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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의 사랑 2)
발렌시아의 아침이 밝았다. 어제 술을 한 탓인지 이곳 여행에서는 제일 늦은 시각인 7시에 일어났다. 일터로 향하는 차 소리가 요란하다. 이곳은 연중 내내 온난한 기후로 오렌지와 파에야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만은 호텔 예약을 여행사가 아닌 우리가 직접 하였기에 아침 식사가 포함이 안 되어 있다. 원래 그라나다에서 밤기차 타고 바르셀로나로 가는 일정으로 되어 있는 것을 바꾸는 바람에 발렌시아에 머물 곳은 우리가 직접 해야 했다. 연말연시에는 체인화 되어 있는 호텔이 일종의 바겐세일을 한다. 그것을 이용해 이곳 누보텔 호텔을 싸게 잡았었다. 우리는 농산물이나 수산물이 많은 이곳에 왔으니 중앙시장에 들러 해장도 하고 과일도 사기로 했다. 다행히 그 옆에 카테드랄하고 15세기 거래소로 쓰였다는 라론하라는 건물이 있어 잘되었다 싶었다.
80만 명이 모여 사는 곳이니 시내는 당연 복잡할 것이라 택시를 잡아타고 우리는 도심을 향했다. 곳에서 카테드랄을 보았다. 흔히 보던 것이라 솔직히 무덤덤했다. 우리는 옆으로 돌아 지금은 경로당으로 쓰인다는 라 론하를 마저 보고 길을 건너 바로 시장으로 나왔다. 해장으론 순대국밥이나 소머리 국밥이면 그만이다 싶어 시장 근처를 누볐지만 국물은 고사하고 음식 집이 문을 연 곳이 하나도 없다. 우리는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없는 것이 없다 싶을 정도로 꽉 들어찬 시장이지만 그렇게 깨끗하고 깔끔할 수 없다. 생선이 즐비한데도 바닥에 물기가 흐리지 않으며 칼질을 안 해서 그런지 비릿한 냄새도 없다. 그들 특유의 절인 돼지고기의 넓적다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저것이라도 하나 가지고 가 우리 족발 먹듯 먹으면 어떨까 싶다.
세비야의 호텔 아침 식사 때 우리 순대 같은 것이 눈에 띄어 왠 떡인가 싶어 날름 먹었다가 곤욕을 치룬 적이 있다. 생김은 비슷한데 그렇게 맛이 차이가 날 수가 없었다. 창틀에 매달린 고기 절임도 여러 향취를 무쳐 놓았는지 가까이 가면 꼭꼭 포장을 하였음에도 특유의 냄새가 새어 나왔다. 이 세상 아무리 동질화되고 같아진다 해도 영원히 같아질 수 없는 것이 입맛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렇지도 않다 싶은 것이 맥도널드 햄버거하고 피자다. 맛이 있고 편하다 싶은데 독특한 향취를 즐기는 사람들 또한 곳에 가보면 꽈 들어차 있다. 참 알 수없는 것이 내 입맛이고 그들 입맛이다. 우리는 포도하고 오렌지를 잔뜩 사가지고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말을 탄 용맹스런 기사의 상을 얼핏 보았다. 그가 바로 엘시드인가. 이곳 사람들은 외지인이 오면 으레 엘시드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곳의 역사적인 소외감에서 비롯한 이야기일 수 있다. 어제 만난 그 역시도 내게 이곳이 엘시드로 유명한 곳이라 하였었다.
엘시드. 젊을 적 역사적 배경도 모르면서 왕에 충성을 다하는 용맹한 기사를 다룬 영화를 본 것이 바로 그 엘시드였었다. 그러니 남아 있는 것이라곤 영화배우가 칼싸움을 잘하더란 것 밖에는 없다. 그들의 국토회복 운동 시기에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싸워서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하는 투철한 의식이었다. 그 의식으로서 산티아고(성 야고보)의 무덤이라는 캄푸스 스텔라가 있고 바로 이 엘시드 전설이 있다. 그 시기는 성주들이 성 안에 모여든 그들의 백성들에게 무용담을 전하고 전하던 때라 말로 전해진 엘시드 이야기는 대단한 예시였다. 엘시드는 아랍 어로 나의 군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본명이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인 그는 1043년 부르고스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065년 카스티야-레온 통합왕국의 최초의군주인 페르난도 1세가 죽으면서 장자인 산초 2세에게 카스티야를, 둘째인 알폰소 6세에게 레온을, 그리고 가르시아에게는 갈리시아와 포르투갈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산초 2세의 무장기사였는데 산초 2세는 암살을 당하고 만다. 그 뒤를 이어 동생인 알폰소 6세가 카스티야를 맡게 되는데 그에게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만 산초 2세의 암살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것을 군주에게 강력히 요구를 한다. 이를 모욕으로 여긴 군주는 그를 카스티야로부터 추방을 하게 되는데 그렇지만 그는 당시 세력을 규합하여 쳐들어오는 이슬람 세력 알모라비데 족과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두고 1094년 그 여세를 몰아 발렌시아까지 국토회복을 한다. 그리고 비록 자기를 버렸지만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군주에게 발렌시아의 영토를 바침으로써 변함없는 충성을 과시한다.
이러한 역사적 내용이 그간에 말로써 전해오던 것을 1140년 방랑시인에 의해 카스티야어로 최초로 기록되어지는데 바로 이것이 스페인 문학의 효시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소설화된 영웅이 실제의 엘시드와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은데 그 진위는 나로선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그는 실제 인물로서 당시 국토회복운동을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엔 틀림이 없다. 특히 성과 성으로 구분되어 지역이 나누어져 살던 때 구전으로 전해졌던 엘시드 같은 무용담이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그들의 삶에 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발렌시아에서 조금 올라 가면 테루엘이란 곳이 나오는데 테루엘의 연인들에 대한 사랑의 전설은 아주 유명하다. 부모가 사랑을 갈라놓자 남자는 돈을 많이 벌어와 결혼을 허락 받으려 한다. 그러나 돌아온 때는 이미 늦었고 그는 결국 사랑을 죽음으로서 나타낸다. 그러자 여인 또한 사랑을 죽음으로서 나타낸다.
이 세상 어디를 가나 사실 이런 전설은 흔하다. 하지만 흔하여 가깝고 사랑의 순수함은 시대를 넘어서 늘 존속한다. 필시 그러한 정서가 그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배어 열정의 사랑과 영원한 사랑의 모토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베리아 반도처럼 순수한 사랑이야기가 많은 곳도 드물지 싶다. 특히 그 중에서도 역사적으로도 아주 유명한 사랑이야기가 포르투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비련을 다룬 이야기 가운데 로미오와 줄리엣 만큼 유명한 것은 드물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픽션이고 포르투갈 사람이라면 다 아는 페드로와 이네스 이야기는 역사적이 사실이다. 포르투갈 국왕 알폰소 4세(재위 1325~1357)의 아들이자 황태자인 페드로는 스페인 나바라왕국의 공주 콘스탄체와 혼인했다. 그런데 그녀가 친정에서 데려온 시녀 가운데 너무나 아름다운 이네스가 있었다.
이네스에 반한 페드로는 아내를 멀리 하였으며 결국 공주는 아들을 낳다가 죽고 만다. 그녀의 아들이 훗날 페르낭 1세가 된다. 페드로는 이네스와 결혼을 하려 하였지만 왕 알폰소는 궁중의 불행을 가져온 장본인이라 하여 부하들을 시켜 이네스를 죽여 버린다. 그녀가 죽고 2년 뒤 왕위에 오른 페드로 1세(재위 1357~1367)는 이네스를 죽이는데 참여한 신하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비록 이네스는 죽었지만 당당히 왕비의 예우를 받아야한다고 공포한다. 그리고는 그는 알코바사에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묘역을 지어 이네스를 안치하고 그후 그가 세상을 떠날 때 그도 이네스 곁에 안치된다. 이 슬픈 사랑이야기는 끊임없이 화제가 되어 이후 많은 노래나 가곡의 소재가 된다.
이러하듯 이 세상 사랑이야기는 무궁무진한데도 질리지도 않은지 어디를 가든 또 사랑 이야기이다. 나 역시도 사랑이야기는 매번 듣지만 질리지 않는다. 이는 인간이 갖는 가장 고귀한 선물이고 최대의 자산이라 그러하지 않을까. 이마저도 팽개쳐 버렸다면 세상은 벌써 멸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수한 사랑의 뜻대로 탐욕을 버려 사랑을 구할 것인데 요즘은 사랑을 하기위해 탐욕을 추구한다 싶기도 하고 탐욕과 더불어 사랑이 영그는 것 같이 혼란스럽기도 하다. 우리는 짐을 챙겨 오늘의 목적지 바르셀로나로 향하였다. 생동감 넘치는 발렌시아를 떠나며 나는 어제 저녁 식사를 맛있게 제공해준 그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그가 택한 사랑의 전설이 오늘따라 영롱한 이슬처럼 맑고 투명하게 느껴진다. 그는 그의 아내를 택하는 바람에 형제들과도 멀리하고 사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런 나는 사랑의 순수함은 시대를 넘어서 늘 존속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오늘 발렌시아를 다녀간 기념으로 챙겨 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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