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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고향 안동 원문보기 글쓴이: 임하새댁
내고향님 반가워요,
해마다 봄이 오면 제가 잊지 못할 아련한 추억이 있지요.
어제 잠시 오전에 들녘에 나갔더니 밭둑 태우는 걸 오랜만에 보았어요..
어릴 적에 해마다 이 때면 볼 수 있었던 풍경에 아련한 그리움이 눈 앞에 떠올랐어요.
밭둑 태우기는 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민학교 시절 남의 묘까지 태웠던 말괄량이 소녀였습니다.
그리운 동네 친구들과,,,
때는 초등학교 4학년, 4월 초 일요일. 그 날도 날씨는 화창했습니다.
아침 일찍 아버지는 괘종시계 밥을 준다고 똑똑똑 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었고
6시까지 동네 어귀에 모여서 향우반 활동을 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마을 골목을 구석구석 싸리 빗자루를 가지고 쓸고 둥그나무 옆 공터에 꽃밭을
조성한다고 꽃씨도 뿌리고 노간주 나무와 진달래, 철쭉도 캐오고 2시간 동안
활동을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어제 물을 흠뻑 먹은 담배 모종>
아버지는 마당에 지어진 비닐 하우스 안에서 담배 모종을 정성스레 살피고
어머니는 청태와 오이짱아찌와 콩나물 국, 계란 찜으로 아침상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부화한 병아리들이 어미닭을 따라 다니며 아장아장 걸어다니고 장독대에는 메주를 띄워놓고 고추와 숯을 끼워 놓은 금줄을 쳐 놓았습니다.
제비가 와서 처마에 집을 짓느라 온종일 분주히 날아 다니고 겨우내 윗방에 자리잡은 고구마 통가리를 걷어 낸 곳에는 구덩이에서 끄내 온 감자를 쪼개 놓았습니다.
내일이면 감자를 심는다고 하여 여러조각으로 쪼개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아버지는
" 오늘 어디 싸댕기지 말고 밭에 가서 일해야 한다.
밭에 가서 밭도 갈아야 하고
논도 엎어야 하고 너는 밭둑을 태워야 한다.
어여 밥 빨리 먹고 같이 가야 헌다."
"밭둑 태운다고요, 어느 밭이껴?" "펀던(지명이름)밭이다.
우리집 성냥 알갱이는 제 혼자서 거의 다 소모했다고 봐요, ㅋ
성냥 챙기고 나하고 같이 리어카 끌고 가자."
"저는 걸어서 갈께요. 먼저 가이소."
"꼭 와야 한다." "제가 불 가지고 노는 것 좋아 하잖어요"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불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 했습니다.
부엌에서 아리랑표 성냥을 가지고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따라 걸으니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대보름날 쥐불놀이도 10여일 했고 불장난 하다 산도 태우고 짚단도 태우고 보리짚도 태우고
여식애로서는 못할 짓만 찾아 했으니까요.
심지어 남의 묘소도 홀라당 태우고 집 말구는 불로 안 태운 것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소에 안장을 얹히고 리어카에 매어 쟁기와 비료를 싣고 먼저 나가고
나는 못 다 읽은 어깨동무를 읽다가 9시가 넘어 집을 나섰습니다.
<홑잎 나물>
고추밭에는 파아란 파가 자라고 있고 밭둑에는 달래를 캔 자욱이 있고 냉이는 여기 저기서 보였습니다.
' 저녁에 된장찌개에 달래 넣고 끓여 냉잇국하고 먹었으면...'
감미로운 상상을 하며 큰 버드나무 아래 도랑을 지나니 가재가 뒷걸음치며 돌 속으로 숨는 것이 었습니다.
산 속의 계곡에는 산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개구리 도룡농 알 들이 있고
가재도 있어서 잠시 가재도 몇 마리 잡았습니다. 봉다리를 주워서 잡은 가재를 들고
버들 강아지를 비틀어 호드기도 만들어 불어 대며 밭으로 향했습니다.
원추리도 뽀죡히 새순을 드러내고 산딸기 새움도 보이고 찔레 나무는 이파리가 무성히
자라 나고 있었습니다. 진달래꽃도 피어서 몇송이 따먹고
노루귀와 현호색 야생화는 돌 틈 사이에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하니 아버지는 쟁기로 밭을 갈고 있었고
하늘을 보니 뭉개 구름이 떠 다니고 있고 종달새 보리밭 위로 날아다니고 산수유 피어난 꽃송이에는
벌들이 날아다니고 돌배나무에는 붉은 꽃봉오리가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뽕나무 잎도 한 뼘만큼 자랐고 조팝나무는 파란 새싹을 뭉쳐서 드러내고 칡도 연약한 새싹을
내밀었습니다. 멍에를 씌운 누렁이(소)이는 힘겨운 지 헉헉 거려 잠시 말뚝에 매어놓고
아버지는 " 밭둑 태울 때 산에 번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아직은 건조해서 불 옮기면 끄기 힘드니
생솔가지 큰 것 하나 쳐 올테니 눈 구녕 똑띠기 뜨고 잘 봐야 헌다."
그러고는 산으로 가서 생솔가지를 쳐 왔고 풀덤불에 불을 당겼습니다. 밭둑에 매말라 있는
풀은 서서히 타 들어갔고 나는 유지(비닐)을 막대기에 둘둘 말아 불을 붙이니 금세 불이 붙었습니다.
유지가 타면서 떨어지는 불씨는 매마른 풀 덤불을 태우고 하얀 연기가 피어 올랐습니다.
다른 곳을 보니 곳곳에서 논둑과 밭둑을 태우는 지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고
불 장난을 좋아하는 나는 혹시 고무신짝이 어디 없나 찾으로도 다녔는 데 마침 몇 켤레가
보였습니다.
고무신이 탈 때 나는 소리가 좋았고 뭔가 타는 지 뚝뚝 소리가 나기도 했습니다.
논과 밭둑을 태우는 것은 해충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이 놈들이 알을 퍼뜨리기 전에 태워야 하는
풍습이기도 했습니다.
시간은 점심 시간이 다 되었고 아버지는 소 여물을 먹여야 한다며
집으로 갔고 나도 가려는 데
아까 도랑에서 잡아 온 가재가 생각이 났습니다.
봉다리에 담겨 있는 가재들은 물이 뜨거워서
그런 지 거의 죽을 지경이어서 밭둑에 살아있는 불씨를 끄고
가까운 산 속 도랑에 가재를 일단은 풀어 놓았습니다.
그 도랑옆에는 막 자란 고비가 자라고 있었고 취나물도 보였습니다.
진달래를 한 움큼 꺾어 집으로 오니 어머니는 라면 국수를 끓여 놓았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비닐 하우스에서 담배 모종에 물을 주고 어머니는 모종에 나 있는 풀을 뽑고
고추씨와 볍씨를 담근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광에서 고추씨를 꺼내오고
터두지에서 볍씨를 꺼내어 샘가 고무 다라이에 담궈 놓았습니다.
"좀 있다가 마져 밭둑 태우고 난 밭을 다 갈았으니 논에 가 있을 테니 다 태우고 오너라"
아버지는 그리 말하고 누렁이를 몰고 밭으로 갔습니다.
우체부가 편지를 가져왔는 데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한동네 오빠한테 온 것이었고
쨍그랑 쨍그랑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엿장수도 오고 동생은 이 소리를 듣자마자
비료 푸대 몇장을 들고 나가고 나는 뭐 엿 바꿔 먹을 것이 없나 찾아보니
큰 소주병 몇 개가 있어 엿장수에게 가니 몇 가락을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고추 볍씨를 누나와 씻고 있고 동생은 아마 건조실에서 엿을 다 먹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을 모양이었습니다.
"엄니 밭에 갈거요?. 일요일 날 놀지도 못하고
저녁엔 달래 캐다 된장 찌개 끓이고 냉잇국도
끓여 놔유." " 알았으니 빨리 밭이나 가 이눔아.
불 조심 혀라"
어머니는 동생하고 일 다 마치면 냉이 뜯고 달래도 캐고
원추리 홑잎도 뜯어온다는 것이었습니다.
'홑잎에 된장찌개 비벼 먹어도 맛있는 데 오늘 저녁엔 향긋한 봄나물에 ...
혀가 호강하겠는 데...'
가벼운 걸음으로 밭에 가니 아버지는 논으로 갔는 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침보다 바람은 더 세어졌고 솔가지도 챙기고
밭둑에 다시 불을 질러 골고루 잘 탈 수 있도록
꼬챙이를 움직이니 불길은 잘도 퍼져나갔습니다.
불이 너무 잘 타서 윗집 준희네 밭둑도 태우고 잠시 쉬다가 논둑을 태우러 가야기야
노루 고개(명칭)로 향했습니다.
고개를 향하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아까 가재 도랑에 놔 주었지 다시 잡아서 구워 먹어볼까
알 밴 놈도 있던데.
운 좋으면 개구리도 잡아서 뒷다리도 구워면 좋을 텐데..." 하면서
도랑에 가서 가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도랑에는 가재들이 많이 있었고 주전자에
큰 놈만 20여마리를 잡아서 도랑을 나와서 논으로 가려 하는 데 어디서
"불이여 불여"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는
윗집 춘희 아버지 목소리였습니다. "왠 불여. 혹시..."
걱정 스러워 내가 태웠던 밭둑을 보니
거기에서 불이 크게 났던 것입니다.
'아까 분명히 껐는 데 왠 불이 번진 겨.바로 옆이 산인데..크게 번지면 큰 일인데..."
겁이 나서 보니 불은 분명 밭둑이 아닌 산에서 나는 것이었습니다.
후다닥 달려가서 보니 불은 삽시간에 번져서 몇 수십평을 태웠고
준희 아버지는 생솔가지로 정신없이 불을 끄고 있었습니다.
나는 도망갈 까 하다가 어차피 내가 불 낸 것 책임져야 겠다고 맘 먹고 생솔가지를
주워서 젖 먹은 힘까지 다해서 끄니 다행히 큰 바람이 불지 않아
20여분만에 끌 수 있었습니다.
춘희 아버지는 '불씨를 제대로 꺼야지 어설프게 내버려 두고 어디 간겨"
"다 꺼졌는 줄 알고 고개 넘어 논에 갈려구 했어요."
"그나 저나 묘지를 태워서 어쩌냐 큰 일 날뻔 했네 내 안 왔으면 어찌 되었겠니?"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불씨가 있나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내 꼬라지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너무 열심히 불을 껐기에 옷도 타고 얼굴도 그을음으로 타고
신발도 떨어지고 그나마 끈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문제는 강노인네 묘지를 태운 것이었습니다.
'남의 조상을 묘지를 태우다니
.어떻게 하나.
아버지가 아시면 또 혼구녕 날텐데..."
묘지 3개는 홀라당 타서 검게 그슬려 있었습니다.
그 묘지옆에는 뾰로뚝(보리수)와 벚나무가 있어서
열매도 실컷 따먹고 할미꽃이 많이 피고 잔디가 곱게 자라는 명당 자리였습니다.
우리 밭은 우리가 해마다 가을 되면 벌초되고
시제도 지내주는 대가로 받은 밭인 데 이렇게
참담하게 태웠으니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그나마 불이 더 크게 안 번진 게 다행여.
이 년아. 불 끌면 제대로 꺼야지."
하며 춘희 아버지는 밭을 갈기 시작했고 나는 어쨋든
아버지한테 알려야 겠다고 고개를 넘어
논 쪽을 보니 아버지는 논을 갈고 있었습니다.
"아부지요,,,
저..."
"무여 이 년아?" "논뚝 태우다 묘지 태웠어요. 세 개 다~."
"뭐시 이 놈의 가시나가 !. 넌 왜 맨날 말썽만 피우냐 어디 가보자"
아버지는 나를 앞세우고 밭에 가서 보니 참담한 상황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10여년 동안 이 밭을 부쳤는 데.... 강 노인 후손들을 어찌 보냐. 너 이눔의 기집애야.."
아버지가 뭔가 들려고 하자 나는 일딴은 줄행랑을 쳤습니다.
황토길 비탈길을 헐레벌떡 올라가서 내려다 보니 아버지는 낫으로
갈대잎과 억새풀을 베어서 검게 타 버린 산소를 덮어 씌웠습니다.
집으로 가자니 붙잡히면 혼 줄 날 것은 뻔했고 마을 뒤산에 올라가서 해가 질 무렵까지
침울한 모습으로 앉아있었습니다.
진달래가 오밀조밀 피여 있지만 아름답지도 않았고
서녁 하늘에 붉게 물들어 가는 저녁놀도 아름답기는 커녕 곧이어 어두워진다고 생각하니
무섭기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샘 가에 부지런히 움직이고 오빠와 동생은 비닐 하우스
안에서 유지를 덮고 쇠죽을 끓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배도 고프고 두렵기도 하고 일단은 산에서 내려와
우리 집이 다 보이는 희옥이네 건조실 짚더미에서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어둑컴컴해 지자 아버지는 밭에서 왔고
' 이 년은 어디간겨. 애꿎은 묘지나 태우고."
" 뭐냐 이 년이 일 또 저지른 거 아직 안 왔는데요."
"대체 어디로 간거야.강노인네 묘지 말이야."
"그려 이 년이 홀라당 태웠는 데 혼구녕 내려했더니 도망쳤는 데..."
" 그나 저나 이 년은 어디 간겨 좋아하는 냉잇국과 달래 된장국도 끓였는데..."
" 아무래도 낼 아침 여물 썰어서 묘지에 뿌려 놨야지 원,
조금 있으면 한식인 데 걱정이네."
부모님의 말소리는 내가 숨어있는 건조실까지 들렸고
' 오늘 밤은 어찌 지내지 사랑방은 불 안 떄서
추울텐 데..." 하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평소 닭이 알 낳는 곳을 보니 달걀이 보였습니다
희옥이네 닭이 난 것인 데 날 달걀을 낼름 먹었습니다.
배는 고파오고 짚더미에 있으려니 몸도 가렵고 달은 휘영청 떠오르고 피곤해서 그런 지
나도 모르게 잠이 왔습니다 누가 흔드는 지 깨어보니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평소에 내가 여기에 일 저지르면 숨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버지 몰래 나를 찾으러
온 것입니다. " 이 사고뭉치 새끼 또 불장난 한거야?
아버지 자면 이따 들어와. 낼 아침에 여물 많이
썰어야 한다. 묘소에 뿌리려고 난 막걸리도 준비해야 한다.
어여 부엌에 가서 밥 먹어라"
어머니는 나를 조심스레 데리고 부엌에서 냉잇국과 달래 된장찌개를 차려 주었습니다.
그리곤 "큰 집에 가서 테레비를 보고 오니라. 10시까지."
큰 집에 가서 " 에루화"라는 드라마를 보고
김병기 주연의 "노동당"이라는 드라마를 보니 11시가 다 되었습니다.
달빛은 교교히 비추고 닭장에 닭은 졸고 있고 누렁이 워낭소리 청아하게 들리는
우리집은 불이 다 꺼져 있고 아버지 코고는 소리만 요란했습니다.
윗방에서 자고 있으려니 파란만장한 오늘일에 웃음도 나고 허탈하기만 했습니다.
콩나물 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소쩍새 울음 소리가 들려오고 천장엔
어김없이 쥐가 달리기를 시작했나 봅니다.
<진달래>
그 다음날 아버지는 6시쯤 꺠워 짚단을 수북히 쌓아놓고 작두로 여물을 썰어 지게에 실어
강노인네 묘소에 세 번 왕복하여 무덤에 여물을 뿌리고 막걸리도 뿌렸습니다.
한식날 아버지는 자초지종을 얘기하여 철없는 아이의 불장난으로
그럭저럭하여 넘어갔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논둑에 불태우는 것을 보니 옛 생각이 나서 내려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랜만에 이 풍경(?) 을 보니 마음이 절절하기도 했습니다.
강노인네 산소는 여전히 있겠지요,
진달래꽃 할미꽃이 피어나 세월의 무상함을 더해주겠지요.
전 아직도 성냥만 보면 가슴이 콩콩 거려요.
첫댓글 안녕하세요.오래만에좋운사진 감상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