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에 손님이 들어오면 에어콘 바람이라도 돌려 놓고 시원한 냉커피나 내어오지 않고 무슨 놈의 뜨거운 녹차냐 하실 분들이 많을 줄로 안다. 하지만 '이열치열'이라고 따끈한 녹차 한잔도 몸에 나쁘지는 않을테니 한잔 해 보슈1
다음 글은 재작년 중국 보타도(중국에 유학왔던 일본의 한 스님이 오대산에서 불경공부를 마치고, 관음보살상을 모시고 일본으로 건너가려다가 기상이변이 일어나 일본으로 가지고 가지 못하고 그곳에 절을 짓고 모셨다고 함)를 따라갔던 여행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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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龍井茶 ]
한 이태 전에 불교교수회를 따라 중국의 4대 불교성지라고 알려져 있는 중국의 보타도를 다녀왔다. 도중에 우리 일행은 항주(杭州)에서 일박을 하게 되었다. 항주는 중국남동부 절강성의 성도로 옛 지명은 명주(명주)였으며 인도에서 불교가 제일 먼저 들어 온 곳이다. 인구 160만 정도의 아담한 도시로 시내 한 가운데에 서호(西湖)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자리잡고 있다. 서호는 옛부터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나 소동파, 백낙천 등 역대 문인들이 찾아와 서호의 아름다움을 시로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소동파가 서호를 전국시대의 미인인 서시(서시)에 비유하여 읊은 시가 유명하다. 서시는 잠자리 옷을 걸치고 엷은 화장을 하고 있든, 혹은 짙은 화장을 하고 있든,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다웠다고 하며. 서호 역시 맑은 날씨이거나 비 오는 날씨이거나 제각기 나름대로의 사람을 도취시키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다음은 그가 노래한 서호 찬가이다.
水光 艶晴方好, (햇빛 맑은 청명한 날엔 물빛이 반짝이고)
山色空 雨亦奇, (비 오는 날엔 그 안개 낀 산색이 또한 신비롭네)
欲把西湖比西子, (서호를 서시에 비하건대, 단아하게 꾸몄든 성장을 했든)
淡粧濃抹總相宜 (그 나름대로 모두 아름답다 할까.)
오늘날에도 소제(소제)가 호수를 가로질러 죽 뻗어 있고, 삼담인월(삼담인월:세개의 못에 하나의 달이 동시에 비추고 있다는 의미)이라 불리는 매혹적인 작은 섬은 그림자를 물 속에 비추고 있으며, 수양버들은 물가를 따라 쭉 늘어져 있다.
소동파는 1071년(희녕4년) 11월28일에 처자를 데리고 지방장관의 부관인 통판의 직책을 받고 처음으로 항주땅을 밟았다. 그리고 18년후 태수로 다시 찾는다. 그러므로 동파에게는 항주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전형적인 호연지기를 타고난 소동파는 봉황산 꼭대기에 위치한 관사에서 아침마다 창문을 열고 아래에 펼쳐져 있는 서호의 아름다운 수면 위로 떠가는 구름이며, 저 멀리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 그리고 물에 비친 별장들의 모습에 심취되곤 했으리라. 날이 새면 서호 위에는 유람선으로 가득 찼고, 밤에는 언덕의 주택가로부터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 부끄러운 듯이 구름사이로 살짝 모습을 드러내며 호수 위로 월광을 쏟아 붓는 정경이야말로 소동파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 하였다.
서호 호숫가에 있는 곽자의의 별장에 들렀다. 호수유람선 예약이 10시에 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남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서호에는 담수 진주조개를 양식하고 있어 진주매점으로 되어 있었다.
중국의 4대 정원은 북경의 이화원, 하남의 피서산장, 소주의 졸저원 그리고 상해의 예원이라고 한다. 잔잔한 호숫가에 펼쳐진 연못에 수련이 동동 떠 있고 돌다리와 주변을 거닐 수 있는 복도 추녀 끝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정자 밑에 노니는 고기를 보니 마음이 절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서호는 비가 내릴 때는 화장 안한 얼굴과 같고 화사한 봄날에는 화장한 얼굴 같은 서시와 같이 아름답다고 한다. 항주 뒷산에 중턱에는 서시탑이 높이 솟아 있는 것만 보아도 그들의 자긍심을 알만하다.
서호에는 사시사철 꽃이 핀다고 한다. 남쪽이라 겨울에 매화꽃이 피고, 봄에는 살구, 여름에는 연꽃, 가을에는 계수나무 꽃을 구경할 수 있다 한다.
서호는 노신, 주은래, 장개석의 고향이기도 하다.
서호는 그 둘레가 약 15킬로미터로 물은 비교적 깨끗해 보였다. 오염에 특히 신경을 쓰고 있어 유람선도 모터추진이 되고 있었다. 호수를 깨끗이 유지하기 위해 벌금제도를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서호 주변에는 안개가 많아 습도가 높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관절염환자가 많다고 한다. 한편 서호지방에서 생산되는 차가 용정차(龍井茶)인데 타지방에서 생산되는 차보다 수분함유량이 많아 맛이 특이하다고 한다. 백화점에서 진열된 용정차를 보고 나는 무식하게도 윤동주의 고향인 용정리에서 생산되는 차쯤으로 생각했었다.
우리 일행은 소동파 제방을 걸어 유람선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갔다. 크고 작은 배들이 호수에 떠 있어 은은한 안개 속에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았다. 호수 안에는 인공섬도 있고 진주 양식장도 있었다. 호수 저편 둑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고 그 뒤쪽으로 항주 도심에서 솟아오른 높은 빌딩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었다.
선착장에 내리자 우리가 탔던 버스가 미리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서호주변에서 생산되는 차가 유명한 용정차라고 하며 우리 일행을 차 판매장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는 차외에도 여러 가지 관광상품을 팔기도 하며 차를 직접 만드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었다.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안쪽에 있는 특별실로 안내하여 우선 차를 한잔씩 대접하면서 어느새 연락을 했는지 조선족 한사람을 데리고 와서 용정차에 관해 브리핑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차는 대략16등급으로 나누는데 좋은 차는 우러나는 물이 맑고 물에 가라앉는다고 한다. 나쁜 차는 잎이 길고 넓고 물위에 뜬다고 한다. 수명은 대략 실온에서는 1년반 정도 길어도 2년이란다. 2년이 넘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한다.
일행은 별실에 마련된 장소에서 차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조선족이란 젊은 청년이 들어와 설명을 하는데 입담이 좋아 흥미를 끌었다. 사실 나는 차를 누가 주면 마시기는 해도 차맛을 즐기기에는 아직 여유가 없는 사람이다.
차를 마시게 됨으로써 얻는 이로운 점에 몇 가지를 설명한 다음 차에 관한 설명에 들어갔다.
첫잔을 문차(聞茶)라고 하는데 이는 차 잎이 물에 겨우 잠길 정도로 될 때까지 물을 부어 먼저 차의 향기를 음미한다는 것이다. 물은 좋은 차일수록 온도가 낮추어야 한단다. 대략85도로 해야 비타민이 파괴되지 않아 효능이 있다고 한다. 용정차를 유리잔에 따르는 이유는 녹차잎이 색깔도 좋고 땟깔도 좋아 그것을 감상하기 위함이란다. 유리잔을 들고 코앞에 들이대니 약간은 고소하고 풋풋한 향기가 은은하게 코끝에 스며들었다.
여기서는 차를 마신다고 하는 게 아니라 먹는다는 말을 쓴다고 한다. 먹을 치자 유리컵에다 차를 손가락으로 조금 집어넣은 다음 물을 조금 부어 그 향기를 맡은 후 다시 그 위에 물을 가득 부어 조금 우러나면 시음을 한단다.
둘째 잔을 품다(品茶)라고 하는데 이 뜻은 글자대로 품자란 글자는 작은 입구가 세 개가 붙은 것인데 차도 한꺼번에 후르르 마시는 게 아니라 조금씩 나누어서 맛을 음미해가면서 마시라는 뜻이란다.
셋째 잔은 관차(觀茶)라고 하는데 차 잎이 풀어져 잔 속에 파랗게 보이는 것을 감상한다고 한다. 유리잔을 사용하는 것은 차 잎을 보기 위한 것이요 마시고 난 뒤 차 잎을 씹어먹기 편리하기 때문이란다.
녹차는 물의 종류와 끓이는 온도에 따라 그 맛이 다르다고 한다. 고급차일수록 물 온도를 낮춘다고 한다.
녹차의 장점은 음용하면 머리를 맑게 해준다고 한다. 이곳에 일하는 노인들도 나이가 일흔이 넘었는데도 돋보기를 끼지 않고 바늘귀에 실을 낄 정도로 건강하다고 한다.
녹차에는 기름기를 분해하는 성분이 있어 고기를 많이 섭취하는 중국인들이 녹차를 애용함으로써 지방분을 분해하므로 고혈압을 방지한다고 한다. 또 신장결석, 당뇨에도 효험이 있어 약전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염소성분을 없애는데도 이 녹차가 좋단다.
오래되면 차는 씻어 말린 다음 베개를 만들어 베고 자면 머리를 맑게 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차 시중드는 딸아이들이 주전자에 물을 따를 때도 운치가 있다. 그냥 컵에 물을 주루룩 따르는게 아니라 리드미칼하게 흔들면서 따르는데 바깥으로 쏟지 않고 잘도 따른다. 아마 숙달된 조교라해야 될 것 같다. 그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약 220여년전 청나라 건륭황제가 이곳 서호에 행차했을 때 차를 대접해야 되었는데 차 시중드는 사람이 황제앞에는 모두 꿇어앉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는 차를 따를 수 없으니까 잔은 용에 비유하고 주전자를 봉황에 비유하여 봉황을 꿇어앉혀 절을 시키는 시늉을 했다한다. 그래서 환영과 존경을 나타냄으로써 어른대접을 한다는 뜻이란다.
찻잔에 물을 따를 때도 컵 바닥까지 따라 마시지 말고 조금 남겨 두었다가 다시 물을 부어야 물 온도를 조절할 수가 있단다. 완전히 따라 마신 다음에 다시 부을 때 첫물이 너무 뜨거워 잎이 익어버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서호의 용정차는 이곳 서호를 중심으로 호수에서 10킬로미터 이내에서 생산되는 것이라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그 외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에도 용정차라고 하는 이름을 붙여서 파는데 모두 질이 낮은 가짜라고 한다.
차는 한식 전에 따는 것을 특급으로 치는데 명전이라고 한다. 초특급은 초순이 나오자마자 3월 보름께부터 한 열흘간 따는 것으로 아주 양이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 우전(雨前)은 1등품으로 4월5일부터 보름간 딴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 외 대중적인 것은 5월 이후 여름에 나오는 것이란다.
차 맛은 물맛이라는 말이 있듯이 차를 빚는 물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용정차는 호포천에서 나는 물로 빚어야 제 맛이 살아난다고 하여 호포천과 용정차를 일러 서호쌍절이라고 한다. 호포천(虎 泉)은 당나라 때 성공이라는 승려가 이 곳에 절을 지으려고 했으나 샘을 찾을 길이 없어 고심하고 있었는데 산신령이 호랑이 두 마리를 보내 샘물을 파게 해 절을 지을 수 있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그 물맛은 차고 순하며 표면장력이 강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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