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성숙 (히 6:1-3)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1-14).
이 구절에서는 그들이 빠진 곤경의 주요 원인, 아주 실제적으로 들추어내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그때도 지식이 없었고 지금도 지식이 없습니다.
지식이 없으면 기준이 없는 것이며,
따라서 어떤 평가나 판단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말지니라”
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라고 했습니다(고전 14:20). 자라야 합니다! 완전해지고 성숙해지기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그 한 예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떤 결핍이나 결함 때문에 전혀 자라지 못한 채 유아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크나큰 비극입니다.
영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는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계속 함께 자라가야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엡 4:13).
자라는 일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숙해지지 않고 발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저와 여러분 같은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지혜와 영광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진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는 것, 이 자신의 사역이라고 말하는데(엡 3:9-10),
하나님은 자신의 위대함과 영광과 놀라운 방법들을 입증하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처럼 - 두려움에 희생되는 것은 무지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어린아이가 잘못된 가르침에 쉽게 희생되는 것 또한 무지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는 그럴듯한 사람이 접근하면 휘둘립니다.
어린아이는 자기한테 일어난 사건이나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전혀 모릅니다. 이 또한 이해력이 없는 탓입니다.
평소에는 훌륭한 그리스도인 같았는데 상황이 악화되면 완전히 무너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숙과 완전으로 나아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너희는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라는 것입니다(눅 8:18).
많이 가진 자일수록 더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많을수록 더 많은 지식을 얻습니다.
떡갈나무 묘목과 다 자란 떡갈나무가 다른 것과 같습니다. 묘목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그것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강풍과 태풍과 폭풍 앞에 버티지 못하고 넘어집니다. 그런 묘목 상태에 머물지 말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신약성경도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엡 3:17),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라고 말합니다(유 30절). 뿌리가 박혀야 합니다! 터가 굳어져야 합니다!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도 굳게 세워야 합니다!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엡 3:18).
어떻게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합니까?
첫 번째 대답은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이것이 그들이 곤경에 빠진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편지를 써서 이 문제를 아주 분명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두려운 말을 합니다.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인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4-6).
이 말의 의미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속죄의 죽음과 의롭게 하시는 부활을 부인하는 자, 그를 전적으로 완전히 의지하지 않는 자는 곧 잃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부인함으로써 그를 드러내놓고 욕되게 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행동이나 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복음 전체를 부인하며, 그렇게 부인하길 즐기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자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기본원리를 놓고 늘 논쟁을 벌이는 기독교 모임들이 있습니다.그래서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기본원리에 대해서는 이미 동의가 이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위격과 그 안에 있는 유일한 구원의 방법, 회개하고 새로 태어나 그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는 방법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한, 기독교회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이것이 기초입니다. 이것부터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다수가 겪는 문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방법을 아주 명확히 알며,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보배로운 피만 의지합니다. 그러나 50년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그다음 단계로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알려 줍니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단단한 음식”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실제로 신약 서신서들의 가르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기도보다도 감정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단단한 음식”[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중대한 목적, 주님에 대해 풍성히 알려 주는 중대한 교리들]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지각을 사용해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6:11-12에서 다시 말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부지런해야 합니다! 정진해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