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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260) - 조선통신사 옛길 일본기행(8, 끝)
28. 요코하마(橫濱)를 횡단(橫斷)하여 가와사키(川岐)에 머물다
5월 19일, 바람이 불고 구름이 옅게 끼어 걷기에 좋은 날이다. 한국에는 비가 온다는데 오후 5시쯤 걷기가 끝날 즈음에 약한 빗방울이 떨어지다 멈춘다. 날씨도 걷기를 성원하는 듯.
오전 7시 20분에 숙소(도요코 인)를 나서 후지사와 역으로 향하였다. 1일 참가자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시청의 마쓰이(松井) 과장과 이은희 씨가 배웅 차 나왔다. 민단의 탁명숙 회장도 참석하여 간단한 인사말을 하고 걷기에 동참하였다. 시청의 이은희 씨는 전날 늦게까지 호텔에서 일행의 뒷바라지를 하였는데 아침 일찍부터 과자를 사들고 와서 한국에서 온 분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한다.
오전 8시 15분에 코스를 에스코트할 요원들 5명이 안내를 맡은 가운데 가와사키를 향하여 후지사와 역을 출발하였다. 코스리더는 걷는 길이 평탄하고 옛 도카이도(東海道) 길을 많이 걷는다고 말한다. 두 시간쯤 걸으니 어느덧 요코하마 시의 토스카(戶塚) 역이다. 이곳까지 함께 걸은 이은희 씨가 손을 흔들며 돌아가고 일행은 요코하마의 언덕길을 여러 차례 오르내리며 계속 앞으로 행진한다. 새 시대의 번영을 구가하는 일본 제3의 도시가 옛 역사의 길을 잘 보존하고 가꾸는 모습이 부럽다. 1979년, 출장길에 하루 묵었던 옛 모습은 찾을 길 없고.
두 시간을 더 걸어 오후 1시 조금 전에 텐노코(天王町) 역 앞의 공원이 점심장소다. 각기 식성에 맞춰 식당을 정하는데 한국 팀은 카레를 먹기로 하였다. 민단의 탁명숙 회장이 합석하여 점심값을 치른다. 71세의 탁 여사는 지금도 현역으로 일한다며 기쁜 마음으로 대접한다기에 감사의 뜻을 글로 남기겠다고 말하였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과 지난 4월에는 경상남도의 식목 행사에 참여하는 등 한국에도 자주 오간다고. 이국땅에서 열심히 사는 동포들이여, 힘내시라.
오래 만에 먹는 카레 맛이 좋다. 점심을 들며 회상하니 30여 년 전 요코하마에서 먹은 청국장두부국을 맛있게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내가 일본에서 카레음식이 선호도 앞 순위라는 이야기를 하니 탁명숙 회장이 요즘은 라면과 우동이 인기식품이라고 말한다. 예전 출장길에 자주 들었던 우동 맛이 그리워 이번에도 몇 차례 주문하였는데 사진 전문가인 가나이 미키오 씨는 라면을 즐겨 든다.
오후 걷기에 나서 30여분쯤 가니 가나가와 한국회관 앞에 이른다. 민단에서 차와 물을 준비하여 각기 필요한 대로 들고 가도록 권한다. 그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이 지역의 걷기협회 임원들이 길목에 나와 녹차를 한 병씩 건넨다. 갑자기 물 부자가 되었구나. 걷기를 응원하며 성의를 베푼 분들에게 감사한다.
오후 네 시에 쓰루미(鶴見) 역을 지난다. 여전히 요코하마 지역이다. 다섯 시 조금 전에 경계표시도 살피지 못한 체 가와사키 경내로 들어섰다. 30여분 쯤 지나니 가와사키 역에 이른다. 이곳이 오늘의 목적지, 33km를 걸었다. 1일 참가자 10여 명에게 참가증을 교부하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후 6시경에 숙소에 들었다.
저녁식사시간에 간단한 이벤트를 가졌다. 내일이면 장장 1,200여km의 대장정이 끝나는 것을 기려서. 옛 선비들이 쓰던 갓과 사무라이 풍의 모자, 얼굴에는 꽃종이 연지를 찍은 모습들이 볼만하다. 자신들의 텃밭이라고 일본인은 제외한 체 한국 팀에게 간단한 선물을 준비한 주최 측의 배려가 고맙고.(내가 받은 선물은 발가락 양말, 두 켤레 가져 온 것이 다 헤어지고 펑크 난 줄을 어찌 알았을까.) 피날레는 역시 흥겨운 노래, 일본가요와 아리랑을 합창하며 내일의 마지막 걷기가 성황리에 끝나기를 다짐하였다. 여기까지 무사히 온 일행 모두 수고하였습니다.
* 오사카에서 돌아간 요오코 칸 요우코 씨와 이연옥 씨, 나고야에서 돌아간 안자이 겐지 씨, 시즈오카의 나카니시 하루요 씨, 6만km 걷기 왕 아베 유타카 씨가 합류하는 등 마지막 집결이 속속 이뤄진다.
걷는 중 후미에 있다가 안내자가 민단의 위치를 잘 몰라 길을 놓진 손성식 씨는 한 정거장 전철로 이동하자는 안내자의 말에 펄쩍 뛰며 '서울에서 이곳까지 잘 걸어왔는데 마지막에 걷기를 건너뛸 수는 없다' 하였다고 말한다. 치통을 견디고 열심히 걸어온 발걸음이 힘들지만 건너뛰기는 피하고 싶은 것이 걷는 이들의 자부심이다. 극기(克己)의 본을 보이되 건강을 해치는 무리는 금물, 상황에 따라 유연함을 발휘하자.
29. 비를 맞으며 걸은 서울~도쿄 대장정의 피날레
5월 20일, 전날 저녁부터 내리는 비가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날씨가 좋아 잘 걸었으니 비가 내린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아침 7시 10분, 비옷을 걸치고 우산을 든 체 가와사키 역으로 향하였다. 우중에도 대장정의 마지막을 함께 할 1일 참가자가 50여명이나 모여든다.
출발식은 8시, 기다리는 시간에 역 앞의 경위도표(經緯度表, 측량의 기준표)를 살폈다. 경도(經度) 동경 139도 41분 49초 9019, 위도(緯度) 북위 35도 31분 7초 4963, 표고 2.68m라 적혀 있다. 이를 보노라니 며칠 전 후지시내의 어느 지점에서 국토의 표준점이라 새긴 돌 판을 본 것이 떠오른다.
출발인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4월 1일에 서울을 출발하여 최종목적지 도쿄를 눈 앞에 둔 가와사키에서 여러분과 함께 마지막 행진을 하게 되어 기쁩니다. 그동안 좋은 날씨였으니 비름 맞고라도 도쿄까지 힘차게 걸읍시다.'
8시 15분에 가와사키 역을 출발하여 20여분 걸으니 다마가와(多摩川)에 이른다. 다리 중간에 도쿄도 오다구(東京都 大田區)라 새겨져 있고 이내 도쿄 시내로 접어든다. 한 시간쯤 걸으니 오다구 종합체육관이 나온다. 주민들이 이용하기에 좋은 레저시설이다. 이곳에서 15분간 휴식을 취하고 시내로 계속 나아가니 시나가와(品川)구에 이른다. 가랑비가 점점 굵어지며 우비를 걸쳤어도 배낭이 젖는다.
시나가와 역에 이르니 12시, 대규모 인원이 들어갈 식당이 없어 12시 40분에 역 앞에 집결하기로 하고 흩어졌다. 아내와 함께 역 청사 지하에 있는 음식물 매장에서 도시락을 사들고 역사 2층으로 올라가 선채로 점심을 들었다. 집 없는 홈리스들이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한다는데 우중의 나그네 신세가 이와 같구나.
시나가와를 지나 시내로 접어드니 번화가인 긴자(銀座)가 나오고 이를 지나서 오늘의 목적지 히비야(日比谷) 공원이 가깝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여러 가지 상념이 복합되었으리라.
히비야 공원 옆에 황궁이 있다. 가와타 시게루 씨가 황궁 앞 다리(이중교라는 다리가 유명한 모양이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라고 부추긴다.
황궁 입구를 돌아 히비야 공원에 이르니 여러 사람이 환영 플래카드를 들고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그 중에는 한동기 선생을 환영하는 플래카드도 보인다. 한동기 선생이 관여하는 서울의 일터에서 도쿄 사무실에 연락이 간 모양이라며 먼 길 찾아오는 발걸음을 친절하게 맞아주는 배려에 감동한 모습이다. 도착예정시각(오후 3시)에 맞춰 공원에 도착하자 일행들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대장정의 마지막까지 완주한 것을 축하하고 격려한다. 사회자인 나카무라 스스무 씨가 도착인사를 요청한다.
'4월 1일 서울을 출발하여 오늘 이곳 도쿄에 무사히 입성한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서울의 출발에 앞서 '제4차 21세기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대원 일동은 양국의 아름다운 자연, 소중한 문화, 훌륭한 전통을 계승 보존하고 상호신뢰와 선린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걷겠다.'고 선서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다짐을 실천하며 1200여km의 대장정(大長征)을 마치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간 베풀어준 모든 분들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더 행복한 미래를 위해 나아갑시다,' 이를 취재함인지, 일본 세계일보 기자가 이름을 확인한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이다바야시역 근처의 유스호스텔)에 도착하니 오후 네 시 반, 여장을 풀고 목욕을 한 후 공식 환영행사장(지하철 한 정거장 타고 가는 사학회관)으로 향하였다. 환영행사는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 중앙총본부가 마련한 것이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카와코에(川越) 국제교류퍼레이드(조선통신사의 정신을 현대에 되살리는 다문화단체)관계자가 삼사(三使)는 관복, 대원은 한복으로 갈아입으라고 당부한다. 30여 년 전 청년 시절, 연수차 도쿄에 머무를 때 초청자인 일본국제전신전화주식회사 건물에 한복을 입고 들어간 적이 있는데 수십년 세월을 건너뛰어 다시 고국의 옛 관복 입고 공식행사에 참여하는 감회가 별다르다. 아내와 사진 한 커트 찍고.
저녁 6시에 시작된 환영행사는 엔도 일본대표의 사회로 선상규 회장의 인사, 오병태 민단중앙회장의 환영사, 미야지다 일본걷기협회 회장의 감사장 전달 등이 이어지고 칵테일을 곁들인 뷔페음식을 들며 담소하는 가운데 두 시간 반가량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선상규 회장은 걷는 동안 계속 날씨가 좋았는데 마지막 날 비가 오는 것은 우리를 떠나보내기 서운하여 흘리는 눈물이라고 말하여 박수를 받았고 주최측에서 걷기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표창장처럼 잘 만든 감사장을 전해주어 감사하였다. 서울에서 도쿄까지 완주하며 기수와 세탁 일에 봉사한 오시카와 코조 씨와 사토 에이코 씨의 노고를 치하하며 두 분에게 건배의 기회를 준 것이 흐뭇하였다. 묵묵히 힘든 일을 완수한 것에 비하여는 작은 성의지마 적절한 위로가 되었기를.(오시카와 씨는 허리가 아파서 여러 날 아내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몇 차례나 이에 감사하는 코멘트를 하였다. 이날의 건배사에서도.)
만찬이 끝날 즈음 흥에 겨워 만남, 돌아와요 부산항, 후루사또, 아리랑을 합창하고 노래솜씨가 있는 여러 명이 독창을 하기도. 스시마에서 합류한 마쓰무라 도시코 씨는 만찬장에서 곧바로 시즈오카의 집으로 향하는 등 만찬을 끝으로 공식 일정이 일단 마무리되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끝까지 완주한 일행 모두 축하합니다. 큰 행사를 차질없이 진행하고 마무리한 한국체육진흥회와 일본 걷기협회의 관계자 여러분, 너무나 감사합니다.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즐거운 내일을 맞이합시다.
30. 도쿄의 참모습을 살핀 문화탐방
5월 21일, 걷기행사를 마치고 관광을 겸한 문화탐방으로 하루를 바쁘게 보냈다. 오전 9시 40분에 숙소의 로비에 모이니 안내를 맡은 오오시타 도시하루 씨가 문화탐방 코스와 일정이 담긴 유인물을 나눠준다. 10시에 숙소를 출발하여 지하철과 도보로 도쿄 중심지를 관통하는 크루즈 선착장으로 향하였다. 한 시간여 걷는 길이 큰 다리를 건너며 강변의 도심풍광을 조망할 수 있어서 걷기에 열중하느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세계적 도시의 참모습을 접하는 좋은 코스다.
12시 20분에 오다이바(台場)해변공원에서 아사쿠사로 가는 도쿄 크루즈에 승선하니 전망이 확 트이고 아늑한 선실이 마음에 든다. 크루즈 요금은 생각보다 대중적인 300엔으로 선내에서 파는 음료 값보다 저렴하다. 재일동포 이연옥 씨가 사준 아이스크림을 들며 30여분 가서 다른 승객들이 오르니 선실이 꽉 찬다. 한 시간 동안 강변 풍광을 즐기다가 어느 순간 졸음에 빠진 장면을 캐나다에서 온 고영성 씨가 카메라에 담았다. 아무리 좋은 경관도 졸면서 볼 수는 없는 일, 연일 고단한 일정을 몸이 더 잘 아는가 보다.
아사쿠사 역에 내리니 오후 1시 20분, 640m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도쿄 스카이 타워가 눈앞에 보이고 도심의 산뜻하고 날렵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점심을 해결하는 일이 더 급하여 바로 앞에 있는 아즈마(吾妻, 내 아내라는 지명도 있네)교 건너편의 건물 1층에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도심인데도 음식 값이 천 엔 정도로 경제적인데 주된 메뉴 외에 채소류와 다과를 마음대로 들 수 있어 예상 밖의 근사한 점심이 되었다.
인근에 있는 쇼센지(濺草寺, 아사쿠사절)는 유명한 관광지, 점심 후에 30여 분간 이를 둘러보는데 평일인데도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북적인다. 주최측에서 한국 팀을 위하여 오후 네 시에 도쿄 스카이 타워에 들어가는 표를 예매하였다.(입장료는 2,000엔) 타워 입구에 들어서니 개관한 지 1년이라는 초현대식 타워의 입장객들이 길게 줄을 선다.
일반광광객이 올라가는 곳은 지상 350m 지점, 마침 쾌청한 날씨라 넓은 도쿄 시내가 사방으로 잘 보인다. 후지산이 보일 때도 있다는데 오늘은 안 보인다. 350m 지점에 에도시대의 전경을 병풍에 담은 그림 속의 후지산을 보는 것으로 가름하고 타워를 두 세 바퀴 돌아본 후 내려왔다. 고속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시간은 1분이 채 안 걸린다. 저녁 식사 때 뉴스프로그램으로 타워 건물이 소개되고 입장객이 630여 만 명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1년 동안의 입장객 수효일까.
도쿄 스카이 트리 전망대를 끝으로 문화탐방을 마치니 오후 5시, 지하철을 타고 숙소 근처에 있는 중국음식점에서 마지막 만찬을 가졌다. 참석인원은 28명,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한 한일 양국의 참가자 일동은 그간의 힘들었으나 보람된 일정을 마무리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한국측 참가자들은 뜻깊은 일본에서의 여정에 큰 배려와 노고를 다한 일본 측 관계자와 참가자들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표하였고 일본 측에서는 한일간의 긴장이 고조된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쾌히 참여하여 평화와 우정을 다진 한국 참가자들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50일이 넘는 대장정의 마무리를 알찬 문화탐방과 정겨운 송별파티로 마무리하기까지 노고를 아끼지 않은 엔도 단장과 나카무라 사무국장, 시마 간사를 비롯한 여러 스태프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단기필마로 큰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진행한 선상규 환국체육진흥회장께도. 작은 실천으로 큰 뜻을 펼쳐가는 한일우정걷기 회원들이여, 건승하시라.
* 걷기에 참가하였다가 먼저 돌아간 여러분들이 마지막날의 도착행사와 송별파티에 함께하여 감사하다. 특히 폐렴으로 고생하신 스주키 기요코 씨, 인품이 좋은 고바야시 마사히토 씨, 깔끔하면서도 다정한 오키야스 사다코 씨는 일행들에게 정겨운 선물을 들고 와서 재회하였다. 눈물 흘리며 떠났던 박효자 씨도 돌아오고. 사진 찍느라 항상 분주하게 움직인 가나이 미키오 씨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펴낸 조선통신사의 발걸음이 담긴 책자와 관복을 입고 광화문 대로를 걷는 모습의 대형 컬러 사진을 마지막 선물로 안겨준다. 송별파티에서 걷기 중에 쓴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기행록'을 엔도 단장에게 전달하였다. 나카니시 하루요 씨가 메일로 보낸 것을 출력하여 주었고 일본어로 번역도 해주기로 하여 감사하다. 한국의 일행들은 22일에 떠나고 나와 아내는 요시오 지로 씨의 초청으로 이틀간 더 머물다 돌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