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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찔리는 것보단 총에 맞는 게 낫다. 총에 맞으면 순간에 끝나지만 칼에 찔리면 태어난 걸 후회할 만큼 아프다. 나는 지금 아픔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상처가 깊이 흐를 때 느끼는 그런 아픔".
영화의 첫 장면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대사다. 그리고 그 대사에서 우린 영화 제목에 대한 명료한 이해도 가능해진다. 순간 앞으로 펼쳐질 이 영화의 그 음울한 청사진을 그려보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상처, 그리고 아픔... 첫 장면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식당에 들어서는 주인공들의 그 흘러내리는 핏물만큼이나 우리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선혈의 흔적을 남기는 영화. 고통스러워 가슴이 쓰리지만, 이 영화를 쉽사리 잊을 순 없을 것 같다. 이재한이라는 재미교포 출신의 감독의 이름 석자를 순간 외우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두 배우, 알렉스 매닝과 데이빗 맥기니스의 얼굴은 가슴에 묻게 된다. 너무 과장하는 것은 아니냐고?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우리 영화를, 영어 대사로 감상하는 그 생경함도 짜릿한 쾌감이지만, 낯선, 그러면서도 매력적인 배우들과의 만남은 그 짜릿함의 수위를 훨씬 넘는다는 것을.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는 16살의 주인공 벤은 한국계 청년이다. 아버지는 헝가리인, 어머니는 한국인. 하지만 너무나도 백인 같은 외모 때문에 그에게서 한국인의 흔적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런 벤이 어느 날 한 아파트에 배달을 갔는데, 그 아파트는 한국 갱단의 보금자리. 그 곳에서 벤은 그 갱단의 전설적인 보스인 JD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곧 그 갱단에 편입되기에 이른다. 그의 남루했던 일상은 전복되고 폭력과 마약으로 점철된 새로운 출구에서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게다가 꿈에 그리던 여인 미나 역시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니, 이제 돈도, 총도, 그리고 여자도 가졌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한 순간의 꿈. 미국에서 살아가는 이들 한국인 2세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과 상처뿐이다.
"미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갱이 되고, 망가지고, 그러다 죽는다. <컷 런스 딥>은 그들의 상처와 상실에 대한 영화다."
이재한 감독은 이렇게 자신의 영화를 얘기하고 있다. 12살 때 이민 가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만든 영화인만큼,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린 그가 얘기하는 상처와 상실의 무게를 직감하게 된다.
그럴진대, 만약 음악이 불필요하게 많이 삽입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다. 깔끔하게 처리된 영화의 이미지처럼, 음악은 과도하지 않게 적재적소에 스며들면서 영화에의 몰입을 촉구한다. 재즈 뮤지션인 정원영과 테크노 뮤지션 달파란이 그 음악의 주인공. 재즈와 테크노의 만남이라, 이거, 원 새로운 걸? 극과 극은 통한다는 이치가 바로 이런 거로군. 그렇게 이 두 명의 출중한 뮤지션들은 서로의 감각을 함께 조율하기도 하고, 혹은 자신만의 창작품을 내놓기도 하면서 따로 또 같이 영화의 내밀한 호흡을 완성해낸다. 벤의 독백과 함께 시작되는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 장면에 흐르던 영화의 메인 테마인 Trip, 벤을 통해 경찰의 잠복사실을 알게 된 갱단원들이 아파트 뒷계단으로 도망치던 장면의 Move your ass와 같은 곡들이 정원영과 달파란의 합작품이라면, 비가 내리는 새벽거리를 뛰어가던 벤과 미나의 풍경위로 고요하게 깔리던 사랑의 테마와 총에 맞아 스러지던 JD의 죽음 속으로 안타깝게 울려 퍼지던 레퀴엠인 Aria for the dying, 혹은 Rites of passage와 Rat in the sewer와 같은 곡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처럼 영화 음악 작곡가로도 남다른 애정을 선사하는 정원영의 눈부신 선율. 더불어 아파트에서 벌어지던 시끌벅적한 파티 장면을 채우던 Screamer/house party와 같은 테크노사운드는 역시나 달파란의 솜씨.
그 밖에도 최근 HOUSOLOGY라는 앨범을 통해 '하우스학'에 관한 소견을 피력한 언더그라운드 테크노 뮤지션이자 '테크노 검은 띠'라는 예명으로 통하는 민성기, 즉 트랜지스터 헤드의 Evolution과 같은 테크노넘버가 삽입됐으며, 로렌츠 하트와 리처드 로저스에 의해 만들어져 꾸준히 사랑 받아온 고전적인 재즈 넘버 My romance도 영화속 클럽 신에서 들을 수 있다. 게다가 벤의 첫 신고식 장면과 함께 갱단의 환호성 속으로 울려 퍼지던 스미스의 1984년 히트 곡으로 영화 <웨딩 싱어>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How soon is now, 마약에 취해 몽롱한 의식 속으로 파고드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4인조 밴드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의 Reverence, 벤과 미나가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데이트를 하던 순간을 설레게 채워 넣던 '슈베르트의 즉흥곡', 그리고 이 영화의 다크호스인 영화의 주제곡, 타니타 티카람의 I might be crying까지, 재즈와 테크노, 록과 클래식이라는 장르를 오가면서 무모한 욕망에 관해, 상처에 관해, 그리고 사랑에 관해 낮게 토로하고 있는 사운드트랙. 특히, 타니타 티카람의 I might be crying은, 서로의 운명이 교차되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흘러내리면서, 영화의 감흥을 미처 수습하지 못했던 우리에게 일종의 쇼크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지와 음악의 가장 완벽한 어울림. 영화가 더욱 근사한 것은 이 매력적인 사운드트랙 덕분이고, 사운드트랙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출중한 영화의 이미지 덕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빚졌다. 가장 아름다운 합일로 우리를 이끄는 영화의 사운드트랙. 자료출처 : GMV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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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노래가 가슴 흐리게 젖어들었던 이유..많이 담고 갑니다.^^*
즐감했습니다... 아우님..갑자기 크라잉 게임이란 곡이 생각납니다.. 전혀 성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마돈나가 불렀던가요.. 가능하면 찾아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