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는 청성잡기
신풍 장씨(新豊張氏)의 서자 중에 어려서 몸이 날랬던 자가 있었는데, 일찍이 고양이를 쫓아 담을 뛰어넘다가 칼날을 밟아 그만 절름발이가 되었다. 병자호란 때 온 집안 식구가 피난을 갔으나, 그는 따라갈 수가 없어서 도성 안에 숨어 있었다. 마침 설이 임박한 때였으므로 부잣집 부엌에는 남기고 간 음식이 가득하여 굶주리지 않을 수 있었고, 낮에는 눈에 띄지 않는 깊숙한 곳을 골라 숨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오랑캐 두 놈이 먹을 것을 약탈하기 위해 뜰에 뛰어들었다. 뜰에는 김칫독을 줄지어 묻어 두었는데 태반은 비어 있었다. 오랑캐들은 김치를 허겁지겁 배불리 먹고 갈증이 나자 동치미 국물을 마시려 하였지만 국물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퍼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손을 땅에 짚고 머리를 독 속에 넣고 마시니, 시원하고 새콤한 것이 입맛에 맞아 - 이 맛을 누가 알랴. - 벌컥벌컥 마셔 댔다.
절름발이는 문틈으로 이 광경을 엿보고 있다가 손바닥이 근지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갑자기 문을 뛰쳐나가 덮치니, 오랑캐들은 모두 독 속에 거꾸로 처박혀 그대로 젓이 되고 말았다. 난리가 평정된 후 두 오랑캐의 귀를 잘라 바치니, 조정에서는 그에게 무공(武功)으로 벼슬을 내렸다.
절름발이 서자도 적을 죽일 수 있는데, 절름발이가 아닌 서자 홍계남(洪季男) 같은 자는 그 공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주D-001]신풍 장씨(新豊張氏) : 덕수 장씨(德水張氏)를 말하는데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주D-002]홍계남(洪季男) :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서출이었는데 용력이 뛰어나고 말달리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금군(禁軍)에 소속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홍언수(洪彦秀)를 따라 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인근의 여러 고을에서 전공을 세우고 첨지로 승진되었다. 이듬해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전라도와 경상도로 진출하여 이빈(李蘋), 선거이(宣居怡), 송대빈(宋大斌) 등과 함께 운봉, 남원, 진주, 구례, 경주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 뒤 1596년에는 이몽학(李夢鶴)의 반란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