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내가 강단에 서는 일이 생겼다.
2005년 부터인가 청주 청남교회 초청으로 5월달이면 청주로 가는 일이 있었다.
그 교회 목사님 이한흥목사님은 충청북도 출신의 은퇴목사님들을 초청하여 1일 관광을 시키며
점심과 저녁을 아주 맛있는 음식으로 푸짐하게 대접을 하고는 거마비까지 챙겨주며 보낸다.
그는 내가 글을 쓰는 문인임을 알고는 자기가 출판하려는 자서전의 원고를 가져와 퇴고를 해 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자서전에 올릴 축시를 한 편 써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퇴고를 마친 원고를 주는 날 내가 쓴 축시를 건냈더니
읽고 나서 아무말도 없이 한참을 고개를 들지 않고 감격에 젖어 있어 보았더니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지를 않는가.....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눈을 훔치며 건네는 그의 말
"사모님 제가 눈물이 나서 참을 수가 없네요. 감사합니다 사모님......"
아무말도 못하고 정적이 흘렀다.
그에 자서전 출판기념식에 오라는 초청장이 왔다.
나의 축시 낭송이 순서에 들어있다며 강단으로 올라와 앉으란다.
강단에는 순서를 맡은 일곱 냐명의 목사님들이 앉아 계신다. 나는 앞자리에 있다가 나가서 낭송하겠다고
극구 사양하였으나 기어이 올라오라 하여 강단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되었다. 나는 우선 원고를 퇴고하면서 느낀점을 요약하여 말하겠다고 하고는.
어찌 한교회에서 42년간 목회를 하면서 사모의 내조에 대한 치하나 감사의 표현이 한 마디도 없었음을
지적하여 수정하게 만들었고 자녀가 3명인데 어찌하여 첫 아들에게만 고마움을 표시하였는지 몰라
작은 아들이나 딸이 아직 어려서 큰 도움을 못 드렸다해도 목사의 자녀로서 부모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자라 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임에 틀림이 없으니 영원히 남을 기록에다가는 3남녀 모두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 부분을 수정하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모두들 맞다고 박수로 응수하며 만면에 웃음을 금치 못한다.
분위기를 바꾸어 시 낭송은 배경음악을 깔아줘야 하는 것인데 준비가 안 되었다면
반주자 나와서 느린 곡으로 아주 작은 소리가 나게 반주를 해 달라고 하고는 축시를 낭송하였다.
쥐죽은 듯 조용히들 경청을 하더니 끝나니까 위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한참을 장악하였다.
이 행사에 왔던 인천 신호등교회전광운목사님이 자기 은퇴식에도 축시 한 편 써 달라고 하였다.
그래 하루 만나서 그의 인생 스토리를 말해 달라고 하여 요점을 기록해 놓고 그의 조기 은퇴를 미화시켜 시를 한 편 써 주었다.
역시나 그도 자기 은퇴식날 오라고 초청을 하더니 나를 강단위로 올라 오라하여 그의 은퇴식에도 강단에 서게 된 일이 있었다.
그 후에 한나기도회 모임에 강사로 초빙되어 마천동 이레교회에 가
3-40명 사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강단에 올라 간증설교를 한 적이 있다.
이리하여 목사도 아닌 내가 3 번을 강단에 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