 남편 뿐이다.
오늘 저녁에는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했노라! 고생했노라!
희미한 조명아래 손을 가볍게 잡으며
더 늦기 전에 한번 해볼 일이다.
혹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한 잔의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말이다.
주마등 같은 지난 세월에
부부의 두눈은 말없이 촉촉해질 것이다.
우리가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부부 간에도 같이 있을때는 잘 모르다가
반쪽이 되면 그 소중하고 귀함을
절심히 느낀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늙으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양보하며 화기애애한 여생을 갖도록 우리 모두 노력합시다.
가까우면서도 멀고,
멀면서도 가까운 사이 부부..
곁에 있어도 그리운게 부부..
한 그릇에 밥을 비벼 먹고,
같은 컵에 입을 대고 마셔도 괜찮은 부부..
한 침상에 눕고, 한 상에 마주 앉고,
몸을 섞고, 마음도 섞는 부부..
둘이면서 하나이고,
반쪽이면 미완성인 부부 ...
혼자이면 외로워 병이 되는 게 부부..
세상에 고독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젊은이는 아련하게 고독하고,
늙은이는 서글프게 고독하다.
부자는 채워져서 고독하고,
가난한 이는 빈자리 때문에 고독하다.
젊은이는 가진 것을 가지고 울고,
노인은 잃은 것 때문에 운다.
청년때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에 떨고
노년에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면서 떤다.
젊은이는 같이 있어 싸우다가 울고,
늙은이는 혼자 된 것이 억울해서 운다.
사실, 사람이 사랑의 대상을 잃었을때보다
더 애련한 일은 없다.
그것이 부부일 때 더욱 그리하리라.
젊은 시엔 사랑하기 위해 살고,
나이가 들면 살기 위해 사랑한다.
"아내란 ...
청년에게 연인이고,
중년에게 친구이며,
노년에겐 간호사다"
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인생 최대의 행복은,
아마도 부도 명예도 아닐 것이다.
사는 날 동안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사랑을 나누다가,
"난 당신 만나 참 행복했소!"라고 말하며..
둘이 함께 눈을 감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되고 행복하게 살다 갑시다.
夫婦 ...
남편 글자가 부인 글자보다 먼저인 것은
높아서 먼저가 아닙니다.
건장한 남편이 힘든 일 먼저 하라고
사내 夫 자가 먼저일 뿐,
높은 자리라고 생각을 했다간
큰 코 다친다는 것 ...
이제 모르는 사람 없을 겁니다.
"사랑하며 살아도,
남은 세월은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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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로는 벌써 立冬이 지났습니다
아름답던 가을의 풍광도
낙엽되어 떨어지고 앙상한
裸木은 낙엽을 이불삼고 혹독한 겨울채비를하네요
우리의삶도 三冬을무사히
넘겨야겠습니다
아직도 코로나가 끊임없이
전염되고 겨울독감도 조심
해야 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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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머리는 남자입니다.—고린도 전서 11:3.
남편은 자신의 가족을 대하는 방식과 관련해
여호와와 예수 앞에 책임이 있습니다
. (베드로 전서 3:7) 여호와께서는 우주 가족의 머리로서 자신의 자녀들이 따라야 할 규칙을 정할 권위가 있으시며, 그 규칙들을 시행할 능력이 있으십니다. (이사야 33:22) 예수께서도 그리스도인 회중의 머리로서 규칙을 정하고 시행할 권한이 있으십니다. (갈라디아 6:2; 골로새 1:18-20) 여호와와 예수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가정의 머리에게도 자신의 가족을 위한 결정을 내릴 권위가 있습니다. (로마 7:2; 에베소 6:4) 하지만 가장의 권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규칙을 정할 때 하느님의 말씀에 나오는 원칙을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잠언 3:5, 6) 그리고 가장은 자신의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규칙을 정해 줄 권위가 없습니다. (로마 14:4) 또한 자녀가 자라서 집을 떠나면, 아버지를 계속 존경하기는 하지만 더 이상 그의 머리 직분 아래 있지는 않습니다.—마태 19:5. 「파21.02」 2-3면 3-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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