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지 이 봄날 어울리는 시 한수입니다 .
檀偏宜鼻(전단편의비)
脂膏便宜口(지고변의구)
愛最洞庭橘(애최동정귤)
香鼻又甘口(향비우감구)
단향목 향은 코에만 맞고
기름진 음식은 입에만 맞는 법
가장 좋은 것은 동정의 귤
코에도 향긋하고 입에도 달다네.
기록을 보면 "문종은 수염이 매우 풍성하여 관우와 같은 풍모를 보였고, 얼굴 또한 매우 잘생겼다."고 전해진다. 연려실기술에는 이런 일화가 있는데, 병자호란 이후 궁을 정리하는데 타다 남은 왕의 어진이 1장 나왔다. 수염이 길고, 풍채도 당당한 왕의 어진이었는데 신하들은 인종의 어진이라고 생각했지만, 신익성이라는 사람만은 수염이 길다는 말만 듣고 문종의 어진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신하들은 이를 믿지 않았으나 나중에 어진의 표장을 고치기 위해 이전의 배접을 벗기자 그 뒤에 '문종대왕어진'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여러 난리통에 겨우 건진 문종의 어진은 소실되고 말았다.
문종이 태어났을 때, 세종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곧장 궁으로 갔다고 한다. 아들의 탄생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누구보다도 먼저 전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태종은 사냥광답게 상왕인 정종과 풍양(豊壤)에서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느라 나가고 없었다. 그래서 세종은 어머니인 원경왕후를 찾아갔고, 어머니인 원경왕후가 첫 아들을 본 충녕대군의 부부를 위해 축원해 주었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난 사흘 후, 아이의 탄생을 하늘에서 축하라도 하듯이 한양의 나무와 풀이 밤새 하얗게 변하는 목가(木稼)의 현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문종은 항상 국가의 중대사를 비롯해 모든 정사를 부왕인 세종과 상의하여 그의 결정을 기다려 시행하였다. 세종의 문종에 대한 신뢰는 상상을 초월했기에, 세종은 문종의 위엄을 세워주기 위해 업무의 진행만 체크하시고 대부분의 정사를 문종의 뜻대로 처리하게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문종의 섭정은 그가 정식으로 즉위하기까지 즉 세종이 승하하기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문종은 세종의 체제와 운영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모든 대소사를 결정함에 한치의 잘못이 없었다고 한다.
문종은 이 기간에 세종의 대표적 업적인 훈민정음과 4군6진의 개척을 비롯하여 세종의 중요한 국책사업 대부분을 마무리 짓는다. 왕의 업적은 시작이 아니라 보통 완성해서 반포하는 것을 기준으로 정한다. 그렇기에 경국대전도 예종시절에 완성되었으나, 반포하기 전 예종이 급사해 그 업적은 성종이 이어 받았다. 만약 세종의 뜻대로 일찍 양위했다면, 세종의 대부분 업적은 문종의 업적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통치기간과 재위기간이 다르기에 때문에, 문종임금의 경우에 자신의 중요한 업적 대부분이 아버지인 세종의 업적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세종의 태평성대는 세종 혼자만의 업적이 아니라 문종 그리고 그 둘의 후원을 받았던 신료들의 합작품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일 것이다.
세종은 거동하실 때마다 항상 세자에게 날씨를 물어 보았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항상 잘 맞춰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동남풍이 온다 슈퍼컴퓨터도 없는 시절에 문종은 아버지의 개인 기상청역할까지 한 것이다. 그 정도로 문종은 천문에도 매우 빼어난 재주를 가졌다. 흔히 장영실의 작품으로 알고 있는 측우기의 제작 아이디어는 실제로는 세자 시절의 문종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대개 듣건대,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현인을 구하고, 간하는 말을 따르고, 욕심을 적게 하고, 정사에 부지런함보다 나음이 없나니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이와 반대되는 것이다. 나는 덕이 없는 사람으로서, 왕업을 이어 받게 되니, 밤낮으로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깊은 못을 굽어보듯, 엷은 얼음을 밟듯이 하였다. 나의 과실을 지적해 주면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시정할 것이다. 그대들 대부는 벌써부터 성인의 학문에 마음을 썼으니, 만약 오늘날 시급한 일이 있고, 혹은 과실이 있는 데도 내가 듣지 못한 것이 있거든 마음 속에 있는 대로 다 진술하라. 비록 문장이 뛰어나고 아름다우며, 서술한 것이 매우 해박하더라도, 그 뜻이 오히려 부족하다면, 나는 그것을 배움의 노름과 같이 볼 것이며, 임금의 덕을 칭찬하여 요(堯) 순(舜)에게 비하여 임금의 행실이 말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나는 여름철에 밭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고되다고 하겠다. 오늘날의 책문에 성실하게 대답하기를 힘쓰라.”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권4 문종조 고사본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