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 빅3 ④
시니어 연기자 편
서울고 총동창회 뉴스레터 12호(2018.
1. 9)
글· 김신기(54회) 편집위원
‘서울고가 배출한 빅3’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분야별로, 편집위원회가 머리를 맞대고 심사숙고해 선정했습니다. 동호회가 있는 분야는 동호회 의견도 듣겠습니다.
서울고가 배출한
‘시니어’ 스타! 이순재(5회), 오현경(8회), 심양홍(14회)
한 인터뷰에서 심양홍 동문은 배우가 되기까지 예술계로 진출했던 많은 고교 선배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 선배들 속에는 이순재 동문과 오현경 동문도 있었다. 세 동문이 재학하던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고는 스파르타식 공부로 유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개성 넘치는 연기자의 길로 나아갔고 인정을 받았다.
그 배경에는 공부뿐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서울고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세대 구분
없이 사랑
받는 ‘국민배우’, 이순재 동문(5회)
12월의 끝자락, 한 방송사 연기대상 시상식에 이순재 동문(이하 이 동문)이 등장하자 모든 배우가 기립해 박수를 쳤다. 그는 올해 여든넷으로 국내 최고령 연기자다. 하지만,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부터 방영 중인 드라마 ‘돈꽃’을 비롯, 최근 막을 올린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까지 열연을 펼치며 현역으로 살고 있다. 1956년 데뷔, 연기경력만 61년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촬영장에 먼저 도착하는 등 모범적인 선배의 모습을 보이며 많은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이 동문은 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를 통해 엄격하고, 냉정한 아버지상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일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엉뚱함이 넘치는 할아버지 역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극중 야한 동영상을 밝히는 장면이 방송되며 ‘야동 순재’라는 별명을 얻어 평소 위엄 있는 모습을 포기해야 했지만, 덕분에 세대 구분 없이 사랑을 받는 국민배우로 거듭나게 됐다. 또 덕분에 2007년 배우 최초로 연예대상을 받는 기쁨도 얻었다.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사극, 정치극, 로맨스, 코미디 등 장르를 넘나들며 빛을 발한다. 최근에는 한 케이블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기도 했다. 동년배 배우들과 전세계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방송을 보며 ‘이순재’란 배우가 어떻게 사랑 받게 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등 방송 내내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공부를 하던 그의 모습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최근 동문회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연기란 끝이 없는 직업이고 그래서 해볼만하고 보람도 있다”고 전하는 겸손함까지 갖춘 이 동문은 서울고가 배출한 ‘시니어’ 스타 임에 분명하다.
‘명배우’로 기억되고
싶은 연극의
달인, 오현경
동문(8회)
오현경 동문(이하 오 동문)하면 TV손자병법의 만년 과장 ‘이장수’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오 동문이 걸어온 60년 연극인생은 더 심오하다. 전신마취 수술만 다섯 번, 암투병과 교통사고로 생사를 넘나들면서도 연극무대를 쉬어본 적이 없는 그이기 때문이다.
사실 오 동문의 어릴 적 꿈은 외교관이었다. 사교성이 좋았기 때문인데, 중학교 시절, 우연히 보게 된 연극 ‘베니스의 상인’으로 장래희망이 연기자로 바뀌게 됐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서울고 최초의 연극부를 만드는데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서울고는 공부만 하던 분위기라 연극부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은 오 동문은 공부 잘하는 친구들을 앞세워 교장선생님을
설득했고, 마침내 연극부를 만들었다. 2학년부터는 연극부를 주도했고, 3학년때 한국연극학회가 주최한 ‘전국 남녀고교생 연극경연대회’에 출전하여 ‘사육신’의 ‘성삼문’역으로 연기상을 받으며 배우로서의 꿈을 키웠다.
대학교시절에는
응원단장에 뽑히기도 했지만, 매 학기마다 정기공연 하며 졸업 때까지 연극에 미쳐 살았다. 특히, ‘사랑과 증오의 계절’이란 작품으로 개교이래 처음으로 8,000명 관객을 모으기도 했다. 졸업 후, 잠시 극단에 있다가 서울에 처음 생긴 TV방송 ‘HLKZ’에 드라마 연기자로 참여했다. 그러다 1961년 KBS, 1964년 TBC와 인연을 맺고 방송생활을 했다. 오 동문은 이 와중에도 연극배우로서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13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됐다.
한편, 마지막까지 배우로 남고 싶다는 오 동문은 한 인터뷰를 통해 ‘오현경’이라는 이름석자를 떠 올렸을 때, ‘참 명배우였지’라고 기억되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공연에 임할 때면 항상 마지막 공연이라 생각하며 혼신을 다한다는 오 동문은 분명 서울고 ‘시니어’ 스타이다.
작은 역할에도
최선을 다하는
연기에 대한
열정, 심양홍
동문(14회)
심양홍 동문(이하 심 동문)이 출연한 작품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한 지붕 세 가족, 제1공화국, 사랑이 뭐길래, 엄마의 바다, 전원일기, 그리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등이 심 동문의 출연작이다. 무엇보다 1981년부터 시리즈 물로 방영된 ‘제1공화국’에 유진산 역으로 출연한 이후, 각종 드라마의 유진산 역은 모두 심 동문이 맡으며 인지도를 높였다.
사실 심 동문은 성우로 먼저 데뷔했다. 이후, 탤런트로 데뷔하며 편안하고 중후한 이미지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갔다. 대부분 출연작에서 조연 역할을 맡았지만, 작은 역할에도 최선을 다하며 오랜 기간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심 동문은 한 인터뷰를 통해 방황을 끝내고 배우가 되기까지 서울고 시절, 선배 예술인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실 그는 졸업 후,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를 했고, 이후 2년간 선술집을 드나들며 방황을 했다. 당시 우미관(영화관)에 가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이때 그의 진로가 결정됐다. 영화에 흥미를 느껴 한국 배우 전문학원에 등록, 연기를 배운 것이다. 이후, 대학교 국문학과에 다시 진학을 하지만 학술적인 수업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그다. 하지만, 연극반 활동은 적극적으로 하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
그는 배우가 되기 위해 교직이수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벼랑 끝에 모는 전술을 펼친 것이다. 결국 대학교 졸업 후, 국립극단에 입단을 했는데, 이 시절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
그가 극단 막내에서 막 벗어나 연기력을 갈고 닦으며 배역을 기다리고 있던 때다. 마침 ‘징비록’의 동자승 역을 맡게 되었는데, 비록 마지막에 잠깐 등장하고, 삭발을 해야 하는 역이었지만, 기쁜 마음에 삭발투혼을 감행했다. 하지만, 연출가가 마지막 장면을 취소하면서 출연할 수 없게 되었고, 심 동문은 혼자 족발집에서 곤드레만드레 취했다고 한다. 작은 역할이었음에도 삭발투혼까지 하며 보여준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이 지금의 ‘시니어’ 스타 ‘심양홍’을 만든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