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원 시인에게는 세상이 다 쉽다. 그러나 그 쉬움은 처음이면서 마지막인 체험의 소산인지도 모른다. 어렵게 바둥댄다고 시간과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자식도 많고 손자도 많은 “여자의 일생”에 일이 없을 수가 있으랴. 바쁘고 고된 생활에 짬을 내서 시를 쓴단다. 시집의 제목이 된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는 생존과 존재의 냉혹함이다. 그래서 살아가는 이유는 “가을보다 거울보다 먼저 웃자”이다. 참 멋진 절구이다. 어느새 “가을”이 온 나이이다. 얼굴은 “마네킹”처럼 동안이지만 어쩔 수 없는 나이의 침공! 손자는 좋지만 할머니는 싫다. 억거지로라도 더 웃자. 더 웃고 더 젊어지자. 가을 나이라는 현실을 누르고 입꼬리 올리고 거울보다 먼저 웃자.
강지원 시인은 쉴 줄을 아는 현대인이다. 말하자면 시인다운 시인이다. 사람이 나무에 기대면 쉰다. 그것이 쉴 “휴(休)” 자이다. 시인이 산을 찾고 숲을 찾는 것은 잊고 살던 나무에게서 쉼과 시를 배우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아차산 정상은 등 굽은 소나무가 최고”인 것을 안다. 장자는 “등 굽은 나무가 마을을 지킨다”고 했던가? 도회는 쓸모 있는 것, 비싼 것만 찾지만 산은 “등 굽은 소나무”를 모실 줄 안다. 산과 시인은 쓸데없는 쓸모없는 아름다움을 모시니까.
강지원 시인이 시를 “쉬어가기, 쉼표”로 이해한 것은 시가 쉬어가며 천천히 즐기는 진정한 인생 공부임을 깨닫는 일임을 알아서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말하는 강 시인의 진솔성과 겸손함은 그녀의 시를 지탱하는 참 목소리이다. 시를 벼슬하듯 어렵고 점잖은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시 공부의 핵심을 놓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 공부는 점잖은 위선이나 엄청난 기술이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느낌과 목소리가 시의 소리이다. 때로 그것은 새의 노래처럼 아이들의 깔깔거림처럼, 그리고 그것을 이쁨으로 받아들이는 엄마의 마음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W. 워드워스(W. Wordsworth)가 “시는 강력한 느낌의 자연스러운 넘쳐흐름”이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시법을 일컫는 말이다.
<작가소개>
시인 강지원
• 월간문학 바탕 신인문학상 수상
• 민용태 교수 문학아카데미 수강 중
• 국제문학바탕문인협회 정회원
• 동인지 시와에세이 14~19호 참여
그 외 시집 <굴뚝 연기가 그립다>
강지원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굴뚝 연기가 그립다』는 크게 5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몽돌〉, 〈달님〉, 〈정류장〉, 〈3월 첫날〉, 〈백일기도〉 등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눈치
거미줄
알라딘 하늘
농담
스마트폰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저수지
버리다, 비우다
잠을 위한 기도
분리수거
고독과 위안
빗방울
9등신
집밥
가을이 아프다
끝은 흐리게
호흡 그립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제2부. 시간을 둘러보는 둘레길
도담도담
바람길
속마음
거울 속의 나
마중물
스트레칭
시계는 고장난다
쓰담쓰담
무단침입
6월의 새벽
수평선
빗소리는 물음표
홀인원
애피타이저(Appetizer)
구름
멍한 마음
박수
겨울비
갠지스강의 염원
세상의 계절
어떤 날은 시(詩) 같은 날
시간을 둘러보는 둘레길
할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모퉁이 길을 지키는
참 멍청이
제3부. 어느 지구에서 왔니
바람 타고 떠난다
굴참나무 안부
기침
가을아
베베캠
햇살
우산 속은 멜랑꼬리(Melancholy)
소낙비
미안해
어떤 시(詩)
하늘
가을앓이
환기
짤즈캄머굿
새벽녘 눈
비가 속삭이다
끌어올려
현서 100일
캡슐 한 알
5월의 꽃
산책길
전통이라는 따스함
동행
기쁘고 고맙다
감기앓이
눈꽃 날린다
엔돌핀
성장통
어느 지구에서 왔니
비트 타는 하루
마스크 벗는 날
제4부. 하늘이 마술사
시간의 기적
보라 향기
나그네
머리가 뜨겁다
봄비가 살랑거린다
착각
숨
시간이 아프다
선물
노랑 파도
그냥 좋은 하루
평행선
바람을 걸친다
뭉게구름
AI 라운딩
방구석 여행
맨날 술이야
뇌를 움직이게 한다
가을 소식
틈
하늘이 마술사
[시평]
<본문 시(詩) ‘스트레칭’ 中에서>
눈뜨자마자 만세를 부른다, 기지개
시작을 알리는 알람
두들기고 비틀고 꼼지락거리는 동작들이
아침을 깨운다
여름 날씨만큼
에어컨 선풍기 바람 인공바람으로
밤새 자고 나면 붓기 있는 컨디션
쭈욱 뻗어 길게 더 길게 엎드리고 두들기며 몸을 깨운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여름 바람
콜롬비아 커피향으로 풍기는 행복전도사
기지개와 스트레칭 마중 나간다
아침을 맞이하는 알람 루틴
점점 올라오는 어깨 근육
긴장되어진 신경세포들에게
자유에의 길을 안내해주는 스트레칭
<추천사>
실존의 진실과 선함, 아름다움
강지원 시인, 그녀는 외부세계와 내면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실존의 진실과 선함,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안개 낀 호숫가에서 새벽을 맞는 작은 새가 어디에선가 예쁜 꽃잎을 물어다가 물 위에 띄우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법무법인 태일 대표변호사 김주덕(前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둥근 달이 千江에 비치듯(月印千江)
거울 속에 비친 그대
물속에 무엇이 비치던 물은 그대로 물이다. 달이 비춰도 물이고 산이 비춰도 물이다. 사람이 비춰도 물이다. 그러나 물을 모를 때에는 물속에 달이 있고, 산이 있고, 사람이 있는 줄 안다. 그래서 거기 쫓아가서 그거 건지려고 하다가 건지지는 못하고 옷만 다 버리고 고생만 한다. 강지원 시인의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시집은 Covid-19의 우울한 시간 속에서도 닫힌 베란다 창문에 물만 주었을 뿐인데 말 없는 약속을 지키듯 핀 군자란 꽃대에 감사하듯 긴 가을앓이 같은 갱년기 시기라며 인생 속에 얻은 혜안으로 일상 속에 비춰진 그림자들을 행동을 쉬면 나온다는 詩처럼 건져 올린다. 반사되는 거울보다 먼저 웃으면서… (금강사 주지 도안스님)
(강지원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168쪽 / 변형판형(135*210mm) / 값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