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후 2시. 원포인트에서....." 구유회 회장 한수가 문자를 보냈다. 고맙다! 불 러주는 친구가 있고, 기다리는 친구가 있다는 건 황혼의 큰 행복이다. 마침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목도 출출하던 참이라 친구들과 일배하기에는 딱일 것 같아서, 늦 은 시간 이었지만 지하철을 타고 종삼으로 갔다. 종로3가 지하철역을 나서는데 어 떤 아주머니가 할아버지들과 뭔가 흥정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소위 말하 는 박카스 아줌마다. 종로 문화에 해박한 여삼이가 일전에 설명해준 일이 있어 이 제는 보기만 해도 대충 알수 있다. 그 모습들을 후줄근한 저녁 어스름 에 묻고 약속 장소인 원포인트로 갔다.
- 이 자리를 빌어 여삼이의 쾌유를 다시 한번 빌어 본다.
재작년 여름 당구를 배울려고 구유회를 찾았다. 장소는 종삼이라 했다. 종로는 차를 타고 지나친 적은 있어도 직접 가본 기억은 거의 없었다.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단 성사, 피카디리, 낙원상가 주변을 한바퀴 빙~ 둘러 봤다. 많이 변했지만 기억 나는 곳도 있었다. 명절이면 용돈을 받아 어김 없이 찾았던 곳, 단체 영화관람이 있을 때 는 친구들과 이곳 저곳 들쑤시고 다니던 곳..., 변함 없이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풀 어 놓을 이야기가 많은 듯 보이는 낯익은 골목길과 멀리 백악(白岳)의 그늘 또한 여 전해서 좋은 기분으로 당구장을 찾았다. 그런데, 공을 치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정 나미가 확 떨어졌다. 300, 200, 150 모두 도사들 같았다. 잘 잡아서 50~80 정도인 내 실력으로는 도사들과 어울려 게임을 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역시나 세월은 빨라 2년이 흘렀다. 회장 한수가 사부를 자청해 볼 때마다 한 수 씩 가르쳐주고, 전회장 재원이를 비롯한 기라성 같은 고수들은 돌아가며 친절한 멘토 역할을 해주었다. 청출어람(靑出禦藍) 사자성어에 능한 진석이가 많이 늘었다 고 한 말이다. 물론 재미로한 표현이지만 친구들 덕분에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 거 리를 간직하게 되었다. 그사이 친구들의 기량 또한 눈부시게 늘었다. 이제는 제각 기 주특기까지 개발하여, 구멍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구멍 3인방(정배, 계창, 광수) 빳다 세기로는 변강쇠 저리 가라는 선진이. 벗기기 귀신 창효, 돌리기 명수 호문이, 빈 틈만 보였다 하면 지나치지 않는 쑤시기 달인 의균이, 나날이 성장하는 기창이를 비롯하여 호시탐탐 칼을 갈고 있는 여타친구들(너무 많아 생략)이 소금 보 다 짠 300이상 고수들(준, 원, 수, 진, 회, 배, 식, 진 ,휘...)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좋은 친구들이 많고, 동창들이 한번 쯤은 발걸음을 하는 구유회, (당구를 잡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시안 게임의 정식 종목이고 전공을 하는 대학도 있다.) 오래도록 친구들의 유쾌한 만남의 휴식터가 되길 바란다. 또한 장소가 우리가 청소 년 시절 자주 발걸음을 하던 종로라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무덥고 자주 비가 오는 여름이면 종삼에 갈 때마다 문득 문득 생각 나는 일이 있다. 50년이 다된 아주 오래된 이야기.....
아마 우리 친구들도 그런 빛바랜 기억들 하나 둘 정도는 가지고 있을 거다. 옛 일들 을 떠올리다 보면 스쳐가는 한줄기 바람 같은 기억들이 잠시 더위를 잊게도 한다. 그래! 그때는 그랬었지... 칠흑 같은 여름밤,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서 두런두런 얘기하는 기분으로 지난 이야기들 나누다 보면 더위도 잠시 물러갈지 모르겠다.
"호랑이 장가 가는 날"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여름방학, 친구와 종로3가에 있는 피카디리극장에 영화를 보 러 갔다. 그 때는 교복이 외출복을 겸하였기에 풀을 빳빳이 먹여 다린 교복을 입 고 아직 중학생 티가 가시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폼을 잡고 집을 나섰다. 하늘은 맑 고 푸르렀지만 무척이나 무더운 날씨였다. 잎이 무성한 가로수 프라타너스에서 는 매미가 울어대고, 고추잠자리들이 짝짖기를 하느라 부산히 날아다녔다.
친구와 나는 차비를 아껴서 아이스케키를 하나씩 물고 창경원 돌담길을 돌아 비 원 앞을 거쳐서 극장으로 걸어서 갔다. 큰길 레코드 가게에서 흥겹게 흘러나오는 '빗속의 여인'을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표를 사고 보니 시간이 꽤 남아 여기저기 를 기웃거리며 입장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맑은 하늘에 천둥이 치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리는 비를 피하느라 가까운 좁은 골목으로 무작정 뛰어 들어 갔다. 정신 없이 뛰다 보니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젊은 여자들이 속이 훤히 비치는 옷을 입고 드문드문 서 있었다. 이미 소나기는 그쳤고 교복은 비에 젖어 몸에 착 달라 붙어 있었다. 우리를 본 여자들이 웃어면 서 다가 왔다. 비에 젖은 야릇한 살내 와 짙은 화장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중 한 여자가 말을 걸었다.
"오빠들, 장가 갈려고 왔어?" "귀엽게 생겼네~"
그러면서 모자를 뺏어 자기들 끼리 돌려가면서 써보고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황 당했다. 어찌어찌하여 모자를 돌려받고 도망치다시피 골목길을 빠져나오는데 뒤에서 어떤 여자가 소리를 내질럿다.
"오빠~, 쬐끔만 더 크면 와~"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는데 통~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존 웨인 주연 의 서부 영화였던 걸로 기억되는 데,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았다. 도통 재미가 없 었고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옆에 앉은 친구 얼굴을 슬쩍보니 똥침 맞은 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둥 마는둥 하고 집에 돌아 오니 어머니가 대청마루에서 다듬이질을 하시다가 시무룩한 나를 보고 한마디 하셨다.
"와? 영화가 재미 없더나?" "얼굴 표정이 와그렇노." "......." "석유 가게 가서 얼음 좀 사온나. 수박 화채에 얼음 채우면 시원 할기다..."
새끼줄로 묶은 얼음 덩어리를 사오자 어머니는 물통에 담궈 놓은 수박을 꺼내 시 원한 수박 화채를 만들어 내오셨다.
"더우면 이그 묵고 뽐뿌물로 등목이나 하거라." "날씨도 참말로 덥데이..."
한참 수박을 먹고 있는데 맑았던 하늘이 노래지면서 "우르렁 쾅쾅" 천둥이 치고 순식간에 억수비를 퍼부었다.
"하이고~ 놀래라. 호랭이 장개 가는 갑다"
마당에 심어 놓은 채송화, 접시꽃, 맨드라미 위로 빗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장독 대에서는 빗물이 통통 튀었고, 키 큰 해바라기는 어머니 말이 맞는다는 듯이 연 신 머리를 주억거렸다.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나도 장가 갈 뻔했는데....."
*여름에 해가 떠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오면 '호랑이 장가 가는 날' '여우비'라 했지요. *종로3가는 사창가 '종삼'으로 유명했다. 피마길을 중심으로 조선시대부터 들어 선 홍등가가 현대로 오면서 종삼으로 불렸다. 1968년 사회정화사업에 의해 철거 될 때까지 많은 문인, 예술인들의 활동무대였고, 이상의 '날개' '봉별기' 등의 배 경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시인 박인환의 책방 등 옛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세월이 가면 / 박인환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옛날이야기(2) 여름밤 이야기
신부/서정주
신부는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마음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 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옷자락이 걸려 찢어진 채로
오줌누곤 못쓰겠다며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리고나서
사십년인가 오십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버렸습니다.
초록재와 다홍재로 내려앉아버렸습니다.
-질마재신화에서-
|
첫댓글 장마인데 하릴없이 읽을 재미가 쏠쏠합니다..
글이 매끄러워요~~!
이래서 장마는 어김없이 매년 찾아오나 보다......이런 저런 야그 감사!
옛날 생각,,재미있어요,,글 솜씨가 작가수준이네,,계속 좀 써올리면 안될까유?
뭉기 성님 감사합니다
놀라운 글솜씨에 반했습니다.
성님은 너무 쎄요. 어따 쓰실려고...
위 300고수들은 동준,재원,한수,광진,영회,영배,춘식,성진,종휘 성님들입니다. 너무 고수들이라 함부로 이름을 부를수도 없고...
{강재우}님 !
진정한 최고수 .. 300 고수들 보다 뛰어난 문장력 .. . [ 작가 ] 하고도 남겠다 !!
찡한 동감을 느껴봅니다~~~~~
와~우, 꽁짜로 영화 한편 잘 보았구마요. 강재우 작가 / 감독님 ! 감사합니다요. 사업만 잘 하는지 알았구마, 이런 탁월한 문재까지? 오 작가가 울다 가것쑤다요. 하기사, 내 진즉에 알아 봤지요. 알다마야 그티치고 , 3구는 300 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때 감 잡았었심다.
얘술의 경지로 쑤셔 댓씅께요. 근디, 진 흙 속에 진주를 내뿌러 둠, 뭐시긴 지 알지요. 직무유기라요! 긍께 계속적으로 올리소. 안 금, 잡아 갈랑께요. 알찌라??? 아즉도 머리속에 파노라마가 돌아가구 이땅께요. 더위가 다 날라가 쁜네요. 감 ~ 솨 ! 겅강은 잘 챙기구 있디요?!
와! 상구성 꼭 옆에서 말하는 것 같아요. 이게 진짜라요. 감 ~ 솨!
진한 향수에 흠뻑 취해 다녀 갑니다. 이참에 아예 이 카페에 "강재우 고정 칼럼"을 ~~~~~~~~~
간만에 진한 추억을 되살려주는 글솜씨에 댓글을 안달수가 없네
담백한 감성과 집안 품격까지도 느끼게하는 한편의 작품을 모처럼 감상하여 고맙다고 해야겠네
그리고 당신은 우리 동기라는 사실이 더욱 자랑스럽움 ㅜㅜㅜ
난 그시절 그날 뭘하고 있었을까? 옛날들이 그리워져요오!!!!!
집이 창신동이 었던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요. 고 1,2 학년 때인데 야구응원을 하고 돌아올 때면 지나가야할 동네, 동대문 주변과 창신 숭인동 일대, 가끔은 모자도 뺏기고, 덩치도 작고 숫기 없던 저는 거의 울상이 되어서 모자 달라고 이 아가씨 저 아줌마로 달려가며 애원을 하고... 이제는 동대문 야구장도 없어지고, 도시 재개발과 청계천 복원으로 추억의 장소는 다 사라져 버렸는데, 재우성님 고맙습니다. 과거시절 얘기 종종 들려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