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마당은 비가 오면 질척거린다. 걷기도 힘들고, 신발도 흙투성이가 된다. 덩달아 토방도 지저분하게 된다. 고민을 하다가 마당에 넓적돌 깔기로 했다. 두께가 5에서 10센티미터 정도에 둘레는 어른 엉덩짝 크기인 돌이 좋겠다. 이 정도면 운반하기도 알맞고, 사람이 딛고 다니기도 좋다. 더 큰 돌은 옮기기가 힘들고, 작은 돌은 한두 해쯤 지나면 점점 땅 속으로 박혀 흔적이 없어진다.
이런 돌이 어디 있을까? 한 곳에서 10여 년 살다보니 어디쯤에 쓸만한 돌이 있을지 감이 잡힌다. 우선 떠오르는 게 냇가 밭 둘레다. 쓸만한 돌을 고른다. 되도록 한 면이라도 판판한 돌이 좋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무거운 걸 들 때는 늘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허리 돌리기를 비롯한 가벼운 몸 풀기. 그리고 자세를 잡는다. 허리를 의식하며 온몸으로 든다는 느낌으로 그 순간에 집중을 한다. 이렇게 해서 돌을 여러 개 주워왔다.
이제 이 넓적돌을 마당에 박기 전에 먼저 돌이 생긴 모양을 살핀다. 돌마다 참으로 다양하다. 미끈하게 생긴 놈, 반듯하게 생긴 놈, 판판하게 생긴 놈, 아래는 울퉁불퉁하나 위에는 판판한 놈... 이렇게 돌을 보다보면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자기만의 모습을 가졌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러기에 다 예쁘다.
돌이 생긴 모양대로 땅을 살짝 판다. 돌 두께보다 조금 낮게 판다. 나중에 돌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조금 바닥으로 들어갈 걸 마음에 두어야 한다. 그 곳에 돌을 먼저 놓아보며 균형을 잡아본다. 발로 밟아 지나치게 끄덕이거나 마당과 수평이 잘 안 맞으면 다시 돌을 드러낸다. 불균형했거나 너무 얕은 곳에는 돌 무게에 짓눌려 표가 난다. 그곳을 좀더 판 다음 넓적돌을 다시 놓는다. 이제 이 돌이 끄덕끄덕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킨다. 작은 돌을 큰 돌 틈새에 박아가면서 흙으로 채운다. 발로 이리저리 밟아보아 놀지 않고 안정감이 들면 된 거다. 이제 다음 넓적돌을 놓는다. 어디쯤이 좋을까. 걸음걸이가 가장 편안한 위치를 잡아본다.
이렇게 돌을 하나둘 마당에 놓다보면 그 어떤 기쁨이 올라온다. 뿌듯하다. 돌 하나 놓고 디뎌보고 또 하나 놓고 또 걸어보고. 오른발 먼저 시작해서 걸어보고, 다시 발을 바꾸어 왼발 먼저 걸어본다. 어른 걸음만이 아닌 아이들 걸음으로도 걸어본다. 아이처럼 깡충깡충 뛰어보기도 한다.
이렇게 넓적돌 여러 개를 마당에 깔자니 초겨울인데도 땀이 난다. 그런데 이 땀조차 마음을 즐겁게 한다. 똥오줌을 쌀 때와는 또 다른 배설의 즐거움. 뭔가를 창조할 때 오는 기쁨이 아닐까 싶다.
꼭 거창한 것만 창조는 아닐 것이다. 창조란 새로운 뭔가를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실 돌 몇 덩이 놓는 일이란 남들이 얼핏 보기에는 별 거 아니다. 생산성이 높은 일도 아니다. 돈벌이 생각만 한다면 쓸데없는 짓이기 조차 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아주 쓸모 있는 일이요, 기쁨을 주는 취미활동이다. 돈을 쓰면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그런 기쁨을 맛본다. 한마디로 창조의 기쁨에 푹 젖는다. 길 가에 버려진 제 멋대로 생긴 돌. 이를 살려 마당을 쓸모 있고, 아름답게 수놓는다. 만일 이 일을 돈 주고 품을 사서 전문가에게 맡기면 한결 더 나을까. 결과가 깔끔하기야 하겠지만 돌 하나하나에 자신의 혼을 담기는 어렵다.
그러나 손수 하는 과정은 전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생각에 달려있다. 어떤 돌을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놓을까? 이러저러한 자신의 생각이 현실로 드러날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 그러면서 다시 궁금함이 생긴다. 자신의 생각이 현실로 될 때 왜 기쁨이 솟아나는가?
생각이 현실로 되자면 기적이 아닌 한, 자신의 몸을 움직여야 한다. 돌을 마당에 까는 일은 물론 요리나 글쓰기 그 모두가 몸을 움직여야 현실로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몸을 움직여보면 생각처럼 안 될 때도 있고, 생각 이상의 성과를 얻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몸은 그 변화에 맞추어 생각을 다시 실현한다.
이렇게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서로 소통하고 서로를 맞추어간다. 이 때 몸과 마음이 서로 너무 멀리 있지 않을 때 서로 잘 통하고, 그 기쁨도 자주 느낀다. 이를테면 집을 짓는 일 같이 조금 규모가 큰일의 경우는 몸이 당장 감당해야할 몫에 견주어 마음의 몫이 지나치게 크다. 다시 말하면 신경 쓸 일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고민이 지나치게 많다보면 그 일을 하는 순간순간 과정 그 모두에서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가 어렵다.
여기에 견주어 마당에 돌을 까는 일은 수시로 몸과 마음이 서로를 보듬을 수 있다. 마음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눈앞에 바로바로 그 일이 이루어지면 그 즉시 기쁨을 느낀다. 게다가 지금 하는 이 일은 돌이라는 자연물을 소재로 하기에 한결 창조적이고 생동감이 있다. 그 이유는 자연의 모든 것들은 같은 것이 없고 다 다르기 때문이다. 작은 돌 하나조차 다 다르니 돌이 클수록 그 다양함은 더 뚜렷하다. 어쩌면 새롭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 소재 자체부터 이미 창조적이 아닌가. 또한 그 누구도 가져본 적이 없는 단 하나의 돌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이 일을 한다. 그러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넓적돌을 깔지만 그 결과는 다 고유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일은 완결을 목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성취하는 취미로 하는 것이기에 과정이 중요하다. 앞으로도 시간이 되고, 넓적돌이 더 생기면 계속 더 깔아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소하고 자그마한 일이지만 이렇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 자체가 주는 창조적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는 데 있다. 내가 깐 넓적돌을 발로 밝으며, 일상이 창조가 되는 그런 삶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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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감사.