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같은 경우 국내에서 제작된 전쟁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기억은 ‘배달의기수’류의 반공물로부터 시작됩니다. 2차대전 이후 (겨우 5년 뒤) 시작된 미소간의 국익대결 갈등이 맨 먼저 터진게(표출되기 시작한게?) 하필이면 우리나라…라는 역사적 아픔에서 기인한 것이겠지요.
투철한 멸공정신, 영웅주의,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반공방첩 사상에 기초한 유.소년시절의 전쟁영화는 열이면 열, 장비나 쪽수 모든 면에서 열악했던 국군이 영원한 우방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의 고마운 도움을 받아 극악무도한 북괴군을 악전고투끝에 반드시 쳐부수고 정의를 구현하는 스토리가 다 였었지요. 가끔씩 멜로나 뭐 그런 최소한의 “일반적인(?)” 영화적 장치들이 곁들여지긴 했어도 대부분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진격하여 빨갱이 공산군을 무찌르는 것으로 끝이 났었습니다. (‘취화선’으로 외국에서 상을 타온 우리의 자랑 임 모 감독님도 이런 영화 무지 찍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반공 전쟁영화들은 대부분의 경우 ‘단체관람’이란 이름으로 대규모 시사회(?) 이벤트가 열렸고 때로는 무료로 때로는 몇 백원인가를 ‘단체관람비’로 내면서 피 같은 수업시간을 쪼개 보러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동전 몇 백원을 깍두기형님 같은 아저씨들이 극장입구에서 자루에 받아 담았습니다. 거스름돈도 짤짤이 하던 숙달된 솜씨로 한 명씩 일일이 세어 주었지요… 아시죠? 세개씩 세어 주는거…^^ 이런식이니 옛날에 웬만한 극장 사장들은 앉아서 떼돈을 벌었죠. 세금 절대 안내도 됩니다) 새 시대 새나라 새싹들의 철저한 반공, 멸공의식 무장을 위한 어른들의 배려였지요… (정말일까?)
그 시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가끔씩 눈물까지 흘려가며 나중에 어른이 되면 김일성을 때려잡고 공산당을 무찌를 것을 굳게 굳게 다짐하면서 단체로 관람했던 수많은 동급 영화들 가운데 가장 기억나는 영화로는 ‘아벤고공수군단’, ‘종군수첩’이 있습니다. (하필 왜 이 두 영화가 유달리 기억에 남아있는지는 저도 아리송합니다. 아마도 극장에서 보았던 것 때문인 듯합니다. 또 제가 중학교를 다녔을 당시엔 남녀간 교제는 오로지 지도부(학생부) 선생님의 판단에 의거 유기정학 사유가 되었는데 이런 단체관람에는 가끔씩 (가뭄에 콩나듯) 근처의 여학교와 동시관람을 하게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난리가 나지요. 여학생들 비명소리에 영화감상이 방해가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왜 비명을 질렀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그 다음날 학교 게시판엔 ‘몇 학년 몇반 아무개 외 몇 명, 정학에 처함’이란 게시물이 걸려 있곤 했습니다. 나름대로 암울했던 시절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www.koreafilm.or.kr)에서 찾아본 두 영화에 대한 정보입니다.
아벤고공수군단
제작년도: 1982
개봉년도: 1982년 5월에 대한극장에서 개봉했습니다.
등급: 중학생이상관람가(단체관람을 위해서는 필수!)
관람인원: 51,359명(세금낸 실적기준이겠죠)
러닝타임: 136분(꽤 길었네요…)
감독: 임권택
주연: 신일룡, 남궁원, 김희라, 정윤희 (당대 최고의 배우들입니다)
제작: 우진필름, 정진우
수상내역: 대종상(21회)/작품상(안보부문)/녹음상/특별상/음향효과부문/김경일/아시아태평양영화제(28회) 출품
줄거리:
아벤고는 맥아더 사령부에 직속되어 인천상륙작전을 은폐하기 위해 장교급을 투입시켜 원산상륙작전의 확증을 주려고 한다. 대원들은 임무를 앞두고 부산으로 특별휴가를 떠나고 그중 일규는 피난온 배수나를 만나 뜨겁고 애절한 사랑의 하룻밤을 보내고 떠난다. 대원들은 명령대로 임무를 수행한다. 고중령은 맥아더 사령부의 암호문을 받고서 대원들의 침투가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양동작전임을 깨닫고 분함과 원통함에 떤다. 그리고 다시 투입시킬 장교로 성중위가 선택되나 고중령이 대신 작전에 뛰어든다. 1.4후퇴 때 성중위는 수나를 만나 일규의 아들을 낳는 수나를 돕게 된다.
대부분의 국산 전쟁영화가 그렇듯 대규모의 물량이 투입되는 대신 소수의 특공대의 활약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바치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한결같이 미남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터프미를 가진 특공대원들의 구라와 액션으로 영화 내내 까까머리 중학생의 가슴팍에 꽂혔던 영화입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부하들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뜬금없는 책임감에 국군의 자랑 고중령은 자신이 직접 사지로 뛰어드는 열혈 전우애를 보여주면서 영화관을 가득 메운 사춘기 소년들의 가슴팍에 불을 댕겼었죠…
종군수첩
제작년도: 1981
개봉년도: 1981년 6월에 서울극장에서 개봉했습니다.
등급: 연소자관람가(보다 폭넓은 단체관람을 위해)
관람인원: 63,018명(역시 세금낸 실적기준이겠죠)
러닝타임: 90분
감독: 최하원
주연: 박근형, 유인촌, 장미희, 이영하 (역시 당대 최고의 배우들입니다. 2차대전당시나 직후 미국에서도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배우들은 승전국 미국의 우월성을 강조하거나 승리를 거둔 전투를 그린 전쟁물에 많이 출연했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서야 다른 시각에서 전쟁을 바라본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지요)
제작: 국군영화제작소(에서 돈 대고), 영화진흥공사(에서 찍었습니다)
줄거리:
설악산 암벽등반에서 한대원의 실수로 자일이 엉키어 전대원이 위기에 직면하게 되자 리더인 노진호는 대원1명을 희생시켜 나머지 대원을 구출하였으나 심한 자책과 죄의식에 방황하게 된다. 이를 본 강교수는 자신이 6.25때 종군기자로 있을 때 젊은 청년이 사랑하는 애인을 두고 전선으로 갔다가 전사한 국가관이 투철한 김소위의 종군 수첩을 보여준다. 노진호는 김소위의 숭고한 조국애와 희생정신에 감동하여 같은 친구인 젊은 세대가 갖는 왜곡된 가치관을 깨닫고 투철한 국가관으로 조국수호에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아벤고 공수군단에 비해서 (제작자가 제작자인 관계로) 더 확실하고 찐한 메시지가 주 내용을 이뤘던 영화입니다. 전자가 상업적인 재미를 부가하여 볼거리를 만들었다면 후자는 비교적 반공메시지와 개인주의를 초월한 국가관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짙었던 영화입니다. 마지막 부분에 종군수첩의 주인공 김소위가 단신으로 적방카에 뛰어들어 산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네킹을 이용한게 티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두 동강이가 나는 김소위의 몸을 보면서 울분에 떨었었지요…
전후 60~80년대 한국 전쟁영화는 분단된 한반도의 슬픈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영화가 주였던 것 같습니다. (앞서의 두 영화보다 먼저 만들어진 ‘돌아오지않는 해병’이나 김기덕 감독의 데뷔작 ‘5인의 해병’같은 영화도 유명한데 이 ‘5인의 해병’은 5명의 아군 특공대 가운데 “무려(!!!)” 4명이 전사하는 설정으로 당시로서는 엄청난 파격이었다는…!!!역시 김기덕 감독입니다.)슈퍼맨인 국군에게 항상 역전패하는 악랄한 괴뢰군의 이야기 일색이었지만 여드름투성이의 까까머리 소년소녀들의 투철한 반공의식 고취에는 그야말로 딱 이었죠.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전쟁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가족을 잃고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야 했던 불행했던 시절의 모든 분들이 꿈꾸고 원했던 것은 ‘이념의 승리’가 아니라 ‘평화’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반공과 멸공구호가 이젠 낯설게까지 들리는 오늘날 그냥 옛날엔 그랬나부다하고 치부하기에는 그 단체관람영화의 기억은 너무 가까운 과거 같습니다.
여담으로 어렸을 적보았던 수많은 반공 영상물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만화영화 ‘똘이장군’입니다. 북한군은 늑대로 김일성은 인간의 가면(탈)을 쓴 ‘돼지’로 의인화 해놓은 초딩용 반공영화로 당시엔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었지요. ‘똘이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똘이장군 나타난다 겁날 것 없다..덤벼라 붉은무리…’로 시작하는 주제가는 아마 요즘 같은 인기가요차트가 있었다면 아동부문 1위에 거뜬히 등극하였을 겁니다.
얼마전 일간지상에 거대자본들이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제작에 들어갔다는 기사가 줄줄이 났었지요... 과연 한동안 뜸했던 국산 전쟁영화의 영화만들기가 얼마만큼이나 감동을 (또는 실망을) 안겨줄런지 기대가 됩니다. 영화에 대한 일종의 '실망'은 곰곰이 씹어보면 때론 뜻하지 않은 색다른 재미가 되기 주기도 하지요...
만화얘기가 나와서 보니 만화생각도 납니다. 어렸을 적 동네에서 또는 학교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기 위한 가지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가령 공부로 타의추종을 불허하게 1등을 하거나 쌈박질에 있어서 그 잔인함이 두각을 나타내 1등을 하거나 아님 집에서 ‘소년중앙’을 정기구독하거나, (부록이 끝내 줬지요,,,그 땐 소년잡지에서 부록으로 만화 단행본이나 연재 만화물을 끼워주었습니다…) 진짜 가죽 축구공(고무로 만든 빈티 나는거 말고)을 가지고 있거나 글러브, 배트, 야구공(하드공이라 불렀던) 등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야구장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바로 ‘어문각’에서 발행하였던 클로버문고판 만화책을 잔뜩 가지고 있으면 되었습니다. 지금 30대 초반이나 40대 초반 되신 분들은 누구나 다 기억하고 계실겁니다. 노란색(뒤엔 흰색 등으로 디자인이 약간 바뀌었지요) 표지에 도톨도톨한 반투명비닐커버가 씌어진 단행본 타입의 70년대 최고의 히트작이었습니다. 이 문고판 만화책이 대본소에 밀려 사라질때까지 얼마나 많은 꼬마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는지는 아마 아시는 분들은 아실겁니다.
저 역시도 이 ‘클로버문고 만화책’에 미쳐있었는데요. 그 때 제 소원은 집에 이 클로버문고 만화전집을 들여 놓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조르고 졸라 협박 반 생떼 반 그리고 다음번에 반에서 몇 등하겠다는 류의 선심성 공약을 남발한 끝에 처음 이 클로버문고 만화책을 샀던게 아마 79년도 였던 것 같습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책꽂이에 잔뜩 꽂혀 있었던 만화들을 보며 침을 질질 흘리는데 ‘딱 한 권만 골라!!’라는 경고를 하시더군요. 몇 십분을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뽑아든 책의 제목은 바로 ‘무적의 독수리 소대’였습니다. 다른 책들에 비해 페이지 수도 더 적은 이 책을 과감히 고른 이유는 바로 ‘한국전쟁’을 다루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간부분에서부터는 국군의 북진작전을 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50년 10월 말이지요. 맥아더가 전전선에 진격명령을 내린지 얼마 안되는 시점인데 바로 중공군이 개입될 무렵입니다. 이미 곳곳에선 중공군이 포로로 잡히고 있었죠. 만화의 후반부는 국군의 압록강 도달(아마 국군 6사단 7연대의 압록강 초산 진출을 그린 것 일겁니다)과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퇴각하다가 아군의 퇴로엄호를 목적으로 남는 병사들의 전투로 끝이 났던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작자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만화가분의 순수창작인지 아님 원작이 따로 있었는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지 아닌지도 잘 기억이 안나구요… 만화풍은 과장이나 생략이 없이 굉장히 사실적이었습니다.
어쨌든 이 책은 제 보물 1호가 되었고 책장에 손 때가 뭍어 시꺼멓게 되고 또 다 닳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고 또 보았습니다. 지금은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없어져 버려 (아마도 중학교 올라가면서 어무이가 다른 만화책들과 함께 다 내다 버렸을 겁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언제 시간내서 고향 집 구석구석 좀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혹시나 하구요… ‘무적의독수리 소대’ 그 후 이 추억의 클로버문고판으로 보았거나 쌈지돈을 털어 사 모은 만화 중에 여지껏 기억에 남는 만화는 ‘바벨2세’, ‘신판보물섬’, ‘대야망’ 등이 있습니다.
뱀발: 공교롭게도 카페 디자인이 바뀌는 도중에 글쓰기 버튼을 눌렀던 모양입니다. 한 20분쯤 카페접속이 안되어 당황했었는데...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뀌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